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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레카 3(원본)

유레카3. 22장 높음과 넓음1 (59/73)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11.24|조회수168 목록 댓글 0

유레카 3 -쉰아홉번째이야기

 (우주 안에 높은 것은 없다. 높다는 것은 무지한 과거의 인류가 만든 잘못된 유물이다.  21세기 우주에는 높고 낮음이 아니라, 좁고 넓음만이 있을 뿐이다)

 

3부. 길

 

22장. 높음과 넓음 1

 

* 이 글은 <유레카3>의 59번째 글입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부 우주, 2부 생명, 3부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26장 73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지성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며, 인류와 생명의 진보와 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harmonism/JN41/146

 

 

 

   166. 쉬어가기 [시(詩)] - 오월!

 

내 인생 마흔아홉번째 오월이 오늘 시작하였다. 그 그제 낣작바위 성지순례 때 들쳐 올린 십자나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산 것이라 떼쓰고, 제대가 둘인 고성당 팔각창 옆 불란서신부의 무덤가엔 제비빛 꽃너울이 널려있다. 놀락봄비에 촉촉이 젖어버린 금강엔 문명을 먹은 팔뚝만한 붕어 한 마리 허옇게 배를 뒤집고, 유채꽃 꽃무리는 농부가 되어버린 시인에게 말괄량이 계집아이처럼 동동주나 한잔하며 같이 놀자 샛노랗게 재잘인다.

그렇게 사순절에 아홉을 더해 사십구제 진혼곡. 마흔아홉에 마흔아홉줄을 늘어선 사학죄인. 조선 천주학쟁이 순교자들의 얼과 혼을 모으고 모아 긴 부활송을 구슬피 부르던 어린 보좌신부의 낭랑한 목소리로 사월은 마침내 쌓이고 쌓인 주검과 주검을 퇴비 삼아 마른 고목에 새순 하나를 간신히 밀어 올려 오늘 오월 하나를 잉태하여 낳았다.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 철없이 생명이 돋아나고, 겨울 땅 속 어디 깊숙이 잠들어 있을 나의 옛 영혼은 이제사 간신히 피어올라 새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오월아! 나는 이제 너를 신부로 맞아도 좋으련. 한껏 소리치며 맘껏 취해도 좋으련. 하늘!

빠꼼이 문이 열려 커다란 눈 하나 내려다보니 사람아 네가 여기에 있었구나. 유혹과 사기가 판을 치는 에덴동산. 여기에 라일락처럼 향기로운 사람 하나 서 있다.

 

오늘은 마침내 오월이다.

 

                                                                                          2013년 5월 1일

 

 

 

   167. 높음의 상징 - 태양

 

   지구와 태양 중 어느 것이 더 높을까?

   이 어리석은 질문이 오늘 이야기의 말머리이다.

   전통적으로 태양은 인류에게 절대 지존이다. 태양은 으뜸신의 상징이며 황제나 왕을 표징한다.

 

   성탄절도 태양신 축제일에서 유래되었다. 예수가 태어나기 전인 기원전부터 로마, 이집트 등의 지역에서는 태양 숭배 및 관련 신화에 따라 12월 25일을 '무적의 태양신'(Sol Invictus) 축일로 기념하고 있었다. 1년 중에 해가 가장 짧아지는 동지(冬至)에 즈음하여 그 이후부터는 해가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에, 어둠이 물러나고 빛이 세력을 얻어 만물이 소생해 나갈 수 있음을 기념하기 위해서 12월 25일이 기념일로 지정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빛이 없는 상태가 어둠임을 알지만, 예전 사람들은 빛의 인자와 어둠의 인자가 별도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다.  하여 빛의 세력과 어둠의 세력이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고, 이 둘은 항상 싸운다고 생각하였다.  이 빛과 어둠이 추상화 된 개념이 선(善)과 악(惡)이며, 선의 세력인 천사와 악의 세력인 악마의 싸움이 생겨났다.  이제 나는 이 글을 통하여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한다.  빛이 없는 상태가 어둠이듯이 선이 없는 상태가 곧 악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나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은 악마가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내면에 있는 본유관념(本有觀念), 즉 양심(良心)을 발동하지 아니한 까닭이다. 

