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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00년前 미국 거리엔 '조선은 독립국' 엽서가 뿌려졌다

작성자기라선|작성시간21.01.09|조회수77 목록 댓글 0

 

100년前 미국 거리엔

'조선은 독립국' 엽서가 뿌려졌다

  • 워싱턴=이한수 기자
  • 입력 : 2019.01.30 03:25


    [3·1운동, 임시정부 100년 -]
    [우리가 잘 몰랐던 이야기] [6] 주미대한제국 공사관 130년


    적갈색 벽돌집 3층 꼭대기에 걸린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였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 로건 서클 15번지. 옛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이다. 미국 대통령 관저 백악관에서 북동쪽으로 약 1.5㎞ 떨어져 있다. 지난 26일(현지 시각)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에서 걸으니 20분쯤 걸려 도착했다.

    나라 운명이 바람 앞 등불처럼 흔들리던 때였다. 1882년 5월 22일 대조선국은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는다. 서양 국가와 최초로 맺은 외교 관계였다. 이후 영국·독일·러시아·프랑스와 잇달아 조약을 맺었다. 서구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어 자주독립을 훼손하려는 청과 일본의 침투로부터 벗어나려는 힘겨운 몸짓이었다. 대군주 고종은 1888년 1월 17일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1841~1904)을 파견해 클리블랜드 대통령에게 국서를 전하고 이듬해 2월 13일 이 공사관을 마련한다. 내달 130주년을 맞는다. 고종은 1891년 12월 1일 2만5000달러를 들여 건물을 아예 사들였다. 당시 왕실 예산(내탕금) 절반에 이르는 돈이었다. 주미 공사관은 1897년 황제 나라를 선포한 대한제국이 외국에 설치한 공사관 중 유일하게 원형대로 남아 있는 건물이다.

    건물 외벽에 영문 'Old Korean Legation'과 함께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란 한글을 금빛 글씨로 적은 현판이 걸려 있다. 중앙 계단을 올라가니 대형 태극기가 보인다. 130년 전 모습대로 재현했다. 흑백사진 2점이 남아 있어 복원이 가능했다. 박정양 문집인 '죽천고', 본국에 보낸 보고서 등 사료를 발굴해 고증했다.

    100년前 엽서와 복원된 공사관 - 전시관으로 재개관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내부 ‘객당(客堂)’. 손님을 맞는 접견실로 사용한 공간이다. 1893년 당시 내부 모습을 찍은 사진이 남아 있어 이를 바탕으로 재현했다. 왼쪽 위 사진은 1910년대 미주 한인들이 발행한 공사관 사진엽서. 한국이 독립국임을 알리는 의도로 제작했다. 아래 사진은 현재 공사관의 외관. /워싱턴=이한수 기자


    왼쪽 첫 방은 손님 맞는 접견실인 '객당(客堂)'. 샹들리에 조명과 의자·탁자 등은 고가구점에서 가장 비슷한 모양을 찾았다. 커튼·벽지·카펫 무늬도 가장 비슷하게 재현했다. 맞은편 태극기가 걸려 있는 쪽 방은 식사하거나 파티를 열었던 '식당(食堂)'. 붙박이 가구에 여러 차례 덧칠한 페인트를 조심스럽게 벗겨내자 130년 전 옛 색깔이 나왔다고 한다.

    공사관이 문을 연 기간은 16년에 불과하다.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공사관에 걸린 태극기를 끌어내렸다. 강제 병합 사흘 후인 1910년 9월 1일 건물을 5달러에 강제 매입한 후 미국인에게 팔아버렸다. 태극기는 사라졌지만 공사관 건물은 미주 지역 한인들에게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미주 한인들은 공사관 꼭대기에 커다란 태극기를 그린 사진엽서를 만들어 한인과 미국인에게 나눠주면서 한국이 독립국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지금 공사관 3층 전시실에는 재현한 엽서를 비치해놓고 관람객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은 오랜 기간 잊힌 존재였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옛 역사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1982년 한·미 수교 100주년을 맞아 '공사관 매입' 여론이 일었지만 또 시간이 지나갔다. 공사관 건물은 그동안 미군 휴양소, 화물운수노조 사무소 등으로 사용되다가 1977년부터 티머시 젱킨스 부부가 사들여 거주했다.

    우리 손에 다시 돌아온 때는 7년 전. 문화재청은 2012년 10월 18일 젱킨스 부부에게 350만달러(약 39억5000만원)를 주고 건물을 사들였다. 이후 5년여간 보수·복원 공사를 거쳐 지난해 5월 22일 전시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주미 공사관 초대 서기관이었던 월남 이상재(1850~ 1927) 선생의 증손자 이상구씨가 재개관 행사에서 태극기를 게양했다. 113년 만에 다시 내건 태극기였다. 이날도 파란 워싱턴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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