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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예정론

원전강해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5~8)”

작성자소망을|작성시간16.06.11|조회수69 목록 댓글 0

원전강해, 구원(6)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5)” |구원 원전강해   

        

하늘사랑 | 조회 788 |추천 8 |2012.05.16. 12:59                   

http://cafe.daum.net/hanul-sarang/4jk5/7 

 

 

 

며칠 전,

어떤 분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많이 상했다고...

긍휼한 마음으로 위로해 드렸습니다.

장문의 내용으로...

그리고,

그에게서 온 마지막 메시지.

그것은 저를 좀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그런 내용을 보낸 것은 이율배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삭이기로 했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 저녁 즈음에,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 그것은 나의 오해였습니다.

그 내용은 감사의 내용이었습니다.

참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어떻게, 감사의 내용이 그렇게 주어 하나로 반대로 해석될 수 있다니...

아마 그분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 때문이었을 겁니다.

교리도 그렇습니다.

교리적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저의 이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교리적 지식을 갖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지요...

교리든, 위대한 주석가든, 신학자든, 철학이든...

버리면 성경을 얻게 될 것입니다.

 

 

 

TULIP 배경, 예정론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4)”에서 말씀드렸듯이,

개인 예정론이 뿌리라면 칼빈주의 5대 강령은 꽃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 5대 강령의 허구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 교리의 모체인 칼빈주의 개인 예정론을 알아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칼빈주의 예정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전에

그것이 성경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5대 교리는 결코 성경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교리일 뿐이다

성경은 그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인용되었을 뿐이.

그렇다면 교리는 성경의 권위 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결론인가!

 

로마 카톨릭이 가지고 있는 3가지 권위가 있다.

영어의 첫 자를 따서 3H”라고 부른다.

1. Holy Pope (교황)

2. Holy Tradition (전통)

3. Holy Bible (성경)

 

카톨릭이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은 성경의 권위가 전통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카톨릭의 최고의 권위는 교황이다.

교황의 말이 성경보다 우선한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말하기 전에 교리를 절대적으로 내세우는 자들에게서,

비슷한 점들이 발견되지 않는가?

칼빈주의든, 아르미니안이든, 웨슬레안이든...

성경을 교리를 증명하는 인용대상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신성모독이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는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교리를 권위로 삼고 성경은 종의 위치에 두는 우()를 범하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교리와 성경이 충돌되는 부분을 보게 될 것이다.

 

 

 

 

칼빈주의 개인 예정론의 5가지 불변의 법칙들

1. 창세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됐다

 

칼빈주의 5대 교리의 배경인 예정론에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결정적인 두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하나는 창세 전이라는 것이며,

둘째는 그 창세 전에 세상의 전 과정에 대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 전에,

 일정한 시간이 되면 일어날 모든 것을 결정하셨을 ,

 동시에 그것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방식과 방법도 결정하였다 (베자)

Reformierte DogmtikHeinrich Heppe.

  크리스챤다이제스트. ‘개혁파정통교의학이정석 옮김. P.222

 

 

2. 창세 전에 결정된 계획은 역사 속에서 완전하게 일치하여 진행된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그 자신의 뜻하신 바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신 계획에 의하여

 장차 있을 모든 일을 자유롭고 변치 않게 작정하셨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Chapter3:1)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모든 계획과 행위 위에 있다는 것이며

 그는 한 사람의 행동까지 그의 섭리의 도구로 이용하셔서

 그가 작정하신 바 심판을 수행케 하신다

The Theology of CalvinHerold Knight.

   칼빈과 신학사상. 기독교 문화협회 p.88-89

 

 

3. 역사나 세계는 이미 배정된 순서에 따라 오직 앞으로만 전진해나간다

 

그가 창조하시기로 결정하셨을 때

 그에게는 가능한 계획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그 계획들은 실제로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이런 세계를 창조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The Reformed Doctrine PredestinationL. B Bottner.

   칼빈주의 예정론. 김남식 홍의표 역, 보문출판사 1990. p.36

 

창조 시에 역사의 과정이 정해졌기 때문에 역사는 직선적이다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James W. Sire I.V.P. p.64

 

이것을 결정론, 현대적인 표현으로는 발전론이라 한다

 

 

4. 결정(예정)한대로만 모든 것이 발생된다

 

하나님이 아시고 뜻하시고 정해놓은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Vol.1:16:3

 

하나님의 계획은 전 우주의 사물을 포괄할 만큼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가장 세미한 부분에까지 관계할 만큼 치밀하여

 장래 발생할 모든 사건에 있어서 불가피적 확실성을 가진다

 (L.B. Bottner. Op. cit. p.35~38)

 

 

5. 창세 전 결정, 그리고 성취는 절대자의 주권이다

 

“Calvin에게 있어서 신적작정론이야말로,

 하나님의 주권성의 가장 깊은 데서 나온 이론이다

조직신학조석만,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p.73

 

하나님은 장래에 일어날 모든 것을,

 영원부터 주권적으로 결정하시고,

 자연적 정신적 모든 피조계에 자신의 주권적 의지를 행사하시되

 자기의 선정하신 계획에 의하여 하신다

Systematic TheologyRobert S. Rapp, P.133

 

하나님의 결정은 영원불변하며 주권적이다.

