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강해, 구원(6)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5)” 구원 원전강해
하늘사랑 조회 788 추천 8 2012.05.16.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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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떤 분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많이 상했다고... 긍휼한 마음으로 위로해 드렸습니다. 장문의 내용으로... 그리고, 그에게서 온 마지막 메시지. 그것은 저를 좀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그런 내용을 보낸 것은 이율배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속으로 삭이기로 했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지나 저녁 즈음에,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 그것은 나의 오해였습니다. 그 내용은 감사의 내용이었습니다. 참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어떻게, 감사의 내용이 그렇게 “주어” 하나로 반대로 해석될 수 있다니... 아마 그분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 때문이었을 겁니다. 교리도 그렇습니다. 교리적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저의 이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교리적 지식을 갖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지요... 교리든, 위대한 주석가든, 신학자든, 철학이든... 버리면 성경을 얻게 될 것입니다.
TULIP 배경, 예정론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4)”에서 말씀드렸듯이, 개인 예정론이 뿌리라면 칼빈주의 5대 강령은 꽃이다. 그러므로... 칼빈주의 5대 강령의 허구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 교리의 모체인 칼빈주의 개인 예정론을 알아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칼빈주의 예정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전에 그것이 성경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5대 교리는 결코 성경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교리일 뿐이다 성경은 그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 인용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교리는 성경의 권위 위에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결론인가!
로마 카톨릭이 가지고 있는 3가지 권위가 있다. 영어의 첫 자를 따서 “3H”라고 부른다. 1. Holy Pope (교황) 2. Holy Tradition (전통) 3. Holy Bible (성경)
카톨릭이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은 성경의 권위가 전통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카톨릭의 최고의 권위는 교황이다. 교황의 말이 성경보다 우선한다.
그러나... 오늘 성경을 말하기 전에 교리를 절대적으로 내세우는 자들에게서, 비슷한 점들이 발견되지 않는가? 칼빈주의든, 아르미니안이든, 웨슬레안이든... 성경을 교리를 증명하는 인용대상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신성모독이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는다고 자부하지만, 정작 교리를 권위로 삼고 성경은 종의 위치에 두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교리와 성경이 충돌되는 부분을 보게 될 것이다.
칼빈주의 개인 예정론의 5가지 불변의 법칙들 1. 창세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됐다
칼빈주의 5대 교리의 배경인 예정론에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결정적인 두 가지 요소가 존재한다. 하나는 ‘창세 전’이라는 것이며, 둘째는 그 창세 전에 ‘세상의 전 과정에 대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 전에, 일정한 시간이 되면 일어날 모든 것을 결정하셨을 때, 동시에 그것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방식과 방법도 결정하였다” (베자) 「Reformierte Dogmtik」 Heinrich Heppe. 크리스챤다이제스트. ‘개혁파정통교의학’ 이정석 옮김. P.222
2. 창세 전에 결정된 계획은 역사 속에서 완전하게 일치하여 진행된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그 자신의 뜻하신 바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신 계획에 의하여 장차 있을 모든 일을 자유롭고 변치 않게 작정하셨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Chapter3:1)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의 모든 계획과 행위 위에 있다는 것이며 그는 한 사람의 행동까지 그의 섭리의 도구로 이용하셔서 그가 작정하신 바 심판을 수행케 하신다” 「The Theology of Calvin」Herold Knight. 칼빈과 신학사상. 기독교 문화협회 p.88-89
3. 역사나 세계는 이미 배정된 순서에 따라 오직 앞으로만 전진해나간다
