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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레카 3(원본)

유레카3. 8장 세 번째 프로그램, 세 번째 프로그래머3 (22/73)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10.23|조회수193 목록 댓글 0

유레카 3 - 스물두번째 이야기

(이 힘의 근원이 우리 우주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부. 우주

 

8장.  세 번째 프로그램, 세 번째 프로그래머 3

 

 

* 이 글은 <유레카3>의 22번째 글입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부 우주, 2부 생명, 3부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26장 73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지성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며, 인류와 생명의 진보와 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harmonism/JN41/146

 

 

 

    60. 결정(決定)과 확률(確率)

    도저히 한 공간에 양립할 수 없는 두개의 규칙이 한 입자와 공간에 공존한다. 거시 우주를 지배하는 결정성과 미시우주를 지배하는 확률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이것은 모순이고 또한 신비이다.

 

 

    하여 나는 두개의 프로그램이 한 시뮬레이션 아래에서 함께 중첩하여 공존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우리 우주가 가상공간의 시뮬레이션이라는 나의 전제를 이해한다면 이 모순과 신비는 그리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제 1우주의 프로그램은 결정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거시우주에 적용되며 우주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 주어진 규칙을 따른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이를 나는 제1프로그래머로 정의한다.

 

 

    제2우주의 프로그램은 확률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미시우주에 적용되며 입자의 미래는 확률로 결정된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이를 나는 제2프로그래머로 정의한다.

    나의 딸아이가 예전에 즐겨했던 놀이공원 게임 중에 롤러코스터 ‘타이쿤’이란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는데, 놀이공원이라는 공간 안에 여러 가지 놀이기구를 배치하고 길도 닦고 휴게소도 만들고 요금을 정해 시작을 하면, 시간에 따라 그 놀이공원이 망할지 흥할지를 예측할 수 있다. 게이머는 중간 중간 계속 조건을 바꾼다. 요금도 조정해 보고, 출입하는 길도 더 넓히고 휴게소에 새로운 상품도 갖다놓고, 부서진 놀이기구는 수리하고, 낡은 놀이기구는 최신형 새 것으로 바꾼다. 그러면 이에 따라 게임속의 손님들이 이리저리 이동을 하고 새로운 수익구조가 생겨난다.

 

    이 게임은 어찌 진행되는 걸까?

 

    프로그래머는 놀이 공원에 필요한 기본 공간과 재료를 제공한다. 여기서 공간이란 컴퓨터 내부의 가상의 땅을 말하며 재료란 놀이 공원에 필요한 건축재료, 놀이기구 등 을 말한다. 물론 가상의 재료이다. 게이머는 이 재료들을 이용해 원하는 장소에 놀이기구를 설치하고 그곳으로 연결되는 길도 만들고, 중간 중간 휴게소와 편의시설도 만들고, 수리공과 청소부와 안내자들을 고용하고 손님을 맞는다. 손님들은 프로그램에 내재된 규칙에 따라 게이머가 만들어 놓은 게임시설이나 휴게소를 이용하며 돈을 쓴다. 처음 손님들의 만족도가 높으면 손님들이 더 많이 오고 이때 재투자를 하여 놀이공원도 넓히고 시설도 개선하고 인부도 더 고용하고 하는 등의 일은 게이머가 하여야 한다.

 

    이 놀이공원 게임이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는 결정성, 확률성, 의지성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공간과 재료, 이것들의 역할과 구조는 결정성과 같다. 여기에 주어진 공간과 재료는 사실 다 프로그램의 종속변수들이다. 컴퓨터에 전원이 켜지고 게임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공간과 재료는 이미 구성되어 있다.

   우리 우주가 그랬던 것처럼.

    손님들의 움직임은 주어진 프로그램의 조건에 따라 움직인다. 미세한 차이에 따라 손님A가 1번 놀이기구를 탈수도 2번 놀이기구를 먼저 탈 수도 있다. 또 그에 따라 손님 B, C, D의 움직임도 달라지고 만족도도 달라지고 수천 명의 손님들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결국 이 게임에서 조건에 따른 결과는 확률로 나타날 것이다.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게이머이다. 게이머는 자기결정 즉 의지에 따라 이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게임의 기본 규칙을 창조할 수는 없다. 프로그래머가 준 주어진 조건 내에서만 진행할 수 있다. 마치 우리가 우리 우주에 주어진 중력을 벗어날 수 없듯이.

