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반야봉 - 아홉의 깨달음 (2010년 10월 10일 지리산 산행기)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1.05.06|조회수61 목록 댓글 0

아내와 함께 하는 산행이야기

지리산 반야봉 - 아홉의 깨달음

*** 산행개요 ***

일시 : 2010년 10월 10일 오전 3시50분  ~ 오후 2시 30분 (10시간 40분)

산행코스 : 성삼재- 노고단- 임걸령- 반야봉- 삼도봉 - 화개재- 뱀사골

산동무 : 수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26명

 


  

    참으로 삶이 힘겹고 구차하게 느껴질 때 지리산에 가게 되었다.   청년시절에 찾았던 그 이후로 20년도 더 지나, 난 이제 중년의 탈로 바뀌고 한심한 작태와 몰골은 세상에 난 이유를 아직도 찾지 못해 스스로의 인생을 문책하는데 그저 아비라는 너울로 만족하며 하루하루 견디기 힘든 시간을 다람쥐  쳇바퀴 구르듯 세월을 낚는다.

   "사람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  하늘이 내게 묻는다면,

   "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하고 스스로에게 반문이나 하게 될 터, 하여 오랫동안 숨겨둔 스승을 찾듯 지리산 반야봉에 깨우침을 청하러 길을 떠났다.

   마침 얼마 전에 결혼 19주년.  한 여인을 만나 19년의 세월의 연을 쌓는 동안  아내 역시 지리산은 엄감생신 엄두도 못 내었던 터라, 이번 여행이 더 설레었었나 보다.  20여 년 전 동무들과 올랐던 그 길을 이제 평생의 동반자 아내와 함께 오르게 되었다.  결혼 전 지리산에 같이 갈 생각으로 마련하였던 텐트가 아직 집에 있는데 그 때는 결혼 전이라 집안 어른들의 반대로 지리산을 가지 못했었다.


   밤을 새워  도착한 곳이 성삼재.  새벽 3시 30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커다란 주차장만 눈에 들어온다.  뱀사골 입구를 지나 성삼재로 오르는 길.  몸을 실은 버스가 너무 힘겨워한다.  한발 한발 걸어서 올라야 할 이 길을 오늘은 버스가 대신하여 올라주고 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이 길을 땀을 흘려 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기엔 나의 몸은 이미 청년이 아니다.   오늘 걸어야 할 길이 약 20Km.  10시간.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너무 벅차다.

   산에 오르는 길은 곧은 선이 아니다.  구불구불 돌고 돌아 간신히 정상으로 향한다.  그 휘어짐을 보며 '어쩌면 내 인생도 아직은 저 곡면의 어는 곳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못 찾은 것이 아니라 아직 오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것은, 아직 내가 내 삶에 아주 좌절하지는 않았다는 작은 증표가 되리라.


   1.  노고단에서 별을 보다.

   성 삼재에서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은 대부분 잘 정비되어 있어 산 길 같지는 않다.  산 아래 안개가 걷히고 밤하늘에 별이 쏟아지지 시작한다.  바로 머리 위 오리온자리가 너무 반갑다.  오리온자리는 내가 짜장 좋아하는 별자리이다.  오리온자리 중 삼태성. 그 중에 가운데별을 나는 짜장 좋아한다.

   별은 꿈이다. 

   어 릴 적 가을부터 봄까지 밤하늘에 펼쳐진 오리온자리를 보며 한참 꿈을 키웠다.  그 꿈이자라 내가 물리학을 전공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철학에 대한 꿈을 키웠다.  별에 감탄하며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 순간 별똥별 하나가 눈앞에 '휙' 지나간다.  순간 소망을 빌었다. 

   '이제 나의 길로 들어서게 하소서.'

   <별>

   도시에서도 밤하늘에서 별을 볼 수 있고, 어린이들과 청년들이 별을 보며 꿈을 키울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빌어본다. 

   이번 지리산에서 처음 만난 장관은 별무리이다.  아마도 오랫동안 나는 고향 시골길에서 보았던 그 별무리만큼이나 지리산 새벽의 별무리를 추억하게 될 것이다.

  2.  임걸령에서 맛 좋은 약수를 만나다.

