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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 에세이

우주와 생명 그 깨달음의 보고 1. 프롤로그 - 과학과 종교 그리고 철학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03.31|조회수186 목록 댓글 0

우주와 생명 그 깨달음의 보고

1. 프롤로그 - 과학과 종교 그리고 철학 

 

 

   2014년 2월과 3월은 나에겐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철학 동굴 탐험> 

   이 글을 동굴 탐험이 끝난 후 세상에 나의 깨달음을 보고하기 위한 열여덟 개의 글의 수정본이다. 

   지금 다시 원본 글을 읽어보니 그 시작은 참으로 허술하기 그지없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작 시점에는 이 글의 마침을 깨닫지 못하였다. 글을 쓰는 두 달 동안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진실은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때마다 나는 허무와 두려움, 희망과 환희의 순으로 감정이 변해갔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내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사람과 자연과 하느님이 함께 행복하고, 함께 인류의 진보에 기여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철학적 사유의 글이다. 과학은 인용하였고 종교는 참조하였다. 과학은 증명을 하는 것이고, 종교는 믿는 것이고, 철학은 깨닫는 것이다. 

   나의 깨달음이 과학적 사실이 되기까지는 아마도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과학은 고체와 같이 보수적이어서 할 수 있는 모든 반증과 실험을 다해 본 다음에 과학적 사실 여부를 말할 것이다. 

  아마 자신이 믿던 믿음과 다르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여러 가지 반론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믿음이 옳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그 믿음에 반하는 사유는 그것이 학문이든 종교든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학파가 생기고 종파가 생기는지도 모른다.  그런 분이라면 사유의 폭을 조금 더 넓히시라 권하고 싶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 그것이 사실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당신은 착한 사람이다.>와 
   <나는 당신이 착한 사람이라고 믿는다.>는 그 의미가 분명히 다르다. 

   믿음은 모르는 것을 믿는 것이다. 아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사실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이 철학적 사유의 동기가 된 연세대학교 천문우주학과 이석영 교수는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아는 것은, 우리가 우주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고 말한다. 인류가 지구상의 유일한 지적생명체라고는 하지만 인류의 지식은 참으로 미미하다. 

   그래서 종교가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종교가 인류 역사와 문명에 기여한 공로는 실로 위대하다.  종교는 기체와 같아 상상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이러한 상상의 힘은 인간을 형이상학적인 고차원의 사유를 하는 특별한 생명체로 만들었고 문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신화가 없는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의 시작은 신화이다. 

   철학은 논증이다. 과학적인 증명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그 명제를 철학적 사유라 말할 수 있다. 하여 나는 철학은 액체와 같다고 표현한다. 

   이 글은 내가 깨달은 우주와 생명에 관한 여덟 개의 철학적 진실과 하나의 추측 그리고 그 진실을 통해 깨달은 진리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한 힉스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하는 도중, 작년 2013년 11월,12월 <KBS의 인문강단 락(樂)>의 이석영교수의 빅뱅우주론에 대한 강의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글에서도 많이 인용이 되겠지만 가능하시다면 다시보기를 통하여 시청하실 것을 권한다. 어려운 과학 그것도 우주론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자 하는 교수님의 정성이 엿 보인다. 나도 나의 글을 독자들에게 최대한 쉽게 전달하기 위하여 수정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과학적 지식이 있어야 이 글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진실을 통해 진리를 구한다.> 

   근본 질문.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진실은 무엇인가?>와 상통한다. 이 근본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은 종교와 철학과 과학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관점이므로 우주를 이 세 가지의 관점으로 분리하고 때론 두가지를 결합하거나 세가지 모두를 융합해서 보는 것은 장님이 만진 코끼리와 같은 우주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진리란 무엇인가?>와 상통한다. 