 하나님이 결정하거나 허락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발생할 수 없다

     L. B. Bottner

 

 

 

이상 5가지 칼빈주의 예정론의 불변의 법칙들

참으로 심각하다.

그것은 운명론이요 숙명론이다.

교리가 성경인가?

아니다,

그것은 철학일 뿐이다.

어거스틴이 회심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헬라철학을,

회심 이후 성경을 인용해서 만든 것이다.

그것은 철학이다.

교리라는 탈을 쓴 철학이다.

사람들은 교리라 하면 성경을 조직적으로 압축해 놓은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교리란 성경이 아니다.

성경을 인용한 철학이다.

교리주의자들은 무엇을 신앙하고 있는가?

성경인가?    철학인가?

                 B.B. Warfield    이중 예정론은 칼빈 자신의 창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거스틴에게서 온 것이다

 

 Henry Meeter   칼빈의 교의들은 어거스틴 사상의 부흥이다

어거스틴의 헬라철학이 칼빈주의의 뼈대였다.

 

교리가 성경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이것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명령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이것이 좁은 길로 가라는 말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으리니(8:13)”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없다 !

창세 전 결정론은 결코 성경을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단편적인 것 외에는 성경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설명되지 않는 것은...

억지로, 꿰어 맞춘다.

교리는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는지...

예를들면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를 이렇게 보고 싶어 한다.

누구든지창세 전에 예정된 누구든지.

얼마나 황당스러운 해석인가?

그래도 그들은 신앙한다.

철저히...

창세 전에 목숨을 건 그들은 언제나 이렇게 믿고 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한대로만,

 계획한대로만,

 결정한대로만

 

현재가 있는가?

없다.

현재, 지금 이 시간, 삶의 현재 시간...

삶에 대한 나의 반응과 책임에 대한 아무런 심각성이 없다.

다 결정되었으니까,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까...

이 얼마나 무서운 반응인가?

영원과 영멸의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떠 맡긴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이 얼마나 무서운 반응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까지 하다니...

이 숙명론 앞에 인간은 그저 기계다.

반응할 수도 없고, 반응해서도 안되는...

 

칼빈이 자신의 예정론을 개혁교회의 신조로 만들려고 했을 때,

 그의 옛 신학 동지들이었던 불링거도 자제를 호소했고,

 파브리도 유지될 수 없는 교리라고 반대했으며,

 멜란히톤은 그것이 헬라사상인 스토아 철학의 운명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2)  中에서

 

 

 

창세 전 예정의 모순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인간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주셨던 명령이다.

칼빈주의의 불변하는 5가지 법칙들에 따르면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창세 전에모든 것이 결정되었으니 그 후의 세상은 그랬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한대로만, 계획한대로만, 결정한대로만

 

그런데 창세가 시작되자마자 하나님은 아담에게 율법을 주었다.

이른바 행위언약이다.

행위언약은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어지는 조건적 언약이다.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지만,

먹지 않는다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조건적 약속을 하셨다.

 

칼빈주의 개인 예정론으로 이 말씀이 설명 가능한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한대로만, 계획한대로만, 결정한대로만

 

정말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면...

하나님께서 행위언약을 세우신 것은 이율배반이요 표리부동다.

어떻게 창세 전에 정해 놓으시고, 다시 조건을 내 세울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교리라는 편견의 틀을 벗고 성경 자체를 보라.

교리를 버리고 성경을 보면 그냥 성경 그대로다.

창세가 시작되고 아담에게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아무 것도 !!!

결정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창세 후에도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담에게...

양자택일하라는 율법을 주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세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되었고, 계획되었다는

칼빈주의 5대 교리의 근거가...

모두 허구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모든 인류가 영생으로 갈 것인지, 멸망의 사망으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담 이전에 결정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행위언약이라 부르는 것이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아담이 인류에게 멸망을 가져왔다.

창세 전에 예정된대로라면 아담이 아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라고 해야 맞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결정내릴 때까지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창세 전에 모두 결정되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전 인류가 가야 할 역사의 특징을 결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창세 후에 결정된 일이다.

이것은 칼빈주의의 창세 전의 결정론이 전혀 근거 없는 허구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칼빈주의는 와인쿱의 말대로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내몰고 있다.

하나님에 대해 말해질 수 있는 신성모독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보는 것이다.

 죄와 상관 없이 피조물들을 이미 예정된 멸망으로 저주 받도록 인도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인간이 범한 죄의 창시자로 설명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신성모독을 선하신 하나님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4) 에서

     칼빈주의와 웨슬레 신학 、드레드 와인쿱, 한영태 역,

                          생명의 말씀사 1987. p49)

 

 

 

구원과 유기(버리심)는 창세 전 하나님이 미리 결정해 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에 책임있게 반응하는 인간의 선택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리고,

구원으로 가는 그 과정은...

