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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레카 3(원본)

유레카3. 2장 우주 프로그래밍2 (5/73)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10.16|조회수370 목록 댓글 0

유레카 3 - 다섯번째 이야기

(우리가 찾는 것은 <진실(眞實)>이다.   우리는 지금 진실의 쿤타킨테를 찾아가는 중이다)

 

1부. 우주

 

2장. 우주 프로그래밍 2

 

* 이 글은 <유레카3>의 5번째 글입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부 우주, 2부 생명, 3부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26장 73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지성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며, 인류와 생명의 진보와 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harmonism/JN41/146

 

 

    14. 입자

 

    현대 물리학의 표준모델은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물질을 17개라고 정의한다. 여기엔 중력자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좀 찝찝하다.

 

 

(페르미온 중 보라색은 중입자인 쿼크, 녹색은 경입자인 렙톤. 보존 중 빨간색은 힘의 매개입자인 게이지 보존, 노란색 힉스는 스칼라 보존이다)

 

  현재까지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이 17개 입자의 조합이다.  내가 학생일 때에는 기본입자는 원자였다. 103개의 원소주기율표를 앞에 놓고 가로와 세로로 외우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 중 물질을 구성하는 놈들을 '페르미온'이라 하고, 입자들에게 힘을 전달하는 매개입자를 '보존'이라한다. 아마도 몇십년 후에는 중력자를 포함하여 이것들보다 더 작은 물질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이 17개의 표준입자가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전부이다.  공인된 과학은 그런 힘이 있다. 

 

   '페르미온'은 말 그대로 <입자>라서 한 공간에 둘이 존재할 수 없고, '보존'은 일종의 <힘>으로서 겹쳐서 존재할 수 있다. 만졌을 때 느낌이 있는 놈들은 페르미온, 힘이기 때문에 만져지지 않는 것들은 보존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우리가 손으로 감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개념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물리적 이해를 위해 표의 단위를 설명하자면 입자의 기호 옆에 3개의 숫자가 보인다.  맨 위에 있는 것은 질량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질량단위 [g, kg]이 아니라 [eV/c^2]이라는 단위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단위는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등가법칙 E=mc^2에서 m=E/c^2에서 유래한다.  m은 질량이고, E는 에너지, c는 빛의 속도이다.  뒤에서 다루겠지만 우리 우주공간에서 cc^2이 가지는 철학적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기호 eV에너지 단위로 전자볼트라 읽고, 이는 전자 하나가 1 볼트전위를 거슬러 올라갈 때 드는 로 정의한다. 즉, 기본 전하와 1 볼트의 곱이다. 국제단위계의 에너지 단위인 줄[J]과 다음과 같이 환산한다.


1 eV = 1.60217646 × 10-19 J
1 eV / c^2 = 1.78266191 × 10-36 kg

   1뒤에 0이 20개 있으면 해이고, 16개 있으면 경이다.  전자볼트가 해의 경배가 되어야 비로서 우리가 아는 kg단위에 도달한다.  입자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작다.  이 작은 세계에서도 물리법칙이 작용되지만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정형화된 물리법칙은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미시우주를 지배하는 양자역학이라 하였다.  단위에서 K(키로)는 1,000배, M(메가)는 1,000,000배, G(기가)는 1,000,000,000배를 의미한다.  서양에서는 이처럼 천의 곱으로 단위가 올라가고, 동양에서는 만, 억, 조, 경과 같이 만의 곱으로 단위가 올라간다.  기본입자들간에도 그 질량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표에서 보듯이 같은 렙톤이라도 전자와 타우의 질량차이는 약 3,000배 차이이고, 쿼크사이에도 up쿼크와 top쿼크의 질량차이는 약 80만배이다.  과학은 아직까지 기본단위인 이 입자들이 이렇게 많은 질량 차이를 가질 수 있는지 명쾌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어쩌면 더 많이 쪼개어야 한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미시 우주의 세계는 미지의 영역인 부분이 많다. 

   숫자의 2번째는 전기적 성질을 나타내는 전하이다.  보통의 원자에는 양성자의 전자의 수가 같아 전기적으로 중성으로 나타난다.  전자는 전하가 당연히 -1이고, 양성자는 up쿼크 2개와 down쿼크 1개로 이루어져 전하를 합쳐보면 2/3 + 2/3 - 1/3 = +1로 나타낼 수 있다.

  3번째 숫자는 spin으로 입자의 각운동량을 표현한다.  'spin'은 '돈다'라는 의미이자만 실제로는 입자들이 스스로 돌지는 않는다고 한다.  입자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을 것이라면 여기까지만 아는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페르미온은 강력의 일종인 색력이 작용하는 쿼크 6개와, 색력의 영향을 안 받는 렙톤 6개로 나뉜다.

 

    페르미온? 강력? 색력? 쿼크? 렙톤? 

 

    '아!  어쩌라고!'

