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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역사바로알기

역사연구에서 지명의 중요성

작성자미래한류|작성시간23.03.12|조회수259 목록 댓글 0
구글지도

사람들은 이동하며 강 이름, 산 이름, 도시 이름 등 지명들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지명은 아주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영국인들이 미국에 정착할 때, 호주에 정착할 때, 뉴질랜드에 정착할 때... 다 마찬가지였다. 독일인들과 프랑스인들도 미국과 캐나다에 정착할 때 그랬으며, 스페인인들도 중남미에 정착할 때 다들 자기들이 살던 스페인의 지명을 현지에 붙였다. 따라서 지명의 이동과 분포를 연구하면 이민시대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이는 한국사에도 똑 같이 적용되어 가야 또는 가라계 지명은 압록강 중류로부터 시작되어 남쪽으로 퍼진다. 따라서 가야인들은 압록강 중류를 건너왔음을 추정할 수 있다. 만주 지역의 가야계 지명에 대한 연구는 불행히도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았다. 하지만 한반도에 진입하기 전에 요동지역에서 辰國이란 나라를 이루어 살았다는 것은 중국 사료들로부터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면 진국을 이루지기 전에는 어디서 살았을까? 이 역시 중국 사료로부터 추정이 가능한데 원래 진한과 변한 등 진국인들은 진시황의 만리장성 축조를 위한 강제동원을 피하여 요동으로 이동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들은 만리장성 부근에서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삼국지 동이전은 변한과 진한이 함께 섞여 살면서도 종교(귀신)가 다르다고 했는데 이는 생활방식의 차이에서 온 것이다. 북중국과 내몽골에서 변한인들은 주로 밭농사를 짓고 살았고, 진한인들은 소나 양 같은 가축을 키우며 산 것이다. 즉 변한인들이 조금 남쪽에, 진한인들이 조금 북쪽에서 살았었다. 이는 한반도 진입 후에도 유사하게 작용하여 변한인들을 주로 농사짓기에 유리한 경남지역에, 진한인들은 가축 키우기에 유리한 강원도와 경북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진한인들과 변한인들이 왜 자기들 원주지로부터 더 가까운 요서가 아니고 조금 더 먼 요동에 진국이란 국가를 세우고 정착하였느면 요서에는 이미 고조선(위만조선)이라는 강력한 정치체제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요서에 살면 고조선의 지배하에 들어가 그들의 사회규범에 따라 살아야 하지만, 고조선의 중심에서 벗어나 권력이 덜 미치는 요동에 국가를 이루면 자신들 스스로의 규범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약 천년이 지난 훗날 발해인들이 이 지역에 국가를 세우고 국명을 진국 혹은 대진국이라고 하게 된 계기가 된다. 마치 우리가 한반도 남부가 과거에 삼한 땅이었다고 해서 국명을 대한민국으로 정한 것이나 같다.

이렇게 지명을 통하여 연구를 하면 좋은데, 만일 어떤 정부가 들어서 지명들을 역사적 연고와 무관하게 임의로 변경해버리면 지명 연구를 통한 역사 연구에 큰 손실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통일시라시대에 실제로 발생하였다.

8세기 경덕왕 이후에 중국 지도를 놓고 이에 맞추어 한반도의 고유 지명을 중국 지명으로 대거 변경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가장 행정력이 많이 미치던 신라/가야지역 지명이 중국 지명으로 가장 많이 변경되었으며, 가장 행정력이 덜 미치던 고구려지역 지명이 중국 지명으로 가장 덜 변경되었다. 통일전 지명에는 삼국시대 쟁패전의 아픈 기억들이 남아있어 통일 후 이를 잊게 하여 새로운 통합의 시대로 나가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동시에 이것이 세계화이며 문명국가의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 지도와 중국 지도를 나란히 놓고 양쪽 지명을 비교해보면 당시 통일신라 관리들이 어떤 지도를 놓고 어떻게 비교해가며 우리 지명들을 중국 지명들로 고쳤는지를 알 수 있다. 

 

이 결과 이 지명 변경은 우리 역사 연구에 큰 어려움을 가져왔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로부터 약 4백년 후에 삼국사기 쓸 때 이미 많은 이전 지명들이 잊혀져 미상 지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현대에 들어 삼국사기에 나오는 사건이 벌어진 지명들을 중국 대륙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남북전쟁시 큰 전투가 벌어진 리치먼드를 영국에서 찾고, 이 남북전쟁이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같다. 지명변경이 불러온 비극이다.

 

또 다른 한가지 현상은 삼국시대에 우리 선조들이 일본열도로 이주할 때 역시 한반도 지명들을 가지고 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 이후에 지명 변경으로 사라졌으나 일본에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어 우리 삼국시대 지명을 연구하러 대마도 등 일본 지명을 공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全州는 후백제 멸망 후 생긴 도시인데 후백제(수도 전주)인 들이 고려에게 멸망당한 후 집단으로 피난가서 만든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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