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2021-50회. 이씨조선과 대한제국은 중국 땅의 역사다.

작성자우찬|작성시간22.02.21|조회수18 목록 댓글 0

2021-50회. 이씨조선과 대한제국은 중국 땅의 역사다.

 

임진상초(壬辰狀草):

이순신이 선조 25년(1592년) 4월15일부터 61통의 일지를 썼는데 이충무공 전서 권2, 권3, 권4에 수록되었다.

왜란보고 및 군령을 청한 계달문을 기록한 등록으로서 1598년(선조31년)에 “이순신 저서”로 채택되어 난중일기, 초부서간첩(草附書簡帖)과 함께 국보 76호이다.

전쟁상황, 경비상황, 식량조치, 적군동향 등을 상세히 기록하여 전쟁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서 난중일기와 함께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료총간 제6”으로 간행했다.

 

"들으니 임금이 서쪽으로 피난갔다.(聞西幸之奇)

낙양에 오랑캐가 쳐들어 왔다.(洛中胡差入城)

백성은 어육이 되는데 임금수레는 서쪽으로 옮겼다.(鸞輿西遷牛靈魚肉)“

(1971년 고려대민족문화연구소 출판부. 발행자. 朴晟義 ”한국도서 해제“에 설명 되어 있다.)

※기(奇): 이상하게도, 갑작스럽게

  란여(鸞輿): 임금수레, 천자가 타는 수레

 

(해설)

위 글에서 락(洛)자는 낙양과 낙주 두 곳이 있다.

왜군이 침입한 경로가 산동성 황하를 통해서 오면 하남성 낙양이 되고, 양자강에서 호북성의 한수를 타고 오면 호북성 무한∼ 단강구∼낙주(洛州)로 올 수 있다. 낙주(洛州) 즉 지금의 상락(商洛)은 당시 조선의 도읍인 한양(咸陽)의 동남쪽 가까이 있으며, 낙양은 이씨조선의 동경이었으므로 두 곳 다 도성까지는 수일거리이니 선조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므로 서쪽으로 피난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호(湖)자는 원래 왜(倭)자인데 일제 때 역사조작하면서 글자를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이순신은 수군통제사가 되기 전에 동경인 낙양의 방위장수였기 때문에 중국 하남성 낙양에 대해 쓴 것이다.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중국 땅에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다.(”한국사검토서“ 참조)

---------------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유우찬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