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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부뚜막|작성시간23.08.16|조회수475 목록 댓글 0

이승만 최애 치안국장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 1948년

 현대사스토리텔러 ・ 2022. 10. 13.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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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金宗元 1922 ~ 1964]

만주의 일본 제국 관동군으로 자원입대하여 중국군과 전투를 하였으며 이후 재소집되어 뉴기니에서 연합군과 전투를 하였으며 광복 이후에도 출세하여 여수시민들을 여순사건 가담자로 몰아서 다른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일본도로 목을 치고 지치면 권총으로 쏴 죽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만큼 잔혹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같은 친일파 일본군 출신 군인인 김창룡보다 한 술 더뜬 인간이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학살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전시 상황에서 보여준 작전 능력도 형편없었는데, 노병들은 김종원에 대해 "학살에는 귀신, 전투에는 등신"이라고 했으며, 미국 군사고문단 보고서는 "부하에게 가혹하였고 전투에 비겁했던, 전술적 두뇌가 없었고 부하 장병들로부터 원성이 높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6.25 전쟁 당시 그가 지키고 있던 영덕은 하루 만에 북한군에 빼앗겼으며, 미국 군사고문단의 기록에 의하면 "(김종원이) 끝없이 후퇴하여 전투 때마다 어디론가 사라진 연대장을 찾느라 힘들었다"고 했을 정도였다.

1946년 1월 15일 국방경비대 제1연대 A중대 소대장이었으며, 1948년 10월 19일 발발한 여순사건을 토벌하고자 부산에 주둔하던 5연대 1대대 대대장으로서 참여했다.

만주에서 일본군으로 근무 당시 독립군과 그들을 지지하던 조선인들에게 가혹하게 대했던 그는 여수에서도 시내에서 잡아오는 가담자로 지목된 시민들을 다른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일본도로 목을 치고 지치면 권총으로 쏴 죽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49년 5월 김종원은 신성모의 추천으로 계엄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한국전쟁중 거창 양민 학살 사건 직후 사건 조사와 관련된 국회의 방문 조사 때 국군을 빨치산으로 가장하여 습격해 조사활동을 중단시켰고 이 사건으로 51년 9월 군법회의에 회부됐고 재판 결과 3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바로 대통령 특사로 사면받고 풀려났으며 1956년 5·15 대통령 선거 뒤 부정선거의 공을 인정받아 내무부 치안국장에 임명되었으며 1960년 5월, 4월 혁명 뒤 임흥순과 이익흥 등과 함께 장면 부통령 저격 사건에 연루돼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61년 12월 당뇨병으로 병보석을 받아 1964년 1월 30일에 사망했다.

[출처] 이승만 최애 치안국장 백두산 호랑이 김종원, 1948년|작성자 현대사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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