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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드라마

[[주몽]]고주몽은 단군조선의 적통이다 .(퍼옴)

작성자개척자.|작성시간06.10.11|조회수415 목록 댓글 3
고주몽은 단군조선의 적통이다



고구려 시조 고주몽은


단군조선의 적통이다


 



마치 동명성왕을 고주몽으로 착각하는데 사실 동명성왕 설화의 주인공은


졸본에서 일어난 고두막<칸>의 설화인 것이다. 동부여에서 졸본부여로 망명한


주몽이 졸본부여(북부여)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족보상 동일가문혈통이기도한


고두막의 위대성을 설화로 고구려 건국신화에 실은 것이다.


참고로 고주몽은 단군조선 47대 단군인 고열가의 종손이기도 하며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의 둘째 아들 고진의 손자인 불리진의


아들로써 단군조선과 단군가문의 적통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고구려가 당당하고 자긍심을 가지게 된 직접적인 사유이기도 하다!





고두막한(동명성왕)은 졸본 땅에서 동명이라 칭하면서


서기전 108년에 출현하여 서기전 86년에 북부여를 통치했으며,


졸본부여나 북부여와 동명부여는 동일한 명칭이며 개념이다!! 


졸본부여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졸본부여라고 하는 것이며,


해모수의 북부여를 통치했기 때문에 북부여하고도 한다.


또한 고두막의 상징용어가 동명(동방의 빛)이기 때문에


동명부여라고 하는 것이다.크게 착각하지말기를 바란다!


물론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도 천제자인데


단군조선 제22대 색불루 단군에서 제43대 물리단군이


우현왕 고등의 후손인 고씨인데, 제47대 고열가 단군이


물리단군의 고손자이며 해모수는 고열가  단군의 종실이며


그리고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은 해모수의 증손자임...



 



-동부여, 서부여, 남부여, 북부여 정리

자, 동서남북 부여를 한번 살펴볼까요.


북부여는 해모수가 건국한 게 북부여예요. 왜 북부여라 그랬습니까?


남쪽에는 그 당시 단군조선이 국호를 변경한


대부여가 있었기 때문에 북부여라고 했습니다.


남쪽에는 대부여가 있었기 때문에 오가가 공화정을 펼치고


47대 고열가 단군이 다스리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북부여라고 했고,


그 북부여가 그 뒤에 쭉 내려오다가 고두막한이 졸본에서 일어나면서


고두막한이 BC 108년~87년 까지를 졸본부여 또는 동명부여라고 했다.


그리고 북부여를 5대 단군으로 계승해서 북부여라고 했다.

그런데 북부여 왕 해우루의 동생 해부루가


통하현 분릉으로 도망을 가서 동부여라고 했다.


그것을 가섭원 부여(동부여)라고도 한다. 그것은 BC 87년~ AD 22년까지 지속이 되었다.


AD 22년에 고구려에게 망할 때 금와왕의 아들인


대소의 종제에게 성을 낙씨로 하사해서 연나부 땅에 봉해서


그것을 연나부부여라 한다. 연나부 부여는 AD 22년~ 494년까지니까


굉장히 오랫동안 지속이 되죠. 낙씨부여라고도 한다. 성이 낙씨기 때문에,


등에 낙문이 있었다 그래요. 연나부부여 또는 서쪽에 있어서 서부여라고 한다.

남부여는 백제성왕이 공주에서


부여로 천도를 하고 국호를 일시적으로 남부여라고


했어요. 부여라고 호칭을 한 것은


그 원뿌리가 백제 온조왕인데 온조.비류의 아버지가


졸본부여의 우태(구태)이기 때문에  부여의 뿌리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남쪽에 있는 부여라 해서 남부여라고 호칭을 했던 것입니다.


참고로 백제시조 온조왕은 우태(구태)묘를 세우고


조상신으로 제사지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여문제을 정리하면.....


 



대부여로 국호를 변경한 부여는 단군조선의 적통이며


북부여는 해모수가 고열가단군이 통치능력을 상실한


단군조선말기에 해모수가 일어나 건국한 국가이며,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은 이 해모수의 손자가 됩니다.


금와-대소와 관련한 동부여는


북부여의 왕인 고해사의 동생 해부루가 권력을 찬탈하려다가


북부여에서 쫓겨나 동쪽으로 가서 건국한 국가로


금와왕은 해부루의 양아들에 불과하며


동부여를 건국한 해부루는 북부여 왕인 해우루의 동생으로


오히려 족보상으로 주몽의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동부여에서 살고있던 주몽이


혈통적으로나 헤게모니차원에서 불리했던


금와왕과 대소에게 미움을 받고 졸본부여(북부여)로


망명하게된 사유이기도 합니다.


졸본부여는 북부여에서 일어난


고두막한의 국가로 북부여의 실권세력이지만,


여러 부여들과 구별하는 차원에서 졸본부여라고 합니다.


이 졸본부여 건국자인 고두막또한 고씨로서


족보상 고주몽집안의 나라이기도 하다!!


 동부여에서 미움을 받아 졸본부여로 망명한 주몽은


마치 졸본부여 왕에게는 아들이 없어


북부여의 적통이자,융합력과 리더쉽이 강했던


주몽을 졸본부여의 딸인 소서노와 결혼시켜


후계자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주몽입장에서 보면 북부여회복과


단군조선의 영광회복이라는 민족적 과제라는


절대절명의 운명에서 졸본부여는 절대로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주몽입장에서 보면 계약결혼일수 있겠지만,


졸본사람 우태와 사별하고 온조.비류를 데리고있는


소서노는 졸본부여의 헤게모니를 동부여에서 예씨부인사이에서 낳은


주몽의 아들 유리에게 양보한 점도 보아도


주몽을 상당히 사랑했던 여인으로 보입니다.


고구려와 백제건국에 있어 훌륭한 민족여걸 소서노가


그래서 더욱 빛이 나는지 모릅니다.


 


- 윤복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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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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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21세기 무인 | 작성시간 06.10.11 외람된 말씀이지만, 윤복현의 글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글입니다. 반말 투의 어조, 자기만이 잘났다는 독선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개무시하죠. 저런 작자의 글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데 이런 곳에 개제하니 참 씁쓸하군요
  • 작성자역사지기 | 작성시간 07.01.23 고구려에 관심이 큰 저도 주몽을 동명성왕으로 그동안 착각했었는데 감사....
  • 작성자단 천 | 작성시간 07.12.30 주몽은 중국인(한족)들이 붙여놓은 한족식 이름이고,원래 우리민족의 우리말 발음인 고구려식 이름은 "추모" 라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민족의 발음으로 고구려식 이름 이었던 "추모"로 변 경해서 물로야 하지 않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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