“그가 창조하시기로 결정하셨을 때 그에게는 가능한 계획들이 무수히 많았다. 그런데 그 계획들은 실제로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이런 세계를 창조하시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The Reformed Doctrine Predestination」L. B Bottner. 칼빈주의 예정론. 김남식 홍의표 역, 보문출판사 1990. p.36
“창조 시에 역사의 과정이 정해졌기 때문에 역사는 직선적이다”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James W. Sire I.V.P. p.64
이것을 결정론, 현대적인 표현으로는 발전론이라 한다
4. 결정(예정)한대로만 모든 것이 발생된다
“하나님이 아시고 뜻하시고 정해놓은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도록 배려하신 하나님의 은밀한 계획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Vol.1:16:3
“하나님의 계획은 전 우주의 사물을 포괄할 만큼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가장 세미한 부분에까지 관계할 만큼 치밀하여 장래 발생할 모든 사건에 있어서 불가피적 확실성을 가진다” (L.B. Bottner. Op. cit. p.35~38)
5. 창세 전 결정, 그리고 성취는 절대자의 주권이다
“Calvin에게 있어서 신적작정론이야말로, 하나님의 주권성의 가장 깊은 데서 나온 이론이다” 「조직신학」 조석만, 한국기독교교육연구원, p.73
“하나님은 장래에 일어날 모든 것을, 영원부터 주권적으로 결정하시고, 자연적 정신적 모든 피조계에 자신의 주권적 의지를 행사하시되 자기의 선정하신 계획에 의하여 하신다” 「Systematic Theology」 Robert S. Rapp, P.133
“하나님의 결정은 영원불변하며 주권적이다. 하나님이 결정하거나 허락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발생할 수 없다” L. B. Bottner
이상 5가지 “칼빈주의 예정론의 불변의 법칙들”은 참으로 심각하다. 그것은 운명론이요 숙명론이다. 교리가 성경인가? 아니다, 그것은 철학일 뿐이다. 어거스틴이 회심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헬라철학을, 회심 이후 성경을 인용해서 만든 것이다. 그것은 철학이다. 교리라는 탈을 쓴 철학이다. 사람들은 교리라 하면 성경을 조직적으로 압축해 놓은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교리란 성경이 아니다. 성경을 인용한 철학이다. 교리주의자들은 무엇을 신앙하고 있는가? 성경인가? 철학인가? B.B. Warfield “이중 예정론은 칼빈 자신의 창작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거스틴에게서 온 것이다”
Henry Meeter “칼빈의 교의들은 어거스틴 사상의 부흥이다” 어거스틴의 헬라철학이 칼빈주의의 뼈대였다.
교리가 성경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이것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 명령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이것이 “좁은 길로 가라”는 말씀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으리니(롬8:13)”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없다 ! 창세 전 결정론은 결코 성경을 설명할 수 없다. 그저 단편적인 것 외에는 성경 전체를 설명할 수 없다. 설명되지 않는 것은... 억지로, 꿰어 맞춘다. 교리는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하고 있는지... 예를들면 “누구든지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를 이렇게 보고 싶어 한다. “누구든지”는 “창세 전에 예정된 누구든지”다. 얼마나 황당스러운 해석인가? 그래도 그들은 신앙한다. 철저히... “창세 전”에 목숨을 건 그들은 언제나 이렇게 믿고 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한대로만, 계획한대로만, 결정한대로만”
현재가 있는가? 없다. 현재, 지금 이 시간, 삶의 현재 시간... 삶에 대한 나의 반응과 책임에 대한 아무런 심각성이 없다. 다 결정되었으니까, 이미 구원을 받았으니까... 이 얼마나 무서운 반응인가? 영원과 영멸의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 떠 맡긴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이 얼마나 무서운 반응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고까지 하다니... 이 숙명론 앞에 인간은 그저 기계다. 반응할 수도 없고, 반응해서도 안되는...
“칼빈이 자신의 예정론을 개혁교회의 신조로 만들려고 했을 때, 그의 옛 신학 동지들이었던 불링거도 자제를 호소했고, 파브리도 유지될 수 없는 교리라고 반대했으며, 멜란히톤은 그것이 헬라사상인 스토아 철학의 운명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2) 中에서
창세 전 예정의 모순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인간을 만드시고 그들에게 주셨던 명령이다. 칼빈주의의 불변하는 5가지 법칙들에 따르면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창세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되었으니 그 후의 세상은 그랬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한대로만, 계획한대로만, 결정한대로만”
그런데 창세가 시작되자마자 하나님은 아담에게 율법을 주었다. 이른바 행위언약이다. 행위언약은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어지는 조건적 언약이다.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지만, 먹지 않는다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조건적 약속을 하셨다.