죄에 한없이 나약하게 노출된 타락한 인간이,

오직 성령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함으로써

성령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그 분께서 우리 속에 이루시는 성화의 결과로 말미암아,

신의 성품으로 변화하여,

예수님을 닮아 가는 전 과정을 가리켜 성화라고 부르며,

성화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것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을,

행위구원론자라고 부르는 것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행위구원이란 말의 의미는...

내적인 변화 없이,

외적인 행위(선행, 헌신, 기도...)로 구원을 이루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성화로 얻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구원을 성령을 의지하여 성화함으로 이루는 구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성경으로 말하면 많은 지탄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에 이르려 달려갑시다.

승리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원전강해, 구원(7)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6)” |구원 원전강해     

하늘사랑 | 조회 689 |추천 5 |2012.05.19. 14:00 http://cafe.daum.net/hanul-sarang/4jk5/8                     

 

개인예정론 교리는 성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학입니다.

어거스틴이 가지고 온 철학입니다.

어거스틴은 몇 가지 전적으로 새로운 견해를 교회 제도 안으로

 이끌어 들였다. ....

 그 중 몇 가지는,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절대적인 예정,

 그리고 선택된 자들에게만 베풀어지는 그리스도의 제한된 속죄이다.”

 

회심 전까지,

헬라 철학에 동양의 신비사상을 가미한 신플라톤 사상에 깊이 몰두했던,

어거스틴에게서,

칼빈은 개인예정론을 물려받았습니다.

(John Calvinm Tracts and on the Doctrine and Worship of the Church,

  Vol.3, 1958, 468, 469)

 

칼빈의 개인예정론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반성경적 사건인지는,

그 당시 그 이론을 채택하려할 때 있었던 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칼빈이 자신의 예정론을 개혁교회의 신조로 만들려고 했을 때,

그의 옛 신학 동지들이었던 불링거도 자제를 호소했고,

파브리도 유지될 수 없는 교리라고 반대했으며,

멜란히톤은 그것이 헬라사상인 스토아 철학의 운명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2) 에서

 

 

칼빈이 개인예정론을 채택하려 하자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신정(神政)을 베풀고 있던 때,

자신의 예정론에 이의를 제기한 수도승 출신 의사인 볼섹과 논쟁하면서,

이를 매우 불쾌하게 느껴, 언성을 높여 반박하고, 성경와 어거스틴을 인용하면서 예정론이 진실된 교회의 교리라고 변호하였다.”라고 역사가 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인으로 고전학자였던 카스텔리오는 로마 가톨릭에서 개종한 뒤,

칼빈에게 와서 배우고 그의 신임을 사서 제네바 고등학교장까지 지냈으며,

헬라어 성경을 라틴어와 불어로 번역까지 한 박학한 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칼빈의 예정론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들고,

하나님의 의지를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의지로 갈라놓았다.”고 비평했습니다.

그는 결국...

파면당하고 축출되었다.

 

스위스의 성경주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비블리안더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여 칼빈의 예정론을 거슬렀다 하여,

취리히 대학의 교수직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제네바 밖의 다른 개혁교회들도,

칼빈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제네바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강력한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마지못해 칼빈의 견해를 수용하게 하였습니다.

 

진실이 가리워져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교리라는 수건을 쓰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수건이 벗어지도록 기도합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한대로만,

    계획한대로만,

    결정한대로만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5) 에서 개인예정론의 이 주장은,

창세 후 에덴 동산에서부터 심각한 모순을 드러냈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라는 조건적 행위구원의 언약,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으셨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선택과 유기는 창세 전에 결정된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인간의 선택에 맡기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조건적 행위구원의 언약을 아담과 세우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멸망을 선택했기 때문에 심판이 오게 된 것이다.

 

(5:12,17)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노릇 하였은즉

 

 

 

칼빈주의는,

창세 전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성경은,

아담 자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양자택일의 기회에서

스스로 판단한 것을 결정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

그 자신의 결정에 의해 인류 모든 후손의 방향이 결정된 것이다.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노릇 하였은즉

 

칼빈주의는 이 말씀 역시, 창세 전 예정된대로 타락했다고 읽고 싶은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정된대로 아담을 타락시켜 놓은 뒤,

그 모든 책임을 아담에게 뒤집어 씌워 놓았다고 모독하는 죄를 멈춰야 한다.

그것은 모독행위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담이 자신의 의지로 결정을 내렸을 때

 최소한 인류가 어느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를 결정한 것이다

 

아담의 이 결정은 하나님의 결정과 무관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결정에 관한 모든 기회를 주셨고,

아담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서 자신이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그의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아담이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시조 앞에 양자택일의 방도를 놓으셨다.

