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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정원

누구나 식물에 의지하는 순간이 온다

작성자초익공|작성시간24.04.07|조회수68 목록 댓글 0

누구나 식물에 의지하는 순간이 온다 

INTERVIEW / 와일드가든디자인 강혜주 대표

 

불안한 시대, 심리적 생명줄이 되어주는 식물. 정원 안에서 보내는 몰입의 시간으로 강혜주 씨가 우리를 초대한다.

ⓒ최지현 interviewee 강혜주

서양화를 전공하고 보타닉 아티스트로 활동하던 중, 정원에 매료되어 가든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현재 10년차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와일드가든디자인’을 이끌고 있다. 환경에 적합한 식재, 지속적인 관리 기반을 갖춘 정원을 지향하며 공공정원, 개인주택, 옥상정원, 상업공간 디자인 및 감리 작업을 수행한다. 서울 서초구 도시디자인위원회 위원을 포함, 다양한 지자체의 생활정원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천안 연암대학교 화훼디자인과에서 강의한 바 있다. 청소년을 위한 직업 안내서 ‘가든 디자이너(2014, 들녘)’를 집필하기도 했다. www.wildgardendesign.net


“직설적인 성격에 조심성이 없는 데다 화장은커녕 선크림도 잘 바르지 않아,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시골 농사꾼에 가깝다.” 그녀는 스스로를 이렇게 지칭한다. 등산화에 작업복 차림으로 현장을 누비던 그녀가 떠난 곳. 척박한 땅은 새 생명을 품고, 누군가는 꽃을 심고 즐기는 기쁨을 얻는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가든디자이너 강혜주 씨를 한 개인주택 작업 현장에서 만났다.


최근 정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코로나19 영향일까

그 영향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이건 시대의 흐름이다. 유럽의 정원문화에 비해 우리는 1백 년 뒤처져 있다. 첼시플라워쇼와 고양꽃박람회의 역사도 딱 1백 년 차이다. 우리는 그동안 꽃을 사치품이나 행사용으로만 인식하며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다가 이제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맞았다. 텃밭이 아닌 꽃밭을 찾고, 꽃으로 집 안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는 어찌 보면 당연한 방향이나, 속도가 문제다.

어떤 점을 우려하나

우리는 정원에 대한 경험이 없다. 특히 아파트 키즈인 2030세대는 어렸을 때부터 흙과 친하지 않다. 커서도 손대지 않고 보기만 하는, 경관조명에 익숙해져 있다. 조경학과, 원예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의 멘토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이들 중 꽃을 처음 심어 본 친구도 있어 놀란 적이 있다. 정원법이 생기고 국가정원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개개인은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드닝과 친해지는 방법이 무얼까

마음에 드는 식물이 있으면 일단 심어라. 데리고 살면서 경험으로 체득해야 한다. ‘나는 양파싹, 마늘싹만 잘 키워’하며 자조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식물 하나 들이면 평생 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집 환경과 맞지 않으면 시들거나 죽을 수 있다. 6개월 나를 즐겁게 해줬으면 충분한 것이지, 영원한 건 없다. 식물을 키우며 자기 비하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점점 가드닝과 멀어지고 만다.

 

 

식물에 대한 지식은 어떻게 쌓으면 좋을까

탱자나무는 남부지방 수종이다. 그런데 경기도 남양주 산꼭대기 집에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더라. 강남 어떤 집 마당에 제주 수국이 해마다 꽃 피우기도 한다. 평균적인 기온이 아니라 우리 집의 환경, 즉 습도와 바람, 햇볕의 조건에 따라 키우거나 못 키울 수 있다. 그것을 미세기후라고 한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꽃나무가 있으면 일단 데리고 살아 보란 뜻이다.

디자이너에게 맡길 때는 어떻게 접근할까

어떤 콘셉트의 정원을 원한다 정도의 확신을 갖고 디자이너를 만나야 한다. 또한, 대부분의 정원주들이 건축에 대부분 돈을 쓰고, 정원에는 예산 할애를 많이 못 한다. 디자이너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무작정 “이렇게 하려면 견적이 얼마예요?” 묻기보다,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을 확실히 오픈하고 같이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

정원 공사 예산은 어느 정도 잡으면 좋을까

정원은 통상 건축부지 외의 땅 밑 30cm 토목, 담장과 휀스, 대문, 식재 등을 모두 포함한다. 사람길과 물길을 기본적으로 잡고, 전체 공간을 배치하는 구상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개 전체 건축비의 15~30% 정도를 정원 공사비로 생각하면 좋다. 예산이 당장 부족하다면, 기반 조성을 먼저 하고 시설은 나중에 더하면 된다.

