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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레카 3(원본)

유레카3. 24장 자본 - 돈! 인간을 위해 봉사하게 하라! 1 (66/73)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12.09|조회수224 목록 댓글 0

유레카 3 -예순여섯번째이야기

(인간은 체제 안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체제의 모순을 깨닫기 어렵다. 또한 체제를 깨는 일은 몹시 두려워한다)

 

3부. 길

 

24장. 자본 - 돈! 인간을 위해 봉사하게 하라! 1

 

* 이 글은 <유레카3>의 66번째 글입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부 우주, 2부 생명, 3부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26장 73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지성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며, 인류와 생명의 진보와 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harmonism/JN41/146

 

 

 

   187. [쉬어가기 - 시조] 수리산 태양 옹달샘

 

 

(수리산 주봉 태을봉 정상석 - 2013년 3월 9일 수리산 산행에서)

 

   양짓말 수암천에 봄볕이 살짝드니

   담배촌 수양버들 연둣물 피어올라

   짝찾는 곤줄박이는 태을봉을 맴도네

 

   질퍽한 백영골짝 가파른 고바위길

   정겨운 사람들과 땀으로 오르는길

   겨우내 묵은게으름 벗어두고 가려네

 

   아슬한 병풍바위 오를까 살짝돌고

   종줏길 화암송은 독야청 뽐내는데

   비겁한 춘풍한량은 제가림도 못하네

 

   버텨선 송충바윈 충일까 불충일까

   오래된 전설일랑 바위에 묻어두고

   여기서 되돌려가자 산림욕장 편한길

 

   물마른 태양옹달 잠깐쉬려 들렀더니

   집채만한 바위두개 아뿔사 덮쳤구나

   봄이라 안심말아라 천지사방 위험길

 

   방지거 성지무덤 엎드려 큰절하고

   거룩한 고택성당 살포시 무릎꿇어

   한가지 바라는것은 무사태평 인생길

 

   막걸리 한사발로 뒷풀이 한잔하고

   좋은벗 함께하니 여기가 무릉도원

   인생이 별거있겠나 이만하면 장땡이지

                    (2013년 3월 9일 수리산 산행후)

 

(수리산의 성 최경환프란치스코 무덤)

 

 

   188. 동굴

 

   동굴은 이제 끝나가고 있다. 출구는 수직 오르막인데 올라가는 출구엔 겨우 사람 하나 빠져나갈 만큼의 공간 밖에 없다. 동굴 밖 세상 하늘 위에선 햇빛이 찬연히 들어오고 있지만, 두 길이 넘는 수직 바위구멍을 등에 의지하고 발로는 바위를 밀며 올라가야 한다. 작용과 반작용의 고전역학 3번째 규칙을 이용하여 이 출구를 통과하여야 한다. 군대시절 유격 훈련을 머릿속으로 연상하며 힘겹게 오르는데 중력의 힘은 반작용의 힘 보다 센지 여간 힘들지 않다.

 

   반쯤 겨우 올라왔는데 바위 벽면에 <낙타구멍>이라고 쓴 글씨가 보인다.   글씨는 아주 오래전에 썼는지 희미한데, 오래전에 이 출구를 통과한 어느 누가 써놓은 것 같다.

   안간힘을 써 한 번 더 오르니, 이번엔 벽면에 그림이 보인다. 이 그림은 선명하여 그림을 새긴지 얼마 된 것 같지 않다. 그림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이돌 가수처럼 늘씬하고 훤칠한 키에 잘생긴 용모를 가진 젊은이 모습이고 입가엔 미소가 이채롭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등과 발을 고정하고 이 아름다운 그림을 자세히 보니 왼쪽 가슴 부분에 이름표가 있고 <타락천사>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그 그림의 오른손엔 긴 칼이 쥐어져 있고 왼손엔 돈뭉치가 들려있다.

 

   아름다움(美)은 더 이상 선(善)을 상징하지 않는다.  예전의 드라마에는 나쁜짓을 하는 악역은 남자이건 여자이건 험상 궂고 못 생긴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내 기억으로는 고현정이 드라마 '선덕여왕'의 '미실' 역할을 맡은 후부터는 악역도 미인들의 몫으로 바뀌었다.   

