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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과 진화론

송인규 교수, '개혁신학은 비성경적인 유신 진화론을 결코 수용할 수 없다'

작성자Stephan|작성시간15.10.19|조회수5,501 목록 댓글 2


개혁신학은 유신진화론을 수용할 수 있는가?

 

“유신진화론이 전 세대에 비해 훨씬 더 많이 그리스도인의 주목을 끌고 각광을 받는다고 해서 결코 동조할 수 없다.”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은 대체로 보아 “인간을 포함한 생물계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서 생물학적 진화론을 하나님의 섭리 방식으로 채택하는 신학 이론”이다. 그런데 근자에 유신진화론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일반 복음주의계에 편만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2005년의 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미국 오순절 계통의 대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학교에 따라 적게는 12%에서 많게는 27%가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인다고 반응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상대성 이론 및 양자 역학의 득세 이후로 번지고 있는 신학과 자연 과학 사이의 밀월 관계, 포스트모던식 과학 철학의 유행, 이머징 처치 운동의 확산 등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의 무오한 진리와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의 가르침을 바른 신학의 골조로 삼고 있는 보수적 장로 교회의 지도자들은 유신진화론을 타당한 이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두말할 나위 없이 “아니오!”이다. 그러나 “아니오!”라는 부정적 답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과연 우리가 무슨 근거에 의해 유신진화론을 반대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사항을 언급할 수 있겠으나, 필자는 크게 두 부류의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성경적·신학적 근거에 의한 반대

 

유신진화론은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가 된다. 만일 유신진화론이 성경적 진리로 인정되려면 최소 세 가지 결론이 창세기 1, 2장으로부터 도출되어야 한다.

 

첫째, 창 1:21과 1:27에 등장하는 동사 ‘창조하다’(히브리어 ‘바라’)가 ‘자연 과정에 의한 발전’으로 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바라’는 자연적 과정에 의한 현상을 묘사하는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특히 창 1:1에서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함의한다.

 

또 비록 창 1:21, 27의 ‘바라’는 무에서의 창조가 아니고 기존 재료 - 들짐승과 새의 경우에는 ‘흙’(창 2:19)이, 수중 생물의 경우에는 ‘물’(창 1:20)이, 또 인간 신체의 경우에는 ‘흙’(창 2:7)이 -를 사용한 하나님의 역사를 묘사하지만, 어쨌든 이 역시 자연 과정에 의한 발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에 의한 창출 행위를 나타낸다. 이처럼 ‘바라’라는 용어가 유신진화론의 성립을 반대하게 만든다.

 

둘째, 유신진화론이 가능하려면 창세기 1장의 여러 곳(11, 12, 21, 24, 25절)에 등장하는 단어 ‘종류’(히브리어 ‘민’)가 오늘날 생물 분류학에서 거론되는 각종 명칭들 - ‘종’(種, species), ‘속’(屬, genus), ‘과’(科, family), ‘문’(門, phylum) 등 - 과 아무런 실질적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생물분류학에서는 모든 생물을 ‘계’(界, kingdom) → ‘문’(門, phylum) → ‘강’(綱, class) → ‘목’(目, order) → ‘과’(科, family) → ‘속’(屬, genus) → ‘종’(種, species)의 체계에 따라 분류한다. 가령 예를 들어 ‘사람’ 같으면, 동물계 → 척추동물문 → 포유류강 → 영장목 → 사람과 → 사람속 → 사람종으로 분류가 된다.]

구체적으로 각기 ‘종류’대로 창조된 생물체들 가운데 ‘동물’(창 1:25)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떤 이는 이 ‘종류’가 ‘종’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그보다 더 상위 개념인 ‘속’이나 ‘과’ 또는 심지어 ‘문’까지도 가리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껏 양보하여 설사 이 ‘종류’가 ‘문’을 뜻한다고 해도 이로써 유신진화론의 입지가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유신진화론은 생물학적 진화를 액면 그대로 인정하는 고로 최초의 생명체로부터 인간의 형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이 점진적이고 자연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의 ‘종류’를 생물학적 분류 가운데 아무리 높은 단계로 해석한다고 해도 이로써 유신진화론이 성립될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 또 유신진화론이 성립되려면 창 2:7의 ‘흙’(히브리어 ‘아파르’)이 인간 직전의 하등 동물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나 ‘흙’이 하등 동물이라는 해석은 성경의 여러 증거로 보아 가당치 않다.

 

우선 만일 유신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인간이 하등 동물로부터 진화된 것이라면, 이미 흙으로부터 짐승이 창조된 이후(창 1:24-25)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창 2:7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짐승’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라고 더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으셨단 말인가? 또,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 후 심판을 언명하실 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창 3:19)라고 하기보다도, “너는 ‘짐승’이니 ‘짐승’으로 돌아갈지니라”라고 하셨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모든 성경의 증거들은 인간의 육신 창조에 있어서 사용된 재료가 하등 동물이 아니고 그저 흙임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창 2:7의 ‘흙’을 ‘하등 동물’로 해석하는 것이 부당한 이상, 유신진화론 역시 결코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

 

유신진화론은 이처럼 성경의 증거와만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유신진화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아담이 인류 최초의 역사적이고 개인적인 인물이라는 것, 아담의 영혼은 뇌로부터의 진화적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직접 창조에 의한 독립적 실체라는 것, 아담이 창조와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존재가 되었을 뿐 아니라 하등 동물을 다스리도록 문화 명령을 부여받았다는 것, 또 아담이 언약의 머리였던 고로 그의 범죄가 인류 후손에게 원죄의 비극을 초래했다는 것, 로마서 5장이 예시하듯 첫 아담과 둘째 아담 사이에 대표자로서의 유비가 존재한다는 것 등 개혁 신학의 중요한 진리들이 왜곡되든지 폄하되든지 부인될 수 있다. 이처럼 유신진화론은 신학적으로도 커다란 위험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하겠다.

