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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발전 사건·사고

아유미, 유카, 스즈는 후쿠시마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증언/어리석은 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안 낸다면, 여러분들도 그것을 묵인하고 지지하는

작성자별의정원|작성시간14.03.07|조회수48 목록 댓글 0
한국 국민 여러분!! 한국도 핵발전소가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정부도 핵발전소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그런 어리석은 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안 낸다면, 여러분들도 그것을 묵인하고 지지하는 일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광주환경운동연합 박상은 팀장의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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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미, 유카, 스즈는 후쿠시마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로 현재 후쿠시마 핵발전소로부터 약 30km 떨어진 후쿠시마현 이와키시로 강제 이주되어 생활하고 있다.

영상편지를 부탁했으나, 글 편지로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정부가 2020년 도쿄올림픽과 국가이미지 개선 등을 명분으로 일본의 현실을 외부에 알려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탈핵을 요구하는 활동에 대해 막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혹시나 있을 수 있는 피해를 막고자 얼굴과 본명의 공개를 하지 않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해 광주환경운동연합이 진행한 ‘한일청소년 에너지캠프’에 참여해 한국 청소년들에게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리고 호소하기도 했다.

[번역: 오하라 츠나키]

<아유미>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폭발하고 나서야 나는 겨우 깨달았다.

핵발전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성립된다는 것을... 한번 사고가 나면, 제어 불능으로 마구마구 폭주하는 무서운 발전 방식이라는 것을...

핵발전을 추진해 온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고가 나면 막대한 리스크가 발생한다는 것을... 그래서 핵발전소를 대도시에는 절대로 건설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줘야 할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문제는 뒤로하고 경제 우선 정책에만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사고 후 나의 생활,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은 180도 달라졌다. 방사능이 포함된 쌀, 야채, 고기 등 식품을 되도록 피하기 위해 먼 곳에서 어렵게 구해서 먹고 있다. 수돗물은 절대로 마시지 않고 있으며, 오염된 공기를 피하기 위해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후쿠시마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어디를 가던, 모든 것을 잊어 아예 도망가든, ‘방사능에 피폭됐다’는 사실은 평생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언제 건강에 문제가 생길지, 또 만약에 그 걱정이 현실이 될 때 정부는 그것을 방사능에 기인한 것이라고 인정해 줄까? 후쿠시마에서 함께 사는 나의 친구들도 모두 건강을 해치지 않고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가슴에 안고 있다.

갈수록 사태는 악화되고 있다. 100만명 중 한명이 발병한다는 소아갑상선암이 고작 인구 200만명인 후쿠시마현에서만 벌써 33명이 발병하고 있다. 정말 믿기 힘든 사실이지만, 해가 갈수록 그 수는 증가하고 있다.(지난 2월 7일 후쿠시마현민 건강 관리조사 검토위원회 발표내용)

그러나 그것에 반비례해 일본 국민들의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관심은 희박해지고 있다. 사고가 아직도 수습되지 않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인데 아베 총리는 “오염수는 완전히 차단되고 있다”고 발표해 2020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결정해 버렸다. 앞으로 방사능 오염 사실은 더욱 은폐될 것이다. 올림픽 유치 결정을 환영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경제 발전, 부흥의 이름으로 제염과 방사능 대책이 소홀해지고 있다. 남겨진 후쿠시마 사람들은 매일매일 말 그대로 지옥 속에 고통과 함께 살고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모독당해 날마다 방사능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 후쿠시마에 사는 지금의 나의 모습이다. 후쿠시마와 같은 비참한 사고는 앞으로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런 절실한 생각과 달리 우리(일본)정부는 원전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원전기술의 해외수출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대참사가 후쿠시마에서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돈에 눈 먼 분별없는 사람들은 많은 약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제어불능의 괴물을 손에 쥐며 온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고 있다.

대지진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자연의 힘 앞에,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핵발전소 신화는 완전히 그 갑옷을 벗기고 흔적도 살아져 버렸다. 원전 사고로 우리가 잃은 것은 셀 수가 없다. 대대손손 농사지어온 땅을 떠나야만 했다. 인간들과는 달리 대피하지 못하는 동식물은 무저항으로 피폭되었다. 수많은 사람의 마음이 숨 쉬었던 고향이 붕괴되고 말았다. 따뜻했던 집, 함께했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방사능이 스며든 나의 갑상선, 뼈, 장기를 예전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되돌려줄 방법도 모르는 사람들은 더 이상 핵발전을 추진해서는 안될 것이다. 핵발전은 우라늄의 발굴에서 폐기물 처리까지 수많은 약자들을 희생시키는 에너지이다.

이제 그만하자. 우리는 진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의 희생자는 절대로 보고 싶지 않다.

