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 입니다...(할리의 역사)

작성자할리|작성시간02.02.12|조회수4,334 목록 댓글 13
할리 데이비슨의 역사는 '기회의 땅' 미국의 Milwaukee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이름은 한동네에서 함께 자라온 21살의 윌리암 할리와 20살의 아더 데이비슨과의 우정에서 유래한다.
일찍이 자전거 공장에서 일하던 윌리암과 철강회사에서 일하던 아더는,믿음직스럽고 튼튼한 세계 제일의 모터사이클을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함께 연구를 시작하였고 이는 포기하기에는 시작부터 너무 매력적이고 잠재력이 컸다. 그 후 아더의 형제인 월터와 윌리암이 실험에 동참했다.
여러 차례의 실행착오를 거쳐 1903년 3대의 모터사이클을 제조하였고 이미 그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할리 데이비슨은 1906년 Juneau Avenue에 그들의 첫 건물을 세웠고 1907년 법인화 하였다.
처음에는 딜러들에게 최신정보만을 알리는 정보지만 있었다.
1913년 The Harley Dealer가 소개되었으나, 이는 허술한 일러스트레이션에 과장된 광고문구가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많은 할리 라이더들의 요청과 압력에 의해 The Harley-Davidson Enthusiast로 대체되었으나 The Harley Dealer는 1926년까지 계속 남아 있었다.

회사의 모토라 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이 나오기 전부터 월간Enthusiast는 “라이더를 위한, 라이더에 의한”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어냈다.
1923년쯤에는 5만부 이상을 발행했으며 이미 멕시코와 중앙 아메리카지역을 겨냥한 스페인어판인, Los Enthusiastas Latinos가 출간되었다. 이 잡지의 구성은 다양하여, 신모델 소개와 제품, 액세서리, 장비에 관한 정보 그리고 할리 레이스는 물론이고 투어링 코스 등도 추천하고 있다. 또한 클럽에 관련된 기사들도 실렸으며(갱 또는 폭도에 관련된 기사는 제외), 법적 관련 기사도 실렸다. 이 잡지는 또한 밀워키 본사의 소식들도 포함하였다.

1920, 30년대에 The Enthusiast는 주로 사이드 카에 관련된 내용을 다뤘다. 당시 사이드 카는 일반 단일기종보다도 훨씬 많이 팔렸으며 일반 자동차를 모는 남성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여성 라이더들도 멋진 포즈를 취해 모터사이클을 찍은 사진 등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런 모터바이크 풍경은 모두 할리의 이상적인 세계를 반영하고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특별히 바뀐 것은 없었다. 문제거리, 비판, 판매금액 등은 모두 금기사항이나 마찬가지였다. 전형적인 특징들만이 지속되었고 회사가 힘들 때에 다소 과장되고 긍정적인 것들이 더욱 Enthusiast다운 것으로 다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Enthusiast는 할리 데이비슨 회사의 역사를 보여주는 가장 포괄적이고 믿을 수 있는 정보라 할 수 있다.

잡지의 명칭은, 85년간의 우여곡절이 많았던 시기를 반영하듯 여러 번 바뀌었다. 1916년 The Harley-Davidson Enthusiast로 시작해 1930년대에는 harley-Davidson Enthusiast로 바뀌었다가 1938년에는 The Enthusiast ? A Magazine for Motorcyclists가 되었다. 1970년대 초에는 잠시 단순히 Enthusiast로 불려지다가 1980년대부터 다시 The Enthusiast로 바뀌었다. 1970년대 초, 부수는 꾸준히 증가하였으나 자금이 부족하게 되어 매달 발행하던 것을 두 달에 한번씩 발행하게 되었다. 그 후 1977년에는 일년에 네 번 발행되다가 1980년대 초부터는 매년 세 번인 봄, 여름, 가을에 발행되었다. 그런 반면에 메인 페이지는 컬러로 바뀌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80년대말까지의 모든 잡지가 컬러로 출판된 것은 아니었다. 현재는 모두 완벽한 컬러판이며 발행부수도 오십만장 이상이며 다시 일년에 4번 발행하고 있다. 또한 H.O.G. 멤버를 위해 격달로 Hog Tales를 다국어로 발간하고 있다. The Enthusiast는 저작권문제로 할리에서 뿐만 아니라 여러 다른 업체에서 출판이 되기도 하였다. 초창기에서 1930년대까지의 책자는 현재 몇 백달러를 웃돌고 있으나 지금은 할리데이비슨 어느 딜러에서나 무료로 받아 볼 수 있다.
판쵸빌라와의 국경지역 전투에서 이미 군용으로서의 가치를 입증한 할리 데이비슨은 세계대전 당시에도 의심의 여지 없이 세계대전에 참가하게 된다.
정부에 의해 전쟁이 끝나기까지 약 20,000여대의 할리 데이비슨이 전쟁에 참가했다.
첫째로, 할리 데이비슨은 가장 편안하고 내구성있게 디자인 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시, 각 장치는 가장 낙후한 환경에도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하고 기동력있게 만들어져야 하며 날씨에 구애받지 않아야 하는 등 이런 점에서 그 실용적가치를 인정 받았다.
둘째는 표준화의 필요성이다. 기기뿐만 아니라 공구까지 모든 기술적인 부분의 표준화는 전시에 둘도 없이 중요한 사항이었다.
이 당시에 생산된 모터사이클은 엔진이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간단한 조작의 단순한 3단 기어와 점화장치, 훌륭한 프론트 포크, 그리고 편안한 발판과 두껍고 큰 타이어 등, 장거리 주행에 필요한 요소들을 만족시켜주고 있었다. 이 시기에 군사용 할리 데이비슨이 대량으로 생산되었으며 모터사이클 산업에서 할리 데이비슨은 거대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두개의 인-라인 실린더, 45도 경사각. 때때로 사람들은 이 45도 트윈 엔진의 연소주기가 마치 사람의 심장 박동주기와 같다고도 한다. 할리라는 전설을 쌓아올릴 수 있게 해준 V트윈 엔진의 원리는 다음과 같으며, 할리의 엔진은 인렛 밸브와 아웃렛 밸브의 개폐를 푸쉬로드가 작동시킨다. 밸브가 실린더 헤드 위에 있다는 의미에서 OHV방식이라 일컫는다.