 

유신진화론은 이처럼 성경적·신학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보수적 장로 교회(및 개혁 신학)의 입장에서는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2. 과학적/이론적 근거에 의한 반대

 

비록 우리가 유신진화론을 반대하는 궁극적 이유는 이 이론이 성경의 진리와 개혁 신학의 가르침에 위배되기 때문이지만, 부차적으로는 생물학적 진화론이 가진 이론적 문제점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에 생물학적 진화론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유신진화론에도 반기를 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진화론이 지닌 과학적/이론적 문제점은 무엇인가? 필자는 여러 가지 사항 가운데에서도 두 가지 문제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생물학적 진화론이 가진 가장 큰 이론적 문제점은 그 이론의 주장 내용과 실증적 자료 사이에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물론 화석의 증거에 관한 문제점이다.

 

화석은 과거에 일어난 생물학적 변화와 발전(혹은 사멸)을 보여 주는 숨김없는 기록이다. 그러므로 화석은 진화론을 입증할 유일의 확실한 증거가 된다. 문제는 그러한 화석의 기록이 진화론의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해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모순처럼 작용하기도 한다는 데 있다.

 

만일 생물학적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발전을 나타내는 전이적 생물체에 대한 화석이 발견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화석의 증거는 미미하기 짝이 없고 많은 경우 그저 공백으로 남아 있다.

 

또 화석의 증거가 보여 주는 바에 의하면 어떤 생물체들의 경우에는 (분명 더 나은 형태로 진화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 만 년 동안이나 아무런 변화를 나타내지 않은 채 동일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새롭고 복잡한 구조의 생물체들이 어떤 시기의 화석 기록에 매우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일이다. 가장 특이한 예가 소위 말하는 ‘캄브리아기 폭발’(Cambrian explosion)이다.

 

진화론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약 5억 7천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초기의 화석 담지(擔持) 퇴적암 안에서, 주요 해양 무척추 동물문(門)을 대표하는 모든 형태의 생물체들과 후손을 남기지 않은 다양한 다른 문들의 생물체들이 발견된 것이다. 화석의 증거만으로는 이토록 잘 발달된 무척추동물들이 어디서 유래하게 되었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진화론자들의 딱한 실정이다.

 

화석 증거의 불일치와 관련하여 생물학계 내에 매우 의미 심장한 사건은 1972년 엘드리지(Niles Eldridge, 1943∼)와 굴드(Stephen Jay Gould, 1941-2002)가 ‘계통적 점진주의에 대한 대안, 단속 평형설’(Punctuated Equilibria, an Alternative to Phyletic Gradualism)이라는 제하의 논문을 발표한 일이었다.

 

단속 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 theory)은 종의 분화를 설명함에 있어 다윈식의 점진적 변화 이론에 반기를 든다. 이는 새로운 종들이 신속히 발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전통적 이론에 수정을 가한 것이다. 즉, 종속 집단이 그 종의 주류 집단과 지리적으로 격리된 채 장시간이 흐르면 얼마 동안 평형 상태(equilibrium)에 도달해 이 상태를 유지하다가, 조건이 맞으면 돌발적으로 종의 분화가 일어난다는 식의 설명을 시도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전이적 형태는 지질학적 시간에서 한 순간에만 나타나고, 단지 오래 존속하는 지배적인 종들만이 화석에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은 전통적 진화론의 입장, 곧 다윈식의 점진주의(Darwinian gradualism)와 상당한 이론적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진화적 변화의 주된 방식이 무엇인가와 관련하여 진화론자들 사이에 첨예한 의견 대립을 유발했다.

 

단속 평형설이 등장하여 전통적 진화 이론에 수정을 가한 것은 그 정도로 화석 증거의 불일치가 생물학적 진화론에 타격을 주고 있었다는 증거인 것이다.

 

둘째, 대진화에 대한 증거 확보의 어려움은 생물학적 진화론의 목표인 바 공통 조상으로(common ancestry)부터의 계통 발생(phylogeny) 수립 노력을 거의 무위로 만든다.

 

오늘날 진화론자들은 생물계의 다양성을 공통 조상으로부터의 발전과 변화로 설명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꿈꾸는 이상이자 학문적 노력을 종종 ‘계통수’(phylogenetic tree of life)로 예시하곤 한다. 그러므로 계통수를 구성하는 ‘가지’와 ‘결절’(node)을 정확히 표시하면 할수록 생물학적 진화론은 과학으로서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요, 그러한 표시가 불투명하고 모호하면 할수록 단지 하나의 ‘이론’ 차원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까지의 현황을 보건대 그 전망은 매우 어두운 채로 남아 있다. 특히 한 생물체와 다른 생물체의 진화적 선후 관계를 이어주는 ‘결절’ 생물체들의 존재가 쉽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이미 생물학적 상식으로 되어 있는 ‘소진화’(microevolution)와 ‘대진화’(macroevolution)의 개념을 도입하고자 한다. 소진화는 보통 종의 분화 과정에 수반되는 작은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주로 종 내부 혹은 집단 내부의 유전적 변이와 연관이 된다.

 

이 변화들은 지질학적 연대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짧은 기간에 걸쳐 발생하기 때문에 변화에 대한 사실적 주장과 이를 위한 검증이나 증명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서는 창조론자들까지도 기꺼이 인정하는 바이다. 따라서 생물학적 진화론이 만일 소진화의 범위에 머무르기만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진화론에 대해서 하등의 반론을 제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진화론의 이론은 대진화의 메커니즘까지도 포함하고 있고, 오히려 이것이 훨씬 더 핵심적인 주장점으로 되어 있다. 대진화는 ‘종’ 수준 이상의 진화를 말하는데, 진화론자들은 이 방면에서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모든 자원들을 총동원한 가운데 공통 가계의 경로를 추적하고 재구성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실 계통수의 요체는 이렇듯 대진화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대진화가 아무리 ‘관찰과 비교’ 작업을 성실히 한다 할지라도 소진화에서의 고찰과는 달리 온전히 ‘과학적이지 않은’ 탐구 방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대진화가 현재의 입수 가능한 자료로부터 과거의 사태를 소급적으로 추론해야 하는 통시적(通時的) 성격의 작업이기 때문에도 그렇고, 또 매우 불충분한 자료를 기초로 하여 연구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도 그렇다. 이처럼 전반적 작업이 과학적으로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진화론의 숙명적 생리이다.