한편에서는 완전한 순복의 길이 있었는데,

길은 오직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불순종의 길이었는데,

길은 오직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이었다

G. I Williamson

 

얼마나 확실하고 명쾌한 고백인가 !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칼빈주의자에게서 이런 모순적인 고백을 듣고 있다.

 

 

  

모순은 진실 앞에 절대 감출 수 없다. 

모순의 출발은 모순이기 때문에 항상 자체적으로 모순임을 드러낸다.

칼빈주의 개인예정론이 그렇다.

스스로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채 충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행위계약인 율법을 주었다.

이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후손을

인격적이고 전적이며 엄밀하고 영구적인 순종에 매이게 하셨다.

사람이 그 율법을 지킬 때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것을 범할 때 사망을 준다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아담에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부여해 주셨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chapter 19:1

 

 

인간이 이것으로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에 찾아 올라갈 수 있었다.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다만 자신의 의지로 넘어졌다

Calvin

 

칼빈도 아담의 행위언약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었나보다.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2:16-17절에 개인예정론이 들어갈 어떤 틈새도 없었나보다.

그래서 아무 언급 없이 그는 다만 자신의 의지로 넘어졌다라고만 말한다.

칼빈주의의 특징은 개인예정론으로 설명이 안되는 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더 깊은 뜻이 있을 것인데, 다만 우리가 이해 못하니 덮어두자고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칼빈은 아담에 관해서는 노코멘트다.

그들은 적어도 다음과 같이 말했어야 한다.

아담의 타락은 정해진 것이라고,

창세 전에 예정된대로 아담이 타락했다고...

그것이 자신의 주장에 대해 용기 있는 답변이 아닌가?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몰아세우는 형국이 되어,

더욱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됨으로,

은근슬쩍 넘어간다.

 

인간이 이것으로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에 찾아 올라갈 수 있었다.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다만 자신의 의지로 넘어졌다

Calvin

 

그냥 묻지 말라는 것이다.

 

 

철저한 칼빈주의자인 Bottner 역시 이 점을 피해갈 수 없었나보다.

 

하나님은 아담과 더불어 행위 언약을 맺으셨다.

즉 완전한 복종(행위)를 조건으로 한 영원한 생명의 계약을

 아담 및 그가 대표하는 모든 인류와 맺으셨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복종은 잠정적 기간의 특별시험이었고

 그것은 반드시 복종의 결과로서 보상을 받든지 아니면

 불순종의 결과로서 사망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 약속된 보상은 영원한(인류전체에게 주는) 생명이었다.

 그것은 아담이 창조 시에 받았던 것보다 큰 것을 포함하는 은혜였고 

 그것이 허용되었더라면 아담을 대표하는 전 인류는,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거룩함과 행복의 상태로 올라갔을 것이다.

 하나님을 순종치 않을 경우...

 벌로서 경고된 것이 사망(인류 전체의)이었다.

칼빈신학자 L.B Bottner

 

 

하나님은 그들(아담과 인류)를 거룩한 존재로 창조하시지만,

타락할 수도 있게 지으셨다.

이런 상태에 있는 그들을 얼마 동안 도덕적으로 시험하신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그들은 확고하고 타락하지 않는 도덕적 성격을 상으로서 받으며, 빼앗을 수 없는 행복을 받는다.

(그러나) 시험에 떨어지면 그들은 법적으로 하나님의 총애와 교제에서 영원히 제거되며, 따라서 도덕적으로 영원히 죽게 된다.

새로 창조된 천사들과 사람들에 대하여 이것이 확실히 하나님이 쓰신 방법이다.

시험방법으로서 심히 훌륭한 것이었다.

즉 그들이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충성하는가, 하나님을 절대로 믿고 순종하는가 하는 것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칼빈신학자 A.A Hodge. op. dit. p. 141

 

 

이 얼마나 자기 모순인가?

칼빈주의는,

창세 전에 선택 자와 유기될 자들을 모두 하나님이 확정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에 관해서는 예봉을 피해간다.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에 따라 아담의 타락 전에 온 인류와

모든 개인의 운명을 미리 정해 놓으셨다

Calvin

 

 

이렇게 예정된 천사들과 사람들은 변할 수 없이 계획되었으며,

그 수효도 확정되어 있으므로 증감할 수 없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34

 

 

이처럼...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율법관을 보면,

아직(창세 전에) 전 인류에 대한 결정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기에,

칼빈주의 창세 전에 택자와 유기자들을 모두 확정적으로 결정했다는 예정설은 완전한 허구라는 것을 폭로하는 것이다.

 

전 인류가 멸망의 타락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영생으로 갈 것이냐가 결정되어져 있지 않는데 어떻게 택자와 유기자들이 모두 !!!

창세 전에 결정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정론 자체가 완벽한 허구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

 

 

 

개인예정론은 신성모독 행위다. 

