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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레카 3(원본)

유레카3. 8장 세 번째 프로그램, 세 번째 프로그래머1 (20/73)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10.23|조회수208 목록 댓글 0

유레카 3 - 스무번째 이야기

 (신은 사유(思惟)의 지향점(指向點)이지, 사유(思惟)의 본질(本質)이 될 수 없다.  신은 완전하지 않다)

 

1부. 우주

 

8장.  세 번째 프로그램, 세 번째 프로그래머 1  

 

 

* 이 글은 <유레카3>의 20번째 글입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부 우주, 2부 생명, 3부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26장 73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지성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며, 인류와 생명의 진보와 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harmonism/JN41/146

 

 

 

 

   55. 데카르트; 생각은 존재이다.

 

 

 

   르네 데카르트 [프랑스, René Descartes, 1596년 ~ 1650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cogito, ergo sum)"

 

    이 한마디로 근대철학은 시작된다.

    장자의 나비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해 본 철학자가 있었다. 심지어 내가 보고 듣고 아는 모든 것이 실은 악마가 내 두뇌에 일으킨 간교한 속임수일지 모른다고 생각했을 정도이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감각하고, 사유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은 확실하다고 믿을 수가 없다. 수학의 명제와 정의처럼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은 무엇일까?

 

    '의심하라!'

 

    데카르트의 철학은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가 종교의 시작이라면, '의심하라'는 철학과 과학과 같은 학문의 시작이다.

 

    데카르트는 위대한 철학자이기 이전에 데카르트 좌표계(직교좌표계)를 도입해 해석기하학을 창시한 위대한 수학자이기도하다. 그는 곡선에 대수 방정식을 부여하는 방법을 발견해, 모든 원뿔곡선(직원뿔을 그 꼭짓점을 지나지 않는 평면에서 잘랐을 때 생기는 면의 곡선. 자르는 기울기에 따라 원, 타원, 포물선, 쌍곡선 따위가 생긴다.)을 2차 방정식으로 표시함으로 자연에서 생기는 곡선을 수학적으로 전환하여, 과학과 수학을 연결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또한 그는 숫자(밑) 위에 작은 숫자(지수)를 씀으로써 거듭제곱을 간단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생각해내었고, 방정식의 미지수에 최초로 x를 사용하였다.

 

    그는 또 뉴턴의 고전역학을 발전시키고 렌즈를 이용해 광학을 발전시킨 물리학자이기도 하였다.

    데카르트는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확실히 근거가 있는 것을 알아내어 ‘사유의 체계’를 세우고자 하였는데, 이를 위해서 우선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부터 의심하는 방법으로 궁극적으로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진리에 도달하려고 하였다. 이것을 철학 용어로 <방법적 회의>라 한다. 데카르트는 방법적 회의를 통하여 우주의 모든 것을 의심하더라도 의심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은 도저히 의심할 여지가 없이 분명히 존재하는 명백한 진리임을 발견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를 철학의 제1원리로 삼았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모든 의심을 제거하고 이끌어 낸 확실하게 인식된 것이 곧 진리이다."라는 철학의 제2원리를 이끌어 낸다.

    데카르트는 모든 의심 없이 완벽하게 존재하는 것, 이러한 원리들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우리를 절대로 속이는 일이 없는 완전하고 성실한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여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처럼 의심할 필요가 없는 명백한 관념 5가지를 제시하였는데, 자아 ·신 ·논리 법칙 ·수학 명제 ·물질의 공간성이 그것이다.

 

 

    데카르트는 우주는 사유를 본질로 하는 정신(情神)과 연장(延長,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실체)을 본질로 하는 물질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였다. 정신과 물질은 서로 공통성이 없는 각각 독립된 실체라는 물심 이원론(物心 二元論)을 주장하였다. 세상을 기(氣)와 이(理)로 나누어 생각했던 성리학과 비슷하지 않은가? 동양이나 서양이나 생각하는 방식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인간은 정신과 육체의 합일이며, 정신과 육체는 우리 뇌의 솔방울 샘(松果腺, pineal gland. 척추동물의 뇌 속에 있는 작은 내분비기관이다. 깨어나고 잠을 자게하며, 계절에 맞게 육체를 조정해주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유도 멜라토닌을 생산한다. 인간의 솔방울 샘은 대뇌 밑, 간뇌의 시상 상부에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작은 솔방울과 비슷하게 생겼다.)에서 서로 만나 상호작용한다고 생각하였다. 

