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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고구려 집안의 원래위치

작성자우찬|작성시간22.05.09|조회수19 목록 댓글 1

제3). 고구려 집안의 원래위치

 

중국의 마지막 지리지인 ”중국고금지명대사전“은 중국이 역사조작을 끝내고 1931년에 발행했고 1982년에 재판된 책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역사지명들은 모두 한반도에 있다고 기록되어야 하는데 원래위치가 한반도에는 없고 전부 중국 본토에 있다고 기록되었으므로 한국의 역사가 중국에서 이동조작된 가짜역사라는 것을 증명한다.

동북3성(신만주)은 1905년부터 중국 본토의 지명들을 이동하기 시작하여 1927년에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설치하였으므로 모든 역사무대가 아니다.

한반도는 일제 강점기에 중국의 지명들을 옮겨서 모든 역사를 이동 조작하였으므로 현존하는 역사책의 무대가 아니다. 그래서 한국사는 100% 가짜다.

 

1. 집안현(輯安縣):

 

“한나라 말기에 고구려 환도현이다. 당나라 때 발해의 서경압록부다. 청나라가 통화, 회인 두 현을 설치한 땅이다. 광서간에 나누어서 집안현을 설치했다. 치소는 통구구이고 봉천성소속이다. 중화민국 초에는 봉천 동변도인데 지금은 요녕성이다.(漢末高麗丸都縣. 唐渤海西京鴨綠府. 淸爲通化懷仁兩縣地. 光緖間析置輯安縣. 治通溝口屬奉天興京府. 民國初屬奉天東邊道. 今屬遼寧省.)”

(해설)

(본문)한나라 말기에 고구려 환도현이다당나라 때 발해의 서경압록부다.“

한나라 말기의 고구려 환도현이고 당나라 때 발해의 서경압록부는 중국 감숙성이다. 그런데 청나라 말기에 감숙성에 있었던 통화, 회인 두 현을 산서성 북부에 옮겨서 설치했고 광서제(1875년∼1908년) 때 산서성의 회인현을 나누어 집안현을 설치했다는 뜻이다. 아무튼 신만주 요녕성은 1927년에 설치했으므로 고구려 때의 집안은 신만주가 아니다.

 

(본문)중화민국 초에는 봉천 동변도인데 지금은 요녕성이다.”

중화민국 초(1911-1915년경)에는 봉천성이나 요녕성의 위치가 현재의 동북3성이 아니라 감숙성이다. 중화민국 때 감숙성에서 봉천성,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차례로 만들어 산서성과 하북성 북부지역으로 이동조작했다가 1927년에 동북 3성으로 이동조작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다 맞다. 이렇게 문장을 보고 맞는지 틀리는지를 알려면 진실역사를 10년이상 연구한 사람이 아니면 무조건 동북3성(신만주)이라고 단정하게 되어 가짜역사를 하게 된다.

그러므로 중화민국 초의 봉천 동변도는 중국 감숙성인데 1927년-1931년에 지리지 기록당시는 “지금은 요녕성이다“라는 뜻이다. 요녕성은 중화민국 초에는 감숙성이고, 초기∼중기에는 산서성과 하북성 북부이며, 말기인 1927년에는 동북3성(신만주)의 요녕성이 된다. 그러므로 동북3성에 있다고 하는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감숙성→산서성, 하북성 북부→ 신만주 이렇게 3개소로 이동 조작된 것이다.

“수암주 동변지”, “봉천 흥경부 소속”, “봉천동변도 소속” 이 3가지도 감숙성에서 산서성으로, 산서성에서 신만주로 이동했으므로 고조선과 고구려는 감숙성, 산서성, 신만주 3개소에 다 있는 해괴한 역사가 되었다. 그래서 환단고기와 삼국사기는 현대지명으로 쓴 일제의 작품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일제가 현대에 조작한 가장 마지막 위치인 한반도에 있는 역사를 우리역사라고 한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가?!

신만주는 1905년부터 지명을 이동하기 시작했으므로 1500년 전의 고구려역사에 해당될 수 없다.