   종 주 능선에 들어선 우리는 노고단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부지런히 갈 길을 재촉한다.  보다 좋은 자리에서 일출을 보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등산을 할 때, 항상 꼴찌였던 나지만 여기 지리산에서는 다르다.  가장 앞에 서서 팀을 리드한다.  뒤에서 너무 빠르다고 볼멘소리가 들려오지만 일출에 대한 나의 욕심을 억누르지는 못한다.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씻은 듯이 상쾌하다.  확실히 나는 지리산과 궁합이 맞는다.  일출 시간은 다가오고 동녘으로 여명이 시작되는데 좋은 자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등반팀장이 임걸령 까지만 가보자고 해서 도착한 임걸령, 동 녘을 보니 붉은 기운이 희미하게 피어있는데 태양이 떠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이 앞산의 능선에 걸려있다.  더 이상 진행하면 그나마 이곳보다도 못할 것 같아 망설이는데, 함께 온 햇님, 달님 부부가 임걸령 약수를 권한다.  맛이 기가 막히다고, 가져 온 물은 버리고 담으라고 한다.  아무리 바빠도 할 것은 해야 하는 성격인지라 가져온 물통의 물을 버리고, 임걸령 약수를 담아 맛을 보았다. 

   아! 나는 물이 이리 맛이 있을 줄은 몰랐다.  상큼하면서도 긴 향이 느껴지는 그 맛은 지금까지 먹어 본 물중에 짜장 최고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물>

   물은 생명이다.  우리 몸의 2/3는 물로 이루어져 있다.  물은 순환의 원동력이다.  물이 순환함으로서 일기가 생기고, 자연과 생명은 역동성을 갖는다.  한 잔의 물.  임걸령의 맛 좋은 약수를 마시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세상에 물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상태를 정화하며, 자연을 순환시키며, 생명이 진화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3.  솔가지 사이로 태양이 떠오르다.

   임걸령의 약수를 맛있게 마시고, 조금 더 올라가 보기로 한다.  오를수록 능선에 나뭇가지가 많고, 앞 지형에 가려 영 일출을 볼 장소가 마땅치 않다.  마음은 초조해 지고 몸은 급하다.  드디어 탁 트인 장소는 아니지만 일출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장소를 잡고, 길 옆 바위 위에 자리를 잡자, 앞산의 소나무 사이로 태양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아니지만 그 눈부심이 찬란하다.  처음엔 머리 부분만 한 줄기 광채로 빛을 내 뿜더니, 이내 그 본 모습을 드러내며 누리를 빛의 향연으로 뒤덮는다.  일출은 여러 번 보았지만 이처럼 찬란한 일출은 또한 처음이다. 저 찬란한 광경 앞에 자연스럽게 나의 소원이 되 내어진다. 옆에 햇님, 달님 부부가 연신 축하를 하며 이제 모든 일이 다 잘 풀릴 것이라 격려를 해 주신다.  가져온 막걸리 한잔을 고시래하고 산 동무와 나누었다.

   <태양> 

   태양은 희망이다.  스스로 자신이 없어 망설이고, 주저앉은 나에게 지리산의 태양은 다시 일어나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내가 저 태양을 마주 볼 날이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나에게 주어진 길의 단 한 걸음이라도 나는 걸어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늘이시여.  하늘이 사람을 낸 것은 그 뜻이 있을 것인데, 내가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그 뜻을 잊지 않게 하소서.

    4.  반야봉에서 운해를 보며 큰 소리를 외치다.

