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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위인전

[조선사 인물]김 육

작성자가을바다|작성시간05.09.28|조회수146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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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369 작성일: 05-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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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堉

1580(선조 13)~1658(효종 9).

조선 후기의 문신·실학자.

국가재정과 농민생활 안정을 위해 대동법(大同法)을 건의하는 등 제도개혁을 추진했다.

관직생활

본관은 청풍.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회정당(晦靜堂). 증조부는 식(湜)이며, 아버지는 참봉 흥우(興宇)이다. 김상헌(金尙憲)의 문하에서 수업했다.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들어갔다. 1609년(광해군 1) 성균관의 동료 태학생들과 함께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 등의 문묘배향을 건의하는 청종사오현소(請從祀五賢疏)를 올렸다. 이때 이를 반대한 대북파의 영수 정인홍(鄭仁弘)을 태학생들이 청금록(靑衿錄:성균관 儒籍)에서 삭제하는 사건이 발생, 조정에서는 그를 포함한 삭제주동자들의 대과 응시자격을 빼앗았다. 이에 성균관을 떠나 경기도 가평의 잠곡에 10년 동안 낙향했다. 1623년 서인의 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자 금오랑(金五郞)이 되었고, 이듬해에는 음성현감으로 민생고의 원인과 이의 타개책을 파악·연구한 음성현 진폐소(陳弊疏)를 인조에게 올렸다. 1624년(인조 2)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으며, 이듬해 9월에 안변도호부사로 나가 청의 침입에 대비했다. 이어 동지성절추진하사(冬至聖節秋進賀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예조참의·우부승지·장례원판결사를 지냈다. 1638년 충청도관찰사로 재직하면서 공물법을 폐지하고 대동법을 실시할 것을 건의하는 한편, 〈구황촬요 救荒撮要〉와 〈벽온방 瘟方〉 등을 편찬했다. 동부승지·대사성·부제학 등을 거쳐 1643년 한성부우윤·도승지가 되고,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자 보양관(輔養官)으로 수행하고 귀국하여 우부빈객이 되었다. 1645년 관상감제조가 되고, 이해 12월 사은사로 청의 연경에 다녀왔다. 1649년(효종 즉위) 대사헌을 거쳐 우의정이 되었고, 이어 사은 겸 동지사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0년에는 대동법 실시 문제로 김집(金集)과 논쟁하여 이듬해 영중추부사로 전직되었다. 나이를 이유로 사직했다가 1651년 영의정에 임명되어 대동법을 충청도에까지 확장시행하였고, 실록청총재관이 되어 〈인조실록〉의 편찬을 맡아보았다. 1652년 좌의정으로 물러났다가 1654년 6월 다시 영의정이 되어〈호남대동사목 湖南大同事目〉을 구상하는 등 대동법 확대에 힘썼으나, 시행을 앞두고 1658년 9월 죽었다.

경제개혁론

그는 경제정책에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었는데, 경제혁신책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대동법의 실시였다. 병자호란으로 국가의 재정이 곤궁해지고 민생이 도탄에 빠지자,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으로 대동법의 실시를 건의했다. 토지 1결(結)마다 12말의 쌀 또는 마포·면포를 징수하여 도내의 모든 경비와 그 도에서 부담했던 중앙의 일부 경비에 충당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농민들의 부(富)에 따라 균등한 부담을 갖게 하여 생활의 안정을 기하는 한편, 중앙 및 지방재정을 통제하여 국가재정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또한 수레를 제작하여 종래 말로만 사람이나 물건을 운반하던 불편을 제거했고, 관개에 수차(水車)의 사용을 주청하여 1644년 황해도·평안도에 실시케 했다. 한편 전국적인 동전사용의 필요성과 그 편리를 주장하여 쌀과 포에 대신한 전납(錢納)의 계기를 마련했으며, 1651년에는 상평통보의 주조를 건의함으로써 서울·서북 지방에 유통케 했다. 관상감제조로 재직중에는 서양의 새로운 역법을 보고 당시 400년 동안 사용되어 오던 우리나라의 구식역법을 개정하자고 건의, 1653년부터 4계절의 변화를 일상생활에 맞추어 적용한 시헌력(時憲曆)을 시행케 했다.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지리·병략·복서(卜筮)·율력에 정통했으며, 그의 경제학은 실학의 원조인 유형원(柳馨遠)에게 큰 영향을 끼쳐 실학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저서로는 시·문을 모은 〈잠곡유고〉·〈잠곡별고〉·〈잠곡유고보유〉·〈잠곡속고〉가 전하고, 이외에도 〈황명기략 皇明紀略〉·〈유원총보 類苑叢寶〉 등이 있다. 양근 미원서원(迷源書院), 개성 숭양서원(崧陽書院), 가평 잠곡서원(潛谷書院), 청풍 봉강서원(鳳岡書院), 강동 계몽서원(啓蒙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申榮祐 글

출처 : 다음백과사전 ( makeLink("http://enc.daum.net/") http://en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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