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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레카 3(원본)

유레카3. 23장 미래 5 (65/73)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12.08|조회수182 목록 댓글 0

유레카 3 -예순다섯번째이야기

 (철학은 종교가 다진 땅에 과학이 지은 멋진 집을 감옥으로 만드느냐 신나는 놀이공원으로 만들 것이냐 하는 것을 결정할 것이다)

 

3부. 길

 

23장. 미래 5

 

* 이 글은 <유레카3>의 65번째 글입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부 우주, 2부 생명, 3부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26장 73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지성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며, 인류와 생명의 진보와 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harmonism/JN41/146

 

 

 

    185. 미래는 정해져 있는가?

 

   인터스텔라 비평에서도 잠깐 다루었지만

   [미래는 정해져 있는가?]가 오늘 우리글의 주제이다.

   복습을 하는 의미로 다시 한 번 짚어보자.

   제1우주인 거시우주의 세계에서는 미래는 확정적으로 정해져 있다. 그것을 우리는 결정성이라 하였다.

   제2우주인 미시우주의 세계에서는 미래는 확률적으로 정해져있다. 그것을 우리는 확률성이라고 하였고 결정성보다는 유연하지만 확률은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래는 확률적으로 정해져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확률적이기 때문에 정해져 있지 않다'라는 표현도 당연히 가능하다.

   그러나 제3우주인 생명우주의 세계에서는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이것을 우리는 의지성으로 정의하였다. 의지성은 우주에 내재된 규칙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오는 에너지이고, 결정성과 확률성을 극복하는 자유의 힘이다.

 

(2014년 11월 23일 멀어져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관악산에 올랐다. 이번 글에는 참고 자료들이 마땅치 않아 글 읽는 도중 눈요기라도 하시라 산행 사진을 올린다.)

 

   미시세계에서는 우리의 의지가 입자들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하였다. 생명의 의지는 과학적으로 규명이 안 되었을 뿐이지 에너지이기 때문에 미시 입자를 움직일 수 있다. 하여 간절히 기도하거나 간절한 염원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그 일을 성취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미시세계의 입자들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미시세계에서는 우리의 의지 활동도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거시세계에서는 우리의 의지인 생각과 행동으로 눈에 보이는 의지 활동을 할 수가 있다. 우리가 생각을 가지고 활동하는 모든 것이 거시 우주의 의지 활동이다. 이 의지가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지, 규칙이 없이 내 멋대로 움직이는지를 판가름하는 것이 오늘의 주제인 미래는 정해져 있는가를 판명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거시 우주의 결정성을 살펴보자.

   6500만 년 전, 직경 10Km의 작은 도시만한 소행성이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어마어마한 지진, 해일, 화산폭발 등의 대 지각 변동이 전 지구에 걸쳐 일어났으며, 무엇보다도 충돌의 충격파로 먼지가 온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고 수개월동안 햇빛이 차단되어 식물들이 말라죽고 연쇄적으로 초식동물 육식동물들이 멸종하였다. 이 사건으로 공룡을 포함한 지구생태계의 약 50%가 멸종하였다. 여기서 50%의 의미는 생물체의 1/2이 죽고 1/2이 살아남았다는 뜻이 아니라 생물종족의 1/2이 완전히 대가 끊겨 멸종하였고, 나머지 1/2도 대부분은 죽었지만 소수의 개체만이 살아남아 종족을 유지했다는 의미이다. 생명체의 개체로 보면 90%이상의 생명이 죽었다는 뜻이다. 이 사건은 지구의 중생대와 신생대를 가르는 원인이 된다.

   그때 지구와 충돌한 그 소행성의 궤적과 지구의 궤적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그 소행성은 지구와 소행성이 생기는 순간부터 6500만 년 전 지구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궤적을 그렸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만약 지금 10Km의 소행성이 지구로 온다면 영화 아마겟돈처럼 인류는 능히 그 소행성의 진로를 바꾸거나 아예 폭발하는 방법으로 인류와 지구생명체를 구해낼 것이다. 인류의 의지가 이미 결정되어있는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을 변경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고, 인류가 그만큼 위대해졌다는 의미이기도하다.

 

  

   이와 관련해 얻은 깨달음을 지난 글에서 이야기하였다.

 

   [우리 프로그래머는 인류의 지성을 진화시켜 지적 능력과 지유의지를 가지게 하고 인류를 지구와 지구생명체를 지키는 당신의 조력자로 선택하셨다.]

 

   그렇다고 지금 인류의 힘이 우주의 모든 결정성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크지는 않다. 소행성 정도의 진로는 바꿀 수 있을지 모르지만 초신성 폭발에 의한 감마선폭풍이나, 고생대와 중생대를 가르는 시베리아 대폭발 같은 대규모 지각변동은 인류의 힘으로도 아직 어쩔 수 없는 큰 힘이다.