   일출의 감격을 뒤로하고 전진을 한다.  이미 날이 밝아 헤드 랜턴은 필요가 없다.  지리산은 정말로 산이 너무 멋있다.  중간 중간 펼쳐진 억새밭이며, 높은 산에서나 볼 수 있는 야생화, 끝없는 산무리들과 사이사이 잠겨 있는 운해의 장관은 지리산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큰 산의 매력이다.  반야봉으로 오르는 갈림길.  등반팀장과 회장이 반야봉 올라가 봐야 힘만 들고 볼 것도 없다고 그냥 건너뛰자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 앞에 총무인 아내가 이번 산행은 지리산 반야봉 산행이라고 강력하게 맞선다.  작년 소백산에서 뒤로 쳐지는 바람에 소백산 비로봉을 오르지 못하고 그냥 하산한 경험이 있는 터라 우리 부부는 이번에 반야봉은 그리하면 안 된다고 야멸치게 선두를 유지하며 걸어왔다.  결국 반야봉에 오를 사람만 오르기로 하고, 나머지는 삼도봉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갈림길에서 반야봉까지는 1Km.  그러나 짜장 가파른 길이다.  어차피 돌아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삼거리 순환지점에 배낭을 벗어 놓고 오르기로 하였다.   배낭 누가 가져가면 어떡하냐고 했더니, 지리산에서 자기 배낭도 무거워 죽을 지경인데 어떤 사람이 남의 배낭까지 메고 내려가느냐고 걱정을 말라한다.  배낭을 벗어 놓고 올라도 여전히 힘이 많이 든다. 어느 정도 오른 뒤에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등반을 시작한 성삼재가 오른쪽으로 보이고, 걸어왔던 노고단, 임걸령, 왼쪽으로는 천황봉, 장터목, 세석평전, 토끼봉, 삼도봉의 지리산 종주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그리고 섬처럼 떠있는 끝없는 산의 무리들, 그 사이 사이를 가로지르는 운해의 장관.  이 멋진 광경을 조금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했더라면 정말 억울할 뻔 했다.  두 팔을 벌려 지리산을 가슴 속에 품어본다.  지리산을 상상하였던 바로 그 광경이 반야봉에서 펼쳐져 있다.     일출과 반야봉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버페이스를 한 터이라 반야봉 정상에 꼴찌로 오르니 이미 앞서 오른 산 동무들이 정상주를 한 모금씩 하고 있다. 뒤 늦은 우리 부부도 소주 한 잔씩을 받아들고 반야봉 정상석에서 건배를 하며 인증샷을 찍었다.

   <반야>

   이 말은 불교 용어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라 한다.  과연 반야봉에 오르니 가슴이 트이고, 오감이 열리는 느낌이다.

   <아!  사람아 너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느냐?  진과 위, 선과 악, 미와 추.  이 모든 것이 사람이 만든 위선일진데, 너는 아직도 거짓에 매달려 진실을 외면하려 하느냐? 태어남과 죽음. 그 짧은 사이에 네가 존재하거늘 사랑할 것은 사랑하고, 버릴 것은 버려서 네 생명을 자유롭게 하라.>

함께 온 온누리 부회장이 함께 큰 함성을 지르자고 제안하여, 그렇지 않아도 소리 지르고 싶었었는데 목청껏 지리산을 향해, 또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5.  삼도봉에서 날개를 펼쳐 뛰어 내리려 하다.

   반야봉의 장관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반야봉을 내려서서 종주 능선으로 들어서 삼도봉에 오르니, 반야봉을 건너 뛴 산동무들이 이미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딱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얼마나 멋있었는데 그 장관을 놓치다니 하는 생각을 하며 가져온 도시락을 풀어 함께 나눈다.  이번 산행에 처음 온 한라산님의 친구 분은 포기김치를 잔뜩 가져 오셨다. 

나름 김치가 하도 귀한 시절이라 일부로 나누어 먹으라고 아내가 싸주셨나 보다.  산에서 먹는 밥은 도시에서 먹는 밥과는 그 맛에 있어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맛있는 식사를 하고, 삼도봉에서 사진을 찍으려 표지석을 보니 이곳이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그리고 경상남도의 경계점이란다.  아, 그래서 삼도봉이었구나 하며 사진을 찍고  산 아래 광경을 구경하니,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펼쳐진 계곡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다.  정말 날개가 있다면 활짝 펴고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막힘없이 펼쳐진 계곡.  한 마리 새가 되어 활강하는 상상을 해본다.  

   <자유> 

   삶은 자유이고 죽음은 평등이다.  그러므로 삶은 마음껏 자유로워야 하고,   삶을 마치는 죽음 앞에서는 담대하며 겸손하여야 한다.  생명은 삶과 죽음 그 작은 사이의 찰라 일뿐이다.

 

6.  제승대에서 지리산 신령과 화해를 하다.

  화개재의 이정표에서 화개재에 대한 설명을 보니, 이곳이 예전에는 물물교환을 하는 장터였단다.   천황봉 아래 장터목도 장터였다고 옆에서 누군가 이야기한다.  그 옛날 이 험한 산 중에 장터가 열렸다니 한편으로 신기하고 한편으로 그 삶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이제부터는 장장 9.2Km의 길고 긴 뱀사골 계곡 하산길이다.  지금까지 온 길이 10Km가 조금 넘는 것 같으니 거리상으로는 이제 반환점을 돈 것이 된다.  사실 계곡 길은 재미없는 길이다.  내려가다 보면 같은 풍경의 연속이다.  능선으로 내려가면 시야도 트여있고, 하늘도 열려있어 바람도 시원하고 볼거리도 많으나, 계곡 길은 힘만 들고 볼 것을 별로 없다.  그러나 지리산 뱀사골.  이는 힘들어도 한번은 걸어볼만 하다.  산행 계획을 잡을 때 내가 뱀사골로 하산하자고 하여 이리 정한 것은 20여 년 전의 추억과 마음의 빚 때문이었다.