 

 

 

    데카르트는 신의 절대성은 인정하였지만 구원을 받기 위해 반드시 신의 은총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진리를 발견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데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덕이 쌓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암시했다. 그 당시 이런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했다간 갈릴레이처럼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철학적 방법을 통하여 암시 했다는 말이다. 당시는 종교 전쟁인 가톨릭과 개신교간의 30년 전쟁의 시기였고 데카르트는 이 전쟁에도 참여하였다. 얼마 전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신이 용서할지'를 묻는 질문에, '신의 자비에는 한계가 없으며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고 답한 바 있다. 일찍이 돌아가신 우리나라의 김수환 추기경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종교가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봉건 시대에 21세기에나 가능한 개방적인 생각을 한 데카르트는 진정 위대한 철학자임에 틀림없다.

    사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새로운 학문을 추구하기 위하여 1628년 로마가톨릭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프랑스를 떠나 비교적 학문에 있어 자유로웠던 개신교지역인 네덜란드로 이주해 <방법서설> <성찰> <철학의 원리> <정념론> 등의 책을 집필하며 약 20년간 철학연구에 몰두하여 이러한 구원론을 철학적인 우회 방법으로 피력하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개신교는 절대 믿음을 강조하고 가톨릭은 유연하게 대응하니 시대의 변화가 참으로 산전벽해와 같다. 사실 데카르트의 종교관은 여러 비판을 받았지만 죽는 날까지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단호하고 열정적인 열망과 함께 로마 가톨릭교회에 깊은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증거로 데카르트는 그의 생애 마지막 1년을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의 개인교사를 하다 폐렴으로 사망하였는데, 후에 여왕은 신교도만이 스웨덴의 왕이 될 수 있다는 스웨덴 법에 따라 로마 가톨릭교회로 개종하기 위하여 왕위에서 물러났다.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해 그녀가 장기적으로 접촉한 사람은 개인 지도교사인 데카르트뿐이었다.

    데카르트는 ‘자유의지는 인간의 본성에 깃들어 있는 신의 상징이며, 완전한 신의 절대선이 내제된 자유 의지를 올바로 사용하여야 하고, 그러한 자유 의지의 완성이 영혼의 최고 목표이며 참된 행복을 얻는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사람들은 오직 다른 사람들을 위해 호의를 가지고 행동할 때만 선하며 이러한 관용은 최고의 덕이다.’고 말한다.

 

    이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과 통한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정념이 그 자체로 선하다고 하였다. 이는 맹자의 성선설과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56. 동굴

    통로의 다른 전시박스의 영상엔 플라톤과 데카르트와 이황 선생이 굽이쳐 흐르는 강이 보이는 경치 좋은 정자에 앉아 포도주와 막걸리를 나눠 마시며 무엇인가 열심히 토론하고 있는 장면이 상영된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잔을 높이 들며 껄껄대는 모습이 호탕하며 유쾌하다. 동양화 같은 영상 속에 두 서양인이 있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다.

    나는 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고는 있지만 데카르트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데카르트는 사실 굉장히 허약한 체질이었다. 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어머니는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갓난아기였던 그는 병에 걸려 목숨이 위태로웠고 의사마저도 소생할 가망이 없다고 진단을 내렸다. 다행히도 마음씨 고운 한 간호사의 보살핌 덕분에 그는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마도 이때의 일로 인해 그의 이름을 ‘중생(重生)’이란 뜻의 데카르트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절정기인 네덜란드에서의 이십년간의 생활에서도 그는 제도권에 들어와 강의하고 연구한 적이 없는 떠돌이 철학자였다. 말년에 스웨덴의 크리스티나여왕의 초대에 응해 그녀를 위해 새벽 강의를 하던 그는 북국의 차가운 새벽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와 같이 폐병으로 사망한다. 그의 나이 고작 54세였다.

 

    자세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느 누군가가 이 천재 철학자가 죽은 후 묘에서 그의 머리를 분리했던 거 같다.

 

    1791년 그의 묘지를 이장하던 중 두개골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두개골은 1878년 스웨덴에서 경매에 붙여졌다. 현재는 프랑스 인류학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이마에 "이 두개골은 르네 데카르트의 두개골이 맞다. 스웨덴 근위대장 한스트림이 보증한다."라고 적혀있다. 한때는 전시했으나 지금은 전시하지 않고 나무 상자에 보관하고 있다.

