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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의 실체

태왕사신기 첫회 시청하셨나요?

작성자태을천77|작성시간07.09.16|조회수257 목록 댓글 0

태왕사신기 첫회 시청하셨나요?


태왕사신기 드라마에 처음으로 환웅의 신시 시대가 방영되었습니다.
역사를 알고 드라마를 보면 혼동되지 않고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환웅과 풍백과 우사와 운사 / 웅족과 호족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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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광명의 나라 배달의 건국

환국의 마지막 임금인 7대 지위리 환인은 삼위산과 태백산을 두루 살피시고 동방의 백두산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이라 하여 환웅을 백두산으로 보내셨다.

동방에 태양이 떠오를 때 가장 먼저 밝아오는 광명의 땅이 태백산(백두산)이다.
태조 거발환 환웅은 '동방 백두산의 신단수에 도착하자 이곳에 '신의도시'라는 뜻의 도시국가인 신시神市를 열었다.

환웅은 환국의 종통을 계승하여 친히 제단을 쌓고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으며 삼신상제님의 신교로써 백성을 다스렸다.  신시배달은 동방 한민족 최초의 시원국가로서 신시神市는 제정일치의 종교적 성지이다.


배달의 시조 거발환 환웅은 신교의 삼신오제사상을 국가 경영원리로 삼아 삼백오가(三佰五加) 제도를 만들었다.

풍백(입법관),우사(행정관),운사(사법관)을 두고 오가에게는 곡식,왕명,질병,형별,선악 등 다섯가지 정사를 맡겨 인간사 360여가지를 주관하게 하였다.

또한 결혼 예법을 정하였으며 백성들에게 신교의 세계관과 신관의 정수를 요약한 천경신고(천부경과 삼일신고)를 설하고 삼신상제님의 진리로써 교화를 베푸셨다.

총 18세의 환웅천황이 다스리며 1565년동안 번창한 배달문명은 신교의 우주관을 한민족의 삶의 이념으로 뿌리내려 주었다.


21일 기도로써 환족이 된 웅족

거발환 환웅이 동방 백두산 문명을 개창할 무렵,
백두산에서 송화강에 걸친 만주 일대에는 원주민인
웅족과 호족이 어렵 생화을 하며
굴속에서 살고 있었다.

범을 토템으로하는 호족은 남권 중심의 부족으로 사나우면서 약탈에 능했고
곰을 토템으로 하는 웅족은 여권 중심의 부족으로 어리석고 고집이 세었다.

당시 환족의 발달된 문명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던 웅족과 호족은 자신들도 삼신상제님의 계율을 따르는
밝은 백성이 될 수 있기를 환웅께 간절히 청하였다.

이에 환웅은 신교의 가르침으로 두 부족을 포용하고자 그들에게 햇빛을 보지 말고 100일을 기원하면 인간답게 될것이라는 가르침을 내려주셨다


환웅이 내려주신 신령한 쑥 한 심지와 달래 스무개를 먹으며 웅호 두 족속은 수도생활에 들어갔는데 호족은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고 웅족 여인은 굶주림과 추위를 참고 계율을 지킴으로써 '21일 '만에 삼신의 광명의 도를 깨우쳐 마침내 참된 인간이 되었다.


그런데 환웅의 동방 문명 개척단과 웅 호족의 결합에 관한 고대역사가 외래 종교에 찌들어 있던 고려의 승려 일연에 의해 곰과 호랑이의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한 기도운동'이라는 유치한 신화로 윤색되어 버렸다. 그뒤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더욱 근본이 부정되고 엉뚱하게 해석되어 '한민족의 뿌리사'가 지금까지 왜곡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출처 : 개벽실제상황 2부 대한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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