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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안중근의사

작성자기라선|작성시간21.01.28|조회수39 목록 댓글 0

 

 

1905년 초대 조선통감부 통감을 지내고 일본으로 건너가 추밀원 의장을 지내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는 러시아와의 철도 문제 및 러일간의 경제 현안, 러일전쟁의 뒷처리 등을 논의하기 위해 러시아 재상인 코코흐체프와 양자간 회담을 갖기로 하고,
중국 하얼빈에서 만나기로 하고 회담을 위해 러시아 측에서 특별 제공한 특별 열차를 타고

하얼빈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토를 저격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하였던 한국의 청년 안중근도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 등과 함께 거사를 계획하며 단신으로 하얼빈에 도착하였다.

(실제로 의거당시 우덕순 유동하는 한정거장 전인
채가구역에서 붙잡혔고 안중근의사는 이사실을
모르고 이토가 올지 안올지 몰랐다고 한다.)

기차역에는 양국 수뇌를 환영하기 위해 일본인과 러시아인, 중국인들이 나오게 되었고, 신변 경호를 위해 러시아군 헌병 및 청군들이 호위 삼아 경계를 서고 있었다.

드디어 이토 일행을 태운 특별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하고, 기차 안에서 이토 일행이 모습을 드러내자 환영을 나온 군중들이 러시아 국기와 일장기를 흔들며 양국 수뇌를 환영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안중근은 이토와 면식이 없었던 탓에 수많은 군중과 섞여 있는 이토를 알아보지 못했다가, 일부 군중이 이토의 이름을 부르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백발의 늙어 보이는 남자가 바로 이토임을 인식했다.

이에 품 속에 있는 권총을 준비하여 이토를 향해 조준하고, 이토가 헌병들 사이에 지나가고 있는 순간 그를 향해 첫 발을 쏘았다.

첫 발은 바로 이토의 몸을 관통하였고, 안중근은 계속해서 2~3발을 추가로 발포했다. 이토는 결국 땅바닥에 쓰러졌고, 안중근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나온 일부 일행에게도 총탄을 발포하여 중상을 입혔다.

안중근은 즉시 청나라와 러시아의 호위병들에게 체포되었고, 에스페란토어로
"코레아 우라(한국 만세)"라 외쳤다.
한편 이토는 기차에 호송되어 총탄을 맞은 직후 의식을 잃고 기차로 옮겨진 뒤 바로 숨이 끊어졌고, 동행했던 그의 손자가 이토의 유언은 없다고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하얼빈은 청나라 땅에 러시아 조계지이므로, 러시아 내지는 청나라에서 조사 후 재판받는 게 맞았다. 실제로 한국인 변호사들은 러시아 헌병이나 청나라 경찰이 이를 조사하고 청나라에서 재판하기를 원했지만, 청나라에 있던 일본 경찰 영사는 안중근의 신병을 일본으로 넘겨 버린다.

이 사건으로 이토 히로부미는 총탄에 맞아 숨졌고, 일행 중 일부는 총상을 입어 사상자가 발생했다. 안중근은 러시아 헌병대와 청나라 경찰에 체포 후 청나라 수도인 베이징이 아니라 일본의 점령지인 뤼순으로 이송되어 수감되었다가 재판을 받게 된 후 사형선고를 받게 되면서 1910년 3월 26일에 순국했다.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
의거 당시재판사진
이토히로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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