 

칼빈주의 하나님은(이렇게 부르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이다),

아담에게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인류에게,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영생을 줄 수 없다.

 

타락은 이미 절대 주권으로 결정이 나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담에게 율법을 줄 때에도 그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그런데도 에덴동산에서,

칼빈주의 하나님은 마치 창세 전에 그런 결정이 없었던 것처럼,

그런 계획을 세운 적이 없는 것처럼,

위장하고 속이면서...

마치 아담에게 그 율법을 지키면 영생을 줄 수도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은,

얼마나 위선적이고 거짓된 행위로 인간을 속이고 기만하고 있는가?

속과 겉이 다른 표리부동의 하나님인가!

인간의 타락을 이미 결정지어 놓고, 위선적으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그것은...

마귀나 하는 짓이다.

마귀는 그에게 경배하면 온 천하를 줄 것처럼 위장하여 접근하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가,

이미 정해진 지옥으로 끌고 간다.

 

이것은 얼마나 큰 신성모독인가!

얼마나 더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시켜야 되겠는가?

 

칼빈주의의 하나님이 진정 공의로운 하나님이라면,

그래서 타락을 절대주권으로 창세 전에 결정했다면...

내가 너에게 결정한 것은 타락이니 타락하거라 라는 것이 더 정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타락 결정이라는 불변적인 계획은 철저하게 숨겨놓고,

가면적인 수단들을 동원하여 그 책임을 인간에게 몰아가며 타락을 주도해내는 칼빈의 하나님은 기만의 대명사이다.

어떻게 타락을 결정해 놓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을 준다 말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도저히 줄 수 없는 거짓말이며 거짓된 약속이다.

이 약속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가증한 거짓이 된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을 가증한 기만자로 만든다.

 

아담과 인류는...

칼빈주의 하나님이 줄 수 없는 영생이라는 기만에 속고 또 속은 것이다.

창세 전의 작정 속에,

존재하지 않는 영생 테스트라는 거짓된 기만에 인간은 속고 또 속은 것이다.

이미 절대적 주권으로 타락과 심판을 결졍해 놓은 다음,

음흉한 계략은 감추어 둔 채,

칼빈주의 하나님은 아담에게 영생을 줄 것처럼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타락을 명령하면서...

그 책임을 고스란히 인간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철면피한 기만적인 신인가?

 

우리는 이와 같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제공하는,

불가항력적 은혜니, 무조건적 선택이니, 궁극적 구원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파렴치한 허구인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개인예정의 요람에서 나오십시오.

그 동안...

당신이 누워서 젖병을 빨며 오직 하나님께서 다 하셨으니...”라고 했던

요람에서 빠져 나오십시오.

자신을 돌아 보십시오.

칼빈의 개인예정론이 흔들어주는 요람 안에서,

당신은 여전히 자라지 않은 아이로 남아 있었습니다.

육체와의 전쟁을 치러보지도 못했으니...

바울처럼 날마다 죽을 필요도 없고,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질 필요도 없었겠지요.

 

여전히...

옛 사람,

옛 습성,

옛 모습들을...

그대로 껴안은 채

오직 하나님이 다 하셨으니..” 라고 찬양만 하시겠습니까?

 

한국교회의 타락은 그래서 그랬던 것입니다.

죽을 육체를 그대로 가진 채 구원의 확신과 감격에 찬 찬양만 불러대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의 합창이,

세상의 지탄으로 메아리 되어 돌아 온 것입니다.

당신이...

구원의 노래를 부르면서...

여전히 옛 사람, 그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슬프게도,

당신은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회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만

우린...

죽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심장으로 사랑합니다.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원전강해, 구원(8)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7)” |구원 원전강해

하늘사랑 | 조회 750 |추천 6 |2012.05.22. 18:31 http://cafe.daum.net/hanul-sarang/4jk5/9 

?

쓸데없는 교리논쟁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교리논쟁이 쓸데없었으면...

 

지금 우리는 칼빈과 웨슬리의 시대를 모두 경험하고 배웠다.

 어느 한 쪽의 편에서 상대방을 비난하고 배제할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정점들을 모두 활용해 보다 발전된 교리를 완성해 갈 수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해묵은 교리 논쟁에 빠져선 안 될 것이다

배본철 교수

 

배교수님의 말처럼 해묵은 교리논쟁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그러기엔,

너무 깊이 교리가 신앙을 점령해버렸습니다.

자신도 모릅니다.

얼마나 깊이 교리가 내 신앙의 뿌리를 이루었는지...

 

그래서 신앙을 수술하기 전에,

먼저 교리라는 혹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논쟁이 불가피하겠지요.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상태로 창조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그의 영원하고도 변할 수 없는 계획에 따라

 구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멸망에 내어줄 사람들을

 오래 전에 확정하셨다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도대체,

이 뿌리를 어떻게 잘라낼 수 있을까요?

칼빈의 이 말을 신앙하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어떻게 수술해야 합니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나태함의 침상에서 일어날 수 있을텐데... 