 

그리하여 1800년대 생물학자들에게 문제가 되었던 사안들은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도 그대로 존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다른 목(目)의 새들은 서로 간에 어떤 방식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가?” “원생 동물류(protozoan groups) 가운데 어떤 것이 후생 동물(metazoans)의 기원이 되었을까?” “어떻게 상이한 무척추 동물문들이 상호 관련을 맺고 있는가?” 등의 의문이 그러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확실한 바는 계통학적 분류의 낮은 수준으로 내려올수록 공통 조상을 추론하는 것이 쉽지만, 그 이상의 수준으로 올라가면 전혀 사정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강’(綱, class)이나 ‘문’(門, phylum) 같이 커다란 분류 범주 사이를 연관시키고 이로써 계통학적 재구성 작업을 시도하는 일은 자연 과학의 표준적 작업 - 반복된 실험과 검증에 의해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일 - 성격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진화론자들이 과거에 비해서 생물학적 진화론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훨씬 더 많이 확보되었다고 주장하고, 또 대다수의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의 학설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사실’이라고까지 말하곤 하지만 대진화의 이론이 아직도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어 있지 않다는 목하의 현실과 공통 조상으로부터의 계통 발생 수립의 전망이 그저 ‘헛된 희망’(wishful thinking)의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감안할 때 생물학적 진화론의 학문적 위상은 아직도 의문 투성이라고 밖에 판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시에 이렇게 불안정하고 전망이 흐린 생물학적 진화론을 핵심적 지지 이론으로 채택한 유신진화론에 대해서도 역시 의심과 비판의 눈초리를 감추기가 힘들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유신진화론이 전 세대에 비해 훨씬 더 많이 그리스도인의 주목을 끌고 각광을 받는다고 해서 이에 동조하는 것은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요동하는”(엡 4:14) 치졸한 모습이다.

 

오히려 우리는 성경의 진리와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에 입각한 바른 신학의 기치를 높이 듦으로써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해야”(고후 10:5) 할 것이다.



-송인규 교수, 기독교개혁신보 2011년 3월 9일 기고문에서






‘유신 진화론’에 대한 합신(합동신학대학원 대학교) 교수들의 입장 


유신 진화론은 현대 과학의 이론이 가정하는 진화론의 틀에 따라서 창세기 1장을 해석한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이론이 가정하는 진화론의 틀이란 하나의 가설일 뿐 확정된 진리가 아니며, 그 가설을 따라 "하나님의 창조"를 주장하는 시도는 오류이다.

유신 진화론을 받아들일 경우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오류를 범한다.

(1) 이분법의 오류:
유신 진화론은 성경을 단지 주관적 의미와 목적만을 말하는 것으로 보며, 객관적 사실은 과학이 말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신학적 사실과 의미조차도 성경의 정당한 해석에 근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진화론적 범례를 따르는 과학을 기초로 설명한다.

(2) 이중진리의 오류:
유신 진화론은 동일한 진리가 한 편으로는 성경의 증거로, 다른 한편으로는 진화라는 과학적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주와 인류의 기원에 관련해서는 진화론적 증거를 말하는 과학의 진리 인식이 성경의 증거보다 우월하다고 말한다.

(3) 성경해석의 오류:
유신 진화론은 진화론에 따른 과학의 증거에 기초하여 기원을 설명해야 한다는 진리인식의 원리에 따라서 창세기 1장을 창조의 과정에 관한 역사적 사실의 기록으로 보지를 않는다. 단지 온 자연과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의미만을 전달하는 문학적 기록으로 볼 뿐이다. 유신 진화론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된 최초의 역사적 인물로 인정하지 않는다.

(4) 창조와 섭리의 혼동:
유신 진화론은 창조와 섭리를 구분하지 않는다. 창조를 진화의 과정으로 환원시킨다. 그 결과 창조를 제 1원인이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활동으로 보지 않으며, 단지 진화라는 제 2원인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해석을 한다.

(5) 대표적인 교리의 오류들:
유신 진화론은 죄를 의지적 불순종으로 보지 않으며 성경적 죄의 개념을 부인한다. 모든 악은 자연의 본질적 상태로 이해할 뿐이다. 아담과 하와를 역사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여기므로 인간의 죽음이 그들의 타락의 결과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으로 인한 구원도 없다고 주장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 진화하여야 할 정점에 있는 오메가 포인트로 여겨질 뿐이다. 따라서 합신 교수들은 유신 진화론이 성경의 교훈에 어긋나는 그릇된 이론으로 판단한다. 



