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유레카 3(원본)

유레카3. 1장 프롤로그 - 과학과 종교 그리고 철학2 (2/73)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10.13|조회수411 목록 댓글 0

유레카 3 - 두번째 이야기

(현상을 보이는 데로 믿지 마라. 그것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도 속아 넘어가는 마술과 같이 우리를 속일 수 있다)

 

1부. 우주

 

1장. 프롤로그 - 과학과 종교 그리고 철학 2

 

* 이 글은 <유레카3>의 2번째 글입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부 우주, 2부 생명, 3부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26장 73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지성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며, 인류와 생명의 진보와 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harmonism/JN41/146

 

 

    4. KBS의 인문강단 락(樂)

 

    이 이야기의 시작은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한 힉스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하는 도중, 작년 2013년 11월 12월 의 이석영교수의 빅뱅우주론에 대한 강의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글에서도 많이 인용이 되겠지만 가능하시다면 다시보기를 통하여 시청하실 것을 권한다. 어려운 과학 그것도 우주론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고자 하는 교수님의 정성이 엿 보인다. 나도 나의 글을 독자들에게 최대한 쉽게 전달하기 위하여 수정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과학적 지식이 있어야 이 글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5. 근본 질문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진실은 무엇인가?>와 상통한다.

    이 근본 질문에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은 종교와 철학과 과학이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관점이므로 우주를 이 세 가지의 관점으로 분리하고 때론 두 가지를 결합하거나 세 가지 모두를 융합해서 보는 것은 장님이 만진 코끼리와 같은 우주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진리란 무엇인가?>와 상통한다. 진실과 진리는 일견 같은 뜻으로 느껴지지만 엄격히 말하면 진실은 과학적 사실관계에 대한 문제이고, 진리는 철학적 가치관계에 대한 문제이다.  3부 <길>편에서도 다루겠지만 진실과 진리에 대한 착각은 수많은 오류를 낳는다. 


   예를들어 수학의 명제에서 '진리 집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명제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문제이므로 '진실 집합'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진실과 진리의 혼용은 특히 종교의 세계에서 남용되고 오용된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종교와 종파를 진리의 종교요 종파라 설파한다.  믿음에 대한 각자의 가치관이 차이가나고 다르므로, 자기 종교와 종파가 진리의 종교라고 말하는 거기까지는 용납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다른 종교와 종파는 거짓이라거나, 이단이라거나, 우상숭배라 이야기하는 것은 심각한 자가당착(自家黨則)에 불과하다. 


   진리는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개별적이다. 그렇다고 진리가 의미가 없다거나 하찮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모든 사람과 생명은 각각의 삶을 살아간다.  아무리 짧은 하루살이의 삶이라 하더라도, 그 삶 하나하나는 그 생명에게 있어 곧 우주의 전부와 같다.  그러므로 각자 자기에게 맞는 진리의 길을 살아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진리를 지키기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우리는 순교라고 하지 않는가? 


   진리와 또 다른 진리가 부딪칠 때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해와 포용이다.  그러한 이해와 포용은 진실을 통해 확대될 수 있다.  우리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어 지금까지 왔고, 우리 생명이 어떻게 생성되어 지금에 이르는 진화의 길을 걸었는지를 안다면 내가 믿는 진리와 다른 사람의 진리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또는 다양성의 관계에서 그 또한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으로 표현했던 우리 지구는 우주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그 티끌안에서 아옹다옹 몇십년을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이 티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과 사상들이 티끌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지 않는가?  멀리서보면 지구의 모든 생명은 그냥 생명체 하나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2부 [생명]편에서 다루겠지만 사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하나의 생명군집이다.  우리는 마땅히 그 사실을 인지하고 사실을 바탕으로 각자의 삶을 꾸려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유레카3>는 바로 이 <진실과 진리>의 문제를 다루는 철학글이다. 

 

    나는 이런 사유가 좋다. 그것은 나의 유한성을 의미 있게 하는 유일한 돌파구이다. 삶은 짧고 덧없다. 돌이켜보면 나의 지난 오십년은 한편의 영화보다도 짧았던 것 같다.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내게 더 주어져 있을지는 모르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것이다. 이 얼마 남지 않은 삶에 지고지순(至高至順)한 명제인 진실(眞實)과 진리(眞理)를 찾고 구하는 행위는 참으로 멋있고 아름답지 아니한가?

 

    나도 우리 지구도 태양도 은하도 마침내 우주도 그 시작이 있었고 마침이 있겠지만, 그 마침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본질(本質)의 이해이다.

 

    빛이 왜 생겼는지를 이해했던 최초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아내었던 최초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우주가 하나의 정교한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몇 명은 있을 것이다.

    나는 아마도 그 몇 명 중에 하나일 것이고, 이것은 내가 돈이 많다거나 권력이 높다거나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나는 아직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글을 다시 시작하는 이유는 나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글로 정리를 하면서 한 번 더 깊이 있게 사유하고자 위함이며, 내가 비록 부족하더라도 어느 누군가의 또 다른 사유에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6. 종교와 철학과 과학

 

    종교는 믿음을, 철학은 이성을, 과학은 증명을 그 도구로 하고 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측량자이다.

 

    종교의 중심은 신(神)이며, 철학은 자아(自我)이고 과학은 자연(自然)이다.

 

    <사람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종교적 관점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산다거나, 철학적 관점의 사람이라면 부처나 대성현과 같이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하여 산다거나,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할 것이며, 과학적 관점의 사람이라면 건강한 생명 유지와 종족보전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위의 것들과 아마도 또 다른 이유를 뒤섞은 이유를 만들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생각도 없이 태어나졌으니까 살아지는 것이고, 또 그렇게 죽어갈 것이다.

 

    나는 적어도 나의 글을 읽는 당신이 살아있으니까 그냥 살아가시지는 않기를 바란다. 물론 살아 있는 것, 그 자체로도 삶은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살아보는 것도 당신의 인생을 훌륭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겠는가?

 

    가장 어리석은 사유는 종교를 철학이나 과학의 잣대로 이해하려는 시도이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무게를 묻는데 길이로 답을 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창조론과 진화론은 서로 다른 관점으로 서로에게 보완의 관계이지, 결합되지 않는 상반된 입장은 아니다.  장님의 코끼리처럼, 쌓기 나무처럼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답이 구해진다. 형이상학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만약 어떤 신을 믿는다면 그 믿음으로 그 신과 그 종교를 이해하여야 한다.

    우리가 어떤 철학을 탐문하고자 한다면 철저히 이성적이며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만약 과학의 부분이라면 증명된 논거를 가지고 그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옳다.

 

    과학을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500년 전까지만 해도 천동설은 과학이었다. 연금술도 과학이었다. 현대물리학의 대부인 뉴턴이 연금술의 신봉자였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우리가 지금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미래엔 터무니없는 거짓일 수도 있다.

 

    현상을 보이는 데로 믿지 마라. 그것은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도 속아 넘어가는 마술과 같이 우리를 속일 수 있다.

 

원본 2014년 2월 4일

1차 수정 2014년 3월 31일

2차 수정 2014년 10월 13일

3차 수정 2015년 11월 2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