1936년에 할리 데이비슨은 1000cc의 OHV방식의 엔진을 공개한다.
실린더 헤드 위에 위치하는 로커커버(rocker cover)의 형상이 움켜 쥔 주먹과 같다는 데서 너클헤드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다. 4800rpm에서 40마력의 출력을 냈으며, 이전의 플랫헤드 빅트윈 보다 10마력이상이 증가한 수치였다.
특징을 살펴보면, 원심력을 이용한 오일펌프와(기본 컨셉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스피드에 따라 작동되는 ‘체크밸브’, 네 개의 캠을 가진 한 개의 캠섀프트를 갖는다.
후에 배기량은 1200cc로 높아진다. 1948년, 배기량 1200cc 이시기에 있어 미국은 전세계적인 리더로서 자리잡은 후였다. 2차대전이 끝났고, 미국은 엔진 디자인에 있어 세계제일을 달리고 있었다. 군용에 주력하였던 할리 데이비슨은 민간으로 눈을 돌리며, 새 엔진을 선보인다.
알루미늄 실린더 헤드를 사용하였으며, 유압식 밸브 리프터가 푸쉬로드의 제일 윗부분에 위치하게 되었다. 엔진 냉각 시스템 역시 개선되었다. 이전에 사용되던 18mm스파크 플러그가 교체되고 14mm 스레드를 갖는 스파크 플러그가 채용되었다. 56년에는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파트이기도 한 태퍼드 롤러 베어링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팬헤드는 예술의 경지에 오른 엔진으로 평가 받았고, 오늘날까지도 많은 할리 팬들에게 사랑 받는 엔진이다. 셔블헤드 엔진은 초기 셔블헤드와 1200cc 셔블헤드, 1340cc 셔블헤드의 3세대로 나뉜다.
초기 셔블헤드는 57년 생산된 XL스포스터 모델의 실린더 모양을 채용하였고, 54마력의 출력을 냈으며, FLH에 사용된 고압축 비 셔블헤드는 60마력의 출력을 냈다.
이전 세대보다 적은 진동과 보다 좋은 가속특성을 지닌 엔진이었다.

1968년에는 제너레이터와 이그니션 시스템이 새로운 크랭크 케이스에 위치하게 되었다.
78년에는 1340cc의 셔블헤드 엔진이 생산되었으며, 80년에는 V-fire 이그니션 시스템이 채용되었고, 81년에는 V-fire 2 이그니션 시스템이 채용되었다. 1984년 할리 데이비슨은 새 에보(Evo)엔진을 소개한다.
로커커버 형상이 벽돌과 닮았다고 해서 블록헤드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으며, 줄여서 ‘에보’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공랭 45도 V트윈, OHV엔진이라는 할리 데이비슨의 기본은 그대로 였으며, 이전의 엔진과 동일한 배기량에 더 높은 출력과 모든 회전 역에서 고른 출력을 내는데 초점을 맞추어 제작되었다.
보어/스트로크는 89mm/108mm이며, 압축 비는 8.5:1로 다소 높아졌다.
할리 데이비슨의 엔진 중 최고의 히트를 기록한 엔진으로 기록되었으며, 수많은 애프터 마켓 엔진의 원형으로 이용되고 있다. 수백만 킬로미터의 로드 테스트와 컴퓨터를 이용한 최신의 기술을 총 투입한 할리 데이비슨의 역작인 트윈 캠 88엔진은 98년 소개되어 99년 일부 모델에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이제껏 만들어진 할리의 엔진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안정적이며, 내구성이 강한 엔진으로 기록되고 있다. 하나의 캠섀프트가 아닌 두개의 캠을 체인 드라이브 방식으로 구동한다.
새로이 디자인된 연소실과 흡배기 효율을 최대한 향상시킨 배기/인테이크 밸브와 포트, 싱글파이어 이그니션 시스템과 더 커지고 효율이 높아진 에어클리너로 인해 더 높은 성능을 발휘한다.
냉각핀의 냉각효율을 높였으며, 더 길고 많아진 냉각핀으로 인해 팻헤드(Fathead)란 애칭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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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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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라이드사랑 | 작성시간 13.06.16 잘 봤습니다
  • 작성자강동883 | 작성시간 13.10.21 잘 보았습니다 ^^
  • 작성자산사랑1 | 작성시간 14.08.19 소중한 히스토리 감사합니다. 후에 다시 봐야 겠습니다.
  • 작성자밤보이 | 작성시간 14.11.06 잘 보았습니다
  • 작성자지지아빠 | 작성시간 21.07.04 의미있는 정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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