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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인전

[조선사 인물]김 시습 ----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

작성자가을바다|작성시간04.12.13|조회수106 목록 댓글 0


김 시습 ( 1435 - 1439)


조선조 생육신에 포함된 인물이다.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청한자(淸寒子),벽산(碧山)이며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김주원의 후손으로 문정공 김상기의 14세손이며, 충순위 김일성의 아들이다.
시습이란 이름은 최치운이 집현전 학사로 재직할 때 그를 보고 기이하게 여겨 지어준 것인데. 김시습은 3세에 이미 시에 능했고 5세 때에는 <중용>,<대학>에 능통하여 신동이라 불리어 졌으며, 허조를 비롯한 많은 문인들이 그를 찾아보았다고 한다. 세종은 시습의 실력을 듣고 승정원에 불러 시험을 보게 하였는데, 박이창이 <동자지학(童子之學)은 백학(白鶴)이 무어청송지말(舞於靑松之末)>이라 하니 시습이 답하기를 <성주지덕(聖主之德)이 황룡(黃龍)이 번어벽해지중(飜於碧海之中)>이라 하였다.
이에 세종이 내가 친히 보고는 싶으나 일반이 해괴하게 여길까 생각되어 그 가정에 권하여 잘 교양하도록 하교하였다. 그리고 5세 때부터 13세까지 김반의 문하에서 사서를 익혔고, 윤상의 문하에서 <예기>와 제자 백가서를 배웠다.
세조 1년(1455)에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하여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법명을 설잠(설잠)이라 하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세조 4년(1458) <탕유관서록후지>를 ?㎞?, 세조 6년(1460)에는 <탕우관동록후지>를 서술하였으며, 세조 9년(1493)에는 <탕유호남록후지>를 저술하였다.
같은해(1463)에 책을 구입하러 서울에 갔다가 효령대군의 권고로 세조의 <불경언해>사업을 도와 내불당(내불당)에서 교정의 일을 보았다. 세조 11년(1465)에는 경주 남산에 금오산실을 짓고 독서를 하였는데 후에 효령대군의 청으로 원각사의 낙성식에 참석하였다.
세조 14년(1468)에는 금오산에서 <산거백영>을 지었고 성종 7년(1476)에는 <산거백영후지>를 지었다. 성종 12년(1481)에는 47세의 나이로 환속하여 성종 16년(1485)에 <독산원기>를 남겼다.
이외에도 <금오신화>,<매월당집>,<십현담요해>등의 저서가 있다. 그는 절개를 지키며 불교와 유교를 아울러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력으로 이름을 떨쳤다. 정조 6년(1782)에이조판서에 추종되었으며 영월의 육신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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