-개혁신보 제597호에

 

 

 

<리뷰> 기독교계로 침투한 유신진화론 1

:유신론적 진화론의 주장과 문제점들

 

 

1. 창조론과 진화론


  기독교의 교리는 창조론의 기초석 위에 구원론이라는 건물을 지은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창조론이 파괴되면 구원론도 무너지게 되므로 전통신앙에서 창조론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진화론이 창조론을 대체하여 영향력을 교회내로 침투시키고 있는 것은 성경적으로는 말세에 일어날 사건으로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지금은 크리스쳔 엘리트들과 양식있는 학자들이 각성하고 진화론의 실체를 직시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


진화론과 기독교의 양립은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거의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무기질로부터의 자연발생설 대 창조주에 의한 창조설, 자연선택적 진화설 대 처음부터 종류대로의 완벽한 창조설, 인간에 대한 유물론 대 영육론, 생명기계론 대 목적론적 생기론, 현세주의 대 내세대망론, 무신론 대 유신론 등 어느 것 하나 대립적 개념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계 내로 다양한 형태의 진화사상이 유입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독교가 진화론으로 물든다면 기독교는 교리상 치명적인 파멸을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2백여년 전에 무신론자인 볼테르(Voltaire 1694-1778)는 기독교가 길게 잡아 일세기내에 지구상에서 살아질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테일러는 경고하기를 앞으로도 진화론과 종교(기독교)를 결합시키려는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나겠지만, 이는 양측을 파멸로 이끌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양식있는 자라면 부패하기 쉬운 소수의 엘리트집단이 통치하는 막스주의적인 인본주의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부패할 수 없는 창조주의 통치를 받을 것인지 선택하라고 촉구한다. [Taylor; ibid, p 30]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독교사역자들은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해 너무 등한시하고 있는 것 같다. 알 수 있는 기회가 적기도 했겠지만 알려고 하는 관심도 적었던 상 싶다. 그것이 끼칠 반기독교적인 파괴력을 아직도 대부분의 교역자들이 느끼지 못 하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진화사상에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교육의 커리큘럼에 창조론을 필수과목으로 시급히 추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화론의 기독교 내로의 유입은 교묘한 양상을 띠고 있다. 처음부터 무신론적이거나 유물론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기독교계는 놀라 대항했을 것이다. 진화사상은 서서히, 점진적으로 성경(특히 창세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방법의 일환인 양 신학의 통로를 이용하여 진보적인 유신진화론자들에 의해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2. 유신진화론 (Theistic Evolutionism)


유신진화론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들다. 아직 학문적으로 확립된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이 주장이 가지는 파괴력은 그 어느 학문보다 큰 것 같다. 특히, 기독교신학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더 그러하다. 유신진화론은 그 단어가 말하듯이 ”하나님이 천지를 진화론적으로 창조하셨다는 주장”이다. 창조주를 믿으면서 진화론도 수용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이론은 창조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설정한 것만 제외한다면 내용적으로는 거의 진화론적이다. 예컨대, 우주만물의 진화적 형성, 진화에 필요한 긴 지질연대의 설정, 각 지질연대에 부응하는 지층과 화석의 점진적인 형성, 유인원으로부터 인간의 진화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유신진화론의 범주에 우주만물의 진화를 주장하는 진행적 창조론을 비롯하여, 비록 진화 자체를 직접 주장하진 않았다 하더라도 긴 지질연대를 내세우는 날-연대설과 간격설, 그리고 창세기를 비유나 신화로 폄하하는 골격가설 등을 포함시켜 기술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론들을 유신진화론이 범주에서 제외한다면 유신진화론의 실체는 거의 남는 것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통적인 복음에 위협이 되는 사상이 바로 그러한 이론들이기 때문이다. 헨리 모리스는 그의 저서를 통하여 이러한 이론들이 얼마나 깊숙이 진화론과 연계되어 있는지 경고하고 있다. [Henry Morris; Scientific Creationism, 16th ed, pp 215-255, Master Books, El Cajon, CA, 1991] 그것은 과학이 아닌 신학적 해석체로서, 인간의 타락과 구속의 필연성을 명백히 부인한다. [Morris & Parker; ibid., p 300], [G. Wilson; Theistic Evolution, CEI Publishing Co.]


이들은 공공연히 다윈의 진화론과 동일과정설을 성경해석에 인용하거나 조화시키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간격설(1814)이나 날-연대설(4C)은 다윈이 <종의 기원>(1859)을 발표하기 이전부터 있어 온 신학문제로서, 이러한 이론들을, 진화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성경과 조화시키려 하는 것은 진화론의 기독교 내로의 새로운 침투로 인식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유신진화론의 사상적 뿌리는 일부 교부들의 6기간적 견해, 아리우스주의에 뿌리를 둔 유니테리언, 범신론적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을 수용한 스콜라철학 및 큐비에의 다중격변설, 근세의 자연발생설과 세속인본주의 및 벨하우젠의 문서가설, 벨그송의 생의 철학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 19세기말부터 카톨릭과 개신교는 물론 유대교와 이슬람의 내부로 유신진화사상은 급속히 침투하였다.

 


1) 아리우스주의와 유니테리언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 4C)을 비롯한 초대교회 시대의 일부 교부들은 6일을 기간으로 해석하였다. 그들 자신이 유신진화론자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이론은 후일 동일과정설로 이어지게 되었다. 루터는 이들의 그러한 자세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사제겸 신학자였던 아리우스(Arius 250-336)는 예수의 신성과 삼위일체설을 부인하여 니케아종교회의(325)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다. 그를 따르던 아리우스주의자들은 이에 위협을 느끼고 유럽지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반 카톨릭적인 루터교회로 스며 들었으나, 거기에서 다시 추방되었다. 그후, 이들은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들은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을 부인하고, 모든 자연현상을 이성으로 해석하려 하였다. 그리고, 인도주의와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의 일원인 비들(John Biddle 1615-1662)이 세운 유니테리언교회(Uniterian Universal Church)는 개인적인 활동방식을 추구하면서 유니테리언의 이름으로 결속을 다지는 방식을 취하였다. 초창기에 이 운동에 가담했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실낙원을 쓴 밀튼(John Milton)을 비롯하여 철학자인 로크(John Locke), 물리학자인 뉴톤(Issac Newton), 산소를 발견한 프리스틀리(Joseph Prietley), 미국작가인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등이 있다. 이들은 개인적으로 활동하였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였다.


