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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레카 3(원본)

유레카3. 2장 우주 프로그래밍1 (4/73)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10.15|조회수464 목록 댓글 0

유레카 3 - 네번째 이야기

(질량은 우주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무한대의 질량과 무한대의 에너지를 가진 어떤 한 점이 대폭발(Big Bang)하여 우리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논리는 그 전제부터 잘못되어 있다)

 

1부. 우주

2장. 우주 프로그래밍 1

 

* 이 글은 <유레카3>의 4번째 글입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부 우주, 2부 생명, 3부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26장 73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지성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며, 인류와 생명의 진보와 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harmonism/JN41/146

     

   11. 동굴 앞

 

    나는 동굴 앞에 서 있다. 동굴의 입구엔 굳게 닫힌 문이 있다. 문은 육중하고 고풍스럽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군데군데 녹슬어 있다. 문 옆엔 <플라톤>이라 새겨진 문패가 있고, '용무가 있는 자는 두드리시오.'라고 쓰여 진 안내문 아래 사자문형의 문고리가 있다. 별로 두드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동굴 안이 살짝 궁금하긴 하지만, 나름 지금의 밋밋한 생활이 그리 불편하진 않다. 하늘을 보니 마치 파란 바다 위에 하얀 파도들이 넘실되듯 구름들이 무리지어 흘러가고, 바람을 즐기려는 갈가마귀 한 쌍은 사랑놀이에 홀려있다. 인생이 영화처럼 끝까지 격정적이거나 감동적일 필요는 없지 않는가? 나의 젊은 시절은 충분히 드라마틱했고 나는 사실 좀 쉬고 싶다. 호기심을 뒤로하고 돌아서려는데, 문 안 쪽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겉모습이란 속임수이다. 플라톤>

 

    12. 본질의 이해

 

    근본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전체를 보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부분을 보는 방법이다. 숲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숲의 전체 모양과 크기 등도 알아야하지만,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와 풀, 벌레와 흙 등의 내부의 모습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별과 은하와 같이 우주를 구성하는 큰 세계의 움직임도 알아야 하지만, 분자, 원자와 같이 미시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의 세계도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사람에게 있어 거시우주는 너무 크고 미시우주는 너무 작다. 우리는 거시와 미시의 중간쯤에 존재해 두 세계의 영향을 다 받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물리학을 이해하려는 게 아니고, 물리 현상이 의미하는 철학적 의의를 찾으려 하는 것이므로, 과학은 너무 어렵다고 미리 겁먹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소풍을 가듯이 즐겁게 이 글을 읽어내려 갔으면 좋겠다. 소풍 길에 만나는 꽃들과 나무의 이름을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듯이, 여기서 나오는 생소한 용어들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도 다 이해한 것은 아니다. 모르면 모르는 데로 그냥 넘어가고, 정 궁금하면 인터넷에 단어 하나 입력하고 찾아보면 되는 것이다.

 

    인터넷은 인류의 만물 상자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물이 바다로 모이듯, 세상의 모든 지식은 인터넷의 바다에 모여든다. 인터넷이 시작된 지 겨우 십 수 년이 지났지만 인터넷의 바다는 지식과 정보로 가득 차 출렁인다. 그 바다에는 옳음과 그름,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의 정보를 가리지 않고 출렁이고 있다.   책을 찾으러 도서관에, 스승을 만나러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그렇다고 도서관이나 선생님이 필요 없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결정적 노하우나 최첨단 기술, 깔끔한 손 맛 같은 것은 인터넷이나 컴퓨터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못하면 '키스를 글로 배웠어요, 요리를 글로 배웠어요.'하는 코미디 꼴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디지털이 편리해도 사랑하는 이의 머리카락을 만지듯 감각적이며 감성적인 것이 없는 세상은 참으로 무미건조할 것이다.

