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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 고구려 평양의 원래위치2.

작성자우찬|작성시간22.06.20|조회수25 목록 댓글 1

제5). 고구려 평양의 원래위치 2.

 

2). 고구려 평양의 한국기록

 

(이병도 외 번역서: “신증동국여지승람” 6권 조선평안도 평양부편):

★ 다음은 이씨조선 지리지 평양부편에서 고구려 도읍지에 관한 기록 17개를 발췌한 것이다. 학자들은 자기가 고구려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되는지 아래의 문장에서 평양의 위치를 말해보세요. 고구려 도읍은 총8개소이고, 고구려가 평양이란 지명을 직접사용한 것은 3개소이다. 한반도에는 일제가 이동조작한 평양 하나뿐이다.

 

⬤ 조선사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양부(平壤府)” 편에서 발췌.

 

1. “당서(唐書)에 평양성은 한나라 낙랑군이다. 산을 따라 구불구불 성곽을 쌓았고 남쪽은 패수를 면하였다.”

(해설)낙랑군 패수를 남쪽에 면한 곳은 중국감숙성 천수뿐인데 고구려 도성이 아니다. 한반도평양을 의식하게 한 가짜다.(신증동국여지승람 제6권 P.347 참고)

 

2. “평양은 기자의 옛날 봉지다.”

(해설)중국 감숙성 평량.

기자의 봉지에 있는 평양은 지금 중국감숙성 평량과 천수 두 곳인데 천수는 고구려 평양이 아니다.

 

3. “김부식전에 “북쪽은 산을 등지고 삼면이 물에 막혀있다.”

(해설) 북쪽에 산을 등지고 삼면이 강인 곳은 고구려 멸망당시의 도성인 섬서성 함양(제2장안성평양)이다.

 

4. “(고려사)에는 백제시조가 북으로 패강을 경계로 삼았다“

(해설) 비류백제(대방백제와 한성백제)는 북쪽으로 패수(현재의 위수)를 고구려와의 경계로 하였다.

 

5. 본래 삼조선과 고구려의 옛 도읍이다.

(해설) 고조선 때의 번조선과 고구려의 도읍은 감숙성 평량 뿐이다.

삼조선(진조선, 막조선, 번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낙랑의 땅은 중국감숙성 요동(서황하 동쪽) 땅이다.

 

6. 진조선. 기자의 봉지다.

(해설) 진조선이 아니라 번조선이다. 중국감숙성 평량

 

7. 위만이 왕험성에 도읍하니 곧 평양인데 그것이 위만조선이다.

(해설)중국감숙성 평량을 설명한 것이다.

 

8. 한무제 원봉 2년에 사군을 삼고 왕험성으로 닉링군을 삼았다.

(해설)중국감숙성평량을 설명한 것이다.

 

9. 고구려 장수왕 15년에 국내성에서 천도한 곳이다.

(해설)중국감숙성평량

고구려 북방을 장악한 전연과 후연이 408년 북위에게 망하니 고구려는 북방이 안정되어 장수왕 15년에 국내성에서 천도한 것이 아니라 고평양(평양동황성)에서 원래의 도성인 북방의 평양성으로 천도했다.

 

10. 당나라 안동도호부다. 후에 신라 땅이다.

(해설) 최초의 안동도호부는 중국섬서성 함양 즉 제2장안성평양이다. 신라 땅이라고 한 것은 왜곡 또는 착오이다.

당나라 안동도호부는 이씨조선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조선의 평양성이라고 하여 한반도로 인식하게 썼지만 이씨조선은 중국의 나라이니 가짜이고, 고구려를 멸하고 설치한 최초 안동도호부는 중국섬서성 함양이다.

발해 대조영의 반란으로 안동도호부를 두 번째로 옮긴 곳이 감숙성 개성의 동쪽인 고구려 경주, 당나라 안동, 발해 심주, 청나라 승덕, 심양인 지금의 경양(慶陽)이다.

 

11. 고려 태조 원년에 평양이 황폐하여 염주, 백주, 해주, 봉주 등 여러 고을 백성들을 옮겨 인구를 실하게 하여 대도호부를 삼았고 얼마 후에 서경으로 했다.

(해설)중국 감숙성 평량

고려4주 (염주, 백주, 해주, 봉주)와 고려의 서북면은 주로 감숙성 평양의 서북쪽 약 500리 거리에 있는 지역이다.

염주는 중국감숙성 노룡지역의 소금나는 지역이고, 백주는 해성동쪽 70리의 백암성을 당나라가 백주로 삼았다. 해주는 해성(해원)이다. 봉주도 그 근처로 본다. 서북의 경계지역에서 거란과 전쟁이 자주발생하니 남쪽 평양으로 백성들을 옮긴 것이다.

 

12. 고려 광종 11년에 서도(西都), 성종 14년에 서경유수, 목종원년에 호경(鎬京)으로 고쳤다.

(해설)서도나 서경은 중국감숙성 평량(평양)을 말한다.

 

13. 고려 문종 16년에 서경유수를 두고 경기 4도를 두었다.

(해설)중국감숙성 평량.

 

14. 고려인종 13년에 묘청의 난을 김부식이 토벌한 후 경기4도를 폐하고 6현을 설치했다.

(해설)중국감숙성 평량 추정

경기도 안에 고평양(남평양, 평양동황성)과 함양성인 고구려 제2장안평양은 남쪽에 패수가 흐른다.

 

15. 고려 원종 10년에 서북면 병마사 초탄과 이연경이 몽고에 붙으니 몽고가 동녕부(東寧府)로 했다.

(해설)중국감숙성 평량

 

16. 충렬왕 16년 원나라가 돌려주었고, 공민왕 18년에 만호부를 설치했다. 후에 평양부로 했다.

(해설)중국감숙성 평량

 

17. 조선 세조 때 진(鎭)을 설치했다

(해설)중국감숙성 평량

이씨조선 세조 때 평양에 평양진을 설치했다. 신라의 월성도 월성진(月城鎭)으로 고쳤을 것으로 본다. 월성진은 지금 중국 강소성 남경 동쪽지역에 있다. 한반도 경상도 월성은 이동조작한 100% 가짜다.

(그림은 지난주 그림과 같다)

 

※이상과 같이 살펴보면 고구려 평양은 감숙성 평량, 감숙성 천수, 섬서성 기산남쪽 고평양(남평양, 평양동황성), 섬서성 함양 4곳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천수지역은 “기자조선 제2도읍지”근처이고, 한나라와 접경이었고 후에는 대방백제와 접경이어서 도읍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평양은 중국 감숙성 평량, 섬서성 기산남쪽 고평양, 중국 섬서성 함양 이렇게 3개가 있다. 중국과 한국의 제1 평양은 지금 중국감숙성 평량을 말한다.

중화민국 초기에는 이전이름 그대로 평양이고 중기 이후에는 평량으로 고친 것이다.

한반도에서 8천여리나 떨어진 머나먼 타국 땅에 있는 평양을 이씨조선 지리지에 기록한 것은 이씨조선이 중국 땅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역사는 100% 다 일제 때 이동조작한 가짜다. 우리는 지금도 일제의 조작역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유우찬저 “삼국사기검토서” 참고)

 

---------------------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유우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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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정도영 | 작성시간 22.07.08 오랫만에 카페에 들어와 보니 좋은 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상기의 글에서 지리적 위치를 가늠할 수 없어 좀 답답합니다. 전 과거에 우리 상고사에 관심을 갖고서 공부해오다가 한동안 생계에 진력하느라 잊고 지내다가 이제 좀 더 바른 우리 역사를 깊이 공부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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