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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신연순 "'중국은 하나' 주장에 '중국은 없다' 논리로 맞서라"

작성자뿌우미|작성시간12.12.10|조회수62 목록 댓글 2

신완순 "중국은 애초부터 실체가 없었다!" 


[직격인터뷰] 역사학자 신연순 "'중국은 하나' 주장에 '중국은 없다' 논리로 맞서라" 
  
정소현 기자   
  


프로필  ▲신완순 교수 ▲한국 우리역사연구회 연구위원 ▲ 명지대 민족사콘텐츠학과 고대사 강의 ▲ 한국 우리역사 아카데미 강의 ▲ 왜곡된 우리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참여강의 집필 중.   ⓒ <사진/김상문 기자>



'한강유역은 중국 땅이었다' '발해는 당의 지방정권' '중국의 2008년 동계 아시안게임 성화를 백두산에서 채화'. 고구려와 발해, 부여를 중국 역사의 일부로 규정하는 '동북공정'이 갈수록 그 정도가 심각해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 측은 최근 백두산마저 자신의 고유 영토로 규정하는 '백두산 공정'마저 진행하고 있다.

이대로 라면 언젠가는 백두산은 물론 휴전선 이북이 중국 영토가 될 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학계 등에서는 부랴부랴 여러가지 대책마련이 쏟아내고 있는 상황. 이런 가운데 명지대 신완순 교수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응할 수 있는 '답'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강하게 말하고 나섰다. 

신완순 교수는 지난 12일 기자와의 만남에서 "이번 중국의 '동북공정' 사태를 지켜보며 역사학자로서 통탄스러울 뿐"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신 교수는 먼저 중국의 역사왜곡은 이미 2천5백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中 역사왜곡 이미 공자때부터 

신 교수에 따르면 중국 최초의 국가인 '하나라'는 기원전 2208년에 세워졌다. 반면 단군이 세운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 하나라의 건국이 고조선의 건국시기보다 1백30여년 늦다. 때문에 이것을 만회하기 위해 역사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자가 '춘추'를 저술한 배경이 됐다는 것.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세울 시기에 중국에서는 요임금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공자는 이런 상황을 빌어 요임금이 중국 최고의 시조라고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요임금, 순임금 등 후대 임금들이 실질적으로 작은 제후국에 불과했다. '하나라'가 본격적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세웠는데 그것이 고조선보다 늦다보니 역사적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시조 연대를 끌어올려야 했고, 공자 '춘추'를 저술한 배경이 됐다." 

신 교수는 이후에도 송나라의 문치주의에 이어 진시황의 '분서갱유'도 역사왜곡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진시황은 6국을 통합한 뒤 나라를 다스릴만한 기강이 필요했다. 그러나 식자층은 모두 조선의 유민, 조선의 유학자들이었다. 때문에 이들을 모두 죽이고, 고대 역사사상과 관련된 서적들을 모두 태운 것이다." 그는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벌어진 근본적 배경에 대해 "우리 민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이미 2천5백년 전 공자 '춘추' 저술부터 역사 왜곡 시작  
"요·원·청 등 중국사 아니다. 여진·만주족 한민족사로 봐야"  

중국의 '한족'들은 우리 민족에 대해 늘 경외시했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민족을 억압하려 했다는 것. 이 같은 논리가 계속 지속돼 왔기 때문에 역사왜곡은 물론 최근의 동북공정 사태도 벌어지게 됐다는 주장인 셈이다. 

특히 신 교수는 "중국은 다민족 국가인 중국의 단결을 유지하는 데 중차대한 문제라는 논리로 고구려사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국으로선 변방지역의 평온을 유지하는 데 중국의 생사존망이 달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구려사는 다른 소수민족 역사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와도 상관이 있다"고 말했다. 

소수민족을 포용했던 중국의 의도

그에 따르면 송나라·원나라·명나라·청나라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소수민족을 포용하는 정책을 수용했다. 소수민족을 배격하고 말살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을 포용해 '같이 살자'는 것. 그러나 그것은 중국의 의도적 명분일 뿐이라는 게 신 교수의 주장이다. 

"중국은 소수민족이 공존했던 국가였다. 이들을 모두 포용했던 것은 근사한 명분이었을 뿐, 실질적으로 이 같은 명분을 내세워 그들 소수민족이 차지하고 있던 과거의 역사나 영토를 중국으로 뺏으려는 의도다.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이 역대로 누려왔던 영토와 역사·문화·전통을 모두 수용하는 척 하면서 중국의 역사라고 속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라고 수식한다. 하지만 한족이 91.9%를 차지하고, 55개 소수민족은 8.9%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국이 점령한 이들 소수민족의 땅은 중국 전체 영토의 무려 63.7%에 달한다. 소수민족들이 모두 독립한다면 한족은 현재의 36.3%밖에 안 되는 영토에서 살아야 한다. 따라서 중국의 서북·서남공정은 티베트·위구르(신강)·운남·귀주성 등을 영구 점령하려는 의도이며, 동북공정은 점령 지역을 늘리려는 의도라는 얘기다. 

