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좌파와 우파의 대립 가운데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인가?... 태극기도 촛불도 복음보다 앞설 수는 없다

작성자Stephan|작성시간24.04.22|조회수14 목록 댓글 0

좌파와 우파의 대립 가운데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인가?... 태극기도 촛불도 복음보다 앞설 수는 없다

나는 어떤 그리스도인인가?

●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즉 자신을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양반다운 행동이 나옵니다. 자신을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에 걸맞는 언행을 하게 됩니다.

(벧전 2:9 새번역)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위 말씀과 같이 하나님 나라 백성인 우리는, 왕과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업적을 선포(선전)하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의 大使(고후5:20)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정체성을 소홀히 한다면, 올바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인 A는 프로야구 기아(KIA)팀의 열혈 팬입니다. 그래서 기아의 게임이 있는 날에는, A는 만사를 제쳐 놓고 기아 팀의 응원에 몰두합니다. 한편 A의 친구인 B는 열렬한 롯데 팬인데, B는 복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기아와 롯데가 맞붙는 어느 날, A와 B는 함께 TV를 보면서 서로의 팀을 각자 응원하다가 어느 순간 고성을 주고받으며 다투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더 이상 함께 TV를 볼 수 없게 되어 서로 얼굴을 붉히고 헤어졌으며, 그 후로는 다시 서로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A는 야구 때문에 B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다시는 가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인 A의 기본적인 정체성은, 기아 팬 이전에 그리스도의 大使입니다.

● 예수님이 오시므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도인 우리는 현재 하나님 나라의 왕인 예수님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나라 백성의 신분보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신분이 우선시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정신이,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어떤 신념이나 이데올로기도 복음보다 앞설 수 없습니다.

아래 말씀처럼, 세상 나라(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안녕과 평안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딤전 2:1-2)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하나님 나라가 세상 나라를 돕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나라가 하나님 나라를 섬기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 백성의 빛된 삶과 섬김 등을 통하여 세상 나라에 유익을 끼치는 면도 있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는 세상 나라보다 하나님 나라가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국가가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밖의 이방 나라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을 진멸하도록 하나님이 명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실패하고 예수님이 오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아닌 실체 즉 사랑의 공동체가 이 땅에 세워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더 이상 구약시대의 전쟁처럼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혈과 육의 전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래 말씀과 같이, 우리의 진정한 적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엡 6:12 새번역)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평화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어느 누구도 혐오하고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며(요일3:15), 그것은 혈과 육의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혈과 육의 전쟁을 하고자 하는 것은, 사탄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며 기도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그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악한 세력과의 전쟁을 전혀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악과 불의를 미워하고 선과 공의를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설혹 우리가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 어떤 신학자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한 손에 성경, 그리고 다른 한 손에 신문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마6:10) 성경의 원리를 좇아 정치와 경제 등 현실적인 삶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저는 나이 칠십이 넘은 저의 많은 친구들처럼, 정치적으로 보수 측에 속하여 있습니다. 당연히 저는 기독교를 부인하는 공산주의를 반대하며,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종북 성향의 정치인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정치 성향과는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원합니다. 따라서 제가 전도하는 사람 중에는 진보 측의 사람들도 물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진보 성향인 사람 중의 하나는, 제 친구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청년에게 복음을 전하려 하면, 이 청년은 펄쩍 뛰면서 손사래를 칩니다. 왜냐하면 이 청년은, 정치 선동을 일삼는 극우 성향의 C목사를 싫어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C목사와 같은 사람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C목사로 인하여, 이 청년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아이러니컬한 일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SNS 스타인 D목사는 정치적으로 열렬한 진보 진영의 사람입니다. D목사는 보수 진영에 대한 모욕적인 언동으로 검찰에 고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D목사의 지나친 정치적인 행동은, 일부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복음을 접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은 정치적으로 진보 측에 속하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목사님께서는 설교에서 “이데올로기가 복음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저는 정치적인 입장은 서로 다르지만, 복음 안에서 좋은 관계 가운데 있습니다. 또한 저는 매주 주일 날 20-30대 청년들과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들의 상당수가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복음을 우선시 하고 있기 때문에, 저와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성경공부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 국내외적으로 볼 때,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兩 진영이 서로를 원수처럼 대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과거의 많은 종교전쟁의 경우에도, 서로를 원수로 여기면서 참혹하게 피를 흘렸습니다. 현재 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부 교리적인 논쟁 역시, 세상의 전쟁 못지않게 격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틀린 것과 다른 것을 잘 구별하여야 합니다. 틀린 것에 대해서는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우리가 당연히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틀리지 않고 다른 경우에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사랑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모든 事案을 ALL or NOTHING의 兩者 구도로 몰고 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얼마 전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삼년 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을 예정입니다. 선거 결과, 내가 원치 않는 사람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선거 결과에 승복하고, 당선된 사람의 권위를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롬 13:1-2 새번역)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악한 권세에는 저항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저항의 과정에서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을 잊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 나라의 법도와 질서를 따라서 해야 할 것입니다.

● 저는 오래 전 중국에 가서 중국 가정교회 교인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아 왔지만, 그들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신앙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우리나라 성도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고 자유가 없는 환경이, 오히려 그들을 더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 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진보진영의 핵심 가치 중의 하나인 인권신장이, 복음의 진보를 가져 오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인권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보수진영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 중의 하나는 경제성장입니다.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시급한 일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가 성장하는 국가는 예외 없이 복음에서 멀어졌습니다. 유럽과 미국이 그러하였고, 우리나라 역시 그 전철을 밟아 가고 있습니다. 경제의 급성장을 이루어 온 중국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가의 경우뿐 아니라 개인의 경우에도, 경제적인 풍부가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 모형으로만 나타난 구약에서는, 재물 많은 것이 복으로 상징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임한 신약에서는, 단 한 번도 경제적인 부(富)를 긍정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눅6:20)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가난하여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데(마5:3), 재물이 많으면 마음이 가난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마19:24). 재물이 많으면서도 마음이 가난한 극소수의 사람(예: 욥)은,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제가, 진보진영이 추구하고 있는 인권과 평등 그리고 보수진영이 추구하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등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만 그러한 목표와 가치들이, 복음의 진보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모습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익히 보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다하여 추구하여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하게 명령하고 계신 것이 무엇입니까?

(딤후 4:1-2a)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 백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의 大使보다 더 앞서는 것은 없습니다. 태극기도 촛불도 복음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짧은 글로 제 생각을 나누다 보니, 여러 가지 오해와 질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이 짧은 글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우선적인 자세만을 간략하게 언급하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이런 면에서 여전히 배워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저의 주장만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독단적인 주장과 대중의 선동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평생 열린 마음으로 겸손히 배우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저 역시 이런 태도를 갖기가 어렵기 때문에, 믿음의 식구들과 함께 공동체적으로 배우고 순종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래 말씀처럼, 잘못된 풍조에서 벗어나,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삶의 최우선적인 목표입니다.

(엡 4:14-15)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 합니다.

- 이귀재 집사(<틀을 깨고 보니 한눈에 보이는 구원> 저자) 페이스북 포스팅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