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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역사바로알기

[스크랩] 고구려 전쟁별 영웅들

작성자이낙연대통령|작성시간24.02.24|조회수141 목록 댓글 0

 

1. 선비족 vs 부분노 (2대 유리왕 당시)

 

선비족이 고구려를 자주 침공

 

이에 부분노는

'일부러 투항자를 만들어 약하다고 하면 공격,

미리 매복해서 기습하면 된다'고 해서 승리

 

 

2. 부여 vs 괴유 (3대 대무신왕)

 

대무신왕이 부여를 공격 할 때

괴유가 부여군을 공격하니 1만의 부여군이 무너지고,

괴유는 부여왕을 잡아죽인다

 

이후 괴유가 죽기 전,

대무신왕이 몸소 가 문병한다

 

 

3. 후한 vs 을두지 (3대 대무신왕)

 

후한의 군대가 고구려로 쳐들어오고,

을두지는 수비를 주장한다

 

한나라 병사들이 포위를 했는데,

고구려 땅이 암석지대라 물이 부족할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을두지는 일부러 잉어를 잡아 수초로 싸서 보내고,

한나라는 고구려 안에 물이 있다는 걸 알고 포기

 

-

 

4. 후한 vs 명림답부 (8대 신대왕)

 

한나라가 공격하자 명립답부는 수비를 추천,

청야전술 + 수비를 한다

 

이후 한나라 병사들이 퇴각할 때 기병으로 추격,

좌원에서 격파한다

 

기록상 한나라의 병사가 10만이라는데,

쳐들어온 최고 지휘자가 태수..

 

태수는 군을 다스리는데,

한나라에는 군이 100개 정도 있어서

과장인 거 같다

 

 

5. 공손도 vs 고계수 (10대 산상왕)

 

신대왕의 2남인 고국천왕이 아들 없이 죽고

원래는 3남인 발기가 왕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산상왕이 고국천왕의 왕비인 왕후 우씨를

형사취수제하고는 왕위에 오른다

 

이에 화가 난 발기가 공손도에게 가

함께 고구려를 공격,

 

4남인 고계수가 막아낸다.

 

고계수는 발기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형(=상산왕)이 왕위에 오른 건 잘못 된 것이지만,

당신(=발기)가 나라를 멸망시키려는 건 뭔 짓입니까?

죽은 후 어떻게 조상들을 볼 것입니까?"라고 하고

 

발기는 자살한다.

6. 위나라 vs 밀우 (11대 동천왕)

 

동천왕이 관구검에게 대패하고,

수도가 털리고 나라가 휩쓸렸다

 

관구검이 왕기를 보내 동천왕을 뒤쫓는데..

 

밀우가 결사대를 이끌고 싸워

동천왕이 도망칠 수 있었다

 

-

 

7. 위나라 vs 밀우 (11대 동천왕)

 

하지만 위나라의 추격은 계속 됐는데..

 

유유는 항복하는 척 술과 음식을 들고 가

취한 사이 위나라 장수를 죽이고

혼란스러운 위나라 군대를 공격해 몰아냈다

 

 

8. 위나라 vs 중천왕 (12대)

 

고구려와 위나라의 1차 충돌 15년 후

다시 위나라가 공격 왔다

 

중천왕은 5천의 기병으로

위나라 울지해를 격파

 

위나라는 8천명이 죽는다

 

(참고로 이때는 막리지가 없었고,

고노자는 국상이었다

고구려 재상은 전기는 국상, 후기는 막리지)

 

9. 선비족 모용부 vs 고노자 (14대 봉상왕)

 

모용외에 고구려를 침공,

봉상왕은 수도를 떠나 신성으로 피난 간다

 

고노자가 기병 500으로 모용선비군을 격파

 

이후 모용외가 또 다시 쳐들어오고,

고구려에서는 고노자를 신성 태수로 맡겨

모용선비를 막게 한다

 

모용외는 고노자가 신성태수가 된 이후

고구려를 공격 못했다고 한다

 

 

10. 고무 vs 전연 (16대 고국원왕)

 

전연이 고구려를 5만 5천으로 공격

고구려는 북쪽에 5만의 정예병을,

남쪽에는 약한 병사를 보냈다

 

전연은 북쪽에는 1만 5천명을

남쪽에는 4만명을 보내

고구려 수도 환도성을 함락시키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북쪽의 고무는 5만명이 건재했고

1만 5천명을 전멸시킨 상황이라

멸망시키진 못했다

 

 

 

11. 후연 & 백제 & 왜군 vs 광개토대왕 (19대)

 

광개토대왕이 이리저리 전쟁을 벌였지만

그 중 가장 큰 적은 후연

 

후연에게 요동을 빼앗고

이후 고구려는 강국으로 인정 받는다

 

 

12. 북연 vs 갈로 & 맹광 (20대 장수왕)

 

북연이 북위에 의해 멸망하게 되고

고구려에 SOS를 보낸다

 

장수왕은 갈로 & 맹광을 보내고

북위군이 상황을 지켜보는 사이 북연의 수도로 들어가

약탈하고 북연 황제 풍홍을 데리고 온다

 

전쟁 영웅이라 보기엔 뭣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니 추가

 

참고로 갈로 & 맹광이

사실 맹광갈로라는 1사람이란 말도 있다

 

 

13. 돌궐 1제국 vs 고흘 (24대 양원왕)

 

돌궐이 유연을 몰아내 초원의 지배자가 되고

살아남은 유연 부족은 고구려로 도망친다

 

이후 돌궐은 유연 잔당 + 거란의 지배권 등을 두고

고구려와 충돌

 

고흘이 1만명으로 싸워 승리했으며

1천명을 죽이거나 사로 잡았는데..

