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5. 부여사검토서
(후한서)에
”부여국은 장성북쪽에 있는데 현토북쪽으로 천리이고, 남(南)은 고구려, 동(東)은 읍루, 서(西)는 선비와 접했고 북(北)쪽은 약수인데 관경이 2천리이고 본래 예(濊)의 땅이다.“
(유우찬 저 ”한국사검토서“ 참고)
✳부여국은 장성북쪽에 있었고, 현토북쪽 천리이고, 남쪽에 고구려이므로 부여는 지금 중국 감숙성 북쪽 장백산맥 남북의 내몽고 땅에 있었다. 만주 땅이 될 수 없다. 북쪽이 약수라고 하는 것은 감숙성의 약수를 몽고흑룡강 상류로 이동조작한 후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예족은 북쪽에서 남하하여 감숙성의 북부에서 예국을 건설하였다.
몽골- 내몽고 땅은 6500년 전후에 대해일로 한반도 서해바다, 남해바다, 서해안평야에서 북상한 우리민족이 건설한 선비국(환단고기) 시대(6500년∼5900년 전:) 였다. 환웅이 내몽고에서 나라를 세우니 내몽고의 례족(고례족:호족)이 시조 환웅에게 반대를 한 일부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압록강지역에서 고례국(5800년전 우리나라)을 건설하였다. 5900∼4000년전의 한반도는 마드(마님나라, 하느님나라, 장자국)가 있었다. 4000년전∼2500년전 시대에는仙드(군자국)가 있었다. 2500년전∼1500년전에는 골드(骨드)가 있었다. ”드“는 국(國)이나”나라“란말이 없었을 때”나라“라는 뜻으로 사용한 순수한 한반도언어다. 1500년전에서 일제이전까지는 백제(伯濟)국이었다.(”인류의 본향 마드”참조)그러므로 현재의 한국사는 일제가 조작한100%가짜다.
후에 몽고- 내몽고는 숙신국이 되었는데 내몽고의 레족들은 점차 남하하여 감숙성 서부에서는 단군의 부여국이 되었고, 감숙성 동부에서는 예국(단군시대)이 되었다. 후세의 내몽고는 동호족, (북)부여, 읍루족으로 명칭만 바뀌어 역사가 이어져 왔고 북부여는 남쪽으로 내려와 고조선 땅을 점유했다가 한나라에 망하고 고구려가 건국된다. 후세에 내몽고의 읍루족은 금나라 - 청나라로 이어졌다. 후한서는 내몽고가 (북)부여일 때를 기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