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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예정론

칼빈의 이중예정론에 대한 짧지만 핵심적인 찬성, 반대, 종합의 글 모음

작성자Stephan|작성시간12.07.22|조회수648 목록 댓글 0

 

 

칼빈의 이중예정론에 대한 짧지만 핵심적인 찬성, 반대, 종합의 글 모음

 

 

1. 찬성


“예정론의 치명적인 문제는 구원의 능력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는 유리하나, 멸망의 책임도 결국 하나님이 지셔야만 한다는 데 있다.

 

멸망의 책임을 하나님이 지셔야 한다는 논리가 왜 나옵니까?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요 그에 합당한 형벌과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죄인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놀랍습니다. 특히나 나를 택하여 주셨다는 사실은 더욱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듭니다.

김동호 목사님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택함받지 못한 사람은 유기당한다는 사실을 인간의 논리로 본다면 차가운 하나님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하나님의 주권이라면 더 이상 인간이 시비를 걸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오묘하신 구원의 섭리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 따집니까? 김동호 목사님의 주장을 들어보면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는 맞는데 인간적인 면이 많이 가미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논리로 성경의 흐름을 재단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흐름이 그렇다면 내 생각이나 논리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신학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예정론을 믿지 않는다고 구원받지 못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정성욱 교수님도 지나치게 한 극단을 예로 들어 충고하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복음이 인간의 머리로 이해되고 동의가 됩니까? 그 누구도 성령의 역사 없이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복음이 깨달아지고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임한 것이고 성령님이 먼저 임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받아들여지고 깨달아지는 사람은 창세 전에 하나님의 택함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닙니까? 이것이 에베소서 2장의 말씀이 아닙니까? 인간은 구원에 있어서 전적으로 무능력한 존재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임했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반대

김동호 목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실 예정론의 기초는 어거스틴이고 어거스틴은 회심 전의 이교도적인 사상에 물든 사람이었습니다. 로마교가 기독교와 통합되어 로만 카톨릭이 되었듯이 어거스틴의 운명론적 이교사상이 회심 후 기독교와 통합되어 예정론이 탄생하였습니다.

 

이러한 어거스틴의 예정론은 오렌지종교회의에서 이교도사상이라는 정죄와 반성경적이라는 죄목으로 정죄당한 이단사설이었는데, 칼빈이 시대상황상 다시 그것을 가져다 그대로 베낀 것이 칼빈의 이중예정론입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 칼빈의 이중예정론이라는 설은 하나의 철학으로는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성경에서는 한 구절도 지지하지 않는 학설입니다. 성경에 이중예정론을 지지한다는 구절들을 원어로 자세히 읽어보면 이중예정론과는 전혀 거리가 먼 구절들입니다.

 

오히려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예수의 십자가 구원 부인, 성경을 심각하게 파괴하고, 신자의 탈도덕과 반성화주의 등 심각한 문제를 만듭니다.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이단사설로 정죄되어야 마땅합니다.


3. 종합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는 이미 큰 틀에서의 결론이 나와 있습니다. 결국 성경상의 완만한 예정론을 칼빈이 특유의 날카롭고 깎아지른 논리로 깎았다는 것이죠. 성경에는 높지만 완만한 산이 있는데 그걸 이게 높다라는 논리만을 들고 나오면서 한 특성만을 강조해서 아예 깎아지른 절벽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칼빈은 균형을 말해서 정도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후에 몇몇 극단적인 학자들은 심지어 다른 신약 성경 구절에 위배되는 논리로까지 밀고 나갔는데 이건 극단주의죠.

 

성경에서 나타나는 바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예정론이고 하나님 은혜의 방법이지 어떤 끝까지, 극단으로까지 밀어붙이는 깎아지른 논리까지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취지는 아니라는 거죠.

 

성경은 죄 자체의 문제에 있어서는 단호하지만 회개하는 죄인들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예 모든 죄인들을 지옥에 처하기로 하셨다면 그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시간 밖에서의 하나님의 관점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그런 면에서 예정론은 허용되지만 우리가 그걸 완전한 이중예정론으로까지 끝까지 밀어붙여 선전해서 중심 사상으로 내세우는 건 성경상 논지에는 맞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의도는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성경의 입장으로 바로 와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도 허락하셨다는 점을 말해야지 이걸 어떤 한 쪽 면의 논리로 극단으로 끝까지 가는 건 성경의 의도가 아니겠죠.

 

성경상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 속에 구원의 그림을 그리십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수고하나 하나님 앞에서는 무익한 종이죠. 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가장 뛰어난 신앙고백으로 보는데, 많은 분들이 종합적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식의 단계적이고 조리있는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 짧게 설명된 여러 가지의 극단주의에 익숙한 점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참된 신학이 아닌 강하게 경도된 말일 뿐입니다.

 

-크리스천 투데이, 김동호 목사의 예정론 비판 관련 기사 댓글 중에서

 

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57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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