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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한 어떤 남자 이야기

작성자초익공|작성시간24.04.16|조회수80 목록 댓글 0

퇴직한 어떤 남자 이야기

 

어느새 반세기를 살았다. 평범하지만 제법 비탈진 길을 걸어왔다. 굽이굽이 고개고개 크고 작은 돌부리도 많았지만, 용케 잘 넘어왔다. 한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였다. 남녀가 부부로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지금도 그 이름으로 인생을 묵묵히 한길로 걸어가는 세상의 수많은 아줌마 아저씨가 위대해 보인다. 아이도 낳았다. 딸 아들 연년생으로 남매를 두었다. 두 아이는 나를 닮았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집 가까운 국립대에 갔으면 했는데 집 먼 사립대를 진학해 허?가 휘었다.

세월은 이미 쏘아 올린 화살이라서 쉴 새 없이 날아가 어느새 남편의 퇴직을 걱정할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사랑을 넘어 우정이나 전우애가 느껴지는 남편과 우리에게 남겨진 반세기를 얘기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는 농부로 늙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도시남과 시골녀의 정서는 달랐다. 내가 산 아래 작은 밭과 그 끝에 뉘엿뉘엿 지는 해를 얘기하면, 남편은 고교 시절 수학여행 길에 보았다던 산골 아이 이야기로 내 말을 막곤 했다. 동백처럼 붉은 석양을 등에 지고, 끝도 안 뵈는 콩밭에서 늙은 아버지와 콩대를 베어가던 산골 아이의 절망적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단다. 그러고는 자기 인생에 결단코 농사라는 단어는 있을 수 없다며, 퇴직하면 보일러 기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했다가 며칠 뒤엔 피아노 조율사가 좋겠다며 먼지 쌓인 피아노 뚜껑을 열어보기도 했다. 그런 남편이 내 말을 귓등으로 듣거나 말거나 귀에 딱지가 앉게 나는 산 아래 작은 밭을 노래했고, 거기엔 콩은 절대 심지 않겠노라 단단히 못을 박아줬다.

[도시남? 시골녀의 은퇴 계획]
그러던 남편이 퇴근길에 배추 한 포기를 들고 왔다.

부서가 바뀌어 농업인과 함께하는 출장 업무를 맡으며 나타난 변화였다. 태풍에 떨어진 사과를 주워 오더니 어느 날은 벌레가 먹어 구멍이 숭숭 뚫린 고구마를 안고 오기도 했다.

거, 흙이란 게 신기하더라고. 고구마 줄기를 꽂았을 뿐인데 거기서 주먹만 한 고구마가 매달리는 거야.
남편은 심고 거두는 자연의 이치를 처음 안 아이처럼 자신이 가져온 농작물을 보석인 양 내려놓았다.

이렇게 도시남과 시골녀의 정서가 조금씩 닮아가고 있을 무렵 우리에게 기적처럼 행운이 찾아왔다. 도심 밖 먼 외곽에 자그마한 땅이 나타난 것이다.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밭이었다. 다만 산에서 물이 내려와 좀 젖어 있다는 것, 돌이 좀 있다는 것, 모양이 좀 우습다는 것, 산그늘이 좀 진다는 것, 도시와 좀 멀다는 것 빼고는...... 아니 그 덕분에 값이 싸다는 게 정말 마음에 들었다. 작고 못난 소박함이 꼭 우리 모습 같았다. 남편은 두어 달을 두고 망설였지만 결국 계약을 하고야 말았다. 퇴직 후엔 분명히 좋은 휴식처가 될 거라는 밤낮 없는 내 설득에 넘어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동안 꼼짝 않? 남편이 챙 넓은 모자를 찾아 쓰고 슬금슬금 밭으로 갔다. 뭔가를 할 모양인지 철물점에 가서 장화와 곡괭이도 사는 것 같았다. 평생 흙이라고는 만져본 적 없는 사람이 과연 무슨 일을 할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땀에 흠뻑 젖은 옷을 자랑스레 벗어 던지며 남편이 들어왔다.

거, 땅이란 게 참 신기해. 흙을 만지고 나니 몸과 마음이 이렇게 상쾌할 수가 없네!
내 생각이 맞았다. 남편은 흙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었다. 운이 좋으면 그리 머잖은 날 농사꾼 남편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스쳤다. 남편은 돌아오는 주말엔 돌을 좀 골라내야겠다고 했다. 돌이 없어야 뭐든 심어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나. 그러고는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일 긴 이랑을 파기 시작했다. 괸 물이 한 길로 내려가도록 바위를 들어내고 흙을 둘러 아래까지 기다란 두둑도 만들었다. 물이 길을 돌리자 질퍽거리던 밭은 뽀송뽀송 제 모습을 찾아갔다. 이제 돌을 고를 때다. 그런데 누가 돌밭 아니랄까 봐 돌이 어찌 그리 많은지...... 온종일 허리 휘게 가려내도 밤새 새끼라도 치는지 다음 날이면 다시 그대로였다. 주워도 주워도 캐내도 캐내도 끝도 없이 나오는 돌멩이를 남편은 고구마라도 되는 양 살뜰히 모아 밭 가운데 쌓았다. 이렇게 쉬는 날마다 달려가 다물다물 모은 돌탑이 허리 높이로 세개가 되었다. 어느 날 무슨 생각인지 남편은 그걸 허물어 밭 가장자리로 옮겼다. 그러고는 크고 모양 좋은 것을 골라 밭 경계를 따라 늘어놓더니 골을 파고는 하나씩 줄을 세워나갔다. 쓰러지지 않게 틈을 메우고 나무망치로 두들겨 겹치고 얹으며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저만큼 가서 모양새를 살피고는 다시 돌아와 허물고 끼우고 쌓기를 참을성 있게 반복했다. 남편은 여름 내내 허리춤 옷자락이 치켜 올라가는 ?도 모르고 돌담을 쌓느라 등허리에 긴 허리띠가 생겼다. 무더운 여름날 휴가 내내 담을 쌓더니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훈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어른 정강이 높이의 야트막한 예쁜 돌담길을 완성했다. 이따금 산토끼가 서성이고, 먹이를 찾아 내려온 고라니도 반할 만큼 예쁜 길이었다. 구부린 허리를 힘껏 젖히는 남편의 입가에 하얗게 웃음이 번졌다.