많은 분들이 이 뿌리에 손을 대면...

마치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백안시(白眼視)합니다.

실제로 자신들이 격분하는 것이 성경이 아니라 교리라는 사실도 모른채...

참 안타깝고 아픕니다.

 

사람들은 구원이 작정되어있는 안락한 침상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작정되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에 한번 서 보십시오.

정말 비참합니다.

칼빈이 스스로 비참한 작정이라고 부를만큼 비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정하실 때,

 인간 안에 있는 어떤 조건을 보고 하신 게 아니다.

 인간의 공로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예정하신다.

 칼빈에게 예정론은 사색의 결과가 아닌 신앙의 산물이다.

 자신을 돌아보니 신앙을 갖게 된 것은 하나님의 예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평하신 하나님이 예정으로 어떤 사람들을 유기하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항변하기보다는,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선택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게 되는 것이다

김종희 교수(백석대학교 역사신학)

 

참으로 비참한 작정입니다.

무조건적 선택의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의 뒷 무대에서는,

작정되지 못하고 버려진 자들의 비참한 통곡의 소리가 들립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칼빈주의 개인예정론은 스스로 모순임을 드러낸다.

 

어떻게 타락을 결정해 놓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을 준다 말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도저히 줄 수 없는 거짓말이며 거짓된 약속이다.

  이 약속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가증한 거짓이 된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을 가증한 기만자로 만든다

-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6) 에서

 

 

 

칼빈주의 개인 예정은 조건적 구원의 성경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6:5,8)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고전15: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1:22-23)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게 

       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벧후2: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라

 

(요일1:7) 만일 ...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2:24)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10:38)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8:51)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10: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요일2:15)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속에 있지 아니하니

 

(15:1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칼빈주의는 하나님을 마귀로 보는가?

 

칼빈주의 하나님이,

타락을 처음부터 의중(意中)에 설계하고 이미 창세 전에 타락을 결정하였다면...

그 신은 우리가 정상적으로 알고 있는 성경의 생명의 하나님이 아니다.

신은...

인류를 타락시킨 타락의 원흉이며 악마적 사탄에 지나지 않는다.

그와 같은 타락을 계획하고 결정한 칼빈주의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의 정체는 원수 마귀이다.

 

(13: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칼빈주의 하나님은 바로 인간의 타락을 계획,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

유기된 자를 죄에 빠지게 하여 타락시켜 지옥으로 이끌기 위해,

고의적으로 가라지를 심은 원수마귀이다.

 

 

칼빈은 말장난을 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칼빈주의는,

아담에게 율법을 주어 그것을 지키면 영생을 주고,

지키지 못하면 멸망을 준다는 것과,

창세 전에 타락을 결정해 두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믿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는 두 개의 허구구조를,

교묘히 성경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주의의 두 개의 구조를 하나로 만들면,

거짓이라는 결론뿐이다.

거기서 나온 열매의 결정체가 “5대 강령이다.

바로 그들의 구원론, “5대 강령교리

이와 같은 허구 가운데 세워져 있는 허구의 모래탑이다.

 

이런 교리가 기독교 정통교리로 지금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그것은,

정교하게 조작된 그들의 교활한 교리적인 허구를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변명으로도 피해 나갈 수 없는 허구를 말하면서도,

온갖 방법으로 피해 나가기 위해 말장난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표현이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는 수 없이 나온다.

 

하나님의 은밀한 예정의 문제를 여기서 소개한다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John Calvin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Vol.1:15:8

 

그러나 이것은,

자신들의 허구를 감추는 교활한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범죄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미봉책은 미봉책이다.

그 뚜껑만 열면 허구의 증거들이 쏟아진다.

서로 모순된 말을 얼버무리는 모습들을 보라.

 

범죄의 책임은 인간이 전적으로 질 수 밖에 없다

John Calvin

 

창세 전,

하나님께서 인간이 범죄하기도 전에 이미 결정해 놓으셨다고 말하면서,

그 책임은 인간이 지란다.

 

그 말이 얼마나 모순인지 칼빈 스스로도 억지스러웠던지,

이렇게 다른 말을 한다.

 

어떻게 하셔서 그 죄를 범했던 우리의 첫 조상(그리고 우리 자신들)에게

 전적으로 그 죄책을 돌릴 수 있으셨는가?

 여기에 대하여는 하나님 자신 이외에 아무도 이 엄청난 신비를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 두도록 하자

John Calvin

 

엄청난 신비라는 자신들의 허구를 밀봉해 버리고 만다.

도대체 엄청난 신비라는게 무엇인가?

개인예정의 교리로 성경이 풀어지지 않으면 엄청난 신비탓으로

돌려 세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인간 타락이 하나님의 기쁨인가?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인간 타락이,

칼빈주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고, 하나님이 그렇게 좋게 여겼다는 것인가.

그래서...

