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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같은 윤동주 마을, '동북공정'의 그림자가…

작성자기라선|작성시간21.01.18|조회수72 목록 댓글 0

 

 

테마파크 같은 윤동주 마을,

'동북공정'의 그림자가…

  • 용정·도문(중국)=김한수 기자
  • 입력 2018.11.01 03:01


    [내년 3·1운동 100주년… 독립운동 유적지를 가다] [下] 간도

    한자로 적은 기념비 윗부분과 '金'자는 깨지고 없었다. 지난 24일 오후 찾은 연변조선족자치구 명동촌 '김약연 목사 기념비'는 만신창이였다. 이 비석을 떠받치고 있는 건 펼쳐진 책 모양 조형물, 성경이었다. 1943년 세워져 중국 공산화와 문화혁명을 거치며 부러지고 깨졌다가 1980년대 현재의 모양으로 복원됐다고 한다. 이 비석은 '간도 대통령'으로 불린 김약연(1868~1942)의 삶과 신앙 그리고 간도 한인들이 겪어온 현대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명동 마을 입구 큰 돌엔 '윤동주 생가' '명동'이라 적혀 있다. 현재 명동촌은 '윤동주 테마파크'처럼 꾸며져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사에서 명동이 차지하는 위상은 그 이상이다. 그 바탕엔 김약연으로 상징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개신교 신앙'이 깔려 있었다.

    중국 용정시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위 사진). 반듯하게 정비된 이곳 정문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 생가’라 적혀 있다. 중국 내 독립운동 유적지의 안내문도 대부분 한인들 투쟁을 중국 현대사의 일부로 적고 있다. 아래 사진은 복원한 명동학교와 김약연 선생의 동상.
    중국 용정시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위 사진). 반듯하게 정비된 이곳 정문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 생가’라 적혀 있다. 중국 내 독립운동 유적지의 안내문도 대부분 한인들 투쟁을 중국 현대사의 일부로 적고 있다. 아래 사진은 복원한 명동학교와 김약연 선생의 동상. /김한수 기자


    1899년과 이듬해 함경북도 종성·회령에서 유학자 집안 다섯 가정 150여명이 두만강을 건너면서 시작된 명동촌. 이후 약 600만평 토지가 개간되면서 한인 마을이 잇따라 들어섰다. 이주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 잡히자 마을 원로들은 1908년 근대식 학교를 설립하기로 하고 교사를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개신교 신앙과 만남의 시작이었다.

    명동촌 출신 문익환 목사의 양친인 문재린·김신묵 선생의 회고록 '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엔 당시 풍경이 생생히 적혀 있다. 교사 초빙을 받은 정재면이 내건 조건은 '학생들에게 성경 가르치고 예배 보는 것을 허(許)하라'였다. 유교가 생활 기반이던 마을 원로들은 결단을 내렸다. 학생들은 그해 5월 23일 일제히 개신교인이 됐다. 연말이 되자 정재면이 사임하겠다고 했다. '어른 없이 학생만 예배에 참석하는 건 별 의미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어른들도 신자가 됐다.

    도문시 인민정부가 2013년 세운 봉오동전투 기념비엔 앞뒤로 붉은 별이 새겨져 있다.
    도문시 인민정부가 2013년 세운 봉오동전투 기념비엔 앞뒤로 붉은 별이 새겨져 있다.


    명동학교 교장으로 일하면서도 1000평의 땅을 직접 개간하고 농사짓는 등 솔선수범해온 김약연은 이번에도 앞장섰다. 1911년 세례, 1915년 장로 취임에 이어 1929년엔 목사 안수까지 받았다. 명동학교를 모델로 간도의 마을마다 교회와 학교가 동시에 생겼다. 신앙과 교육, 삶과 독립운동이 하나가 됐다. 훗날 사회주의자로 이름을 날린 이동휘(1873~1935)가 이 무렵 전도사로 명동교회 부흥회를 이끌며 '출애굽기'를 강의했다고 문재린 목사는 회고록에 적었다. 유대인들이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성경 이야기에 간도의 한인 수백명이 몰렸다고 한다.

    1919년 3월 13일 용정 서전벌 만세운동에 한인 3만명이 모인 것도, 1920년 독립군 군자금 마련을 위한 '15만원 탈취 사건'도,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도 이런 토양에서 가능했다. 이 요람에서 윤동주·송몽규·문익환·나운규가 자랐다.

    간도의 독립운동 유적은 러시아 연해주에 비해 잘 정비돼 있었다. 중요한 차이는 중국 정부가 나섰다는 점이다. 2013년 도문시 인민정부가 세운 봉오동전투 기념비는 붉은 별을 이마에 붙인 채 서 있었다. 비문엔 '중국 조선족 반일 투쟁이 여러 민족 인민들의 지지하에…'라 적혀 있다. 복원된 윤동주 생가 입구엔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돼 있다. 명동교회 건물의 십자가는 사라지고 벽엔 '향촌 관광을 발전하고 빈곤 해탈에 조력하자'란 구호가 쓰여 있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비단 1500년 전 고구려 역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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