건물 양식에 정원스타일을 꼭 맞춰야 할까

예를 들어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의 모던 디자인인데, 시골 풍경의 코티지 정원이 갖고 싶다면? 우리는 절충점을 찾아가면 된다. 우리나라는 경사지가 대부분이라 화계가 들어가는 곳이 많다. 돌을 쌓아도 모던하게 쌓고, 식재는 몇 가지 컬러로 통일한다. 건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그 집만의 독특한 정원스타일을 갖는 것이 좋다.

집을 지을 때 정원은 언제 구상하는 것이 좋을까?

건물도 마찬가지겠지만, 정원 역시 기획 단계가 길수록 좋다. 물론, 건물을 배치하기 전부터 정원을 함께 구상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여건이 어렵다면 건물 설계를 마치고 배치도가 나온 상태에서 정원을 그려보는 것도 방법이다. 현장에서 토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70%, 목공이나 철공, 석공이 20%, 정작 나무를 심고 잔디를 깔고 꽃을 심는 일은 전체 공정의 10%라고 본다. 주차 공간, 출입 동선, 창고와 텃밭 등의 위치를 고민하고 최근에 많이 하는 태양광 발전 패널도 전경을 해치지 않게 두어야 한다.

작업 현장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경남 사천 인재니움 연수원의 야외무대와 정원에 제일 먼저 떠오른다. 바다를 배경으로 원래 있던 자갈돌 지형을 자연스럽게 살린 무대, 계단식으로 조성한 너른 정원으로 최근까지도 드라마나 영화 촬영의 배경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또 한 곳은 용인의 한 개인주택인데, 수로에 설치될 사자 토출구 등을 직접 형틀을 짜서 만들기까지, 애정을 많이 쏟은 현장이다. 지금이라면 일의 효율을 위해 다른 방식을 고민했겠지만, 당시는 열정이 너무 앞섰던 것 같다(하하).

 

서울의 GN푸드옥상정원. 직원들을 위한 휴게정원으로 휴양지 콘셉트로 디자인했다.

 

목공과 철, 조적까지 모두 해내는 와일드가든디자인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박서보 화백의 기지 정원. 봄에는 붉은바위취, 여름에는 하늘나리, 겨울에는 꽃무릇으로 붉은 색 포인트 색상을 배치해 리모델링했다.

얼마 전, 박서보 화백의 기지 정원 리모델링을 맡았다

2층 전시 공간 통창으로 보이는 이끼 정원이 멋진 곳이었다. 그러나 얇은 토탄층 때문에 이끼가 제대로 안착하지 못하고, 지난여름 과습으로 이끼가 많이 상해 있었다. 우리는 마사토로 정돈되는 락가든 스타일로 기존 식재를 재배치하고 컬러 포인트를 더했다. 원하는 식재 스타일에 앞서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최근 피트 아우돌프의 뉴웨이브 스타일이 인기다

‘최대한 인력이 덜 들면서 넓은 면적을 커버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는 정원’에 부합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한다. 나 역시 한때 영국적인 정원 스타일에 집착한 적이 있다. 그러나 가서 직접 보고 나서야 마음의 중심을 찾았다. 우리는 어느 한 곳에 매일 필요가 없다. 2m가 넘는 키의 식물들이 펼쳐지는 영국식 정원은 넓은 면적의 정원에 어울린다. 각자 주어진 여건에 맞는 정원을 찾아가는 것이 좋다. 한국이라고 꼭 초가와 담이 있는 한국식 정원을 고집할 것도 아니다. 자신의 개성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면 된다.