칼빈주의 개인 예정론으로 이 말씀이 설명 가능한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한대로만, 계획한대로만, 결정한대로만”
정말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면... 하나님께서 행위언약을 세우신 것은 이율배반이요 표리부동다. 어떻게 창세 전에 정해 놓으시고, 다시 조건을 내 세울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교리라는 편견의 틀을 벗고 성경 자체를 보라. 교리를 버리고 성경을 보면 그냥 성경 그대로다. 창세가 시작되고 아담에게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아무 것도 !!! 결정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창세 후에도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아담에게... 양자택일하라는 율법을 주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세 전에 모든 것이 결정되었고, 계획되었다는 칼빈주의 5대 교리의 근거가... 모두 허구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모든 인류가 영생으로 갈 것인지, 멸망의 사망으로 갈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담 이전에 결정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행위언약이라 부르는 것이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아담이 인류에게 멸망을 가져왔다. 창세 전에 예정된대로라면 아담이 아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라고 해야 맞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결정내릴 때까지 결정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어떻게 창세 전에 모두 결정되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전 인류가 가야 할 역사의 특징을 결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창세 후에 결정된 일이다. 이것은 칼빈주의의 창세 전의 결정론이 전혀 근거 없는 허구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칼빈주의는 와인쿱의 말대로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내몰고 있다. “하나님에 대해 말해질 수 있는 신성모독 중에 가장 심각한 것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보는 것이다. 죄와 상관 없이 피조물들을 이미 예정된 멸망으로 저주 받도록 인도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인간이 범한 죄의 창시자로 설명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와 같은 신성모독을 선하신 하나님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4) 中에서 (칼빈주의와 웨슬레 신학 、밀드레드 와인쿱, 한영태 역, 생명의 말씀사 1987. p49)
구원과 유기(버리심)는 창세 전 하나님이 미리 결정해 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에 책임있게 반응하는 인간의 선택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리고, 구원으로 가는 그 과정은... 죄에 한없이 나약하게 노출된 타락한 인간이, 오직 성령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함으로써 성령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그 분께서 우리 속에 이루시는 성화의 결과로 말미암아, 신의 성품으로 변화하여, 예수님을 닮아 가는 전 과정을 가리켜 성화라고 부르며, 성화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것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을, 행위구원론자라고 부르는 것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행위구원이란 말의 의미는... 내적인 변화 없이, 외적인 행위(선행, 헌신, 기도...)로 구원을 이루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은 성화로 얻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구원을 성령을 의지하여 성화함으로 이루는 구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성경으로 말하면 많은 지탄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구원에 이르려 달려갑시다. 승리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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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강해, 구원(7)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6)” 구원 원전강해
하늘사랑 조회 689 추천 5 2012.05.19. 14:00 http://cafe.daum.net/hanul-sarang/4jk5/8
개인예정론 교리는 성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학입니다. 어거스틴이 가지고 온 철학입니다. “어거스틴은 몇 가지 전적으로 새로운 견해를 교회 제도 안으로 이끌어 들였다. .... 그 중 몇 가지는,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절대적인 예정, 그리고 선택된 자들에게만 베풀어지는 그리스도의 제한된 속죄이다.”
