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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독도침탈ㆍ

Ⅱ. 일본 국민의 존황사상

작성자장선영|작성시간12.10.04|조회수33 목록 댓글 0

- 존황사상에 중독된 어느 대만 소년의 이야기 -

 

장 선 영(전 외대 교수)

 

 

 

  일본이 우리나라 대통령의 발언에 애해 보다 더 발끈한 것은 독도문제보다 일본 왕에게 사죄를 요구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감히 ‘천황폐하’에게 사죄를 요구하다니!”

아마 이게 일본인들의, 특히 일본 국수주의자들의 공통적인 견해 인 것 같다. 원래 그들의 존황(尊皇) 사상은 삐딱할 정도로 유별나니까 말이다. 그 좋은 예로... 1945년 대 일본제국(大日本帝國)은 연합국에게 항복할 때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었다. 즉 천황제도를 존속 시켜 달라는 조건이었다. 연합국은 이 조건을 쾌히 수락했다. 특히 미국이 적극적으로 수락했다.

미국은 전쟁말기때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같이 200대(?) 가량의 B29 폭격기들을 흡사 종이 비행기 처럼 일본땅에 날려보냈다. 말랑말랑한 폭탄으로 일본 전역을 폭신폭신한 융단으로 부드럽게 깍아주기 위해서였다. 천황폐하께서 살고 ‘계시는’ 궁성에는 폭탄은 커녕 먹다 남은 통조림 하나 던지지 않았다. 어차피 이기는 전쟁인데 일본 신민(臣民)들의 골수 속에 박혀있는 존항사상을 섣불리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만약에 미군기들이 일본 궁성을 폭격했을 경우 군국주의자들은 이게 웬 횡재냐 싶게 전 국민에게 총 동원령을 내렸을 것이다. 이 경우에 일본 국민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미리 준비해 두었던 죽창을 하나씩 들고 일본땅에 상륙하려고 드는 미군을 향해

“도쯔께끼(돌격)!”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흡사 불화살 맞는 맷돼지 처럼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을 것이다. 그럼 반도인(일본인들이 조선사람들을 지칭하는 호칭인데, 그때 우리들은 이 호칭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음)들은? 우리도 별 수 없이 총동원되어 그 돌격에 동참했을 것이다. 바로 이 결정적인 순간을 위해 우리 ‘반도인’들도 내지인(內地人:일본인들 자신들을 그런식으로 불렀음)처럼 그동안 군사 훈련을 열심히 받았다. 심지어 ‘국민학교’학생들 까지도 군사훈련을 받았다. 중학교(고교와 중학교를 합친) 이상의 학생들은 전부 일본 군인들처럼 종아리에 감발을 치고 호된 군사 훈련을 받았다. 심지어 여학생들도 그 예쁜 종아리를 감발로 도배를 하다 싶이 했다. 그야 그뿐인가. 집에서 살림하는 부인들도 반상회를 통해 기초적인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렇듯이 전 국민이 훈련을 받으면서 미영귀축(米英鬼畜:미국과 영국의 도깨비들과 짐승)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웠다. 그리고 결사항쟁을 다짐했다. 천황폐하를 위해서라면 나 하나의 목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 없었다. 이게 당시 존황사상에 흠뻑 젖은 ‘대일본제국’신민(臣民)들의 공통된 신조였다. 이에 대한 사례를 두개 정도 들어보면...

당시 대만은 일본 지배하에 있었다. 대만 소년들도 존황사상에 잔뜩 세뇌 당하고 있었던가 보다. 한 소년이 중병에 들었다. 거의 마지막 숨을 쉬려는 찰나 그는 부모에게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나 노래 불를래요.”

사경에 이르렀는데 뚱딴지 같이 노래는 웬 노래? 소년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부모를 힘없이 바라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곡목은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아닌가!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노래였다. 모기같은 가는 목소리로 힘들게 노래를 부르고 소년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

대만 소년이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기미가요'를 불렀다는 소문을 들은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무릎을 탁 쳤다.

“이거야 말로 존황사상을 한껏 부풀릴수 잇는 좋은 선전 자료 로다!”

그들은 이 사실을 방송에 신문에 마구 퍼날랐다. 국민들은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 급기야 이 소년에 대한 이야기는 ‘기미가요 소년’이라는 국민적 칭호를 가지고 국민학교 4학년(?) 교과서에도 실렸다. 따라서 그것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적 훈시를 하는것을 잊지 않았다.

“미나상(여러분)도 이 ‘기미가요 소년’처럼 자나께나 살때나 죽을 때나 항상 ‘천황폐하’를 위해서 살고 또 죽는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돼요. 알았죠, 미나상?”

이 다짐에 학생들은 뭐라고 다짐했을까? 그거야 뻔하지 뭐.

“하이, 와까리마시다, 센세이(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이처럼 대만(∴청일 전쟁후, 일본은 전리품으로 포르투칼어로 아름답다는 뜻을 가진 Formosa)를, 즉 대만을 병합했음)에서 ‘기미가요 소년’이 배출되었다. 물론 우리 조선땅에서도 ‘존황사상’ 중독자가 나타났다. 도대체 이자가 누구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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