    계속 읽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래서 내가 과학 중에서도 물리를 제일 싫어한다고 했잖아.  혹시 이런 신경질과 짜증이 나더라도 조금만 더 앞으로 가보자.

 

    산을 오를때 힘이들어 죽겠는데 내려오는 사람에게 얼마만 더 가면 정상이냐 물으면 한결같이 나오는 대답은 조금만 더 가면, 조오기 보이는 고개만 넘으면, 5분만 더 가면 된다고 한다. 물론 5분후엔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거기서 또 5분만 더 가고, 또 5분만 더 가면 얼마 지나지 않은 5분후에는 진짜 정상이 나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9년 9월 월악산에 올라 쓴 시 한 수로 목을 축이고 갔으면 한다. 이 시에서 '행여'라는 말은 안치환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의 ‘행여’에서 따온 말이다. 노래 가사가 너무 좋아 내 글에도 붙여 보았다.

 

    15. 쉬어가기 [詩] - 월악(月岳)이 그대를 부르거든 

 

월악(月岳)이 그대를 부르거든

 

 

 

 

 

월악이 그댈 부르거든

행여 못들은 척 딴청을 부리거라

수산리 달콤한 대추를 열어주던

시골 인심에 빠져

엄마의 품이런 듯 못나올까 두려우니

 

 

 

 

월악이 그댈 부르거든

행여 발아픈 척 엄살을 피우거라

햇빛 아스라한 질퍽한 산길에

무너진 아름나무 막고 누웠으니

너덜길 돌아올라 길 잃을까 두려우니

 

 

 

 

 

월악이 그댈 부르거든

행여 무거운 짐 지지마라

통천바위 무너질까 저어하니

하늘 한조각 보는 것에 만족하고

욕심에 잘못 밟아 떨어질까 두려우니

 

 

 

 

 

월악이 그댈 부르거든

행여 영봉에는 오르지마라

수천 계단 오르고 올라 선

아찔한 장엄에 눈물 흘리다

쪽빛 하늘을 날개 삼아

충주호 깊은 시름에 꿈을 빠트릴까 두려우니

 

 

 

 

 

월악이 그댈 부르거든

행여 그리운이와 함께 가지 마라

덕주 계곡에 철없이 발 담그다

단풍잎 하나 고이 떨어지면

덕주산성 신접 삼아 사랑가를 부르다가

한 일 없이 늙어가고 잊혀질까 두려우니

 

 

 

 

 

아!  나는 이제 눈물이 너무 많아

마애부처 가사에 핀 이끼에도 한숨만 나고

바위틈 꽃 한 조각에도 마음이 움직이니

솔나리와 산양마저 동무 되고

송계계곡 팔랑소에 보름달 떨어지면

월광폭포 부르는 소리에 헤어날 길 없게되니

 

 

 

 

 

월악이 그대를 부르거든

그대 못 들은척 두 눈을 질끈 감아라

그래도 

월악이 목청껏 부르거든

하늘에 세 번 절하고

땅에 얼굴을 묻고

아직 세상에 할 일이 남았으니

조금만 더 있다 부르시라 애원하거라.

 

 

 

 

 

    16. 뿌리를 찾아서


    시(詩)는 아마추어의 습작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지만, 딱딱한 과학이야기를 하는데 잠시 쉬어가는 휴식이라 생각하고 읽어 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저 글을 쓰던 5년 전에 ‘아직 세상에 할 일이 남았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번 글을 마치면서 나는 내 인생에 주어진 숙제를 다 한 것 같아 기분이 아주 좋다. 이제 잘 갈무리 한 후에 월악산의 부름에 답하여도 좋을 듯하다.

 

    '뿌리(Root)'라는 미국 드라마를 기억하는가? 미국의 한 흑인이 자기가 왜 미국에 왔는지 그 조상을 찾아가는 내용의 1977년 방영된 드라마이다.   아프리카에서 노예사냥꾼에 잡혀 미국으로 팔려온 그의 첫 조상의 이름은 쿤타킨테이다.   이 드라마의 주제는 <자유(自由)>이다.   수대에 걸쳐 노예의 몸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주인공의 흑인 조상들의 모습은 애처롭고 처절하다 못해 차라리 아름답다.  

 

   우리가 찾는 것은 <진실(眞實)>이다.   우리는 지금 진실의 쿤타킨테를 찾아가는 중이다.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과 에너지, 육체와 영혼의 본질을 알아야 <나는 누구인가?>의 질문에 접근할 수 있다.   종교에서 가르쳐주는 막연한 <믿음>은 우리가 찾는 답이 아니다.    <우리는 믿고 싶은 것이 아니라 알고 싶은 것이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이제 시작이다.  조금만 힘을 내자. 자. 일어나 가자.

 

   원문 ; 2014년 2월 7일

   1차 수정 ; 2014년 4월 4일

   2차 수정 ; 2014년 10월 16일

   3차 수정 ; 2015년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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