   20 여 년 전 나는 성당 동아리 아이들과 여름방학을 맞아 이곳 뱀사골로 내려온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지금처럼 등산로가 정비되지 않아 계곡 물길을 이리저리 가로 질러가며 내려왔다.  한 여름 한참을 힘들게 내려오는데 굿을 하고 제를 올린 자리가 보였다.  먹음직한 고기며 과일이 한 상 차려 있었다. 나는 고기는 좀 찜찜해서  먹지 않았지만 과일은  동무들과 신나게 나누어 먹었다.   그 때의 내 마음은 교만이었다.  나는 성당에 다니는 지라 큰 하느님을 믿는 내가 작은 지리산 신령에게 바쳐진 음식을 좀 먹기로 서니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후에 생각해 보니 영 마음에 걸려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마침 지리산에 온다 하여 뱀사골로 하산 길을 택한 것이었다. 

   배낭엔 아주 예쁜 사과가 들어있었다.  하산 길에 적당한 자리가 나오면 사과 하나를 올려놓고 지리산 신령과 화해를 청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등산로가 정비되고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막혀있었다.  어찌할까 망설이며 내려오는 길, 마침 제승대라는 푯말이 보이고 이 자리가 제사를 지내던 곳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계곡을 내려 보니 맑고 푸른 물이 커다란 소를 이루고 있다.  배낭에 있는 두개의 사과 중 크고 예쁜 사과를 골라 계곡으로 던졌다. 

   '신령이시여 오래전 나로 인해 서운하셨더라면 이제 그 유감을 풀어주소서.'

   <어울누리>

   나의 어울누리 철학의 요점은 사람과 사람의 어울림.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 사람과 신의 어울림으로 요약된다.  서로 어울리기 위해서는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미움이 있어서는 더욱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비단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다.  사람과 자연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자연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  그것은 아주 잘못된생각이다.  그 잘못된 생각과 행동이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고, 이제 인류는 자연의 반격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받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람과 신의 관계에서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가 믿는 신만이 전부인양 절대인양 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다른 신을 믿는 사람이나 다른 신들과는 어울릴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철학에는 <보편신>, <보편 하느님>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지리산 신령이 나의 화해의 청을 받아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나의 마음에 진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7.  뱀사골 계곡에서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을 줍다.

   지리산엔 웅장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뱀사골 계곡을 내려오는 내내, 옆으로는 계곡물이 함께 흐른다.  내려오면 내려올수록 그 크기는 점점 더 커지고 예뻐진다.  어느 곳에서는 작은 폭포로, 어느 곳에서는 깊은 소로 머물며 바위틈을 휘돌아 지리산 정기를 모아 모아  나의 하느님, 넓은 하느님, 낮은 하느님처럼 아래로 아래로 향한다.  그러던 중 비취빛 맑은 계곡물 사이로 햇빛이 쏟아진다.  물은 바람을 만나 일렁이며 햇빛의 한 줄기 한 줄기를 온 몸으로 받아낸다.  빛과 바람과 물의 부딪침이 수없이 많은 보석들을 만들어 역동적으로 쉴 새 없이  물 위를 휘돌며 반짝인다.  그 현란함이 어찌나 눈부시고 아름답던지 나는 한동안 그 자리를 못 떠나며  광경을 만끽했다.  돌로 만든 보석에 아무리 조명을 비추어도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다.  급히 아내에게 사진을 찍으라 해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 사진을 보고 있지만 그 역동성을 사진으로 표현 할 수는 없다.  지리산 빛과 바람과 물이 만들어낸 이 자연의 찬란한 보석을 보고서는 세상 어느 보석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오랫동안 나는 산에서 물을 만나면 지금 이 광경을 떠올리며 그리워 할 것이다. 

   지리산 뱀사골 거기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하며 역동적인 보석이 숨겨져 있다.