마을에서 내려다보면 건너편 산 길목에 뭔가 새로운일이 일어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물길이 나고 돌이 치워지더니 담장까지 생기니 무슨 일인지 궁금했을 것이다. 아니나 ?를까 한적했던 밭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른도 오고 아이들도 오고 강아지도 오더니 잿빛 산토끼도 한 마리 왔다 갔다. 사람들은 돌담에 앉아 왁자지껄 떠들다가 산으로 올라 갔다. 내려오는 길에는 신발도 벗어 털다가 산에서 꺾은 나무 지팡이나 꽃들을 살짝 걸쳐놓고 가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런 말도 했다.

허허 그 돌짝밭이 이리될 줄 누가 알았나. 그러고 보면 사람 손처럼 무서운 게 없어.

[초록으로 물든 돌밭]
이듬해 봄 남편은 퇴직을 했다. 삼십삼 년이라는 시간을 묵묵히 걸어온 남편에게 밭이 새로운 일터와 쉼터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였다. 남편은 느지막이 일어나 된장국에 훌훌 아침을 한 대접 먹고는 산림시장으로 갔다. 물에 닿기만 하면 이파리가 확 튕겨 나올 것 같은 물오른 관상용 나무와 과실수가 여기저기서 주인을 기다리고, 비닐하우스에서 갓 나온 꽃과 채소 모종은 쏟아지는 햇빛을 내리받으며 청청하게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한 오 년쯤 묵어 새순이 막 돋아난 이팝나무를 만지작거렸다. 한 귀퉁이 펼쳐진 채소 모종도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날 오후 우리 돌담길엔 큼지막한 구덩이가 파지고 아홉 개의 향기로운 이팝 꽃그늘이 만들어졌다. 산등성이 작달막한 밭과 늘씬한 이팝나무의 조합은 뭔가 좀 어색한 그림이었지만 볼수록 봐줄 만했다.

이팝나무에 둘러싸인 돌담 안엔 아무것도 심겨 있지 않았다. 모름지기 밭이라 하면 꽃이든 푸성귀든 그득 차야 제맛인데 울타리만 번듯하고 속이 비었으니 속 빈 강정 밭이라고나 할까. 남편이 무엇을 심을지 파종 시기를 놓칠까 조바심이 났다.

며칠 뒤 남편은 새벽같이 일어나 혼자 산림시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고는 두어 시간 뒤 무언가를 싣고 밭으로 가는 중이라고 전화했다. 무엇을 심을 거냐고 물으니 그런 게 있다며 뒷말을 얼버무렸다. 아침이 가고 한낮이 되도록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앉아서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밭으로 갔다. 멀리 햇빛을 받은 우리 돌밭이 금빛으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남편은 굼벵이처럼 꼬물꼬물 푸르고 둥근 덩어리들을 열심히 들어 나르고 있었다. 나는 총총 걷다가 이내 달음질쳤다. 남편 눈에 든 것이 무언지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짝 다가선 순간 말문이 탁 막혀버렸다. 그건, 바로 땅콩 모종이었다. 밭에 널브러져 있는 걸 어림잡아 세어보니 한 이백 포기는 되어 보였다. 살짝 현기증이 났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열려 있는 차 뒷자리엔 더 많은 땅콩 모종이 층층이 올라앉아 달싹달싹 밀쳐대며 내릴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고교 시절 수학여행 길에서 봤다던 콩대 베던 소년의 절망적인 눈빛 따윈 애저녁 개나 줘버린 게 분명했다.

남편은 혼잣말인지 아닌지 뒤로 돌아서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거, 콩이랑 땅콩은 엄연히 다르지. 그럼 다르고 말고······. 콩은 땅 위에서 열리고 땅콩은 땅 밑에서 열리니까.
그 많은 모종이 다 내려질 때까지 남편은 한 번도 쉬지 않?다. 수백 개 땅콩 모종들이 이랑 앞에 일렬횡대 줄을 서자 남편은 호미를 하늘로 치켜들었다. 호미 끝이 햇빛에 쨍하고 빛났다. 내 느낌인지는 몰라도 남편도 호미도 비장해 보였다. 그러고는 바투 앉아 남편은 그것들을 심어나가기 시작했다. 끝도 안뵈는 땅콩 모종을 보석을 심듯 신중하고 정성스럽게 한 포기 한 포기......

어느새 남편의 등 뒤로 동백보다 더 붉은 석양이 지고 있었다.

출처 농민신문  글과 사진 신경순(대전 유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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