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유레카 3(원본)

유레카3. 10장 생명자3 (27/73)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10.27|조회수225 목록 댓글 0

유레카 3 - 스물일곱번째 이야기

 (우리를 포함한 모든 생명의 생명자는 프로그래머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의 부분이고, 그 스스로이다. 나는 곧 그다)

 

1부. 우주

 

10장.  생명자 3  

 

* 이 글은 <유레카3>의 27번째 글입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부 우주, 2부 생명, 3부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26장 73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지성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며, 인류와 생명의 진보와 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harmonism/JN41/146

 

 

   72. 의지 현상 - 생각

    의지가 육체와 결합하여 나타내는 현상은 대략 다음의 3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

 

    [생각]

    뇌라는 신경 물질에 작용하는 생체 전기에너지.

   설마 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엔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없을 것이다.

 

    생각은 뇌에서 일어나는 에너지 대사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생명자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두뇌 활동은 컴퓨터에서 컴퓨터 언어를 사람의 언어로 바꾸어 표현하듯이 의지의 언어를 사람의 언어로 바꾸는 작용이다.

   생각이 존재하는 것은 생명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머릿속의 생각을 붙잡는 실험을 해보자.

    주위를 조용히 하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머리의 잡다한 생각을 비워보자. 머릿속에 가상의 공간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최대한 그 비움을 오래 유지하도록 해보자. 처음에는 그 비움을 단지 몇 초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런 실험을 지속하다보면, 머리를 비워 공간을 만드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 처음 몇 초, 십여 초, 몇 십 초, 드디어 1분, 10분, 수십 분, 마침내 1시간.

 

    불가(佛家)에서는 이 작업을 수행이라 하고, 그리스도교 수도회에서는 관상이라 한다. 둘 다 명상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물론 불가에서는 수행을 하며 주로 한가지의 관념, 화두(話頭, 말머리)에 집중하여 생각을 하며, 그 화두가 가지는 본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그 본질을 발견했을 때 깨달았다고 표현한다.

 

   수도자들은 이런 상태에서 통상 기도를 하며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화두나 기도를 붙잡지 말고 비움의 시간을 최대한 길게 하기를 권한다. 그러다 그 비움 공간에 무엇이 들어오려 하면 자아를 끄집어 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와 대화하라. 나의 순수한 내면과 대화를 시도해보라. 그러면 당신은 거대한 우주와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만약 그대가 그대의 욕심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면 당신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욕심이 개입된다면 당신은 가장 위선적인 당신의 자아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명상은 마음의 거울을 닦아 유리를 만드는 작업이다. 거울에 반사된 그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유리창 너머의 본질을 보는 것이다.)

 

    "칸트는 마음의 선험적인 원리가 대상에 적용됨을 설명함으로써 마음이 대상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마음에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인간은 대상이 있는 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대로 그 대상이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

    당신의 욕심이 개입되는 순간 당신은 있는 그대로의 우주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당신의 욕심에 일그러진 당신이 창조한 신(神)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거울과 유리와 같다. 순수하다면 유리와 같아 유리 너머의 본질을 볼 수 있겠지만, 욕심이 있다면 거울과 같아 욕심에 일그러진 자아의 모습만이 튕겨져 보일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일그러진 신의 형상을 옳은 모습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보면 흔히 사이비로 규정되는 종교의 교주들 중엔 이런 유형들이 많다. 그들은 그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신을 조작하고 이용한다. 문제는 그들은 그것이 진짜인줄 아는 것이다. 이러한 착각은 그들과 추종자들에게 열렬한 신앙을 가져오게 하고 때로는 죽음을 불사한 테러나 집단 자살 등의 극단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때로 사회에 큰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여 나는 당신이 진정으로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면 본질과 만나려는 깊은 명상은 차라리 시도하지 않기를 권한다. 종교를 가졌으면 그냥 기도를 열심히 하고, 아니라면 착하게 살겠다는 간절한 바람으로 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 공간이 정말로 머릿속의 공간일까? 그 공간은 무한히 작을 수도 무한히 넓을 수도 있다. 분명 3차원의 공간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바로 나와 함께 있는 이 공간. 온갖 생각, 상상, 지식 등이 제 마음대로 놀고 있는 내 머릿속의 공간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무슨 공간일까?

