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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레카 3(원본)

유레카3. 14장 지구와 생명1 (37/73)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10.31|조회수157 목록 댓글 0

유레카 3 -서른일곱번째이야기

 (이 시대의 하느님의 모습을 재조명하는 것은 하느님이 변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2부. 생명

 

14장. 지구와 생명1

 

* 이 글은 <유레카3>의 37번째 글입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부 우주, 2부 생명, 3부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26장 73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지성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며, 인류와 생명의 진보와 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harmonism/JN41/146

 

 

 

 

 

   92. [쉬어가기] 시(詩) - 억새

 

 

억 새

 

태양이

고요를 깨워

새벽을 일으킨다.

 

 

그리운 이

다정한 손길

흰 속살 숨기며

황금빛 비단을 펼쳐

아닌 척 고개 돌리다

바람에 실려 온 유혹(誘惑)에

흥분을 못 이겨

닫혔던

음부(陰部)를 열며

바르르 떨다.

 

 

밤 새

숨 죽여 숨었던

억새 한 잎

넘치는 찬란(燦爛)에

황홀(恍惚)을 만끽(滿喫)하다.

 

 

 

 

(2009년 가을 월출산에서 억새를 만나다)  

 

 

    93. 누구에게나 오늘은 처음이다

 

 

    이 철학 동굴이 내게 낯설게 느껴지듯이, 나의 삶도 가끔은 낯설다. 이제 또 하나의 출구와 입구사이에 나는 존재한다. 어느 훗날에 내가 서 있게 될 죽음의 문이 아마도 그럴 것이다. 죽음은 이 삶의 끝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삶의 입구이기도 할 것이다. 동굴의 마지막 부스의 영상물엔 태양과 태양계의 소개 영상이 끝나고, 아까와는 반대로 지구와 동식물들의 그림과 여러 인종의 사람들과 어떤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 물리는 영상이 나오더니, 아기가 클로즈 업 되고, 마침내 이중나선구조의 DNA 영상이 계속 돌고 있다.

 

 

    '마지막 영상을 보려거든 버튼을 누르세요.'라는 자막이 나온다.

 

    동굴은 긴 복도로 되어 있고 그 끝엔 나가는 문이 있다. 나는 저 문을 열기 전에 마지막 한 가지를 더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나에겐 저승의 노잣돈과 같이 진리로 가는 도구이다. 진실에서 진리로 가는 마지막 관문 앞에 나는 서 있다.

 

    과학은 진실의 디딤돌이다. 비록 그것이 천동설과 지동설처럼 어느 미래엔 또 다른 과학적 진실에 밀려 거짓이 된다 하더라도 현재에 있어 과학보다 더 진실에 가까이 있는 것은 없다. 하여 우리는 비록 지루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과학적 사실을 존중하여야한다.

 

    『누구에게나 오늘은 처음이다.』

 

    94. 창조론과 진화론

 

   오늘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진실에 접근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사실과 조금은 달라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것은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생명에 관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두 가지의 논리가 있다. 하나는 창조론(創造論)이고 또 하나는 진화론(進化論)이다. 사람들은 유신론(有神論)과 유물론(唯物論)처럼 이 두 논리가 서로 반대되는 입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둘은 상호보완의 관계이다. 이 두 단어에 같은 말 하나를 더 붙여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창조론과 진화론을 다룬 잡지 표지)

 

 

    『의지(意志)』라는 말을 창조와 진화에 붙여보자.

    『창조의지』『진화의지』

 

    어울리지 않는가?   의지라는 달콤한 와인이 한잔 들어가는 순간,  서로 잡아먹을 듯 대립각을 세우던 두 논리는 막 싸움을 끝내고 화해를 시도하는 부부처럼 어색하지만 낯설지는 않게 된다. 이 글이 끝나갈 무렵이면 아마도 이 둘은 서로의 나신(裸身)을 탐미하며 온 몸을 애무하다가 마침내는 합일(合一)하는 황홀경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는 서로에게 감탄할 것이다. 그들은 상종 못할 원수가 아니라 사실은 금술 좋은 부부이다.

 

   95. 프란치스코 교황의 혜안(慧眼)과 용기(勇氣)

 

   『2014년 10월 28일 로마 가톨릭교회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에서 개최된 교황청 과학원의 ‘자연의 진화개념’회의에 참석해 과학과 종교의 공존을 강조했다. 우주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빅뱅과 진화론이 창조론과 배치되지 않으며, 진화론과 창조론 모두 맞는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교황은 “성경의 창세기를 읽으면 하느님을 마술봉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마술사로 상상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또 “빅뱅이론을 세상의 기원으로 여기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의 개입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진화는 원천적으로 진화할 존재의 창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이 각자에게 주신 규칙에 따라 성장해 사명을 완수하도록 하셨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오애리기자. 2014년 10월 29일 보도 인용)

 

   나는 이 보도를 읽으면서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불과 400여 년 전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 시대의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무지한 중세 교회 권력의 거대한 폭력 앞에 자신들이 발견한 진실을 숨어서 이야기하거나 혹은 목숨을 걸어야 하거나 또는 굴종했어야 했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고대의 하느님과, 중세의 하느님과, 현대의 하느님은 달라야 한다. 그것은 마치 자동차를 타고 멀리 있는 산을 지나칠 때 앞에서 볼 때, 옆에서 볼 때, 뒤에서 볼 때의 산의 모습이 다른 것과 같다. 산이 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하느님의 모습을 재조명하는 것은 하느님이 변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인류는 바벨탑처럼 하늘과 가까이에 접근하였다.  그 바벨탑이 인류의 오만과 욕심으로 변해 재앙이 될지, 슬기와 화합으로 승화해 하늘의 손을 잡게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현대 인류의 몫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혜안(慧眼)과 용기(勇氣)는 존경과 근심의 대상이다. 존경은 진리를 바라보는 폭 넓은 혜안 때문이요, 근심은 그의 용기가 자칫 반대파들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 때문이다. 

 

 

 

(로마 가톨릭 제266대 교황프란치스코 1세. 1936년12월 17일~   ) 

  

 

원문 ; 2014년 3월 6일

1차 수정 ; 2014년 5월 29일

2차 수정 ; 2014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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