  

   감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감각은 생각과 더불어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나는 감각(感覺)한다.  고로 나는 존재(存在)한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언을 이렇게 바꾸어도 별로 이상하지는 않아 보인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는 오감을 우리는 감각이라 표현한다.  감각은 나와 세상 간의 접촉이다.  그러면 우리는 물리적으로 세상의 무엇을  감각하는가?  물질과 에너지이다.  물질과 에너지는 공간과 시간으로 형성된 우리 우주를 구성하는 전체요소이다.  그러면 물질과 에너지가 우주의 본질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물으면 'YES'라고 답할 것이고, 플라톤에게 물으면 'NO'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율곡에게 물으면 'YES'이고 퇴계에게 물으면 'NO'일 것이다.  그것은 물질을 우리 우주의 전부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물질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고 그것이 사실은 우주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의 차이이다.  그런데 물질을 이루는 질량에 문제가 생겼다.  신(神)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 때문이다.

 

 

     13. 힉스 (Higgs boson)

 

    2012년부터 2013 년까지 과학계는 온통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의 이야기로 흥분하였다.  2012년에는 확실하진 않지만 힉스를 발견한 것 같다고 운을 띄우더니, 마침내 2013년 3월 14일 CERN(유럽원자핵연구소)에서 힉스입자를 발견하였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과학계의 50년 묵은 숙제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에 따라 2013년 노벨 물리학상은 당연한 것처럼 힉스를 예언하고 발견한 '피터 힉스'와 그의 동료인 '프랑수아 앙글레르'에게 주어졌다. 힉스 입자는 1964년 '피터 힉스'가 이론적으로 힉스입자의 존재를 발표하였고, 그를 따르는 과학자들이 실험적으로 힉스를 찾기 위해 무지 노력한 입자인데, 원래는 너무 발견하기가 힘들어서 엿 같은 입자(Goddamn Particle)라고 불렀었는데, 이 이름이 신을 모독한다며 신의 입자(God Particle)로 바꿔 불리게 되었다. 신의 영향력은 과학계에서도 막강한 위력을 뽐낸다. 그 덕분이지 '피터 힉스'는 자기 이름을 딴 힉스 이론을 발표한지 49년만인 84세의 나이로도 돌아가시지 않고 노벨상을 받는 영예를 누렸다. 노벨상은 살아 계신 분들에게만 수여되는 상이다. 그러나 사실 힉스는 무신론자이다.

 


 (Peter Ware Higgs. 1929년 5월 29일~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출신의 이론물리학자)

 

     내가 동굴 앞에서 망설이는 시간은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힉스>는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이다. 정확히 말하면 힉스장에 의한 힉스메카니즘의 영향이지만, 그런 거까지 다 이해하고 넘어가려면 머리가 터질지도 모른다.

  

   다만 힉스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하므로 2013년 10월 8일 뉴욕타임즈가 소개한(http://www.nytimes.com/interactive/2013/10/08/science/the-higgs-boson.html?_r=0#/?g=true ) 힉스에 대한 설명을 붙여 본다.  원래는 플래시 폼으로 되어있지만 번역을 위해 그림으로 펼쳐서 소개한 것을 인용하였다.  번역이 마음에 안들어 몇 줄은 수정했지만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래도 힉스에 대한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림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질량은 힉스장과의 마찰에 의해 부여된다.  이런 힉스입자가 가지는 철학적 의미는 입자는 원래 질량이 없었다는 것이다.  질량은 주어진 값이다.   질량은 우주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무한대의 질량과 무한대의 에너지를 가진 어떤 한 점이 대폭발(Big Bang)하여 우리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논리는 그 전제부터 잘못되어 있다.



   우주는 4가지의 힘, 그 중에서도 특히 중력의 영향력 아래에서 거대한 우주가 움직인다. '우주는 신이 아니라 중력이 만들었다'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호언도 있는데 중력을 일으키는 질량은 본질의 값이 아니라 주어진 값이다. 왠지 우주가 가짜인 것만 같다. 

 

   <겉모습이란 속임수이다.> 

 

  플라톤의 말이 다시 들려온 건 이때였다.

 

   원문 ; 2014년 2월 7일

   1차 수정 ; 2014년 4월 4일

   2차 수정 ; 2014년 10월 15일

   3차 수정 : 2015년 1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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