회심 전까지, 헬라 철학에 동양의 신비사상을 가미한 신플라톤 사상에 깊이 몰두했던, 어거스틴에게서, 칼빈은 개인예정론을 물려받았습니다. (John Calvinm Tracts and on the Doctrine and Worship of the Church, Vol.3, 1958, 468, 469)
칼빈의 개인예정론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반성경적 사건인지는, 그 당시 그 이론을 채택하려할 때 있었던 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칼빈이 자신의 예정론을 개혁교회의 신조로 만들려고 했을 때, 그의 옛 신학 동지들이었던 불링거도 자제를 호소했고, 파브리도 유지될 수 없는 교리라고 반대했으며, 멜란히톤은 그것이 헬라사상인 스토아 철학의 운명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2) 中 에서
칼빈이 개인예정론을 채택하려 하자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신정(神政)을 베풀고 있던 때, 자신의 예정론에 이의를 제기한 수도승 출신 의사인 볼섹과 논쟁하면서, 이를 “매우 불쾌하게 느껴, 언성을 높여 반박하고, 성경와 어거스틴을 인용하면서 예정론이 진실된 교회의 교리라고 변호하였다.”라고 역사가 말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인으로 고전학자였던 카스텔리오는 로마 가톨릭에서 개종한 뒤, 칼빈에게 와서 배우고 그의 신임을 사서 제네바 고등학교장까지 지냈으며, 헬라어 성경을 라틴어와 불어로 번역까지 한 박학한 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칼빈의 예정론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들고, 하나님의 의지를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의지로 갈라놓았다.”고 비평했습니다. 그는 결국... 파면당하고 축출되었다.
스위스의 성경주석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비블리안더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여 칼빈의 예정론을 거슬렀다 하여, 취리히 대학의 교수직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제네바 밖의 다른 개혁교회들도, 칼빈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제네바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강력한 정치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마지못해 칼빈의 견해를 수용하게 하였습니다.
진실이 가리워져 있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교리라는 수건을 쓰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수건이 벗어지도록 기도합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예정한대로만, 계획한대로만, 결정한대로만”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5) 에서 개인예정론의 이 주장은, 창세 후 에덴 동산에서부터 심각한 모순을 드러냈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을 것이라는 조건적 행위구원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아무 것도 결정하지 않으셨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선택과 유기는 창세 전에 결정된 것이 없다. 모든 것은 인간의 선택에 맡기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조건적 행위구원의 언약을 아담과 세우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멸망을 선택했기 때문에 심판이 오게 된 것이다.
“(롬5:12,17)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칼빈주의는, 창세 전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성경은, 아담 자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양자택일의 기회에서 스스로 판단한 것을 결정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 그 자신의 결정에 의해 인류 모든 후손의 방향이 결정된 것이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칼빈주의는 이 말씀 역시, 창세 전 예정된대로 타락했다고 읽고 싶은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정된대로 아담을 타락시켜 놓은 뒤, 그 모든 책임을 아담에게 뒤집어 씌워 놓았다고 모독하는 죄를 멈춰야 한다. 그것은 모독행위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담이 자신의 의지로 결정을 내렸을 때 최소한 인류가 어느 방향으로 나갈 것인가를 결정한 것이다”
아담의 이 결정은 하나님의 결정과 무관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결정에 관한 모든 기회를 주셨고, 아담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서 자신이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그의 모든 선택에 대한 책임은 아담이 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시조 앞에 양자택일의 방도를 놓으셨다. 그 한편에서는 완전한 순복의 길이 있었는데, 이 길은 오직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불순종의 길이었는데, 이 길은 오직 죽음으로 인도하는 길이었다 G. I Williamson
얼마나 확실하고 명쾌한 고백인가 !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칼빈주의자에게서 이런 모순적인 고백을 듣고 있다.
모순은 진실 앞에 절대 감출 수 없다. 모순의 출발은 모순이기 때문에 항상 자체적으로 모순임을 드러낸다. 칼빈주의 개인예정론이 그렇다. 스스로 모순을 극복하지 못한 채 충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행위계약인 율법을 주었다. 이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후손을 인격적이고 전적이며 엄밀하고 영구적인 순종에 매이게 하셨다. 사람이 그 율법을 지킬 때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것을 범할 때 사망을 준다고 경고하셨다. 그리고 아담에게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부여해 주셨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chapter 19:1
인간이 이것으로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에 찾아 올라갈 수 있었다.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다만 자신의 의지로 넘어졌다 Calvin
칼빈도 아담의 행위언약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었나보다.