 

   태양은 별 중에서 작은 편에 속하는 별이다. 상상해 보자. 지구를 직경 1cm의 땅콩에 비유하면 태양은 직경 109cm의 커다란 애드벌룬이다. 이 크기에서 지구는 태양에서 약 100m 떨어져 초속 30km의 무시무시한 속도로 태양을 돌고 있는 형태이다. 60억 명의 사람과 수많은 생명체의 어머니인 우리 지구는 사실 우주 공간에서 고속도로에 서 있는 어린아이 마냥 위태롭고 여리다. 인류의 과학이 발전하였다고는 하지만 태양이 한번 기침하는 코로나 방출이나, 초신성이 폭발하면서 내뿜는 감마선을 지구가 맞는다면 인류와 지구 생명체는 그야말로 바람 앞에 촛불처럼 덧없이 꺼지고 만다. 대 우주에 비하여 인류의 의지는 참으로 덧없다. 이런 현상이 지구를 덮친다면 확률이나 의지를 따지는 것은 참으로 무의미하다. 지금까지의 모든 확률과 의지는 무효가 되고 컴퓨터를 재부팅하듯 무(無)에서부터 새로 시작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개인과 사회, 지구와 우주의 미래가 정해져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Well, 글쎄요?>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어느 관점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물질의 세계에서는 결정성과 확률성이 강하니 미래는 불완전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결정되어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약 50억년 후면 태양은 적색거성이 되어 그 삶을 마감할 것이고, 우리 지구의 운명도 그 전에 마감될 것이다. 지금의 입장이라면 운이 좋아 그때까지 인류가 생존한다 해도 그때가 되면 인류와 지구생명체는 멸종을 피할 길이 없다. 어머니인 지구가 먼저 없어지고, 아버지인 태양도 결국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고도의 과학문명을 가지게 된다면 어쩌면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노아의 방주와 같은 우주선을 만들어 인류와 지구생명의 진화를 다른 별이나, 은하나, 우주에서 계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태양이 그 운명을 다하는 아주 먼 미래에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인터스텔라의 처음 조건처럼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는 생존이냐 멸종이냐를 놓고 선택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인류 스스로이다.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인류의 의지에 달려있다. 앞의 글들에서도 여러 번 강조하였지만 지금부터 인류의 생존과 진화는 과학문명에 맞는 정신문명을 가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과학은 인류의 힘을 극대화하였다. 그 힘을 어떻게 쓰느냐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를 발전시킨 인류문명의 힘은 싸움이다. 인류는 경쟁, 전쟁, 투쟁을 통하여 지난 일만 년의 인류문명을 발전시켜왔다.

   나는 일만 년 이전의 원시인류를 자연인류로 정의하고, 신석기혁명 이후의 인류를 문명인류로 정의하고자한다. 그리고 산업혁명 이 후 최근 수백 년 간의 발전은 혁명을 뛰어넘는 혁명이었고 그 혁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 과학 혁명의 속도가 너무 빨라 그 보조를 맞추는 것조차 숨이 찰 지경이다. 만약에 우리가 예전의 수도승처럼 이삼년 어느 산이나 사막에 들어가 수행을 하고 속세로 다시 돌아온다면 아마도 우리는 원시인 취급을 받을 지도 모른다.

 

 

 

   영국의 스티븐 윌리엄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 1942년~)박사는 인류가 향후 200년 내에 새 별을 찾아 이주하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인류에 의한 지구 환경의 오염과 파괴, 그리고 지구 자원의 고갈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과학문명은 이리 빨리 발전하여 인류의 힘은 점점 세어지고, 자원은 서서히 줄어들어 대부분의 지하자원이 일백년 후면 고갈되고, 지구 환경은 급속히 나빠져 지구온난화와 그로 인한 기후변화,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대기오염,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유출, 식량자원의 불안정은 언제든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 여기에 서로 나만 살겠다고, 내가 더 많이 가져야 되겠다고, 내가 더 높이 올라가야 하겠다고, 나와 다른 너는 인정할 수 없다고 싸움을 계속하고, 만약에 여기에 핵전쟁까지 일어난다면 호킹 박사가 예언한 이백년은 고사하고 일백년 아니 단 몇 십 년도 인류는 지구에서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186. 정신혁명

 

   인류의 과학문명의 발전만큼 신속하게 인류에게 정신혁명이 일어나 인류의 생활 방식 자체를 빠르게 바꾸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류의 정신이 혁명적으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지구에 의탁해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이것은 종교적 광신도들이 말하는 종교적 종말이나, 심판의 날 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없다.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것에 정신이 없어서 죽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우리의 죽음이 닥치는 날이 있을 것이고, 그 날을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는 하루하루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어차피 죽을 것이니까 몸에 않좋은 것을 마구 먹고 몸에 해로운 일을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하여 사는 날까지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다 죽으면 그것으로 큰 만족일 것이다. 

