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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드라마

규장각, 법고창신의 산실

작성자개척자.|작성시간08.03.06|조회수64 목록 댓글 0

규장각, 법고창신의 산실


신 병 주(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


김홍도 <규장각도>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하고 힘겹게 왕위에 오른 정조는 즉위 직후 장용영을 설치하여 신변의 안정을 꾀하고 왕권 강화를 추진하였다. 이와 함께 학문에 바탕을 둔 개혁정치를 구상하였으니, 규장각은 정조의 의지가 압축적으로 표출된 공간이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 경희궁에서 15년을 지내다가 즉위 후 처소를 본궁인 창덕궁으로 옮겼다. 그리고 창덕궁에서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영화당 옆의 언덕을 골라 2층의 누각을 짓고 어필로 ‘주합루(宙合樓)’라는 현판을 달았으며, 1층을 어제존각(御製尊閣)이라 하여 역대 선왕이 남긴 어제, 어필 등을 보관하게 하고 ‘규장각’이라 이름하였다. 규장각은 이제 역대의 주요 전적을 보관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중심기관으로 자리 매겨졌다.  

 

호학 개혁군주의 학문기관이자 정치기관


정조가 즉위하면서 그동안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었던 규장각은 ‘계지술사(繼志述事:선왕의 뜻을 계승하여 정사를 편다)’의 명분 아래 그의 정치세력 내지 문화정책의 추진기관으로 힘을 실어 주면서, 역대의 도서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학문 연구의 중심기관이자 정조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하는 핵심 정치 기관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 것이다.

 

정조는 당파나 신분에 구애 없이 젊고 참신한 능력 있는 젊은 인재들을 쏙쏙 규장각에 모았다. 정약용을 비롯하여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 당대를 대표하는 학자들이 함께 규장각에 나와 연구하면서 정조 개혁정치의 파트너가 되었다. 규장각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역대 왕들의 글이나 책 등을 정리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개혁정치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전통을 본받아 새 것을 창출한다)’은 규장각을 설립한 취지에 가장 부합되는 정신이었다.


정조 시대 이후 규장각의 대표전적을 현재까지 대부분 보유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는 주목할만한 고서적들과 고지도, 책판, 고문서들이 있다.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와 같은 방대한 연대기 자료를 비롯하여, 조선 왕실의 주요 행사를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의궤, 조선시대 지도의 종합판인 『대동여지도』 등 제목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책들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규장각의 소장 자료 중에는 전통 문화의 폭과 깊이와 함께 동·서양의 여러 나라들과 접촉한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들도 많다.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후 여행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담은 연행록과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들의 기행문은 전통시대 흔치않았던 세계와의 만남을 생동감 있게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 『지봉유설』이나 『성호사설』,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의 백과사전에는 전통시대 지식인들의 넓은 학문 세계가 기록되어 있다. 『노걸대언해』, 『박통사언해』 등의 외국어 학습서도 눈길을 끈다. 이들 자료를 통해서 조선이라는 국가가 결코 폐쇄적인 방향으로만 나아가지 않았음과 함께 세계의 조류에 부단히 접촉하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선구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방대한 기록 유산이 우리에겐 큰 행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화동고지도」, 「천하도지도」, 대원군대에 제작된 472장의 군현지도를 통해서는 선조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변해가는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시대들을 통하여 당대의 인문지리, 자연환경을 정확하게 남기고 싶어했던 선조들의 모습과 함께 세계사의 흐름에 나아가고자 했던 노력들을 접할 수가 있다. 이외에도 규장각에는 한 인물의 사상과 행적을 볼 수 있는 개인 문집들, 각종 기행문과 백과사전류 저술, 또 생활사의 면면들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는 고문서들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규장각에 소장된 자료들은 역사학, 한문학, 지리학, 언어학, 민속학, 군사학, 미술사, 복식사 등 각 분야 연구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만큼 매력적인 자료들로 가득하다. 우리의 시대에 선조들이 남겨 준 기록유산들이 이처럼 많이 남아있는 것은 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큰 행운이다. 문집 한 책, 지도 한 점, 초상화 한 첩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록을 중시했던 전통의 숨결이 엿보인다. 


투철한 기록정신은 공개성과 투명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정치나 일상의 행위에서 벌어진 모든 사실을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부정과 비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도 있었다. 투철한 기록정신은 자신의 시대를 보다 떳떳하게 살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다양하고 방대한 기록물을 제작하고 철저하게 보관한 민족, 이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느낄 수 있다. 전통 문화의 보고(寶庫) 규장각은 21세기 문화대국을 지향하는 현재의 시점에 더욱 의미 있게 다가서고 있다.

 


글쓴이 / 신병주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학예연구사

· 저서 : 『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 책과함께, 2007

          『제왕의 리더십』, 휴머니스트, 2007

          『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중앙M&B, 2003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 돌베개, 2005

          『조선 최고의 명저들』, 휴머니스트, 200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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