<한국 국민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

한국 국민 여러분!! 한국도 핵발전소가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정부도 핵발전소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혹시 그런 어리석은 정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안 낸다면, 여러분들도 그것을 묵인하고 지지하는 일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핵발전소를 추진하는 구조를 무너뜨릴 힘은 여러분들 개개인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후쿠시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 향후 수십년에 걸쳐 주민들의 건강 피해가 서서히 나타날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기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본 정부는 100mSv(밀리시버트) 이하의 피폭은 건강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공중의 피폭 한도는 1mSv/year(밀리시버트/년)이라고 일본의 법률에도 기재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후쿠시마 핵사고에 따른 방사능 피폭과 자신의 건강 피해의 연관성을 증명하지 못한 채 힘든 나날을 지내야 할 것입니다.

한국 국민 여러분, 사고가 일어난 후에 아무리 발버둥이 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한번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 버린 유리를 원래대로 고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일본에는 과거에 두번이나 원자폭탄이 떨어졌습니다. 원폭과 달리 핵을 평화 이용한 것이 핵발전소라고 합니다만, 핵의 평화적 이용이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큰 희생 위에 겨우 만들어지는 댓가, 그것이 핵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전력입니다.

일본에서는 원폭 피해자와 핵발전소 사고로 인한 피폭자가 서로 손을 맞잡고 의식있는 시민들과 함께 탈핵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이후 동경 수상관저 앞에서 원전 반대를 외치는 집회가 매주 금요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 거기에서 연설을 하거나 구호를 외칩니다. 참가자들과 함께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미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함께 “핵발전소 OUT”을 계속 외치고 싶습니다. 그 행동은 매우 소중하고 숭고한 것이라 믿습니다.





<유카> 

저는 후쿠시마 제1 원전에서 약 4km 떨어진 오쿠마 마치에 살고 있었습니다. 사고 이후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지금은 원전에서 30km 거리인 이와키시에 살고 있습니다. 사고가 난지 3년. 낯설었던 생활에도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마음은 항상 예전에 살았던 곳에 있습니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2011년 3월11일 당시 저는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그 날은 오전에 선배들의 졸업식이 있었고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방에서 TV를 보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TV 화면에 지진 속보가 나왔다 싶더니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바로 마당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오랫동안 땅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몇 번씩 찾아오는 여진으로 집안은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습니다. 옷장이 무너지고 식기는 모두 바닥에 떨어져 깨져 버렸습니다. 집이 비뚤어져서 창문조차 닫을 수가 없게 되자, 우리는 근처 체육관으로 피난해 거기서 하루 밤을 지내야만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핵발전소가 위험하다. 방사능이 유출됐다. 바로 피난해야 한다”는 소식이 들어와 급히 다른 곳으로 피난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것이 장기 피난생활의 시작인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채 최소한의 생필품만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그날 오후가 지났을 무렵, 또다시 더 멀리 피난가야 한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핵발전소가 수소폭발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내륙지역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피난소에서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 때 친척과 겨우 연락이 되어 친척 집으로 옮겨 머물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제가 살고 있던 오쿠마 마치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던 삼촌이 찾아와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두 번 다시 오쿠마 마치에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던 우리들에게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정말 슬펐습니다. 다녔던 학교도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날 이후 아직도 못 만나고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습니다. “친구들과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 놓을 걸...” 하는 아쉬움으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친구들을 생각하면 후회만 남습니다. 이런 마음은 후쿠시마 사고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의 여러분들께 전하고 싶습니다. 가족과 친구,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더욱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현실은 실체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핵발전소 사고는 자연 재해가 아니라 인재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을 슬픔에 빠뜨리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는 핵발전소는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핵발전소의 장점에 대해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생명입니다. 저는 핵발전소가 더 이상 추진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스즈>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제1원전 대사고가 난지 3년이 지났습니다. 3년 동안 우리들의 생활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어떤 지역은 강제퇴거 지역이 되어 고향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현재도 돌아갈 수 없는 땅이 많습니다. 그리고 방사능이나 방사성 물질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말을 일상에서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핵발전소는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방사능은 인간에게 아주 위협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사람들의 방사능에 대한 인식은 조금씩 무뎌지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는 “핵발전소를 더 지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주변에 있는 친구 덕분에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도 가끔씩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정부가 안전하다고 하고 있는 거니까 믿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습니다. 핵발전은 경제적이고 자연친화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어도 제가 “그래도 핵발전은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제일 큰 이유는 제 주변에 있는 친구의 영향 때문입니다. 그 친구는 항상 핵발전과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어서 저에게도 잘 알려줍니다.

설령, 핵발전에도 장점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의 건강, 그리고 생존을 위협해서 좋을 리가 없습니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내는 발표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의 견해와 생각에 대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저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웃나라 한국에서도 이렇게 핵을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역시 핵은 위험하다”라는 생각이 확

실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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