   나는 이런 사유가 좋다. 그것은 나의 유한성을 의미 있게 하는 유일한 돌파구이다. 삶은 짧고 덧없다. 돌이켜보면 나의 지난 오십년은 한편의 영화보다도 짧았던 것 같다.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내게 더 주어져 있을지는 모르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것이다. 이 얼마 안 남은 삶에 지고지순한 명제인 진실과 진리를 찾고 구하는 행위는 참으로 멋있고 아름답지 아니한가? 

   나도 우리 지구도 태양도 은하도 마침내 우주도 그 시작이 있었고 마침이 있겠지만, 그 마침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본질의 이해이다. 

   빛이 왜 생겼는지를 이해했던 최초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아내었던 최초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우주가 하나의 정교한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몇 명은 있을 것이다.
   나는 아마도 그 몇 명 중에 하나일 것이고, 이것은 내가 돈이 많다거나 권력이 높다거나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나는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다시 시작하는 이유는 나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글로 정리를 하면서 한 번 더 깊이 있게 사유하고자 위함이며, 내가 비록 부족하더라도 어느 누군가의 또 다른 사유에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종교는 믿음을, 철학은 이성을, 과학은 증명을 그 도구로 하고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측량자이다. 

   종교의 중심은 신이며, 철학은 자아이고 과학은 자연이다. 

   <사람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종교적 관점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산다고 할 것이고, 철학적 관점의 사람이라면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할 것이며, 과학적 관점의 사람이라면 건강한 생명 유지와 종족보전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위의 것들과 아마도 또 다른 이유를 뒤섞은 이유를 만들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생각도 없이 태어나졌으니까 살아지는 것이고, 또 그렇게 죽어갈 것이다. 

   가장 어리석은 사유는 종교를 철학이나 과학의 잣대로 이해하려는 시도이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무게를 묻는데 길이로 답을 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창조론과 진화론은 서로 다른 관점이지, 결합되지 않는 상반된 입장은 아니다. 장님의 코끼리처럼, 쌓기 나무처럼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답이 구해진다. 형이상학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만약 어떤 신을 믿는다면 그 믿음으로 그 신과 그 종교를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가 어떤 철학을 탐문하고자 한다면 철저히 이성적이며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만약 과학의 부분이라면 증명된 논거를 가지고 그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옳다. 

  과학을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500년 전까지만 해도 천동설은 과학이었다. 연금술도 과학이었다. 현대물리학의 대부인 뉴턴이 연금술의 신봉자였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우리가 지금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미래엔 터무니없는 거짓일 수도 있다. 보이는 데로 믿지 마라. 그것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도 속아 넘어가는 마술과 같이 우리를 속일 수 있다. 

  원자. 


  우주 물질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수소를 살펴보면, 수소는 원자핵으로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가 있는 가장 기본적이며 간단한 원자이다. 원자핵으로부터 전자가 있는 외각까지의 반경은 약 0.53x10의 -10제곱미터 정도의 크기이다. 너무 작아서 일견 감이 잘 안오지만, 반경을 올림픽 스타디움처럼 늘리면 원자핵의 크기는 축구공만해진다. 전자의 질량은 양성자의 질량의 1840 분의 1 밖에 안 되므로 탁구공만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전자의 속도는 양자 역학적으로 계산하느냐, 고전 역학적으로 계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초속 2000Km가 넘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움직인다. 이렇게 빨리 움직이기에 밖에서 보기엔 마치 구름처럼 핵을 감싸고 있는 형태라 전자구름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원만한 힘이 아니고서는 전자를 통과해 원자핵에 접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한동안 절대로 깨지지 않는 입자는 원자였다. 

   종합운동장만한 넓이에 딸랑 축구공 하나, 탁구공 하나 있는 것이 원자의 실제 모습이다. 전자의 부지런함이 원자의 공간을 유지하는 것이지, 원자는 실제로는 텅 비어있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꽉 차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마술처럼 비어있다. 만약 중성자별처럼 원자핵과 전자가 붙어있다고 생각한다면 태양의 크기는 대략 6-7Km, 지구는 60m 그리고 우리 몸은 좁쌀보다도 더 작아진다. 우리의 육체는 심하게 뻥튀기 되어있는 것이지 실제로는 개미보다도 훨씬 작다. 