   인류의 생존 역시 마찬가지이다.  생물의 진화 역사에서 보듯이 인류도 언제가는 멸종을 할 것이다.  어차피 멸종할 것이니까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약자들을 괴롭히고 수탈하여 내 배만 불리고, 지구는 생각 안하고 온갖 환경 오염을 일으키고, 지구 온난화를 조장하고, 지구가 가진 자원을 다 탕진하며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거대한 우주에 티끌보다 훨씬 작은 우리 지구에 60억명이 넘는 인류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지구 생물들이 살고 있다.  인류는 인류 스스로를 포함하여 그 생명 모두를 죽일수도 살릴 수도 있고, 심지어 지구를 생명의 별에서 죽음의 별로 만들 수도 있다.  인류가 가진 힘의 크기에 맞는 정신의 풍부함을 지니지 못하면 인류의 멸망은 너무나 쉽게 예측이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정신 혁명은 어디에서 올 것인가?

   그것은 진실의 깨달음에서 올 것이다.

 

   <진실을 통해 진리를 구한다.>

 

   <진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물음을 통해

   <진리!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해답을 찾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고, 나는 이 글을 통하여 정신혁명을 일으키라고, 그것도 신속히 일으키라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요나처럼 예언자적 경고를 인류에게 보내는 것이다.

 

   [이제 사십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요나3-4).]

 

   <예언은 예고가 아니라 경고와 희망>이다. 예언자는 점쟁이가 아니다. 예언자는 시대와 사회에 이 길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절망하지 말라고 희망을 주는 하느님의 메신저이다.(엘버트 노울런 저,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에서)

 

   나 또한 이번 글에서는 예언자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그것은 종교의 예언자가 아니라 철학의 예언자로서의 역할이다.

 

   <귀 있는 자여, 들어라!  너희가 지금까지의 싸움의 시대를 청산하고 어울림의 시대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멸종의 화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신이 내리는 징벌이 아니라 인류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저주이다.>

 

 

 

   나는 우주와 생명에 관한 나의 철학적 진실을 이야기하였고, 그 진실을 통해 진리를 이야기하였다.

 

   내가 이번 철학 동굴 탐험에서 찾은 진실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우리우주는 마치 시뮬레이션과 같이 정교하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감각하고 있는 우주는 본질이 아니다.

   또 하나는 의지는 외부에서 오는 에너지란 것이다. 이로 인해 생명은 모두 한 나무의 나뭇잎처럼 독립된 개별 개체가 아니라, 하나의 생명군집이라는 것이고, 모든 생명은 형제이며 또 다른 나이다.      우리 우주는 우리가 감각하는 물질과 에너지가 아니라 생명의 의지가 우리 우주의 본질이다.

 

   또 다른 나. 그것이 타인과 다른 생명체의 의미이다. 인류가 싸움의 시대를 끝내야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하다. 나는 미래의 인류를 조화인류로 정의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하느님은 서로 어울려 살아야 한다. 어울림의 시대.

   우리의 사회시스템은 싸움의 시스템을 마감하고 어울림의 시스템으로 바뀌어야한다.

   더 많이 가지려 더 높이 오르려 싸움을 하는 삶이 아니라, 더 많이 나누려 더 넓게 사랑하며 어울리는 세상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살기에 너무나 충분한 기술과 과학문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그 옛날 인류의 지성이 거의 완전히 닫혀 있었을 때, 종교는 인류를 다른 생명체와 구분된 삶을 살아가게 하였다. 종교가 가진 신화적 미신적 요소의 불합리성, 비과학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인류를 생태계의 본능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선(善)과 의(義)를 지향하게 하고, 보다 높은 차원의 정신세계를 구축하게 한 종교의 역할은 인류에게 커다란 축복이며 은총이다. 선지자들이 과학적 지식이 없었음에도 그들이 깨달았던 대부분의 가르침은 지금도 너무나 옳다. 종교는 인류문명의 땅을 다진 위대한 인류의 산물이다.

 

    과학은 인류의 지성을 급격히 확대시키고, 기술 문명의 선물을 인류에게 안겨주었고, 앞으로도 무궁무진 발전할 것이다. 인류가 단기간에 이만한 문명의 발전을 이룩하고 다른 생명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지게 된 것 또한 축복이며 은총이다. 종교가 땅을 다진 것이라면 과학은 그 땅위에 멋진 집을 지은 것이다.

 

   철학은 인류의 지성이며 이성이며 감성이다. 인류의 지성은 이제 우주와 생명과 프로그래머의 본질에 접근하여 가고 있다. 인류의 이성은 지금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깨닫게 하고 능히 극복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인류는 자기의 감성 즉, 사랑, 기쁨, 슬픔을 마음껏 누리며 살 것이다. 그것이 행복이 아니겠는가? 철학은 종교가 다진 땅에 과학이 지은 멋진 집을 감옥으로 만드느냐 신나는 놀이공원으로 만들 것이냐 하는 것을 결정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와 그 시스템이 감옥으로 가고 있는지 놀이공원으로 가고 있는지를 판단해보자. 그리고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자.

 

   이 우주는 시뮬레이션이지만 우리의 영혼은 본질이다.

   우리의 미래는 지금 우리의 결정에 달려있다. 인터스텔라 영화처럼 다시 되돌아와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

 

   지금 깨닫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

 

   형제여! 눈을 떠라!

 

 

원문 ; 2014년 3월 19일

수정 ; 2014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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