 

   이천년 전 그리스의 법정에 어떤 여인이 붙잡혀 왔다. 이 여인의 혐의는 절도였는데 물건을 잃어버린 주인은 이 여인을 도둑이라 하고 여인은 훔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재판이 여인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여인은 재판정 한가운데로 나가 갑자기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지며 재판관과 배심원을 향해 말하였다.

   '나는 이리 아름다운 몸을 지녔는데 이 아름다운 몸으로 도둑질이라는 악한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재판관은 유심히 여인의 몸을 살핀 뒤 말하였다.

   '아름다운 네가 악한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무죄라 생각하는데 배심원들 생각은 어떻소?'

   함께 있었던 배심원들도 모두 동의하고 여인은 유유히 재판정을 빠져나갔다.

 

   그리스 사람들은 <진선미(眞善美)>를 분리될 수 없는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였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예쁜 여자나 잘 생긴 남자가 착할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북한산에서 2013년 4월 13일 산행.  이번 글에는 북한산의 멋진 모습을 첨부하였다.)

 

   벽에 몸을 의지하고 그림의 손에 쥐어진 칼과 돈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권력과 자본>

   이 두 단어는 사실 인간의 관념이 낳은 허수이다. 이것이 과하면 탐욕과 욕망이 된다. 인간에게 봉사해야 하고,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하고 행복의 도구가 되어야 할 자본과 권력이, 이제는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이 누려야 할 자유와 행복을 짓누르며, 마침내는 타락자의 도구가 되어 인간의 주인 노릇을 한다. 칼을 잘 쓰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도구가 되지만, 잘못 쓰면 살인의 생지옥을 만들 수도 있다. 자본과 권력은 칼과 같다.

 

   어느새 인간은 살기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위해 사는 것으로 뒤바뀌었다. 돈은 분명 사람이 살기위한 수단이지만 이제는 사람이 돈을 벌기위해 사는 목적이 되어버렸다.

   연봉 얼마짜리 인간. 인간의 가치가 그렇게 평가된다.

 

   민주사회의 권력은 인간의 자유로운 삶과 행복을 보장받기 위하여 잠시 국민들이 지도자들에게 내어준 힘이지만, 권력자들은 그 힘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북한산 사모바위)

 

   189. 자본의 무한 권력

 

   <돈! 인간을 위해 봉사하게 하라!>

   이번 글의 목적이다.

   우리는 개별 생명체가 아니라 생명공동체의 한 부분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자본과 권력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본이 사람의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된 이유는 자본의 권능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에 있어 자본의 힘은 무소불휘하다. 돈은 곧 절대 권력이 되었다. 그리고 이 권력은 세습된다.

   만약에 정치권력이 자본권력과 같이 무한대의 축적과 세습이 가능하다면 절대로 용납 할 수 없을 것이다. 신분제의 타파를 위해 수없이 죽어나간 백성의 피, 혁명의 피를 생각해보면 인류의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시대에 자본의 힘은 너무 막강하고, 백성들은 그 뒤에 숨겨진 사슬의 잔혹성을 모르는 채 돈의 권능을 신처럼 숭상하며 찬미한다.

 

   민주주의에서의 권력은 어떠해야하는가?

   그것은 첫째 그 권력의 권한과 행사가 투명하여야 하며, 둘째 그 권력이 유한하며 견제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민주주의 제도가 아닌 것이다.

민주주의에서의 자본권력 또한 당연히 이러하여야 한다. 자본의 힘은 투명하여야 하며 유한하여야 한다.

 

   우리는 자본에게 너무 많은 권력을 주었으며, 그로인하여 인간 스스로 소유물인 자본의 노예가 되었다. 이는 삶의 본질을 왜곡시켰고, 소수의 어떤 이들은 그로인해 너무 풍요롭고 수많은 어떤 이들은 그 사슬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자본주의 이론이 시작하는 1776년, 아담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이 형성되고 가격이 결정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요즘의 상황을 보면 수요와 공급의 원칙만이 시장을 지배하는 것 같지는 않다. 흔히 국제투기자본이라 불리는 대자본이 시장을 흔들고 있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현대의 국제 시장에 있어 "원유, 금, 곡물 등 상품가격의 급등은 투기와 거대자본이 주요한 원인"이라며 "투자자들이 비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팔려고 하기 때문에 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도 “헤지펀드, 연금펀드 등 투자자들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상품 값이 뛰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경제’라 불리는 현대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상품의 가격 결정요인에 '보이지 않는 손' 이외에 '보이는 손'도 가지게 되었다.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보이는 손이 시장에 개입하면 그 손을 조정하는 자들은 엄청난 이득을 보지만, 그 물건을 실제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은 손해를 보며 쓸 수밖에 없고 그만큼 삶의 여유는 팍팍해진다.