“(창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6-17절에 개인예정론이 들어갈 어떤 틈새도 없었나보다. 그래서 아무 언급 없이 “그는 다만 자신의 의지로 넘어졌다” 라고만 말한다. 칼빈주의의 특징은 개인예정론으로 설명이 안되는 부분은 그냥 넘어간다. 더 깊은 뜻이 있을 것인데, 다만 우리가 이해 못하니 덮어두자고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칼빈은 아담에 관해서는 노코멘트다. 그들은 적어도 다음과 같이 말했어야 한다. 아담의 타락은 정해진 것이라고, 창세 전에 예정된대로 아담이 타락했다고... 그것이 자신의 주장에 대해 용기 있는 답변이 아닌가? 그렇게 말하면...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몰아세우는 형국이 되어, 더욱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됨으로, 은근슬쩍 넘어간다.
인간이 이것으로 하나님과 영원한 행복에 찾아 올라갈 수 있었다. 아담은 자기가 원하기만 했더라면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다만 자신의 의지로 넘어졌다 Calvin
그냥 묻지 말라는 것이다.
철저한 칼빈주의자인 Bottner 역시 이 점을 피해갈 수 없었나보다.
“하나님은 아담과 더불어 행위 언약을 맺으셨다. 즉 완전한 복종(행위)를 조건으로 한 영원한 생명의 계약을 아담 및 그가 대표하는 모든 인류와 맺으셨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복종은 잠정적 기간의 특별시험이었고 그것은 반드시 복종의 결과로서 보상을 받든지 아니면 불순종의 결과로서 사망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 약속된 보상은 영원한(인류전체에게 주는) 생명이었다. 그것은 아담이 창조 시에 받았던 것보다 더 큰 것을 포함하는 은혜였고 그것이 허용되었더라면 아담을 대표하는 전 인류는, 영원히 파괴되지 않는 거룩함과 행복의 상태로 올라갔을 것이다. 하나님을 순종치 않을 경우... 벌로서 경고된 것이 사망(인류 전체의)이었다. 칼빈신학자 L.B Bottner
하나님은 그들(아담과 인류)를 거룩한 존재로 창조하시지만, 타락할 수도 있게 지으셨다. 이런 상태에 있는 그들을 얼마 동안 도덕적으로 시험하신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그들은 확고하고 타락하지 않는 도덕적 성격을 상으로서 받으며, 빼앗을 수 없는 행복을 받는다. (그러나) 시험에 떨어지면 그들은 법적으로 하나님의 총애와 교제에서 영원히 제거되며, 따라서 도덕적으로 영원히 죽게 된다. 새로 창조된 천사들과 사람들에 대하여 이것이 확실히 하나님이 쓰신 방법이다. 시험방법으로서 심히 훌륭한 것이었다. 즉 그들이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충성하는가, 하나님을 절대로 믿고 순종하는가 하는 것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칼빈신학자 A.A Hodge. op. dit. p. 141
이 얼마나 자기 모순인가? 칼빈주의는, 창세 전에 선택 자와 유기될 자들을 모두 하나님이 확정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에 관해서는 예봉을 피해간다.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에 따라 아담의 타락 전에 온 인류와 모든 개인의 운명을 미리 정해 놓으셨다 Calvin
이렇게 예정된 천사들과 사람들은 변할 수 없이 계획되었으며, 그 수효도 확정되어 있으므로 증감할 수 없다 The Westminster Confession. 3장 4절
이처럼... 하나님이 아담에게 주신 율법관을 보면, 아직(창세 전에) 전 인류에 대한 결정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기에, 칼빈주의 창세 전에 택자와 유기자들을 모두 확정적으로 결정했다는 예정설은 완전한 허구라는 것을 폭로하는 것이다.
전 인류가 멸망의 타락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영생으로 갈 것이냐가 결정되어져 있지 않는데 어떻게 택자와 유기자들이 모두 !!! 창세 전에 결정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정론 자체가 완벽한 허구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
개인예정론은 신성모독 행위다.