타락한 인간을 보면서 겉으로는 몹시 진노한 것처럼 하면서,

그 책임을 물어 사망을 명령하지만,

뒤 돌아서서는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있는 칼빈주의의 하나님은,

도대체 누구인가 !

 

 

 

타락시켜서 견인하신다고?

 

              “죄에서 구출된 다음 구원에 대해 더욱 깊이 감사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우리가 죄에 빠지는 것을 종종 허락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성결한 상태를 계속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으셨다

L. B Bottner

 

전 인류의 타락을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영광을 드러냈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61

 

 

이런 주장을 믿고 있단 말인가?

 

칼빈주의 하나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자신의 구원의 은혜를 더욱 감사하게 하려고,

죄에 빠지도록 계획했고, 죄 가운데서 올리는 영광을 받는다.

이것은,

악마적 가르침이다.

창세 전에 결정된 불변적인 계획에 따라,

절대주권적인 명령으로 모든 일들이 진행되고 있으므로,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 앞에 죄의 기회가 오면,

하나님의 섭리와 예정에 의해,

계획을 성취시켜 드려야 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인하신단다.

 

칼빈주의는 알미니안 주의를 공격할 때 이렇게 말한다.

      (알미니안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도 옳지 않다.    오직 성경 외에는...)

 

알미니안의 잘못된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오늘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가

 내일은 악마의 아들이 될 수 있으며

 자기 마음이 변하는 대로 이렇게 되었다가 갑자기 저렇게 될있다는 말이 된다

(L. B Bottner)

 

인간이 이랬다 저랬다 함에 따라 하나님의 구원도 반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 된다고 트집을 잡는다.

(그러나 이 부분은 성경을 곡해한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회를 주시고 참고 기다리시지만

 완고한 채 계속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기회를 박탈하신다.

  한번 박탈된 기회는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그래서 칼빈주의는 인간의 반응과 관계없이,

인간이 죄를 범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구원된다고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오늘날 계속 죄를 범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절대예정이라는 이 시대의 또 다른 면죄부인 셈이다

 

칼빈주의 5대 강령 구원론은

허구 위에 세워진 허구의 꽃이다.

허구는 어디까지나 허구이다.

허구라는 나무에 진리라는 열매가 맺힐 수 없고,

진리라는 나무에 허구라는 열매가 맺을 리 없다.

칼빈주의 사상체계가 허구이기에 죽을 수밖에 없다

허구를 믿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고 또 죽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어떤 분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묻곤 합니다.

저희 목사님은 칼빈주의 예정론을 믿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지 않던데요? 

 성화를 강조하고 거룩한 삶을 강조하던데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목사님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계신 겁니다.

하의는 칼빈의 옷을 입고, 상의는 알미니안의 옷을 입은 모습입니다.

많은 칼빈주의 목사님들이 변형된 칼빈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변형된 칼빈주의 목사님들의 생각들이 아니라 칼빈,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다소 이해가 되지 않을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하의가 다 칼빈주의나 알미니안주의의 복장을 입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경으로 옷 입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적 구원은 구약과 신약이 동일하며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긴 이야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글이 좀 더 많이 진행된다면 더 많이 이해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심장으로 사랑합니다.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8)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원전강해, 구원(9)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8)”|구원 원전강해

하늘사랑 | 조회 703 |추천 5 |2012.05.25. 12:25 http://cafe.daum.net/hanul-sarang/4jk5/10 

 

과연,

인간이 타락한 것이 전적타락일까요?

 

장로교 신앙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전적 타락교리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본래의 의를 잃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제도,

 끊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죄로 죽게 되었고 영과 육의 모든 기능들과 기관들이

 전적으로 더렵혀지고 말았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32,

 

이 근본적인 부패로 인하여 우리는 모든 선에 대해서 싫증이 나며,

 무능해지고, 반발하고, 전적으로 모든 악에 기울어지게 되었다.

 이 근원적 부패로부터 모든 실제적인 범죄가 생긴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34

 

인간은 타락하여 죄의 상태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수반하는 영적 선을 행하고자 하는 모든 의지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래서 자연인은 선을 전적으로 싫어하고 죄로 죽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회심하거나 회심하도록 준비할 수가 없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93

 

 

 

그리고,

전적타락의 관련 성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6:5-6)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3: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성경에는 인간이 타락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성경구절이,

전적타락을 말하는 것일까요?

전적으로 타락되어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에도 반응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일까요?

영혼의 전적인 무능상태에 처한 인간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과, 불가항력적 은혜,

그리고 견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나아 올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일까요?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영혼이 타락을 말씀함과 동시에,

영적 자발성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칼빈주의의 전적타락설이 옳지 않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18:21-23)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4:29)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

 

        (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8:12)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전적타락설의 허구에 관하여...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 말하는 전적타락론의 배경에는,

어떤 허구적인 구조와 주장이 도사리고 있는가에 관해,

냉정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이미 서술했듯이,

칼빈주의는 창2:16-17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두 가지의 타락론을 다 인정하고 있다.

