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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을 바보 천치로 만든 잘난 후손들

작성자우리|작성시간13.01.05|조회수47 목록 댓글 0

세종대왕을 바보 천치로 만든 잘난 후손들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를 만들었으니 위대한 대왕 이라고? 그래서 내년부터 다시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든다고? 누가 그따위 말을 하는가? 세종이 누구인지 그의 업적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면서 그저 하루 노는 날이 생긴다니 좋아 하는 무리들이 너무 많아 먼저 올렸던 글을 교정하여 다시 올리니 정독 하시고 반성좀 하시라.

 

우리 역사의 지도자 들 중에서 가장 위대하지만 가장 바보스런 불쌍한 지도자는 아마 세종대왕일 것이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동기를 보자

 나라 말삼이 듕국과 달라 문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하매 이런 까닭으로 우매한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엽게 생각하여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쉬이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國之語音,異乎中國,與文字不相流通.故愚民,有所欲言,而終不得伸其情者,多矣.予,爲此憫然,新制二十八字,欲使人人易習,便於日用耳)

 

 세종은 이 훈민정음을 누구와 같이 만든 것이 아니라 평생 혼자서 온천에 가서도 쉬지 못하고 만들었다는 것이 최만리 상소문에 나타나며. 단 그 자녀들에게는 연습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든 사람이 쉽게 쓰라고 만들어진 한글이 세종보다 더 잘난 일부 학자들에 의해 점점 더 어려워져 그것으로 밥 먹고 사는 몇 몇 학자이외 대다수 인들은 맞춤법 하나 모른다.

 

 또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인들만 하더라도 문자란 신지녹도전자 [진본천부경] 하나 둘 셋 ...열이나 신지신획 >  가림토 [천부인 ㅇ ㅁ ㅿ] 등 우리 선조들이 만든 글자를 우리 문자로 알았다는 말이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나오는데 세종 때 최만리등 상소문에서는 문자란 중국 한자이고 우리 선조들이 만들고 세종이 모방 했다는 한글의 전신 가림토는 향리 촌것들이 쓰는 것이니 글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또 문제는 그 옛 조상의 글자를 본받았다는 古篆에있다. 즉 대다수의 학자, 교수 들은 우리 조상이 한글과 같은 훌륭한 글자를 만들어 썼을 수가 없으니 한자나 다른 나라 글자를 본받아 썼을 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자에는 ㅇ 과 같은 글자가 없고 당시 어느 나라 글자도 한글과 같은 글자가 없다.

  또 여기서 나오는 자방고전의(字倣古篆)의 古란 자기 조상이 아니면 쓰지 않는 글자이고 篆 이란 진시황의 글자가 大篆 小篆이니 세종때의 篆이란 모두 옛 글자를 말하는 것이다.

 

 애초 하느님 시대는 말이 시작될 무렵이라 말도 몇 마디 되지 않았지만 글자와 숫자도 없어서 하느님이 새 나라를 세우려는 그 아드님 환숫(桓雄)께 우리말과 글자의 근간이 되는 하늘과 땅과 사람이라는 [천부인 ㅇ ㅁ ㅿ] 세 개와 그 새 나라 백성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아홉'을 열어 피의 전쟁도 없이 부자되어 잘 살다가 다시 하늘로 돌아오라는 교훈을 내려 주셨는데 이것이 바로 한울소리 하나 둘 셋...열이고 이는 당시는 당시는 숫자가 아니고 아침 저녁으로 외우다 보니 천년 후에나 숫자가 되는 한울소리 소위 천부경이라는 것이 금문 갑골문에 쓰여있다.

 

이 한울소리 천부경을 환숫은 변질되지 않게 말을 보관하는 방법을 그 신하 신지에게 명 하는데 신지는 사냥을 나갔다가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만들고 이를 신지녹도문이라 한다는 말이  환단고기나 규원사화등 우리 사서에 많다.

 

그리고 이를 4 천젼 후 고운 최치원이  옛 비석을 보고 다시 81자 시첩으로 썼다(更復作帖)는 말이 고운집이나 여러 사서에 나오고 그때부터 이를 천부경이라 하는데 그 최치원 81자를 잘 해독해 보면  원 신지녹도문의 번역서도 아닌 예찬시일 뿐이며 그 내용도 최치원 당시 유행하던 우리말을 한자로 적을 수 없으니 뜻과 음을 빌려 적는 절름발이 문법인 이두문이다.

 따라서 그 해석도 이두로 해야 할 것을 한자 뜻대로 하니 하느님 당시 있지도 않았던 각종 음양오행설이나 이상한 도표, 또는 컴퓨터로나 풀 수 있는 숫자 놀음으로 풀고 있는데 백 사람이 풀어도 다 다른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인류 최초의 글자는 당연히 신지녹도문인데  이 신지녹도문 16자는 천제를 지낼 때 쓰는 신의 글자이므로 신지는 다시 인간의 글자를 만드는데  이것이 바로 유기(留記)에 나오는 가림토의 어머니 신지신획(神誌神劃)이라하고  이를 고쳐 가림토가 된다.

 

 이 가림토가 일본으로 건너가 신대문자(神代文字)가 되고 수메를 통해 인도에 까지 가서 부라미 문자가 되며 세종이 모방하여 훈민정음을 만드니 미안하지만 경히대 사학과 조 ** 교수나, 홍익대 국어 교육과  이 ** 교수처럼 우리 조상이 그렇게 훌륭한 글자를 만들어 쓸 수 없었다는 취지의 말은 우리 조상을 모독하는 말이다.

