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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절을 초성+중성+종성으로 분석하기가 어려워, 일본어에서 종성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작성자새끼줄 악서|작성시간18.03.09|조회수16 목록 댓글 0

 

안녕하십니까?

 

우리말의 옛 기록 방법은 새끼줄 악서라는 책을 쓴 정성남입니다.

 

그 책의 주제와 관련된,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 소개합니다.

 

새끼줄 악서가 초성+중성+종성 방식이었어요. 초성으로 새끼줄 2가닥, 성으로 새끼줄 2가닥, 성으로 새끼줄 2가닥이니까, 한 음절이 6가닥이었지요. 음절을 구분하는 빈가닥이 오고, 다시 한 음절 6가닥, 빈가닥, 한 음절 6가닥, 빈가닥으로 이어졌어요.

 

6,000년 전에 창제됐던 우리말 새끼줄 악서가 초성+중성+종성 방식이었음이 잘 믿기지 않지요? 저도 잘 믿기지 않아요.

 

하지만 초성+중성+종성 방식이었음이 확실해요. 기원전 2182--4,200년 전이다--에 창제된 가림토 문자가 자음과 모음이었어요. 새끼줄 악서의 사운드 코드를 문자화하는 시도였다고 보는데, 문자화의 산물이 자음과 모음이었으니, 원본인 사운드 코드가 초성+중성+종성 방식이었기 때문이겠지요.

 

또 삼국사기에 을지문덕과 설총이 속문--屬文, 음절을 초성+중성+종성으로 분석하기--을 할 줄 알았다고 나와요. 그걸 봐도 새끼줄 악서가 초성+중성+종성 방식이었음이 확실해요.

 

중국의 고문서에도 속문이 나오는 듯합니다. 그런데 중국이 새끼줄 악서를 철저히 망각해서, 엉뚱하게 추측하겠지요. 원뜻은 우리와 같아요. 초성+중성+종성으로 분석하기입니다.

 

새끼줄 악서의 가장 큰 문제가 속문이었어요. 몇 년 교육을 받은 악사만이 속문을 할 줄 알았고, 그 덕에 새끼줄 악서로 기록하고 또 해독할 수 있었어요. 보통 사람은 속문을 전혀 못 했어요. 이 속문의 어려움을 잘 알아야 해요. 속문의 어려움을 모르면, 가림토 문자가 왜 실패했는지, 문자의 창제가 우리나라에서 왜 그토록 늦어졌는지, 1762년 영조가 왜 새끼줄 악서의 시대를 강제로 종료시켜야만 했는지 등을 이해하지 못 합니다. 이 속문의 어려움을 잘 알도록 하세요.

 

일본도 새끼줄 악서를 썼어요. 우리나라 기록에 나와요. 일본인에게도 속문이 똑같이 어려웠겠지요. 그래서 속문의 어려움을 피하는 방법을 숙고했겠지요.

 

일본어에는 초성+중성만 있고, 종성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일본어를 전혀 몰라요. 가끔 일본어 발음의 한글 표기를 보게 되는데, 종성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만약 종성이 있다면, 이 글은 전제부터 틀렸으니, 무시하세요.

 

실제로 종성이 없다고 가정하고 계속 씁니다. 사실, 종성이 없는 말은 극히 부자연스러워요. 세상의 언어 중 일본어만이 그렇다고 봅니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그처럼 됐음이 아닐까 싶어요. 달리 말해, 3,000~4,000년 전에는 일본어에도 종성이 있었는데, 그 종성에 인위적으로 모음을 보태 두 음절을 만들었겠지요.

 

예를 들어, “에 인위적 모음 를 보태 가고로 만들었겠지요. 아마 가고로 바꾸지 않고 으로 발음하면 사형당했으리라고 봅니다. 그것이 일본 문명의 요체입니다. 상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무조건 사형입니다. 그랬기에 음절에서 종성이 사라졌다고 봅니다.

 

종성이 없으면, 속문이 어렵지 않아요. 음절에서 자음과 모음을 구별할 줄 알면 됩니다. 그래서 새끼줄 악서의 작성이 쉬워졌겠지요. 웬만한 사람은 다 새끼줄 악서를 작성했으리라고 봅니다. 일본은 그처럼 말을 바꿔, 속문의 어려움을 해소했습니다. 일본이 참 이상한 나라예요. 기록 방법을 바꿔야 되는 일을 놓고, 엉뚱하게 말을 바꿨어요. 참 이상한 나라입니다.

 

일본어에서 종성이 사라진 후에는 새끼줄 악서가 4가닥이 됐겠지요. 한국과 중국은 계속 육률(六律), 일본은 육률이었다가 사(四律)이 됐겠지요. 일본의 문헌에 사이 나오면, “4가닥이 한 음절이라는 의미입니다.

 

속문이 그 정도로 어려운 문제였어요. 한국, 일본, 중국에서 모두 그랬어요.

 

논어에 공자가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이 2~3번 나와요. 그게 음악을 연주함이 아니에요. 새끼줄 악서의 시대의 독서를 하는 장면입니다. 사운드 코드를 연주하며 초성, 중성, 종성의 값을 떠올리고, 그 셋을 합쳐 음절을 이해했어요. 2,500년 전에는 그처럼 독서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256년 전까지 그처럼 독서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하지만 속문의 어려움 탓에 그러는 사람조차 드물었어요.

 

음악이 공자보다 몇 세대 전에야 비로소 생겼어요. 공자가 논어에서 정성(鄭聲)을 두 번 말하는데, 이 정성이 지금의 음악이에요. 후대에는 속악(俗樂)이라고 불렸지요. 공자가 논어에서 말하는 아악(雅樂)새끼줄 악서예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의미였어요.

 

먼 과거는 알기 어려워요. 상고 시대에는 음악이 없었고 사운드 코드만 있었다, 음악은 공자보다 몇 세대 전에야 비로소 출현했다, 사운드 코드만 알았던 공자가 듣기 좋은 음악이 출현하자 위협을 느꼈다, 공자는 음악이 인기를 끌자 악서의 장래를 걱정했다 등을 상상하는 사람이 없었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먼 과거의 실상이었어요. 읽는이의 생각이 먼 과거에 대해서는 크게 틀림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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