    그것은 의지체인 생명자의 본질의 공간이다. 데카르트는 뇌 속에 있는 솔방울 샘의 역할이라고 하겠지만 정말로 솔방울 샘이 육체와 의지의 중개 역할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그 공간은 우리 우주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이다. 의지는 외부에서 온 힘임을 상기하라. 우리 우주의 외부는 5,000억 광년으로 추정되는 삼차원 공간의 멀고 먼 우주 경계의 바깥이 아니라, 우리와 아주 가까이에 우리와 함께 있다. 우리 우주가 시뮬레이션 우주임을 상기한다면 이는 아주 이해하기가 쉽다. 우리가 컴퓨터를 통하여 시뮬레이션을 실행한다고 하면, 그 시뮬레이션의 의지로 작용하는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컴퓨터의 모니터와 자판이든, 3D 입체 시뮬레이션이든 바로 시뮬레이션의 눈앞에 혹은 시뮬레이션 안에 함께 있을 것이다.

 

(저 그림은 무한히 확장할 수도 있지만 관찰자는 항상 바로 앞에 있다.  우리 우주의 밖은 무한한 공간의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앞에 있다.)

 

    우리는 명상을 통하여 우주의 외부와 통하는 공간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우리는 우리 본질의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큰 깨달음은 이 독특한 공간을 통하여 프로그래머의 의지와 나의 의지가 합일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명자와 생각의 차이는 육체의 내면과 겉모습의 차이이고, 생각은 마치 자연의 물리현상을 인간이 만든 수학으로 표현하듯, 생명자의 의지를 뇌라는 생체장치와 전기에너지라는 에너지시스템을 거쳐 내가 아는 언어로 바뀌어 출력한 결과물이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라 한국어로 생각하고, 일본 사람은 일본어로, 중국 사람은 중국어로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생각은 생명자와 육체의 통역기 역할도 하는 것이다.

 

    73. 의지 현상 - 감정

 

    생명자는 또한 <감정>을 표현한다. 우리가 느끼는 사랑, 분노, 슬픔, 기쁨, 외로움, 환희 등의 감정은 자연계의 물질과 에너지의 작용이 아니다.

 

    물질과 에너지는 결정성과 확률성에 의하여 움직인다.

   바람이 멋진 숲을 만나 기분이 좋아져 시원하게 불어주는 것이 아니다.  겨울 산이 화가 나서 눈사태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화산이 대지의 분노를 표출한 결과도 아니며, 온 바다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힘차게 솟아오르는 일출은 환희를, 같은 붉음이지만 긴 여운을 남긴 채 서녘 지평선 아래도 사그라지는 일몰이 대자연의 쓸쓸함을 표현한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그저 그 상황이 되었기에 물질과 에너지의 결정성과 확률성에 의하여 그렇게 표현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감정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각과 더불어 생명자의 또 다른 표현이다.

 

 

 

(대자연의 일출과 일몰-이 광경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생명자의 역할이다)

 

    [감정]은 의지의 일부분이고 생명자의 작용이다.

 

    74. 의지 현상 - 진화

 

    또한 생명자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생명 진화의 원천]이다.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 노력의 결과가 종족번식의 과정을 통하여 서서히 변화하고 변종하는 것을 우리는 진화라 부른다. 생명자는 자신이 담고 있는 생명이 당연히 건강하고 번성하기를 바란다.

 

    생명은 육체라는 물질과 생명자라는 의지가 교묘하고 신비롭게 어우러진 특이하고 독특한 현상이다.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나에겐 육체와 그 에너지작용이 아닌 다른 무엇이 있다는 걸 너무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혹시나 생명자가 없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머리 언저리에서

    <생명자 즉, 영혼은 없는 거야.>하고 주절거리고 있는 바로 그것을 붙잡아 다시 물어보기 바란다.

   <너는 누구니?>

   그러면 생각이 대답할 것이다.

    [나는 나지. 내가 너잖아.]

    의지는 외부에서 오는 힘이고, 우리 우주에 적용되는 의지의 본질은 프로그래머이며, 생명자는 프로그래머의 의지의 분산이다.

 

    우리를 포함한 모든 생명의 생명자는 프로그래머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의 부분이고, 그 스스로이다. 나는 곧 그다.

 

원문 ; 2014년 3월 5일

1차 수정 ; 2014년 5월 8일

2차 수정 ; 2014년 10월 27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