 

   요즘 돈을 모아 큰 자본을 만들어 투자를 하는 펀드가 유행한다. 나는 적어도 이 글을 읽는 분들이라면 내가 투자한 펀드가 어디에 어떻게 투자행위를 하여서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익을 내지 못하면 무능한 펀드이고 수익을 많이 내면 능력 있고 훌륭한 펀드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단순하고 잘못된 생각이다. 당신이 투자한 펀드가 정말로 자본이 필요한 곳에 인간의 생활에 꼭 필요한 곳에 투자했으리라고 믿고 싶지만, 식량에 손을 대고, 원유나 원자재 사재기에 투기하고, 만만한 회사를 돈으로 빼앗아 경영혁신이라는 명분으로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고, 자신의 생존과 가족의 부양을 위해서 죽어라 일을 해도 정말로 죽지 않을 만큼의 임금을 지불하고, 협력업체를 착취하고, 노동자와 협력업체의 몫이어야 할 빼앗은 임금을 기업의 이익으로 부풀리고, 그리하여 이익을 많이 내는 좋은 기업으로 포장 하고, 주가를 올려 그 이익 또한 자본가끼리 나누어 먹는다면, 그것은 강도요, 절도요, 살인의 죄이다. 그리고 그 자본에 당신의 돈이 포함되어 있다면 당신 역시 공범이다.

 

 

 

 

   <자본>은 경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자본, 기술, 노동을 자본주의의 3대요소라고 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적당히 균형을 이루어야 자본주의의 건강성을 유지하는데 이상이 없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자본이 기술과, 노동을 압도하고 지배하는 구조 속에서는 그 경제와 사회에 올바른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문제는 이미 형성된 거대한 투기 자본들이 시장 질서를 지속적이고 악의적으로 왜곡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것은 아직까지 우리 인류가 싸움(爭)이라는 동력엔진과 승자독식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다. 이긴 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돈이 산업이 되었다. 금융 산업.

   TV광고의 절반 이상이 돈 놓고 돈 먹는 금융 산업의 광고들로 가득하다. 금융 산업의 특징은 어느 누군가의 손해가 다른 누군가의 이익이 되는 구조이다. 손해가 크면 클수록 반대쪽의 이익은 커진다. 그것이 이자일 수도, 투자일수도, 투기일수도, 보험이나 상조일수도, 주식일수도, 혹은 나도 내 돈이 어찌 쓰이는지 모르는 연금이나 기금일 수도 있다.

 

   사실 돈은 허상이다. 돈은 어떤 실체의 그림자일 뿐이다.

   '쌀 20Kg은 5만원이다.' 라는 명제가 있다고 하자. 여기서 쌀과 돈이 등가의 가치이다. 그러나 쌀은 실상이고 돈은 허상이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같은 가치를 지닐 수 없다.

그러나 이 둘을 동등가치로 둔 까닭에 오히려 가볍고 편리한 허상인 돈이 실상의 역할을 하고 무겁고 불편한 쌀은 허상이 되었다.

 

   우리는 왜 이런 착각을 하는가? 그것은 체제 때문이다. 인간은 체제 안에 살기 때문에 우리는 체제의 모순을 깨닫기 어렵다. 또한 체제를 깨는 일은 몹시 두려워한다.

 

 

   우리나라 전래민담 중에 <불가사리 이야기>가 있다. 쇠를 먹으면서 점점 커지는 불가사리는 드디어 온 나라의 쇠를 모두 먹을 듯 커진다. 무엇으로도 불가사리를 막지 못해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 홀연히 스님 한분이 나타나 부적을 불가사리 몸에 붙이자 불가사리는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불가사리는 실상이 아닌 허상의 공포이다. 부적은 깨달음이다. 자본 또한 실상이 아닌 허상임을 깨닫게 될 때 자본의 힘은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원문 ; 2014년 3월 23일

수정 ; 2014년 1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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