여러 형태의 디자인 의뢰 중 잘 맞는 현장은

개인주택이든 상업공간이든 정원주가 있어 1:1로 작업하는 것이 재밌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구상하는 일보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때가 더 즐겁다. 디자인이 현실로 펼쳐지는 현장은 늘 나를 가슴 뛰게 한다. 입찰하는 프로젝트는 돈과 시간에 맞춰 빨리 치고 나와야 하는 일이라, 나의 작업 스타일과 잘 맞지 않다. 디테일하게 완성도를 추구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요즘 정원 분야에 개인적인 화두는 무엇인가

지난해부터 행사용 꽃 농가는 어려웠지만, 정원으로 들어가는 분화류는 수급이 딸릴 지경이었다. 가격도 많이 올랐다. 키 15㎝ 화분 하나에 5천 원 하던 것이 2만 원을 넘는 것도 생겼다. 이는 종자에 대한 로얄티 때문이기도 하다. IMF 시절, 우리나라 종자 회사가 외국에 거의 팔렸다. 지금은 우리 종자를 로얄티를 주고 사오는 실정이다. 요즘처럼 유럽 품종을 대거 수입해 들여오다 보면 규제는 더 까다로워질 것이다. 선진화된 외국의 종자 관리 시스템에 대응할 힘을 키워야 한다.

 

물과 불, 바람과 소리를 담은 이국적 분위기의 이태리 레스토랑 정원. 야외결혼식이나 행사를 염두에 두고 공간을 구성했다.

 

사천 인재니움 연수원의 야외 무대 풍경.

 

맨발로 걷는 정원 콘셉트로 화단 이외는 모두 포장을 했다. 건수를 받아 흐르는 세 곳의 수공간을 다른 형태로 조성했다.

 

모던한 건물과도 어울어진 코티지 정원. 동서양의 느낌을 아우르는 디자인으로 정원주의 정성도 많이 깃들었다.

최근 문을 여는 수목원들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 받는다

국립수목원만 가 봐도 외래종이 범람하고 있다. 얼마 전 문을 연 세종 식물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우리 종자를 챙기고, 육종을 개발해 우리 것으로 등록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종자도, 사람도 변한다. 받아들이고 빨리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단시간에 할 수 없는 일이라 어렵긴 하다. 젊은 친구들이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가든디자이너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가든디자이너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흙을 채우고 돌을 쌓고, 철과 나무로 시설물을 만드는 등 모든 인력이 협심해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소통이 중요하다. 하나 더, 체력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야외에서 하는 일은 고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요즘은 에너지를 적절히 배분해 쓰려고 한다. 성격상 잘 안 되긴 하지만, 더 오래 일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가든디자인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의 감성 영역이다. 같은 현장은 한 곳도 없다. 또한, 인간이 만드는 다양한 창작물 중에서도 정원만은 살아서 성장한다. 올해 피는 꽃은 작년에 핀 그 꽃이 아니다. 이 얼마나 새롭게 흥미진진한 일인가. 이 멋진 일을 직업으로 갖고 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난 행복한 사람이다. 요즘엔 현장에서 영상을 찍어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다. 정원 가꾸는 데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으니 한번 방문해 봐도 좋을 것이다.

 

녹차밭이 있던 곳을 무대와 관람석으로 바꾸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던 사천 인재니움. 조성 후 이듬해 이곳에서 국제 재즈 워크숍이 열렸다. 관람객들이 디자인하며 상상한 대로 앉고, 기대고, 눕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 정원이다.

 

 

디자이너가 추천하는 정원용 식물 세 가지

크리스마스로즈(Helleborus niger L. )

 

지역과 품종에 따라 시기는 좀 다르지만 겨울과 이른 봄에 꽃이 피어 5~6개월 이어진다. 장마에도 강건하고 햇빛 아래, 심한 음지에서도 잘 자란다. 20여 종 이상의 다양한 색과 모양이 있는데, 꽃대를 들어 눈을 맞추어야 하는 꽃이라 특별하다.

흰줄무늬억새 (Miscanthus sinensis ‘Variegatus’ )

 

억새 종류들이 주는 느낌은 다 좋지만 그중 흰줄무늬억새는 한 포기만 심어도 존재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그라스다. 한여름 푸른 잎으로 시원함을 주고, 가을에는 잿빛으로 정취를 더하는 멋스러움이 있다.

아나벨수국 (Hydrangea arborescens ‘Annabelle’ )

 

나무수국에 비해 부드러운 분위기에 꽃이 많고 오래 간다. 과습, 추위, 해충에 강해 전국 어디든 심을 수 있다. 품종과 색이 다양하지만, 바닐라프레이즈나 핑크 아나벨은 우리 토양에서는 제대로 발색되지 않는다.

취재_ 이세정 | 사진_ 변종석, 와일드가든디자인 제공

출처 월간 전원속의 내집www.uuj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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