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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리더, 정조(正祖)대왕의 학문과 인간됨

작성자개척자.|작성시간07.06.06|조회수159 목록 댓글 2
고독한 리더, 정조(正祖)대왕의 학문과 인간됨
 

장 승 구(세명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동서양의 역사를 둘러보아도 정조대왕(正祖, 1752-1800) 만큼 학문과 덕을 아울러 갖춘 군주는 드물다. 조선후기 실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조의 학술장려 정책이 큰 힘이 되었다.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의 학문도 정조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정조는 실학자를 키운 실학의 대부였다.

개방성과 포용성에다 문무를 겸비

정조는 당시의 어떤 유학자보다도 학문적 수준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포용하는 개방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한편으로는 성리학을 높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학을 장려하였다. 또한 왕양명에 대해서도 매우 호의적이었으며, 서학에 대해서도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일반 선비들이 하나의 학설에 집착하는 것과 달리 정조는 국가경영의 큰 목적을 위해서 다양한 학술을 아울러 발전시켰다. 하나의 코드로 모든 사상이나 학문을 재단하는 편협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백성과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어떤 사상이나 학문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취하였다.

정조는 조선과 중국의 역사에 대해 해박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고, 훌륭한 인물에 대해서는 힘써 배우려고 하였다. 그는 고금의 선비나 신하들을 보는데 있어서 단점에 가려서 장점을 놓치는 일이 없었다. 다소 단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장점이 크면 인정하고 포용하였다. 예컨대 어떤 신하가 류성룡의 『징비록』에는 전란에서 나라를 구한 공을 나타내려는 의도가 있다고 비판하자, 정조는 “마땅히 대체를 보아야 하니 어찌 조그만 잘못을 가지고 대뜸 평생을 단정할 수 있겠는가?”라고 류성룡을 감싸주었다.

소년시절부터 독서광이었던 정조는 정사를 돌보는 틈틈이 독서에 힘써서 역사와 경학과 문학 등 학문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학문과 문장에 만 치중하여 문약(文弱)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지만 정조는 학문에만 밝은 것이 아니었다. 군사지식도 풍부하고, 말타기와 활쏘기에도 능숙하였다. 틈이 나면 활쏘기 연습에 힘써서 높은 명중술을 보여주었다. 충무공 이순신을 비롯한 무신을 높이 받든 것도 정조였다. 이처럼 그는 문과 무를 겸비한 리더였다.

정사와 학문에 혼신의 힘을 다할 뿐 일상생활은 할아버지인 영조를 본받아 검소하고 소박한 것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아침상이나 저녁상의 반찬이 너 댓가지에 불과하였다. 법을 지키지 않은 백성에 대해서도 사안에 따라서는 관용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은혜를 베풀기도 하는 아량을 보여주었다. 어떤 사람이 임금에게 올릴 산 꿩을 훔쳐 먹었다. 법에 따르면 그 사람은 사형에 처해야 마땅하였다. 그러나 정조는 이 사실을 보고받고 그가 어리석고 무지해서 그런 죄를 범했다고 생각해서 그 죄를 용서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특별히 꿩 한 마리를 주도록 해서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였다. 백성에 대한 정조의 지극히 어진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주도면밀하고 영웅적 낭만을 지닌 지도자였지만

정조는 한편으로는 치밀하고 주도면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영웅적인 것을 숭상하는 낭만적 심리도 있었다. 특히 제갈공명(諸葛孔明)과 왕양명(王陽明)을 사모하기도 하고, 장자(莊子)의 호쾌한 문장을 좋아하였다. 정조의 호(號) 홍제(弘齋)는『논어』에 나오는 “士不可以不弘毅”에서 따온 것으로 ‘넓고 큰 마음’과 ‘굳센 의지’를 뜻한다. 그의 뜻은 크고 높았으며 관심은 끝없이 넓었다. “내 마음은 여태까지 천고의 세월을 더듬어 올라가지 않은 적이 없고 팔방의 세계를 누비며 다니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어떤 학자보다도 더 학문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더 백성을 사랑하는 선각적 군주였지만, 그 혼자만으로 조선의 역사를 개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정파적 이해관계에 골몰하는 대다수 신하와 유학자들은 정조의 정치적 비전을 충분히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다지 협조적이지도 않았다. 정조와 정치철학을 같이하는 실학자들은 수적으로 소수파를 면하지 못하였다. 시대를 앞서서 백성과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였던 정조는 고독한 지도자였다. 그는 위대한 군주이기에 앞서 불세출의 석학이었고 매력 있는 인간이었다. 또한 위대한 꿈과 강한 의지를 지닌 큰 리더였다. 우리에게 이런 큰 지도자가 다시 나타날 수는 없는 것일까?


글쓴이 / 장승구
· 세명대학교(교양학부 부교수, 한국철학 전공)
· 저서: 『삶과 철학』, 이회, 1996
         『정약용과 실천의 철학』, 서광사, 2001
         『다산경학의 현대적 이해』, 심산, 2004(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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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한울마로 | 작성시간 06.11.10 역시 주위에서 받쳐주는 참모가 필요하겠죠....참모와의 조화 ...역사는 반복되는 거라면서요...
  • 작성자김진명 | 작성시간 06.11.10 언젠가 이 큰 지도자가 나타날 것이다 라기 보다는 내 주위에 혹은 내가 이 큰 지도자가 된다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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