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기독교와 타종교

유혹

작성자설송|작성시간21.10.27|조회수37 목록 댓글 0

많은 돈을 들여 아주 좋은 곳에 암자(庵子: 작은 절)를 지은 후, 스님을 모셔다가 10여 년 간 뒷바라지를 한 여자 분이 있었다.

 

규모가 작다 보니 , 암자살림살이야 하찮은 내용들이었지만 , 세상 일 때문에 스님의  정신이 흐트러질까봐 모든 일을 시주(施主)인 그 보살이 처리하고 스님은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게 배려했더란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 그 보살은 그 스님의 공부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그녀에겐 외동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칭찬을 아끼지 아니할 정도로 아름답고 성품도 훌륭했었다. 그녀는 그 딸에게 부탁했다.

 

'오늘 저녁 밥 상을 네가 들고 가서 스님을 최대한으로 유혹해보아라. 그리고 그 스님이 하는 말을 정확하게 귀담아 듣고 와서 좀 알려 주렴 .'

 

어머니라 하지만 부탁 내용이 상식에서 크게 벗어났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어머니 사랑이 깊었고, 반면에 자신은  어머니를  지혜로운 인생의 스승으로 존경하고 믿어 왔었다. 그래서  어떤 의아심도 품지 아니하고 따르게 되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부탁을  성실히 따르기 위해, 스님 방에 가기 전에 그 어느 때보다 정성을 기울여 화장을 했다.

 

 

그 날 만큼은 , 스님이 식사할 때 밖으로 나가있지 아니하고 한 쪽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엔 , 방을 정리해드리겠다는 이유로 머물렀다. 방 정리를 마친 후엔 다시 스님 눈치를 살피다가, ' 피로가 풀리도록 스님 어깨를 좀 두드려드리겠다.'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보았다.

 

스님 얼굴엔 다소 꺼리는 표정이 스쳤다. 그러나 절 집(불교) 예절에 벗어난 내용을 제안한 상대방이 너무 어색하게 여길까 봐 곧 얼굴에서 모두  지워 버린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고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은 허락인지 반대인지 애매했었다. 그녀는  허락으로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조용히 다가가 가볍게 스님의 어깨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스님은 ' 이 정도야---' 하면서 경계를 푸는 것처럼 그녀에겐 보였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어깨를 주무르기도 했다.

 

두드리는 것에 비해 피부 접촉이 더 강화되었지만 거부를 아니했다.  뒷모습을 지켜보며 동시에 스님의 느낌을 헤아려 보던 그녀는 이번엔 뒤에서 조용히 껴안아 보았다. 그제 서야 스님은 '움직'였다. 그리고 처녀의 팔을 조용히 밀쳐 냈다.

 

그녀는 스님께 물어 보았다.

 

" 스님 ! 솔직히 말씀해주시겠어요 ? 보통 남자들은 저를 보고 예쁘다고 말하며 사귀어 보자 조르는데---- 제가 껴안았을 때 어떤 느낌 이었지요 ? "

 

" 응 ? 꼭 매 마른 고목(枯木)나무처럼 어떤 느낌도 없었어. "

 

그 처녀는 물러 나와 어머니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자 보살은 그 동안 쓸데없이 세월만 낭비했다며 스님을 바로 내 보내버리고 암자를 불 태워 버렸다고 한다.

 

여러 종류의 절 집 이야기들을 그 동안 들어왔는데---. 잎이 모두 떨어져버린 늦가을 나무줄기처럼 앙상한 이야기 구조(사실)만을 전달해줄 뿐, ' 왜 감동적이며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 에 대해선 설명이 전혀 없다. 인색하다는 것을 넘어 매정하다 랄까 ?

 

듣는 자의 개인적인 느낌이나 깨우침에 맡겨두는 것--- 즉 미완성 상태로 놓아두는 것이야말로, 듣는 자를 더 깊은 생각으로 이끌어 가는 신비로운 힘이 되는 것 같다. 동양화의 여백과 같은 아련한 매력에 비유되려나 ?

 

단순한 '사실의 전달'을 넘어서, 그 이야기 의미에 대한 설명을 덧보태기에 이르면---, 이미 전달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느낌이나 생각을 말하는 것이 되며, 그 결과 자칫 잘못하면 , 전혀 방향이 다른 엉뚱한 내용을 전달할 위험이 있다고 여기는 겸손 때문일까 ?

 

아무튼 이 이야기가 나름대로 나에겐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느낌이 없는 나무나 바위가 아니라 , 느낌이 있지만 절제할 수 있는 힘--- 그래서 모든 감각이 뚜렷한 이 몸 이대로 가지고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 바른길이지, 느낌이 없는 바위나 나무토막으로 내 몸을 바꾸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고 그 보살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또한 ' 움직임이 있었는데  입으론 다르게 표현하다니 ! '라는  의미도 있어 보였다.