    여기서 중요한 것 한 가지.

 

    결정성과 확률성은 이 게임의 프로그램에 내재되어 있지만, 의지성은 게임의 외부에서 제공된다는 것이다.

 

   의지는 내재될 수 없다.

 

    61. 양자역학에 관한 수다

    위의 슈뢰딩거의 고양이 패러독스 이야기를 읽고 고개를 갸우뚱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중첩(重疊, superposition)]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고양이가 살아있는 경우와 죽어 있는 경우가 중첩으로 나타나다가 관찰자가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결정된다는 것이다. ‘과학이 무슨 애들 말장난도 아니고, 이런 비논리적인 사고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하셨다면 아직도 우리는 고전역학의 결정성의 우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몸은 21세기에 있지만 과학적인 지성은 16세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양자역학(量子力學)은 엄연한 과학의 한 뿌리이고, 양자역학의 이해는 우리가 우주와 생명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양자역학을 이해했다는 말은 모순이다.  양자역학의 권위자들도 양자역학을 이해했다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양자역학은 아직까지는 이해와 증명의 표현이 아니라, 현상의 전달에 불과하다.   ‘실험을 해보니까 그렇게 나타나지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지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과학자는 내 생각에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마치 빅뱅과 급팽창처럼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되었다라고 생각해야 비로소 우리 우주가 이해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양자역학은 고전적인 논리학 규칙들이나 제정신을 가진 멀쩡한 사람들이 추론할 때 동원하는 평범한 규칙들까지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은 괴상망측해 보였다. 그러나 그렇든 말든 물리학자들은 양자 논리라는 새로운 논리에 맞춰 자신들의 신경망을 재배선했다.”(블랙홀 전쟁. 레너드 서스킨드)

 

    고양이 이야기를 하면서 [관찰자]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관찰자가 물리 현상에 개입한다는 말이다. 관찰자가 보기 전에는 몰랐다가, 관찰자가 그 현상을 보았을 때 비로소 현상이 정리되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관찰자가 개입하는 좀 더 이상한 이야기를 다뤄보자. 물론 마술이 아닌 과학의 이름으로.

 

    2011년 정신세계사에서 펴낸 김상운 기자의 ‘왓칭(WATCHING)’이라는 책이 있다. 부제는 ‘신이 부르는 요술’로 되어있다. 책의 요지는 미립자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데로 변화하려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사물도 달라지고 우리의 운명도 달라진다는 내용이다. 와우! 세상이 우리가 마음먹는 대로 바뀔 수 있다. 이미 베스트셀러이긴 하지만 아직 안 읽어 보신 분들은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여기에서 이중 슬릿 실험을 예로 들었다.

 

 

 

 

    62. 이중 슬릿 실험(Double slit experiment)

    이 실험은 원래 빛이 입자인가 파동인가를 실험하는 실험이었다. 그림1처럼 빛이 입자라면 슬릿을 통과한 입자는 슬릿의 구멍을 따라 일렬로 배치될 것이다. 만약에 파동이라면 그림2처럼 중첩되어 나타날 것이다. 그림2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분명히 하나에서 출발했는데 여러 곳에서 겹쳐서 나타난다. 양자역학은 모든 입자를 파동으로 보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물질들이 중첩되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즉, 하나의 파동을 동시에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빛은 그림2처럼 표현이 되어 파동임에 틀림이 없지만, 빛의 입자인 광자는 분명이 입자임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는데 빛을 입자의 입장으로 보면 빛 알갱이인 광자가 중첩 상태에 있으면 마치 두 장소에 동시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 하나의 입자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림1. 입자는 두개의 슬릿을 통과해 두 줄의 흔적을남길 것이다.)

 

 

 

 

(그림2. 파동이 두 개의 슬릿을 통과하면 중첩된 무늬가 나타날 것이다.)