 

    데카르트가 이야기한 것처럼 명백한 관념 5가지 즉, 자아 ·신 ·논리 법칙 ·수학 명제 ·물질의 공간성은 의심할 여지없이 확실히 존재하는 것인가? 나는 다시 의심한다. 논리 법칙이나 수학 명제와 같은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논리이다. 이것은 이미 참으로 만들어졌다.  인간의 규칙은 인간의 세계에서는  절대 참이겠지만, 그것이 자연에 적용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러고 자아, 신, 물질의 공간성은 다시 한 번 의심해볼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미 우리는 물질이 가상 관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질이 차지하는 공간 또한 가상이다. 우주는 텅 비어있고 공간은 시뮬레이션이다.

 

    신은 절대적이며 완전한가? 혹시 절대적이고 완전한 것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의 시작은 '우리 우주에서 신의 위치는 어디인가?'로 부터 시작하여야한다. 우리 우주의 내부에 있는가? 외부에 있는가? 내부일 수는 없다. 내부는 이미 과학이 철저하게 조사하였다. 하여 무신론자들은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주가 곧 전체인데 신은 우주의 어느 곳에도 그가 숨어 있는 곳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우주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신'에 대한 또 다른 가설이 있다.  '고대 외계인 가설'이라는 것인데, 고대에 지구를 방문한 외계 지적 생명체가 있었고, 이들이 인류 문명에 개입하였다는 이론이다. 심지어 인류의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인간 여성과의 교접을 통하여 새로운 유전자를 가진 인류를 만들고 이들이 기존 인류와 섞여 자연스럽게 새로운 종(種)으로 변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전부 신뢰할 수는 없지만, 고대 문명의 미스터리를 보면 아주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인류의 종교는 이 하늘에서 온 외계인들을 '신'으로 숭상하며 생겼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결국 우리는 기존 종교나 토속 신앙에서 생각하는 '종교적인 신'과, 우리 철학이 지향하는 우주와 생명에 관여하는 '철학적인 신'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의 구분을 위하여 '우주 프로그래머'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아무튼 데카르트 시대에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외에 다른 신은 상상할 수도 없는 사회적 분위기였고, 데카르트는 이 둘의 개념을 혼동하였을 것이다.  데카르트는 철학적인 신을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종교적인 신과 결부시키려 했을 것이니, 데카르트가 당시 사회에서 종교적 이단으로 취급받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결과이다. 

 

  '신은 완전한가?'라는 명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그것의 원인이 외계인이든 아니든 종교가 지향하는 신는 '불완전'하다.  세상의 종교를 보라.  거기엔 온갖 가식과 위선, 증오와 싸움, 시기와 편협이 판을 치고 있지 않은가?  종교가 말하는 '사랑'과 '자비'와 '인(仁)'은 그들의 교리속에나 있는 것 처럼 보여진다.  그들이 믿는 신이 완전하다면 적어도 그들은 점점 더 완전성에 접근하여야 한다.  그러나 세상은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설령 어떤 종교가 원하는 세상, 즉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를 믿는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그 종교의 신이 지향하는 그런 세상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이미 중세시대에 그러한 일들을 경험하였다.  그러므로 종교가 지향하는 '신'은 불완전하다.  

    철학적인 '신' 또한 완전하지는 않다.  뒤에 '생명' 부분에서 이야기하겠지만 그는 이미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였다.  우리가 보는 우주의 하느님은 '전지전능'형이 아니라 '성실노력'형의 하느님이다.  이 철학이야기의 결론이기도 하지만 그 분은 인류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그는 완전하지 않다.

 

   신은 사유(思惟)의 지향점(指向點)이지, 사유(思惟)의 본질(本質)이 될 수 없다.  신은 완전하지 않다.

 

    다만 그렇다고 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는 없다.  신은 확실히 존재한다.  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의미이다.  우리 우주는 우연이 아니라 작용이라는 결론을 내었고, 그 작용에 관여한 그 분을 우리는 새롭게 '신'이라 명명할 수 있다.  그러한 신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우리는 우주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단지 4%라는 것을 알고 있다.  96%는 외부에서 왔거나 적어도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 혹시 신도 외부에 있거나 외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외부?'  '외부는 어디일까?'라는 생각을 하던 중 옆 전시 박스에서 또 하나의 별이 폭발한다. 폭발이 얼마나 큰지 동굴 통로가 다 보일 정도로 섬광이 번쩍인다. 그 전시박스 위에는 <우주탄생 65억년-제3자 개입>이라는 제목이 걸려있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잡은 초신성 폭발)

 

원본 ; 2014년 2월 27일

1차 수정 ; 2014년 4월 25일

2차 수정 ; 2014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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