 

느낄 줄 모르는 인간은 타인의 아픔이나 슬픔도 또한 모르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잔인해지기 쉽다. ' 꽃잎 하나 질 때마다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 쓰나미가 몰려와 수십만 명이 죽어도 ' 기독교인이 아닌 이교도(異敎徒)이니까 죽어 마땅했다 !' 라고 태연해질 수 있는 인물도 있다. 우리가 이웃으로 두고 더불어 살고 싶은 사람은 바로 전자가 아닐까 ?

 

과거에 사귀었던 사람들을 보면 내 과거를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옛 지인(知人)을 만나면 때로는 옛날의 나를 발견하는 것 같아 반갑다. 그리고 우연히 오랜만에 마주친 옛 사람이 아주 훌륭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매우 기쁘다.

 

어느 날 미술 작가들의 공동 전시회를 알리는 팜플렡이 도착했다. 보내는 사람이 명확하지 않은 광고용 선전 종이는 어느 것이던지 공해로 여기며 펼쳐 보지도 아니하고 대부분 곧장 쓰레기통에 던지는데--- . 그 날 만큼은 이상하게 눈길을 끌어 펼쳐보았다.

 

작가들 중에 20 여 년 간 연락이 없던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직 남아있는 처녀시절 흔적이 시선을 끌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그 팜플렛에 나와 있는 그녀 작품이 더 관심을 끌었다. 그런 분야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던 그녀였기에, 도대체 언제 그림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 정도 수준까지-- !'라고 놀라게 만들었다.

 

 

먼 도시였지만 전시회에 가 보았다. 그녀와 전시장 밖으로 나와 식사를 하며 지나간 이야기들이나 그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 매력이 덜했을 때 , 떠나버린' 그녀에게 고맙게 여겼다 . 지금 상태에서 떠났다면, 상실감이 너무 컸을 터이니까--- . 젊은 시절 청순함이야 거의 사라졌지만, 새로운 큰 매력이  있어 보였다.

 

그 때 , 비발디 사계인 휴대폰 음악이 요란하게 울렸다. 뒤이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는 짝의 음성이 흘러 나왔다.

 

' 꿈속에서도 만나기 힘든 옛날 여자 친구를, 정말 기적처럼 현실 속에서 만나 함께 식사를 하는 중'이라고 사실 그대로 말했다. 그러자 짝은 즐겁게 식사도하고 꼭 심장약도 잊지 말고 먹으라고 너그럽게 말했다. ( 내가 아주 좋아하는 비발디 곡이었는데--- 이 날 이후 ,그 곡을 싫어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몸에 지니지 않기로 다짐했고---)

 

그 이후엔 휴대폰 속에나 갇혀있어야 할 내 짝이 우리 대화 속으로 계속 밀고 들어 왔다. 이렇게 오랫동안 밖으로 나돌다가 집에 들어갔을 때 내 짝이 궁금하게 여길 경우 무어라 말할지 그녀가 매우 궁금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을 물어볼 정도로 시시한 짝이 아니지만, 만약 묻는다면--이미 휴대폰에 대고 말한 사실에 좀더 구체성을 띤 몇몇 항목들이 추가되겠지만, 아무래도 오랜만에 만난 느낌들만큼은 과감하게 생략될 것 같다고 했다.

 

내 의지에 대한 맹렬한 그녀의 비판이 뒤따랐다. 도대체 그 말을 들었을 때 짝이 느끼게 될 기분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부족한 어리석음이라 보는 것 같았다. 그 어리석음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않겠다는 내 고집과 삶에 대해 터득한 그녀의 생각 깊은 지혜가 , 옛날에도 그러했듯이, 또 다시 서로 강하게 마주 부닥쳤다.

 

시선을 돌리려면 우리 집 사람이 아닌 다른 제 3자가 출현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 알고 있는 내 가장 친한 옛 직장 동료이야기를 꺼냈다. 우연히도 그는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도시 근처에 살기에 지금까지도 가끔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아득한 세월이 흘렀기에 이제는 안심하고 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막힘 없이 흘러나왔다. 그가 매제(妹弟)로 삼기 위해, 친 여 동생을 나에게 소개해주었던 사실을 내가 이야기했다. 그런 내 솔직함에 대한 답례로 , 그녀는 바로 그 즈음 그 친구를 결혼상대로 점찍어 놓고, 그의 집으로 가서 부모들에게 인사했던 사실을 말했고----.

 

이쯤에서였다. 자꾸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는 초조한 모습을 보니 가정주부들에겐 가장 분주한 저녁 준비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헤어져 다시 나 혼자의 세계로 돌아왔을 때였다. '물이여 , 아 물이여 ! 흘러감이 이와 같구나 !라고 외친 공자의 말이 자꾸 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아무리 아름다운 마을이지만 한번 흘러가면 결코 그 마을을 되돌아보지 않는 강물---.

 

그 강물처럼 집착을 끊어 버리기 위해 , 그래서 먼저 '느낌'을 초월하려 애쓰다가 그만 암자에서 쫓겨난 스님은 이제 지금쯤은 성불했을까 ? 그 스님이 어느 강변을 따라 휘적휘적 걸어가는 순례자의 모습으로 보이더니 , 왠지 모르게 바로 내 자신으로 여겨졌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