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98년만에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

작성자기라선|작성시간21.02.07|조회수79 목록 댓글 0

 

 

3·1운동 1주년 만세운동 벌인 6人…

98년만에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아

  • 전현석 기자
  • 입력 : 2018.08.14 03:00


    배화여학교 학생들 공적 확인… 후손 찾아 표창 전달 예정

    서울 배화여학교(현 배화여중·고) 재학 시절인 1920년, 3·1운동 1주년을 맞아 만세운동을 벌였다가 옥고를 치른 여학생 6명이 98년 만에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았다. 국가보훈처는 제73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177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포상한다고 13일 밝혔다.

    1920년 3·1운동 1주년 때 배화여학교에 다니던 김경화(당시 19세)·박양순(17)·성혜자(16)·소은명(15)·안옥자(18)·안희경(18) 등 학생 6명은 등교하자마자 기숙사 뒤 언덕과 교정에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다 일본 경찰에 검거됐다.

    3·1운동 1주년인 1920년 만세운동을 주도한 배화여학교 학생 김경화·박양순·성혜자·안희경·안옥자·소은명(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이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를 당시 일제의 감시 대상 인물 카드에 수록된 사진.
    3·1운동 1주년인 1920년 만세운동을 주도한 배화여학교 학생 김경화·박양순·성혜자·안희경·안옥자·소은명(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이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를 당시 일제의 감시 대상 인물 카드에 수록된 사진. /국가보훈처


    6명은 경찰에 체포된 뒤 감옥에 수형됐다. 재판에서 김경화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나머지 5명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보훈처는 당시 일본 육군성과 국가기록원,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를 분석해 이들의 독립운동 공적을 확인하고, 6명에게 대통령표창을 서훈하기로 했다. 6명에 대한 사망 시기 및 가족관계는 파악되지 않아 후손을 찾아 표창을 전달할 예정이다.

    만주에서 독립군 항일 투쟁을 지원한 허은(1909~1997) 선생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인 허은 선생은 여섯 살 때인 1915년 가족을 따라 서간도로 망명했다. 독립운동가 이상룡의 손자 이병화와 결혼해 시댁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독립군의 어머니'로 통했다. 이상룡 선생 가문은 허은 선생까지 포함해 5명이 독립운동 포상을 받았다.

    평양 숭의여학교 재학 중 황해도 신천읍에서 만세 운동을 하다 체포된 곽영선(1902~1980) 선생에게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그는 독립운동가 곽림대 선생의 딸이다.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유명한 김영랑(1902~1950·본명 김윤식) 선생에게는 건국포장이 추서된다. 김 선생은 태극기를 만드는 등 3·1운동을 준비하다 체포돼 2개월10일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30년대 '독(毒)을 차고' '가야금' 등 시를 발표하며 식민 통치에 저항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자료 더보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