 

일본 신사에 있는 신 시대의 문자 (神代文字)

 

 

 

 

인도 구자라트 문자.

 

 

 

 따라서 세종이 말한 字倣古篆의 古篆이란 위 신지신획이나 가림토가 분명하니 세종은 그 글자 모양을 본받아 제대로 된 모음으로 그 가림토를 재정립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증거는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을 당장 페기 하라는 최만리등 상소문에 언문(諺文) 소리가 무려 7 차례나 나오니 세종 전에 이미 언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중 예를 두 가지만 들면

 

* 지금 언문은 모든 (옛) 글자를 합하여 아울러 쓰고 그 소리의 해석만 변경하였으니 (한문)글자의 형태가 아닙니다. (今此諺文合諸字而並書變其音釋而非字形也)

 

* 하물며 언문은 문자(한자)와는 맹세코 서로 아무런 상관됨이 없는 시골것들이 전용하는 말일뿐 이옵니다.

(况諺文與文字誓不干涉專用委巷俚語者乎)

 

 그러나 이는 워낙 중국을 종주국으로 모시는 당시 선비들의 입장에게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후 훈민정음은 이씨조선 500 년간 정말 상것들이나 부녀자 들이나 쓰는 언문으로 전락하고 선비들은 한문만을 전용해 모든 서적이 모두 한문이며 심지어 우리의 국보로 아는 동의보감도 우리 산야에서 나는 약초를 우리말로 적지 않고 중국 놈이나, 중국놈에게 혼을 빼앗긴 선비들이나  아는 한자로 적어 놓았으니 그 지방 백성들은 알 길이 없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 전 백성이 똘똘 뭉쳐 나라를 찾겠다는 3.1운동의 독립선언서를 한번 보자

."吾等은 玆에 我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 

 

 이것이 소위 전 백성이 일어나 궐기해야 할 독립선언서 내용이다. 여기서도 우리말이라곤 토씨 밖에 없다, 과연 이것을 당시 시골 백성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을까?  뿐만 아니라 6.25때 까지 이발소나 세탁소 간판까지도 理髮所, 洗濯所였다.

여기서 잠시 말을 바꾼다다면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한자는 우리가 만들었으니 한자도 우리 글자라 하는데 그렇다면 세종은 비러정쳤다고 한글을 만들었단 말인가? 원래 우리 조상들은 글자가 없을때는 동굴 등 바위에 그림을 그려 의사 표시를 남겼고 그 그림이 복잡하자 청동기 등에 간단하게 그린것이 금문(金文)인데 우리 조상은 그 그림글자를 더 이상 쓰지 않고 유기(留記)에 나오는 신지(神劃) > 한글의 원조 가림토를 만들어 썼으나 중국인들은 그림글씨인 금문이 이해가 쉬웠음으로 금문을 가져다가 자기네 음을 붙여 갑골문(甲骨文) 을 만들고 진시황때 대전(大篆), 소전(小篆),그리고 예서(隸書) 해서(楷書)를 거쳐 우리 삼국때나 우리 에게 한자가 들어오고 고려때나 한자가 정착 되었던 증거가 있으니 한자가 우리 글자라 하는말은 미국 자동차 박람회에 가서 달구지의 원조가 우리이니 자동차의 원조도 우리다 하는 말과 같다.

 

이렇게 우리가 세종의 훈민정음을 버리고 한자를 쓰더니 6.25 후 미국이 우리의 종주국이 되자 대학교수, 정치인 언론인등이 TV에서 정치토론을 하는 것을 보면 “ 그로벌 스텐다드에 멀티미디어의 뉴푸론티어 가 될 우리가 ...” 하고 있으니 이를 한국인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미국인 들으라고 하는지 모르겠으며 따라서 거리의 간판은 아래 한글학회지 의 사진과 같이 한글은 아예 없다.

 

 한글학회지에 올라온 한글은 하나도 없는 강남의 문화거리 

 

뿐만 아니라 아이들 과자봉지, 이 쑤시게 하나의 이름까지 한글을 찾기가 힘이 든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몇 몇 세종대왕이 만든 글자를 아는 사람은 손가락을 꼽을만하고 전 국민 거의가 우리말은 물론 남의이름이나 지명을 제대로 적을 수도 없고 쓰기도 고약한 한자나 영어에 미쳐 돌아가고 있으니 세종은 완전 헛짓을 하신 바보 불쌍한 임금이다.

 

다시 말하면 세종은 우리의 옛 글자 가림토가 죽은 것은 잘난 후손들이 그 우리 글자들을 연구 발전시키지 못하여 죽였기 때문인 것을 잘 알아 그 글자를 모방해서 훈민정음을 다시 만들었는데 그 훈민정음마저 이씨조선 500년간은 중국이 종주국이니 중국을 사모하여 한자만 써 왔고 일제 때는 일본 글씨만 쓰더니 이제 미국이 우리 종주국이 되니 그 잘난 후손들이 영어만 쓴다면 지금도 그렇지만 한 100 년 후에는 한글이란 시골 촌것들이나 쓰는 언문이 다시 될 것이다.

 

이는 아무리 무력 때문이라 하더라도 무력은 살인 무기일 뿐인데 이런 뿌리도 없는 후손 들에게 한글 같은 더 할 수 없는 보물은 주셨다는 것은 정말 바보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그 후손들은 너무나 잘났다고 보는 것이니 반성해도 크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천부경.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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