칼빈주의 하나님은(이렇게 부르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과 다르기 때문이다), 아담에게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인류에게,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영생을 줄 수 없다.
타락은 이미 절대 주권으로 결정이 나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아담에게 율법을 줄 때에도 그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문제였다. 그런데도 에덴동산에서, 칼빈주의 하나님은 마치 창세 전에 그런 결정이 없었던 것처럼, 그런 계획을 세운 적이 없는 것처럼, 위장하고 속이면서... 마치 아담에게 그 율법을 지키면 영생을 줄 수도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은, 얼마나 위선적이고 거짓된 행위로 인간을 속이고 기만하고 있는가? 속과 겉이 다른 표리부동의 하나님인가! 인간의 타락을 이미 결정지어 놓고, 위선적으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은... 그것은... 마귀나 하는 짓이다. 마귀는 그에게 경배하면 온 천하를 줄 것처럼 위장하여 접근하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가, 이미 정해진 지옥으로 끌고 간다.
이것은 얼마나 큰 신성모독인가! 얼마나 더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시켜야 되겠는가?
칼빈주의의 하나님이 진정 공의로운 하나님이라면, 그래서 타락을 절대주권으로 창세 전에 결정했다면... ‘내가 너에게 결정한 것은 타락이니 타락하거라’ 라는 것이 더 정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타락 결정이라는 불변적인 계획은 철저하게 숨겨놓고, 가면적인 수단들을 동원하여 그 책임을 인간에게 몰아가며 타락을 주도해내는 칼빈의 하나님은 기만의 대명사이다. 어떻게 타락을 결정해 놓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아담에게 영생을 준다 말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도저히 줄 수 없는 거짓말이며 거짓된 약속이다. 이 약속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가증한 거짓이 된다. 칼빈주의는 하나님을 가증한 기만자로 만든다.
아담과 인류는... 칼빈주의 하나님이 줄 수 없는 영생이라는 기만에 속고 또 속은 것이다. 창세 전의 작정 속에, 존재하지 않는 영생 테스트라는 거짓된 기만에 인간은 속고 또 속은 것이다. 이미 절대적 주권으로 타락과 심판을 결졍해 놓은 다음, 그 음흉한 계략은 감추어 둔 채, 칼빈주의 하나님은 아담에게 영생을 줄 것처럼 거짓말을 하였던 것이다.
칼빈주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타락을 명령하면서... 그 책임을 고스란히 인간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증스럽고 철면피한 기만적인 신인가?
우리는 이와 같은 칼빈주의 하나님이 제공하는, 불가항력적 은혜니, 무조건적 선택이니, 궁극적 구원이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파렴치한 허구인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개인예정의 요람에서 나오십시오. 그 동안... 당신이 누워서 젖병을 빨며 “오직 하나님께서 다 하셨으니...”라고 했던 요람에서 빠져 나오십시오. 자신을 돌아 보십시오. 칼빈의 개인예정론이 흔들어주는 요람 안에서, 당신은 여전히 자라지 않은 아이로 남아 있었습니다. 육체와의 전쟁을 치러보지도 못했으니... 바울처럼 날마다 죽을 필요도 없고,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질 필요도 없었겠지요.
여전히... 옛 사람, 옛 습성, 옛 모습들을... 그대로 껴안은 채 “오직 하나님이 다 하셨으니..” 라고 찬양만 하시겠습니까?
한국교회의 타락은 그래서 그랬던 것입니다. 죽을 육체를 그대로 가진 채 구원의 확신과 감격에 찬 찬양만 불러대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들의 합창이, 세상의 지탄으로 메아리 되어 돌아 온 것입니다. 당신이... 구원의 노래를 부르면서... 여전히 옛 사람, 그대로 계속 살아간다면... 슬프게도, 당신은 지옥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회개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만 우린... 죽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심장으로 사랑합니다.
주께서 읽는 자들의 눈을 여시길....
원전강해, 구원(8) “예정론, 무엇이 문제인가(7)” 구원 원전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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