 

이 틈에 고구려는 한강유역을 빼앗겼다

 

양원왕 즉위 중 유일한 업적인데..

이것도 양원왕이 잘했다기보다 고흘이 잘했다

 

14. 북주 vs 온달 (25대 평원왕)

 

중국이 분열되고 광개토대왕-장수왕 이후

고구려가 강국으로 인정 받는다

 

남북으로 분열 된 중국은

북위가 동서로 나뉘면서 또 다시 분열하는데..

 

북주가 북제를 먹어버리고

고구려는 거란 & 말갈을 동원해

북제 부흥운동을 벌이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이에 북주의 무제는 고구려를 손봐주기로 하고,

배산에서 맞부딪친다

 

온달은 여기서 선두에 서 수십명을 베

1등 공신이 되고 평원왕에게 사위로 인정 받는다

 

이후 신라가 가진 한강유역을 되찾는다고 하다가

저격 당해 사망

 

온달이 활약한 사냥대회나

배산전투에서 선봉에 나서 적군을 죽인 건

모두 개인의 무예가 강조되는 상황인데..

 

지휘력을 발휘한 적이 없고

공성과는 안 맞았던 거 같기도..

 

 

참고로..

고구려가 수십만 군대와 싸운 게 고수 1차 전..

그 이전에는 북연의 5만 5천이 최고인데..

 

(후한 좌원대첩은 과장 같고,

광개토대왕의 후연은 기록이 없다)

 

고수 1차 전쟁 이후 수당은 수십만 이상을 동원해

고구려를 멸망시키려 한 걸 보면..

 

5만 5천과 30만 사이에

광개토대왕의 후연전과 온달의 배산전투가 있다

 

광개토대왕 당시의 후연은

북위에게 잡아먹히고 있던 걸 보면,

많은 수를 동원하진 못한 거 같고..

 

온달이 이때 사위로 인정 받은 걸 보면..

아마 10만 내외 아니었을까.. 

 

 

15. 수나라 vs 을지문덕 & 요동성주 & 고건무 (26대 영양왕)

 

수나라와 총 4차례 전쟁

 

을지문덕은 살수대첩으로 유명하고

이미 살수대첩을 하기 전 양제가 '왕'과 함께 거론한 2명으로서

1차전에서도 활약했을 걸로 추정

 

-

 

요동성주는 2, 3차전에서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

 

고건무는 2차 전쟁 당시

수나라 수군 10만이 평양에 상륙

 

이후 4만명이 평양성을 약탈하자

5백명의 결사대로 기습해 몰아낸다

 

 

16. 당나라 vs 연개소문, 안시성주, 고정의, 신성주, 연수영 (28대 보장왕)

 

연개소문은 고당 1차 전쟁 이후

당태종을 막아냈다는 역보정으로

평가가 치솟고

 

2차 전쟁도 잘 막아내며

평양에서 방효태, 정명진을 괴멸시키고

소정방에게 판정승을 거둔다

 

-

 

안시성주는 1차 고당전쟁에서

당태종을 끝끝내 막아냈으며

 

3차 고당전쟁 이후에도 마지막까지 버틴다

 

(물론 1차 안시성주와

3차 안시성주가 다른 인물일 수는 있다)

 

-

 

고정의는 주필산에서 당나라군과 격돌

15만의 실질적인 최고 군수통권자로 보이며

주필산 이후 당나라는 약 1-2개월간 움직이지 못한 점은

피해가 크기 때문으로 추정

 

주필산의 15만은 이후 행방이 묘연한데..

 

안시성에서 막힌 당태종을 그냥 평양성을 공격할까 하지만,

건안성에 10만명이 있다는 사실에 포기한다

 

고구려 입장에서 10만명은 상당히 대군인 이상

아마도 주필산 15만이 이후 여기 간 걸로 추정

 

또한 건안성을 공격한 당나라 장량은 이후 사형 당하며

삼국사기에서는

신성, 건안, 주필산의 싸움에서

당나라 군의 피해가 많았다고 해서 넣어본다

 

-

 

신성주는 1차 고당 전쟁 당시

끝까지 함락 되지 않았으며

당나라 군대가 피해가 컸다고 하는

신성, 건안성, 주필산 3곳 중 들어간다

 

이후 3차 고당 전쟁 당시

고구려가 연남생 영지(?)와 내전을 벌일 당시

2월부터 9월까지 약 9개월까지 혼자 버틴다

 

3차 고당 전쟁이 약 1년 반이 걸렸다는데,

아마 신성의 활약이 없었다면

꽤 일찍 끝났을 수 있다

 

(안시성주와 마찬가지로

1차 고당전쟁과 3차 고당전쟁 당시

신성주가 동일인지는 알 수 없다)

 

-

 

연수영은 기록에는 없고 전설에서만 전해지는데..

 

고당 1차 전쟁에서 수군을 이끌고

활약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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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이종격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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