, 아담책임론의 타락설과 칼빈주의 하나님의 타락결정론이다.

에덴 동산에서의 타락은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과 동시에,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타락을 이미 예정해 놓았다고 말한다.

 

전 인류의 타락을 하나님이 기뻐하셨고 영광을 드러냈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61

 

참으로 놀라운 조화다.

칼빈주의는,

두 가지 절대 공존할 수 없는 타락론을 공존시킨다.

오직,

말장난으로.

그리고 그것을 성경에서 나왔다고 믿고 있다.

 

 

 

전적 타락을 계획했다고?

 

전적타락은 하나님에 의해 설계되고 추진되었다는 것이 칼빈주의의 명제다.

칼빈주의가 주장하는 전적 타락의 기본명제는,

인간 타락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절대주권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칼빈주의 절대 예정론을 증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다.

 

그의 섭리는 아담의 타락과 천사들과 천사들의 모든 죄까지도 포함한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5:4

 

 

참으로 기가 막히는 주장이다.

하나님을 죄의 창시사로 몰아세우는 칼빈의 정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칼빈주의에서 전적타락은,

전적으로

칼빈주의 하나님에 의해 설계되었고 주도되었다.

칼빈주의의 타락론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진다.

사람이 아니라 칼빈주의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이 죄와 무관하다는 주장을 한다.

이런 말장난으로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에서

스스로 하나님을 구원까지 한다.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몰아세우는 동시에, 죄에서 구출해내는...

칼빈주의의 기막힌 반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랴...

우리가,

전적타락론을 허구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칼빈주의자들의 주장을 살펴 보자.

 

인간이 받은 저주에 대해서 스스로가 책임이 있다고 할지라도,

타락 그 자체는 하나님에 의해 명령된 것임에 틀림 없는 것이다

강정진

 

주께서는 멸망으로 갈 줄을 분명히 미리 아신 자들을 창조하셨다.

주께서 그렇게 하시고자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Vol III. 23:5

 

 

인간타락의 궁극적 원인이 인간 자신의 내부에 있다는 것을 반대한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타락한 것은 아니다

강정진

 

하나님의 섭리가 죄를 허용하려는 그의 작정의 실행을 포함한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朴亨龍, 韓國基督敎敎育硏究院. 1988. 3. 15. p.432

 

 

인간의 죄행 역시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만 일어나는 것이다

L.B Bottner

 

의심의 여지없이,

신은 그의 섭리 가운데서 최조의 인간의 타락에 개입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틀림없이 영원 전부터 예지되었으며,

아무도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주님께서 아담이 타락하는 것이 이롭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에

첫번째 사람이 타락하도록 하신 것이다

John Calvin

 

하나님이 어떤 의미에서는

죄의 원인자(Cause of Sin)이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Gordon H. Clark

 

 

 

우리는

 

성경을 따르려는가?

아니면

칼빈과 칼빈주의를 따르려는가 !

아직도...

칼빈과 칼빈주의를 성경이라고 굳게 믿고 싶은가?

 

칼빈의 하나님은 더 이상 신이 아니다.

피조물이다.

다시 말하면 칼빈의 하나님은 칼빈이 창조한 피조물이다.

그가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교리들도?

칼빈주의 신학은

예정론이라는 바탕 위에 세워진 집이다.

예정론이 허구라면

신적 작정론, 구원론, 믿음론, 기독론, 주권설, 영광론, 섭리론, 율법론, 타락론, 계획설, 신론, 교회론, 종말론, 역사관, 우주관, 세계관

이 모든 것도...

모래 위에 세워진 집이다.

 

 

우리는...

구원에 관해서

오직 성경만 믿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1. 각 개인들이 구원에 선택(예정)된 것이 아니다.

개인예정은 오직 예수님 외에는 없다.

예수님만이 창세 전에 선택된 자(Elect Man)이시다.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각 개개인을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안에 거하는(머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 안에(in Christ) 있는 모든 자,

그리스도와 연합된(붙은) 자는

누구든지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신 것이다.

 

 

2. 구원은 그리스도의 공로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믿음으로 참고 견디는 자들에게 부여된다.

 

개인들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 못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것을 경고한다.

 

3.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은총을

   부여 받았다

 

창세 전에 개인의 구원이 예정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신해서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대신해 믿을 수는 없다.

믿음이라는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 얻지만,

그 은혜를 받아들이느냐의 여부는...

각 사람에게 달려 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시작해 놓으신 구원을,

어떻게 해서든지,

성령님을 의지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날마다 자아를 죽이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며,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느냐?

그것이...

우리의 전쟁이며 자랑입니다.

좁은 길이라고 부르신 이유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나 좁아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기에...

오늘도,

자신이 믿음에 있는지 시험하고 확증하면서

이 좁은 길을 갑시다.

죽으면 산다는 것을 알기에...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9)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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