런던에 영국교회(Anglican Church 1773)가 설립된 데 이어 20여년후(1793년)에는 보스톤에 미국 최초의 킹스채플(King's Chapel)이 세워졌다. 그 후, 같은 보스톤 지역에 세워진 하버드대학(1816)은 아사 그레이(Asa Grey)의 주도로 유니테리언의 본거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유니테리언은 내용상 진화론과 동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레이는 다윈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의 사상을 미국에 적극적으로 전파하여 <진화론의 전도사>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다. 프리스틀리와 같은 유니테리언 교회에 다녔던 다윈도 청년시절에는 유니테리언이었다는 사실은 음미할만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유니테리언 사상은 진화론은 물론 벨하우젠 등의 문서가설의 형성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2) 스콜라철학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을 창세기와 조화시킨 스콜라철학(13C)은 카톨릭계에 신비주의적 요소를 가미시킴으로써 범신론적 요소를 부여하였다. 스콜라철학이 카톨릭의 교리로 공인된 것은 트렌트공의회(1545)에서 이지만 실제적으로는 13세기부터 수용되어 온 이론이다. 오늘날 카톨릭단체가 펼치는 환경운동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자연은 성경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으므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내에서 조화롭게 개발하여 활용하자는 것이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이었다.

 

3) 다중격변설


유신진화론의 형성에 영향을 준 큐비에국부적인 홍수가 역사상 여러 차례 일어났으며, 그 때마다 홍수에 의한 격변으로 지금과 같은 지층들이 형성되었다는 '다중격변설(multiple catastrophism)'을 주장하였다. 그는 마지막의 전 지구적인 대홍수가 노아의 홍수였다고 하였다.

*참조 : 창조과학의 노아홍수설 반대…다중격변설 제시,

           SFC, 양승훈의 ‘다중격변 창조론’ 출간. (2011. 9. 16. 기독교보).

          양승훈교수 다중격변론의 문제. (2009. 3. 13. Acts)

 

4) 간격설


에딘버러 대학의 교수이며 목사였던 챨머스는 창세기와 다중격변설을 조화시키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6일 창조기간의 하루는 24시간의 하루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러한 간격설은 후일 펨버에 의해 보강되어 스코필드 주석성경에 인용됨으로써 대중적인 공감을 얻게 되어 개신교의 유신진화론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5) 날-연대설


한편, 옥스퍼드대학의 교수이며 목사였던 버클랜드는 일부 교부들의 6일 기간설과 챨머스의 간격설을 종합하여 날-연대설을 주창하였다. 그의 6기간설은 유니테리언과 함께 유신진화론을 구미대륙에 전파하는 구심체 역할을 하였으며, 후일 그의 제자인 라이엘에 의해 동일과정설로 발전하였다.

 

6) 영국성공회


개신교의 일파인 영국성공회(Anglican Church)는 진화사상을 교회내로 이끌어 들이는 선봉적인 역할을 하였다. 지도층에 있었던 스트라우스 등이 개인적으로 진화론을 수용한 데 이어, 킹즐리(Charles Kingsley)는 다윈의 ‘종의 기원’에 영향을 받고 종의 불변성을 믿지 않게 되었노라고 다윈에게 편지하였다. [Chales Darwin; Letter from Kingsley to Darwin, 18 November, 1859] 그는 특별창조의 대안으로 유신진화론을 채택하였다.


보이스카웃의 창설자이며 옥스퍼드대학 교수인 파월(Baden Powell)은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의 신봉자로서, 구약성서를 엉뚱한 이야기로 생각했다(Powell 1957). 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의심 많은 유대기록보다는 다윈의 진화적 관점으로 더 잘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교회는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파월과 같은 시기에 영국성공회의 추기경이었던 클렌소(John Colenso 1814-1883)는 <모세오경과 여호수아서>(Pentateuch and the Book of Joshua)에서 구약성경을 비판하였다. 결국, 그는 추기경의 자리에서 물러나도록 선고되었으나(1860) 다음 재판에서 승소하여 그는 그 직을 유지하였다.


또 하나의 극적인 사건은 영국성공회의 최고위직인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템풀 부자가 다윈주의를 수용한 것이다. 훼더릭 템풀(Federick Temple 1821-1902)은 1860년에 런던지구추기경으로서 성공회내에 진화론을 확산시켰다. 그는 무신론적 유물론자인 다윈이 서거하자(1882년) 그를 영국교회의 상징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영웅으로서 국장을 치루도록 영국상원과 같이 주선하였다. 그의 아들인 윌리엄 템풀(William Temple 1881-1944) 역시 캔터베리 대주교가 되어 진화론과 더부러 좌익사상을 성공회내로 끌어 들였다.


그 즈음, 신학자이면서 고생물학자인 스미스(William R. Smith)는 브리타니카의 주필이 되면서(1881) 15여년간 문서가설과 유신진화론의 홍보에 열을 올렸다. 그의 영향으로 1890년경에는 자유주의적 인물들이 신학계의 요직을 독점하게 되었다.

 

7) 생명의 자연발생설


19세기 중엽에 파스퇴르의 생명발생설을 격렬히 비판했던 니이담뷰퐁의 생명의 자연발생설(Abiogenesis)에 영향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물과 흙으로부터 연속적으로 생물을 창조하셨다고 해석하면서, 교리적으로 생명의 자연발생설을 주창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당시에는 카톨릭교회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8) 생의 철학


19세기말에 진화론과 창조론을 이론적으로 조화시키려고 처음 시도한 사람이 <생의 철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벨그송(H. Bergson 1859-1941)이다. 그는 진화현상을 물질이나 기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배척했으나, 진화의 역사적 측면은 인정하였다. 그는 우주속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이 생물학적인 사실 외에 그 내면에 잠재적인 어떤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즉, 하나님이 진화라는 메카니즘을 통하여 지금과 같은 생물들을 창조하셨다고 믿었다. 그는 변종을 자연이 선택하여 신종이 탄생하게 한다는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반대하였다.