 

    만약에 광자보다도 훨씬 더 큰 좁쌀을 가지고 저 실험을 한다면 결과는 보나마나 그림1의 결과를 얻을 것이다. 좁쌀 정도 크기만 해도 파동성보다는 입자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파동의 성질로는 나타나지 않고 입자의 성질로만 나타난다. 왓칭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중 슬릿 실험은 광자보다는 훨씬 크지만 좁쌀보다는 훨씬 작은 전자(電子)를 가지고 실험을 한다. 인터넷 관련 자료에는 유튜브(http://www.youtube.com/watch?v=Y9fdGT3kxvM)에 관련 영상이 있는데 슈퍼맨 망토를 입은 할아버지가 이 실험을 소개하고 있다. 전자를 이중 슬릿에 통과시키면 빛의 파동처럼 간섭무늬가 나타나게 되는데, 간섭무늬가 나타나는 것은 전자가 파동처럼 나뉘어져 퍼져나가는 것은 의미하고, 과학자들이 제법 덩치가 큰(?, 광자에 비해서는 큰) 전자가 어떻게 그런 현상을 나타낼 수 있을까하고 카메라를 설치하자, 마치 요술처럼 전자는 입자처럼 움직여서 그림1의 결과로 나왔다는 것이다. 결론은 관찰자의 생각에 따라 입자들이 행동한다는 것인데, 이 실험은 1998년 이스라엘의 와이즈만 과학원에서 실시했다고 한다. 이 결론은 실험자가 미립자를 입자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면 입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그렇지 않으면 파동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 현상을 양자역학에서는 관찰자 효과(observer effect)라고 한다.

 

 

 

(왓칭에서 소개한 이중 슬릿 유튜브 영상 캡쳐 장면)

 

    이 실험은 이 후 다른 곳에서 연구한 자료가 없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다른 연구 기관에서도 활발히 이런 종류의 연구가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이 실험 이외에 다른 유사한 자료가 없는 것이 아쉽다.  이런 이유로 100% 신뢰를 보내기에는 조금 무리수가 있지만, 사람의 마음 즉 의지가 주변의 에너지를 움직이는 실험은 현상적으로 여러 연구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공간에 여러 사람이 있는데 어떤 한 사람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행동한다면 그 공간 전체는 따듯하고 활기찬 공간이 되지만, 반대로 어떤 한 사람이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공간은 차갑고 우울한 공간으로 변하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 주변의 에너지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왓칭에 소개된 여러 가지 예들을 모두 긍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부정할 내용도 아니므로 사람의 마음이 에너지를 움직이고 미립자를 움직이고 결국 나의 운명을 움직인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양자역학적으로는 에너지는 곧 입자이므로 작은 입자들인 미립자들이 사람의 마음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 아주 거짓말은 아닌듯하다.

    63. 제 3의 규칙 의지력

    다시 우주 이야기.

 

    거시우주의 고전역학과 미시우주의 양자역학을 통해 우리 우주의 내부에 내재된 규칙, 결정성과 확률성은 이해가 되었지만, 우주에는 이 두 규칙을 따르지 않는 규칙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생명의 의지력이다.

 

    생명체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듯 보이고, 때론 확률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 둘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의지력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이를 우리 우주를 지배하는 세 번째 규칙, 의지력으로 표현한다.

    의지력은 다른 두 가지 규칙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이 힘의 근원이 우리 우주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지는 규정된 프로그램을 벗어나 제멋대로 움직일 수도 있다는 뜻인데, 내부의 인자가 내제된 규칙을 벗어날 수는 없다.

 

    또한 고전역학이나 양자역학은 우주 전체에 적용되는 힘이지만 의지력은 생명체에게만 주어진 아주 특별하면서도 독특한 힘이다.

 

    우주내의 모든 물질은 보존과 순환의 틀에서 움직이지만 생명은 이 조건을 벗어나 움직이며 물질과 에너지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위의 이중슬릿의 예처럼 우리 생명의 의지는 미립자나 에너지도 움직이지만, 당연히 큰 물체도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육체를 써서 움직이는 모든 물질은 자연의 규칙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물론 그 에너지는 우리 생체내의 물리적 현상이기는 하지만.

 

    이것으로 생명의 의지는 우주의 외부에서 들어온다는 철학적 추론이 가능하다. 의지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힘이다.

    생명의 의지력은 고전역학과 양자역학과는 다른 세 번째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 세 번째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세 번째 프로그래머와 우리 생명체는 연결되어 있다. 생명은 물질인 육체와 의지인 영혼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여 우주의 제1,2규칙과 제3규칙을 모두 적용받는다.

 

    제3우주의 프로그램은 의지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생명우주에 적용되며 생명의 미래는 운명(결정)과 확률과 의지의 합으로 결정된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이를 나는 제3프로그래머로 정의한다.

 

원본 ; 2014년 2월 27일

1차 수정 ; 2014년 4월 25일

2차 수정 ; 2014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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