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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COREA)

[스크랩] 또 하나의 북경 고려영(高麗營).

작성자러브 선|작성시간13.02.08|조회수528 목록 댓글 0

일제는 중일전쟁 중이던 昭和13年(1938)에 흥아원화북연락부정무국조사소(興亞院華北連絡部政務局調査所)을 창설했다.

흥아원(興亞院)이란 近衛文磨(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에 1938년 설치된 내각 직속의 기관으로 외교 업무를

제외한, 대중국 정치, 경제, 문화에 관한 행정 업무를 관장했던 일제 첩보기관으로
건륭경성전도(乾隆京城全圖)를 입수한 화북 연락부는 흥아원의 예하 기관으로 昭和 14년(1939)에  華中,華北,厦門에 설치되었던 연락부 중의 한 곳이다.
이 연락부들은 1942년, 「대동아공영권」을 내건 東條英機(도조 히데키) 내각에 의해서
대동아성(大東亞省)이 설치되므로, 對滿事務局, 외무성 동아국 및 南洋局, 拓務省과 함께 흡수 폐지되었다.

 

 

건륭경성전도(乾隆京城全圖)는 청나라 강희(康熙)말년 부터 북경에 머물렀던 의대리(義大利: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였던  카스틸리오네(Castiglione, 朗世寧)의  총 지휘하에  기술지도는 심원(沈源:宮廷?士)이 맡아 건륭15년(乾隆15年:1750)에 제작된 북경성 지도이다. 현존 최고의 북경성 상세고지도로 평가 받는

이 지도는 민국 24년(民?24年:1935)고궁내의 내무부조판처여도방(?務府造辦?輿圖房)에서 발견

되었으며,  대형 51책 으로 연, 세로14m×기로13m에 이른다. 원도 발견 6년후인 1940년에  앞서 소개한

일제의 흥하원 화북 연락부에 의해 대폭 축소된 축척의 17책 복인본(複印本)으로 제작되었다.


북경성의 북문인 안정문(安正門) 밖 오십리에는 고려영과 그 동북에 근접하여 소고려영이 현재도 남아

있음은 잘 알려져 있는데 이 북문 밖의 고려영에 더하여  남문인 정양문(正陽門) 밖에도 고려영(高麗營)이 

있었다.

위성맵으로 보니 지금은 아파트, 상가 등으로 개발되어 흔적도 없어 보이나,

남문 밖의 고려영은 수 십년 전 까지도 존재했었음을 건륭경성전도는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자금성이 있는 경산 동문 밖의 대불사와 마주하고 있던 고려관(高麗館)에 이어,

또 하나의 고려관이 있었음도 이 지도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정양문 안에서 동쪽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고려관은 조선관이라고 표기한 고지도도 있고, 그 일대가  일본,아라사등의 공관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기 이 전 까지는 고려관으로, 그 이후로는 조선관으로도 불렸던것으로

추정된다.  

 

 

건륭경성전도(축소도) 

   

 

고려영 확대도 

 

 

고려관 1 확대도

 

  

고려관 2 확대도

  

 

위성사진 

 

 

변천 

  

상단 좌측의 지도는 1750년 청대 지도를 재현한 것이고 오른쪽은 1947년에 제작된 북평지도,

그리고 하단은 1980년대제작된 북경지도이다.

'고려영' 이었던 지명이 '고가영'으로,  다시'고영호동'으로 바뀌어 왔다.

 

 

1300년전 코리아타운 ‘고려영’

국민일보 | 입력 2009.07.26 19:14
http://media.daum.net/foreign/view.html?cateid=1046&newsid=20090726191404823&p=kukminilbo

 

건륭경성전도 전체, 상세보기

http://dsr.nii.ac.jp/toyobunko/II-11-D-802/V-13/page/0005.html.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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