신 교수는 "중국은 '중화민족'이라는, 역사 어디에도 없는 허구의 족명을 만들어 내 소수민족의 역사와 영토를 모두 빼앗으려 하는 것"이라면서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56개 민족은 물론 고구려 역시 중국의 지방사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교수에 따르면 동북공정의 진정한 목적은 첫째, 중국내부의 분열을 막고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작업이다. 과거 구소련이 붕괴되는 것을 봤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것. 둘째, 한반도가 통일된다거나, 북한에 정치적 변동 등 유사시 북한을 점령하기 위한 역사적인 수단이다. 여기에는 영토확장이 포함돼 있다. 결국 남북통일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무서운 흉계라는 의미다.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깨지지 않기 위함이다.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중국의 역사와 영토가 분열돼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가장 크다."

"중국의 역사는 모두 허구다"

신 교수는 최근 중국의 이 같은 동북공정 야욕에 대해 "중국은 없다(無)"는 논리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중국이라는 국명을 정식적으로 사용한 것은 1911년이다. 그렇다면 1911년 이전에는 중국은 없는 것이다. 허구라는 얘기다. 예컨데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나라다. 그럼 한족 개념으로 생각하면 이것은 중국의 역사는 아닌 것이 된다. 이것을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선 중화민족이 개념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 이전에 원나라를 세운 것은 한족이 아니고 몽골족이다. 한족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중국이라는 나라는 1911년 이전에 있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중국사'라는 것은 1911년 후에나 가능한 것이니, 그 전에는 중국이란 나라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역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중국은 실체가 없다'는 논리가 가장 필요하다."

동북공정, 우리민족에 대한 경외심서 비롯, 영토·역사 빼앗으려는 속셈
"중국의 역사침탈 행위 연구성과로 응징해야…" 

'중국은 하나다'라고 주장하는 중국에 대해, 결국 '하나'의 반대인 '무(無)' 또는 '공(空)'의 논리로 대응, 반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이어 "고구려가 무려 9백여년 동안 한 나라로 유지된 점"을 배경으로 들어 중국에 반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구려는 국가가 아니라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라고 자꾸 중국에서 엉뚱한 주장을 하는데, 이에 대해선 이렇게 반박해야 한다. 9백년간 고구려가 존속하는 동안 중원에 있던 중국은 36개국이 망하고 흥했다. 고구려가 지방정권이라면 9백년간 지속할 때 중앙정권이 36번 망하고 흥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논리다."   마지막으로 신 교수는 '지나친 한반도 중심의 역사관'을 지양할 것을 지적했다. 

"우리는 역사를 지나치게 '한반도'라는 중심으로 본다. 장구한 역사를 지리적인 중심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역사'란 단순히 한반도에서 벌어졌던 일 정도로 규정하니까 중국사람들이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쉽게 역사를 빼앗아 가는) 것이다. 고구려의 전신인 단군조선, 고구려 발해 등이 한반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 만주 내력 깊숙한 곳까지 위치해 있었다. 역사를 보는 눈이 바뀌어야 한다."

한반도 중심의 역사관 지양해야 

그는 이어 "단일 민족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고구려의 후손들도 우리의 민족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갈·거란·여진·몽골족들도 고구려의 후예인데, 우리는 이런 부족들을 오랑캐 야만족으로 폄하하고 역사에 포용하지 않으려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고구려 땅에 발해가 세워지고 거란이 세워졌다. 그러나 발해는 우리역사라고 하면서 거란은 우리역사이라고 안 한다. 중국의 논리도 자기네 땅에서 자기네 모든 민족들이 발생한 것은 자기네 역사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도 고구려 땅에서 벌어진 역사를 왜 우리 역사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고구려 지배 지역에 살던 백성도 우리와 다른 민족이 아니고, 뿌리가 같은 민족이라는 시각에서 받아들여야 중국의 논리에 대응할 수 있다."
신 교수는 이와 더불어 정부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처를 요구했다.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조속히 역사 왜곡에 대하여 중국 정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야 할 것이다. 이 문제는 우리 국민의 자존심, 나아가 미래와 직결된 엄청난 사안이다. 따라서 중국과의 외교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더라도 정부는 이 문제가 다른 어떠한 현안보다 중차대한 것임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신 교수는 중국이 구소련처럼 여러 개로 분열돼 쪼개지지 않는 이상 동북공정 계략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섣부르고 어설프게 대응하면 과거 식민지 시절처럼 또 다시 나라와 역사를 빼앗기고, 잃고 살아가는 시기를 걱정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라고 지적한다. 

"사람은 몸과 정신이 분리되면 죽는다. 나라도 몸과 마찬가지로 정신(역사·국사)과 육체(영토)가 분리되면 끝난다. 현재 우리는 몸도 완전히 찌그러져 있고, 혼 마저도 중국에서 가져가겠다고 하니 나라의 혼마저도 뺏길 처지에 있다. 우리가 각성하지 않으면 결과는 뻔한 일이다. 우리도 중화민국, 중국사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coda0314@naver.com

  
2006/09/23 [11:35] ⓒ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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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청송산 | 작성시간 13.08.25 100% 타당하신 말씀,
  • 작성자이불 | 작성시간 13.10.11 역사마음이 더 열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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