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글을 읽다, 기자를 조선에 봉했다는 그 유명한 문장을 봤다.
기자를 조선에 봉했으나, (기자가 그 직위를) 받지 않았다.
(封箕子於朝鮮而不臣也. 봉기자어조선이불신야)
아니, 이 문장에서 기자 조선이라는 말이 어떻게 나왔나? 끝의 “불신야”는 신하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기자가 그 직위를 받지 않았다. 조선에 가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참, 어이가 없어서…. 사마천이 “(기자가 그 직위를) 받지 않았다”고 썼는데, 왜 기자 조선이라는 말이 2000년 동안이나 떠돌았나? 기가 막힌다.
읽는이가 이런 실상을 알아야 한다. 사마천이 “불신야”라고 썼으나, 우리나라의 한문 사용자들은 정반대로 믿었다.
현대라고 낫지 않다. 현대인 중에도 “불신야”를 보고도, “기자 조선을 부정함은 우리의 근본을 부정한다”며 기자 조선을 신봉하는 자들이 있다. 기자가 그 직위를 받지 않았고, 조선에 가지도 않았는데, 기자 조선을 신봉한다. 뭐, 어쩌겠나?
다만, “소위 기자 조선은 허구로, 옛 사람들의 오독이다”고 봄이 옳다. 또 학교에서 그처럼 가르쳐야 한다.
소위 국사학계의 근본적 문제가, 기자 조선 식의 허구를 신봉함이다. 또 학교에서 그처럼 가르친다. 그러는 까닭을 설명한다.
소위 국사학자들이 우리 민족의 자체 기록을 거의 읽지 않는다. 우리말 새끼줄 악서를 모르니, 그 한역본들을 위서라고 본다. 또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양이 너무 방대해서 읽지 않는다. 둘을 합하면, 요즘 책의 글자 크기로 조판해서, 500페이지짜리 한문 책으로 1,500권이 넘는다(=75만 페이지). 누가 500페이지짜리 한문 책 1,500권을 읽겠나?
따라서 일제가 만들어 놓은, 몇 권짜리 조선사나 읽고, 중국 사서로 보충한다. 그러니 “식민사학자”라는 비난이 맞는 말이다. 민족의 자체 기록을 거의 읽지 않는 소위 국사학자들을 달리 볼 수 없다.
앞으로 읽는이가 아는 국사 지식이 숱하게 번복된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검색이 가능해져서 그처럼 될 수밖에 없다. 소위 국사학자들이 욕을 많이 먹는다. 자초한 일이니, 어쩌겠나?
앞으로 읽는이가 한국의 진상을 알게 된다. 실망이 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