그는 생명체가 왜 더 복잡성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물질론적인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다. 생명속에는 보다 고차원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는 ‘생명의 추진력’(Vital impulse)이 있으므로 생명의 기원과 역사는 창조적 진화론에 의해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이 ‘생명의 추진력’을 ”생명에 스며 들어가 신체의 내부에 퍼져 있는 의식의 흐름(a stream of consciousness)이나 초월적 의식”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흐름은 생식작용을 통하여 다음 세대로 이전되며, 이러한 과정이 되풀이 되면서 신종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화의 목적인 생명의 존재이유는 인간을 지구상에 존속시키려는 데 있다고 하였다.

 

9) 인본주의(Humanism)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의 인본주의를 스콜라철학에 도입하였다. 14세기부터 17세기에 이르는 300여년간 유럽에서는 중세 암흑기에 반발하여 인본주의적인 르네상스운동이 일어났다. 그림과 조각을 중심으로 불이 붙은 르네상스의 주제는 그리스학문과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그예술작품의 내용은 그리스와 성경의 내용이 테마를 이루었고, 라틴어 성경이 각국 방언으로 번역되기 시작하였다.


르네상스 말기에는 프랑스의 볼테르(Francois Voltare 1694-1778), 룻소(J. Roussau 1712-1778), 디데로(Diderit), 영국의 로크(J. Lock)와 (S. Mill)과 같은 인문주의자들은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를 주장하였다. [Taylor; ibid, pp 25-26] 특히, 프랑스의 인문주의자들은 중세교회의 억압에 반발하여 무신론적이며 유물론적인 성향을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이러한 인본주의적 사상은 유니테리언과 진화론자들에게로 이어졌다.


한편,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자연주의(naturalism)는 자연법칙을 신격화하였다. 이러한 범신론적 사상은 그후, 진화론의 한 축을 이루었다. 다윈의 스승이었던 페일리는 자연속의 신비한 조화는 창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다윈은 그러한 조화는 적자생존에 의한 자연선택의 결과로 해석하였다. 아사 그레이는 이러한 자연의 조화를 지적설계(interigent design)라 부르면서, 그 실체가 유신론자들에게는 창조주를, 무신론자들에게는 자연법칙을 의미하는 것으로 편리하게 설명하자고 다윈에게 제안하기도 하였다.


 

3. 유신진화론의 주장


유신진화론은 여러 학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 내용과 범위가 넓어 하나의 통일적 견해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테일러는 유신진화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은 창세기의 첫 11장을 모두 부인하고 신화, 풍유, 비유로 해석한다. 지적설계를 인정하지만 설계자를 사실상 신의 위치에 두기를 거부한다. 신은 단지 창조과정에만 관여하며, 자연법칙에 따른 여러 진화과정에 의해 생물종이 스스로 나타나도록 하는 일과 진화의 최종단계에 선택받은 유인원에게 인간의 요소를 부여하는 작업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이들은 창조주가 자연선택에 개입하는 증거로 도약진화설(puctuated equilibria)을 든다...이렇게 함으로써 화석기록에 나타나는 간격을 설명하려고 한다.” [Taylor; ibid, p 366]

유신진화론은 다양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공통적인 내용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2) 창조의 방법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하는 진화 메카니즘을 택하셨다.


(3) 진화과정에 따라 오늘의 우주, 지구, 생명이 탄생하였다. 따라서, 진화론의 골격인 우주기원에 대한 빅뱅설, 지형형성에 대한 동일과정설과 지질주상도를 수용한다.


(4) 생명체의 다양성은 하나님이 진화과정을 통하여 그렇게 만드신 것임을 보여 준다.


(5) 영장류에게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어 아담과 같은 현생인류가 탄생하였다.


(6) 이러한 생명의 진화에는 오랜 세월이 소요되었다. 따라서, 6일창조설은 문자적인 24시간의 하루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 지질연대로 이해해야 한다. (단, 간격론자들은 문자적 24시간설 지지)


(7) 창세기 1장의 1절과 2절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존재한다. 처음 창조된 우주는 루시퍼가 이끄는 일부이 천사들이 반역하여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파괴되었다. 창세기 1장에 기록된 6일창조는 하나님의 재창조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단, 일부의 날-연대주의자는 격변설에 반대)


(8) 화석형성은 처음의 창조세계가 파괴되면서 만들어졌다는 간격설과  6단계의 지질연대 때마다 차례로 형성되었다는 날-연대설로 양분되어 있다. 두 이론의 공통점은 화석, 석탄, 석유의 생성이 노아홍수때 생성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노아홍수를 국지적 홍수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

(9)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 진화를 진행시키시다가 불필요시에는 중단시키신다. 요즈음, 진화현상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진화를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진화과정으로 신종의 출현이 어려울 때에는 하나님이 창조사역에 직접 개입하신다(과정적 창조론).


(10) 창조사역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이 하신 일이요,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구원사역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므로, 기독교가 이 문제에 대해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 특히, 골격가설에서는 성경의 핵심은 구원론이므로 창조과정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고 주장한다.


(11) 제목설, 재창조설, 기간문제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기독교내에 분파싸움을 낳을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관용적으로 넘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적개념을 분명히 하여 기독교 공동의 적인 무신론적 자연주의(진화론)와 싸워야 한다. (단, 일부에서는 진화론 자체를 전폭 수용)


(12) 첫사람 아담은 흙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유인원(원숭이)에게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어 창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창세기의 ‘생령이 된지라’(창 2:7)라는 구절을 든다. 이 밖에, 가인이 말한 ‘나를 만나는 자’(창 4;14), 노아홍수 직전에 살았던 ‘사람의 딸들’(창 6:2-3)은 유인원의 후손을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4. 유신진화론의 문제점


이러한 유신진화론의 주장은 외관상은 성경의 기록과 상충할 것 같지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의 원리와는 너무나 먼 이론임을 알게 된다.