 


   8.  흔들다리를 혼자 건너 뱀사골 계곡에 몸을 씻다.

   뱀사골 계곡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나에게 너무나 길다.  다리는 힘이 풀리고, 돌을 밟으며 내려 올 때마다 피로가 발바닥을 통해 뇌로 전달되어 온다.  뱀사골 입구 2.2Km 지점에는 다리 하나가 있고, 여기부터는 포장도로 길이다.  우리가 맨 꼴찌로 내려오는데 이 지점에서 등반팀장과 회장님 이하 몇 사람이 우리와 함께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하산 2Km가 남은 지점에서 하산 길이 둘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포장길, 하나는 계곡 길.  거리는 둘 다 2Km로 똑 같다.  회장님은 회원들의 피곤을 생각해서인지 포장길로 가자고 하신다.  나는  지리산을 좀 더 느끼고 싶어 고집을 피워 계곡 길로 접어들었다.  아내마저도 포장길로 내려가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계곡 옆으로 나무 계단 등을 이용하여 잘 정비되어 있다.  탁용소, 요룡대, 석실 등 아름다운 소와 바위들이 어우러져 있고, 무엇보다도 이곳은 계곡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한참을 내려가는데 흔들다리가 나온다.  3개의 다리로 제법 길에 만들어졌는데 혼자서 뛰어보기도 하고 흔들어 보기도 한다.  주위의 경치도 멋있고, 이렇게 예쁘게 잘 만들어 놓았는데 우리 팀은 터벅터벅 포장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혼자서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흔들다리를 지나 적당한 곳에서 계곡으로 내려가 세수와 세면을 하고 신발을 벗었다.  오랜 등산으로 피로가 쌓여있던 다리를 청아한 뱀사골 물에 담그니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순간 피로가 확 풀리면서 새벽 별을 보며 올랐던 노고단, 일출의 장관, 반야봉의 운해, 삼도봉의 계곡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이제 오후 2시밖에  안되었는데 일행과 함께 왔으면 좀 더 오랜 시간, 계곡물에 발을 담그며 놀다 갔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서둘러 등산화를 신었다.

 



   9.  지리산에서 깨달음을 얻다.

   짜장 오랜만에 찾은 지리산, 나는 나의 친구를 너무 멀리 두고 찾아보지 못했던 것 같아, 너무나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매주 산에 오르면서도, 항상 마음에만 두고 실행을 못했던 산, 지리산.  비록 종주는 하지 못했어도 나는 이 오랜 친구를 만나 회포도 풀고 신나게 놀기도 하고, 또한 오해를 해소하고  화해도 하였다. 

   나는 이번 지리산 산행을 통해 현실에 주저앉은 나를 다시 일으켜 볼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별이, 태양이, 구름이, 물이, 바람이 그리고 그것을 품어진 지리산이 나에게 희망과 꿈을 다시 일으켜 주었다.    

   <사랑할 것은 용기와 힘을 다해 사랑하고, 버릴 욕심은 남김없이 버려 삶을 자유롭게 하여라.>  

   이것이 지리산 반야봉에서 얻은 나의 깨달음이다. 


  

    올라오는 버스 안, 모두들 피곤에 지쳤는지 곤히 잠들어 있다.  금산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들러 백두산님이 사주시는 어묵 한 그릇을 먹고 나니 그제야 조금 기운이 돈다.  가져온 막걸리에 각자의 남을 반찬을 안주 삼아 올라오는 버스 뒷자리에서 지리산 뒷풀이를 하였다.  산에서 만나면 모두 다 좋은 친구인 것을, 우리는 세속에서 만나 아옹거린다.  고속도로가 하나도 막히지 않아 안양에 7시가 조금 넘어 도착하였다.  저녁이나 먹고 가자고 해서 몇몇이 삼덕공원에서 내려 시장 순대국집에 들렀지만 만원사례.  새마을 식당으로 이동하여 얼큰한 김치찌개에 저녁을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와 피곤을 씻고 오늘 지리산의 함께 하였던 나의 동반자 결혼 19주년 기념 산행을 마친 사랑하는 아내와 유쾌하고 짜릿한 사랑을 교감하여  신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함께 느꼈던 지리산, 함께 살아가는 삶의 질곡, 그리고 함께 나누는 사랑의 에너지.  나는 그런 아내가 있어 참 좋다.


<2010년10월 10일 지리산 산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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