 

★여기서 집안지역의 지리적 조건을 살펴보면,

원래의 고구려 환도산에서는 각각 1천 여리의 3대강인 압록강(비류수), 패수, 조수(潮水)가 나온다. 또 환도성과 국내성이 있다. 그런데 산서성 회인현 지역에는 환도산이 없고, 환도산에서 나오는 1천 여리의 3대강 중 압록강(비류수)을 영정하로 조작했으며, 패수와 조수가 없고, 환도성과 국내성이 없다. 현재의 신만주 요녕성 집안지역도 압록강은 있지만 가짜이고 각각 1천여리나 되는 패수와 조수가 없다. 그러므로 중국 산서성과 신만주 요녕성은 두 곳 다 가짜다. 광개토왕비문이 새겨진 비석도 일제가 이동 조작한 가짜다. 한반도 압록강은 약 6번 이동하여 조작된 가짜이다.

 

★집안과 국내성:

구만주(舊滿州)인 중국감숙성 원래의 집안을 국내성으로 고치고, 집안은 산서성 북부 회인현자리로 옮기고 고구려 무대도 산서성과 하북성으로 옮겼다. 산서성의 집안을 일제가 신만주 요녕성 현재의 위치로 이동 조작하고 고구려를 신만주와 한반도로 이동 조작했다.

집안과 국내성은 같은 곳으로서 “집안”은 6500년 전후의 지구변동 때 한반도에서 몽골로 이동하여 선비제국을 건설한 선비족 중에서 남쪽 감숙성 쪽으로 내려간 고리족(高麗族)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이고 “국내”는 후에 나온 중국 한문 식 이름이다. 그러므로 국내성은 중국 감숙성에 하나뿐이다.

이렇게 진실을 알면 한국의 역사계가 일제의 역사를 얼마나 철저하게 수호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①. 회인현(懷仁縣)(중국고금지명대사전):

“요나라가 설치했다. 아보기가 진왕 이극용과 동성에서 회합했다. 회상인이란 사람이 있다고 해서 현의 이름으로 택했다. 지금의 산서성 회인현 서쪽이다. 금나라 때 지금의 치소로 옮겼다. 명나라, 청나라 때는 다 산서성 대동부소속이었다. 중화민국 초에는 산서성 안문도에 속했다"(遼置. 因阿保機與晉王李克用會於東城. 有懷想仁人之語. 故縣取名. 在今山西懷仁縣西. 金徙今治. 明淸皆屬山西大同府. 民國初屬山西雁門道.)“

※중화민국(1911년∼1928년).

(해설)

산서성 회인현을 나누어 집안과 환인을 이동조작했다.

(본문 1)요나라가 설치했다아보기가 진왕 이극용과 동성에서 회합했다회상인이란 사람이 있다고 해서 현의 이름으로 택했다.”

요나라와 청나라는 감숙성이 중심무대(도읍지)이며 중국산서성 회인현 땅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문장의 당초 회인현은 청나라 땅인 감숙성인데 산서성 서북부로 이동 조작된 지명이다. 이것을 금나라 때에 옮긴것이라고 소급하여 조작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산서성 회인현 서쪽이다. 금나라 때 지금의 치소로 옮겼다.”고 한 것이다.

 

(본문2)“명나라청나라 때는 다 산서성 대동부소속이었다중화민국 초에는 산서성 안문도에 속했다

여기서도 명나라는 산서성과 하북성에 존재하지 않았고 청해성과 감숙성 서북부다.

회인현이 중화민국 초(1911년∼1915년경)에 산서성 북부 안문도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압록강 건너 집안은 중화민국 말기에 일제가 이동 조작하여 고구려를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 조작한 것이다.

 

★회인현은 청나라 때는 산서성 대동부 소속이었고, 중화민국 때는 산서성 안문도 소속이었다. 현재 집안이 있는 만주요녕성에는 대동부, 안문도, 회인현이 존재한 사실이 없다.

고구려 집안은 원래위치인 감숙성 현토군에서 산서성 회인현으로 이동조작되었다가 일제 때 신만주 요녕성의 집안으로 이동조작된 현대지명이다. 현대지명으로 고대사를 썼으므로 일제가 이동 조작한 것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현재 만주에 있는 집안은 100% 가짜다.

--------------------- 한국상고사연구회 회장 유우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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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선달 | 작성시간 22.08.17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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