첫째, 성경을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하나님 말씀으로 믿지 않고(蓄字靈感說), 상징적이거나 상황적으로 해석한다는 점이다. 글자가 나타내는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상징적 또는 알레고리(풍유적)로 해석하거나 문장속에 흐르는 의미만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예컨데, 아담을 지은 흙은 어떤 선재하는 피조물을 상징하는 것이라든가, 번성하라는 뜻은 다른 생물종을 생산하라는 뜻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의 절대권위를 폄하하려는 이러한 자세는 구미의 고등비평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온 것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축자영감설에서 주장하는 문자적 해석을 틀린 것이라고 비판하는 자신들의 주장도 잘못된 것이 되는 자가당착의 논리에 빠지게 된다. 조직신학자인 에릭슨(M. J. Erickson)은 이렇게 지적한다. ”창세기의 몇 장을 다룰 때 유신진화론들이 사용하는 전략은 두 가지 중 하나이다. 하나는 창세기가 생물과 인간의 기원에 관하여 어떤 구체적인 사항도 말하고 있지 않다고 변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들을 다만 상징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둘째, 진화론적으로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창세기 1장에 10회에 걸쳐 '종류대로” 만드셨다는 기록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풀, 채소(1:12), 모든 물고기들(1:21), 모든 새들(1:21),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모든 생물들(1:24-25)을 종류대로(min, after his kind) 만드셨다고 하셨다. 신약성서에도 육체는 다 같은 것이 아니며 사람, 짐승, 새, 물고기의 육체가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고전 15:39). 더구나, 창세기에는 사람에게만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불어 넣으신 것으로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다(창1:27, 2:7).


셋째, 모든 생물을 과정적으로 만드셨다면, 진화론적으로 사람은 유인원에서 진화했을 뿐 아니라 다시 다른 동물로 바뀔 것으로 믿어야 한다.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물이 보다 고차원적인 생물로 진화한다는 말이다. 이는 열역학 제2법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명백히 성경에 반하는 이론이다. 이러한 해석은 킹제임스번역(King James Version)에 ‘생령이 된지라'(창2:7b)를 'man became a living soul'이라고 번역한 내용을 근거로 유인원이 사람이 되었다(became)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러한 해석은 반성경적이다. 그 이유는 후술하고자 한다.


넷째, 창조의 기간이 길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창조기간이 너무 짧다고 비판한 그들의 주장과 모순논리에 빠지게 된다. 창조기간이 짧다는 주장을 비판한다면, 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로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모른다고 한다면 솔직한 대답이 될 것이다. 우리가 창조주의 전지전능성을 인정한다면, 창조의 기간은 사실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기간문제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창조기간을 길게 해석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 창조론이 기독교의 핵심교리가 아니며, 기독교가 싸워야 할 공동의 적은 진화사상이므로 주적개념을 분명히 하자는 데에는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는 오늘날 기독교(특히 청소년층)를 쇠락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진화론적 교육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의 주장이 진화론과 내용적으로 같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 대한 심각성은 물론 시정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가르치지만, 학생들은 학교교육에서 배운 유물론적인 진화사상에 물들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더 나아가, 많은 청소년들이 진화론과 대립하는 창세기의 기록에 회의를 품고 무신론적 사고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러한 잘못된 풍조에서 우리 자녀들에게 두 이론을 모두 가르침으로써 학생들이 한 이론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여섯째, 유신진화론은 성경과 과학의 분리주의(compartmentalism)의 입장을 견지한다. 유신진화론자들은 하나님이 처음에 시간, 공간, 물질을 창조하신 후 자연법칙에 따라 자연적으로 우주가 발전하도록 하셨으리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주가 탄생한 후 자연법칙에 따라 여러 생물종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특별한 경우에만 필요에 따라 초자연적으로 창조작업에 개입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이러한 태도는 유신진화론이 기독교보다는 자연주의에 더 영향을 받은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연에 부여한 내재적인 힘‘은 범신론적(汎神論的)이며 이신론적(理神論的)인 것이다.


이러한 태도에 대해 라이트(Richard Wright)는 유신진화론자들을 이렇게 비판한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창세기의 초반부를 신화가 아니면 역사적인 창조나 자연계에 대한 정보가 결여된, 신학적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일련의 비유로 해석한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그 문제들을 아예 도외시함으로써 과학과 성경사이의 갈등을 피하려 하는 것이다.” 비록, 창세기의 기술은 과학적인 기술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속에는 창조의 목적과 순서 및 방식이 분명하게 선언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피조물간의 관계와 역할 및 속성이 잘 나타나 있다.


일곱째, 아담의 창조로 창조사역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진화과정을 통해 지금도 창조사역은 계속되고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창조의 질서는 시간이 갈수록 더 완벽해지는 쪽으로 진화해 가는 것이므로, 태초의 질서지금의 우주질서 보다도 더 불완전한 것이 되고 만다. 이는 타락이전의 완전했던 피조세계를 무시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한 피조세계의 회복도 불필요한 것이 되므로 비복음적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주계의 모든 반응은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여덟째, 인류의 조상 아담은 유인원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창조된 것이라면, 아담 이전의 영혼이 없었던 ‘사람동물들‘은 어떠한 존재이며, 아담의 후손과 ’사람동물들‘의 딸이 결혼하여 태어난 자손들은 과연 영혼이 있는 존재인지 아닌지 해석하기 어렵게 된다. 더구나,”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육체)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창2:7)고 하셨는 데, 육체를 만드신 후 지질학적으로 수천만 년을 기다리셨다는 말이 된다.