   태양계. 

   지구를 직경 1cm의 땅콩에 비유하면 태양은 직경 109cm의 커다란 애드벌룬이다. 이 두 천체가 약 100m 떨어져서 지구는 초속 30Km의 속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고, 목성은 야구공만한 크기로 500m 떨어져서, 토성은 정구공만한 크기로 1Km 떨어져서 태양을 돌고 있다. 행성의 마지막인 해왕성은 탁구공 크기로 약 3Km, 얼마 전 행성의 지위를 잃은 명왕성은 4Km밖에서 태양을 돌고 있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별은 센타우르스 자리의 3개의 별로 그 중 태양에서 4.2광년 떨어진 프록시마 센타우리라는 별이다. 태양을 농구공의 크기에 비교하면 이 별은 지구에서 달의 거리에 두 배 반쯤 떨어져있다. 이처럼 우주도 꽉 차 있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자보다도 더 텅 비어있다. 마술사의 바구니처럼, 아무것도 없는 텅빈 바구니에선 계속 무엇인가 나온다.

   현대의 과학은 불과 최근 수세기 만에 어마어마하게 발전하였음에도 우리는 우주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우리가 찾아낸 우주내의 물질은 고작 전체의 4%에 불과하다. 그 4%도 물론 완벽하게 이해한 것도 아니지만, 과학은 아마도 96%를 찾기 위한 노력을 거듭할 것이며 그 껍질이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마치 얼마 전의 힉스입자의 발견과도 같이, 인류는 경의와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힉스는 이 글의 시작이고 나에겐 충격이었다. 

   종교에서 믿음은 짜장 훌륭한 도구이다. 그것의 사실성을 떠나 그 종교가 선을 지향하고 있다면 그 종교는 이미 우리와 인류에 공헌한 것이며 진리를 말할 가치를 지닌다.  우리는 분명 우주의 구성요소이지만, 우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고, 불과 얼마 전까지는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고 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나마 몇몇 선을 지향하는 종교들이 지난 수 천 년 동안 인류의 빛이 되었음은 그 종교의 일부 악행과 폐단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역사에 매우 가치 있고 의미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일이다. 

   철학은 참으로 멋진 학문이다. 인간은 철학에 와서야 비로소 자아를 찾는다. 

   <나는 누구인가?> 
   신의 창조물인가? 엄마 아빠의 난자와 정자의 결합의 성장물인가?  
  단지 그것뿐인가? 
   <나는 나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철학의 가치이다. 
   나는 독립된 나요.   나는 비록 유한하지만 나를 위하여 스스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주와 생명 그리고 나를 찾기 위해 동굴 탐험을 시작할 것이다.  동굴은 플라톤에서 따온 개념이다. 동굴의 저 편엔 진짜가 있다.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은 사실 가짜일지도 모른다.  

원본 2014년 2월 4일 
수정 2014년 3월 31일 

※  글쓴이의 부탁 
게임 1 : 이 글을 당신이 자주 이용하는 SNS(페이스북, 트위터, 카톡,카스, 밴드 등)에 2군데에 올려주실수 있죠? 그러면 저는 당신을 위해 행운의 종을 한번씩 울려드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운종(運鍾. Lucky Bell)입니다.


1.   이글의 목적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읽고 깨달아 우리 사회가 진일보 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글입니다.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시지만 않는다면 저작권 주장을 하지 않겠습니다. 

 

2.  외국어 번역이 가능하신 분은 번역을 하셔서 원문에 답 글로 달아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외국 친구들에게도 알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3.  이 글은 전체 열여덟 개의 소단원 중 1번째 글입니다.

 

 2014년 3월 31일 하늘바다 여운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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