-임번삼 교수(명지대학교 외래교수, 전 대상그룹 식품당당 대표이사,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한국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서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241





 

*참조 1 : <신간> 예수와 다윈의 동행 - 신재식(호남신학대 신학과 교수) (2013. 7. 31.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3/07/31/0903000000AKR20130731125700005.HTML

진화론을 믿는 크리스천 과학자가 있다고? (2009. 6. 19. 오마이뉴스)
[서평] 우종학 박사의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59342

'창조의 방법으로 진화를 사용하셨다” (2015. 2. 10. 기독신문)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90276

'아담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해석 (2015. 2. 2. 뉴스앤죠이)
 [서평] <아담의 진화: 성경은 인류 기원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는가?>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8385

템플턴재단, 유신론적 진화론 보급에 동참 (2009. 3. 18. 크리스찬투데이)
'기독교신학계 악영향 우려한다” D.I. 평가
 http://christiantoday.us/sub_read.html?uid=14933%A1%D7ion=sc73%A1%D7ion2

한신대, 과학과 신학의 '대화' 場 마련 (2014. 12. 6. 기독일보)
: 신희섭 교수, '뇌연구를 통한 마음의 이해' 주제로 뇌의 진화 과정 설명
http://www.christiandaily.co.kr/news/한신대-과학과-신학의-대화-場-마련-50058.html

 

*참조 2 : 인간이 진화로 창조됐다? 용납할 수 없는 '유신 진화론 (2014. 9. 23. 기독일보)
http://m.christiandaily.co.kr/news/인간이-진화로-창조됐다-용납할-수-없는-유신-진화론-46213.html

'유신진화론이 전 세대에 비해 훨씬 더 많이 그리스도인의 주목을 끌고 각광을 받는다고 해서 결코 동조할 수 없다.” (2011. 3. 9. 기독교개혁신보)
http://rpress.or.kr/xe/?mid=sinkan&document_srl=22991&search_target=regdate&search_keyword=201207

창세기 1장 1절, 신앙인들부터 부끄럽게 생각해서야 (2014. 4. 3.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71166

Theistic evolution—a greater fairytale for mankind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24-27.pdf

10 dangers of theistic 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749/

Biblical problems for theistic evolution and progressive crea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497/

'A child may see the folly of i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427/

Is it possible to be a Christian and an evolutionis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304/

Theistic evolution: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795/

Did the Creator use 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306/

What does the New Testament say about Crea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806/

 

출처 :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 중에서

관련 자료 링크:

1. 기독교계로 침투한 유신진화론 2 : 가톨릭과 개신교의 유신진화론화

2. 유신론적 진화론과 창조-진화 논쟁 (Theistic Evolution and The Creation-Evolution Controversy)

3. 진화론은 반(反)종교적 신념이고, 종교 그 자체이다 - 5. : 유신론적 진화론과 점진적 창조론

4.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믿는 그리스도인 형제에게 : 장대익 씨의 '한국창조과학 운동을 재고한다' 에 대한 반론

5. 스퐁은 틀렸다 (Spong is wrong) : 진화론을 받아들인 신학자의 주장

6. 진화론 - 영적 세계에 대한 거부 수단 (Evolution - the ultimate antidote to spirituality)

7. 다윈 대 하나님 (Darwin vs. God)

8. 진화론 : 고대의 이교도 개념 (Evolution : an ancient pagan idea)

9. 다윈의 공헌? : 진화론과 성경은 혼합될 수 없다. (Darwin’s contribution?)

10. 진화론과 기독교는 물과 기름 같다. (Evolution and Christianity Mix like Oil and Water)

11. <리뷰> 다윈의 첫 번째 실수 : 산타크루즈 강의 계곡에 대한 그의 동일과정설적 설명은 틀렸다. (Darwin's First Wrong Turn)

12.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영국인들의 반은 진화론을 의심하고 있었다. (Poll Reveals Public Doubts over Charles Darwin’s Theory of Evolution. A poll in Britain reveals widespread doubt over Darwinism—or does it?)

13. 다윈의 유전학적 곁눈가리개 (Darwin Had Genetic Blinders)

14. 다윈 진영 내의 반란 (Revolt in the Darwin Camp)

15. <리뷰> 멸절되고 있는 다윈의 진화계통수 : 생물들의 유전자 염기서열의 불일치는 공통 조상을 거부한다. (Darwin's Evolutionary Tree 'Annihilated')

16. 진화론자들은 다윈을 숭배하도록 아이들을 가르친다. (Evolutionists Trains Toddler to Adore Darwin)

17. 다윈주의 : 목적 없는 생존 (Darwinism : Survival without Purpose)

18. 진화론이 신학에 미친 영향 (The Influence of Evolutionism on Theology)

19. <리뷰> 두 신학자의 다른 길 (A tale of two theologians)

20. 왜 창조과학인가? (Why Creation Science is Necessary?)

21. 진화론이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된 이유

22. 2011 학술대회 신학강의 - 창조과학 운동에 대한 신학적 옹호와 발전적 제언

23. 2011 학술대회 신학강의 - 늙은 지구론의 신학적 딜레마

24. 과학자의 신학 탐구, 신학자의 과학 탐구 (Scientist's Theological Quest, Theologian's Scientific Quest)

25. 창조론과 진화론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

26. 진화론이 교회에 미친 영향

27. 성경이 들려주는 기원의 연대 : 한국창조과학회가 젊은 지구 연대를 주장하는 성경적 이유

28. [토론] 유신 진화론 vs 창조론 (youtube 동영상) : 하나님은 진화를 사용하셨는가?

29.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것이 기독교의 신뢰성을 손상시키는 일인가? (Does creation damage Christianity’s credi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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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tephan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5.10.19 현재 한국 복음주의계 일각에서 차츰 널리 받아들여져가고 있는 유신진화론에 대해 소개하고 성경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인 논리 차원에서 비판한 송인규 교수님과 합동신학대학원 교수님들, 그리고 창조과학회 임번삼 교수님의 글입니다. 성경의 절대권위를 인정하고 그 책이 무엇을 우선적으로 선포하고 가르치느냐에 둔감해지게 만드는 경향, 친동성애나 사회복음, 친가톨릭, 무천년설의 경향이 유신진화론적인 사고의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교회 안에 점점 스며드는 유신진화론의 위험성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답댓글 작성자기독네티즌 | 작성시간 15.10.19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이론이나 가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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