 

   아무튼 교황 율리오 1세는 서기 350년, 전통적인 태양축제일인 12월 25일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선포하였고, 이 때부터 이 축제가 '그리스도교'의 성탄 축제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위키백과 인용). 예수의 탄생일을 성탄절이라 하지만 사실은 예수가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지는 모른다.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성경의 기록에 따라 12월 25일 베들레헴의 마구간이라고 믿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생각이다. 우리에게는 예수가 인류에게 남겨준 그의 가르침이 소중한 것이지 그의 출생일이나 출생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2천 년 전 유대 사람들에게는 예수의 족보와 출생지는 그가 메시아로서 정통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고, 그로 인하여 예수는 동정녀의 아들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야만했다. 마르코복음서가 더 먼저 쓰여 졌지만 마태오복음서가 신약성경의 시작이 된 것은 마태오복음 처음에 예수의 족보가 나오는 까닭이다. 지금도 그것이 예수를 믿는 주요한 잣대라면 그렇게라도 믿어, 더 중요한 그분의 가르침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뜻을 신앙으로 삼아 살아가는 것도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한 방법일 것이다. 학자들의 견해로는 예수는 대략 기원전 4년 경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에서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수의 탄생이 지금 우리가 쓰는 서기력(西紀歷)의 기원이 되었지만 정작 예수는 엉뚱한 시간에 엉뚱한 곳에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성탄은  어린이에게는 희망을 가난한 이들에겐 구원의 약속을 의미하는 일종의 상징이다)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에도 태양이 힘을 잃는 개기 일식(日蝕) 날에는 왕이 일식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 까지 상복을 입고 제사와 의식을 지냈다는 기록이 세종시대에서부터 조선 말기까지 이어진다. 태양이 왕의 상징이고 태양이 가려지는 것은 왕의 권위를 헤치려는 보이지 않는 적들의 흉계로 보았기 때문이다.

 

(mbc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한 장면.  일식이 일어나자 왕이 소복을 입고 제사를 지낸다)

 

   하늘은 경배의 대상이고 하늘에 떠있는 천체 중 태양은 단연 숭앙의 대상이다. 인류에게 있어서 태양보다 높은 것은 없다. 실제로도 생명에 있어 지구가 어머니의 역할이라면 태양은 아버지의 역할을 한다.

 

 

   168. 높음의 의미

 

   <높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지구 해수면과 수직 거리의 차이.

   물리적인 높음이란 이렇게 정의하면 될 것이다.

   중력장의 범위 내에서는 모든 물체는 중력 본체의 방향으로 떨어진다.

   중력을 벗어난다면?

   그때부터는 높은 것이 아니다. 그냥 옆에 있는 것이다.

   태양은 지구보다 높이 있는 것이 아니다. 1억5천만Km 즉, 0.000015광년 떨어진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가까운 옆에 있는 것이다.

   모든 별들은 가까이 있느냐 멀리 있느냐의 문제이지 어느 별이 다른 별보다 높이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높다>란 것은 지구 중력장 안에서나 허용되는 참으로 협소한 개념이다.

 

 

   169. 높음과 넓음

 

   이제 우주를 알게 된 우리들에겐 높다는 것은 참으로 하찮다. 보편적으로 적용할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 '높음' 대신에 '넓음'을 사용해보면 어찌될까?

   '지극히 높은 하느님'에서 지극히 넓은 하느님으로, '자녀보다 높은 아버지'에서 '자녀보다 넓은 아버지'로, '직원보다 높은 사장님'에서 '직원보다 넓은 사장님'으로, '학생보다 높은 선생님에서 학생보다 넓은 선생님'으로, '국민보다 높은 대통령'에서 '국민보다 넓은 대통령'으로 개념을 바꿔보자.     

   멋지지 않은가? 우주 안에 높은 것은 없다. 높다는 것은 무지한 과거의 인류가 만든 잘못된 유물이다.  21세기 우주에는 높고 낮음이 아니라, 좁고 넓음만이 있을 뿐이다.

 

   예전 사람들은 신이 정말 하늘위에 있는 줄 알았다. 그리스 사람들은 올림포스 산꼭대기에 신들의 궁전을 상상하여 지었고, 서양이나 동양이나 하늘엔 천국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위의 시 '오월'에서처럼 하늘에서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옥황상제가 인간들을 빠끔히 내려다보며 상벌책에 일일이 기록하였다가 죽은 다음 천당으로 갈 사람과 지옥으로 떨어질 놈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종교의 영향으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지 많다.

 

(올림포스의 12신의 상상도)

 

   지금은 하루 수백만 대의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인공위성 수천대가 하늘에 떠서 지구와 우주를 감시하고 있고, 보이저 우주선은 태양계를 벗어나 길고 긴 우주여행을 하고 있지만 우주 어느 공간에도 하늘나라와 신들의 영역은 없다.  하늘을 뜻하는 영어 단어 Sky와 Heaven은 예전에는 별 차이가 없는 개념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다른 차원의 하늘이 되었다.

 

 

   170. 프로그래머의 위치

 

   우리는 지금까지의 글들을 통하여 생명체를 구성하는 육체 물질의 원소들이 태초부터 어떻게 우리에게 왔는지를 설명하였고, 그 모든 물질의 본질은 관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모든 생명은 한 프로그래머의 분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분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이 지구 생명 창조와 40억년 생명 진화의 역사이고, 흔히 우리가 영혼으로 부르는 생명자는 그 프로그래머의 의지가 우리에게 투영된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였다. 의지는 외부에서 오는 힘이다. 그러면 그는 어디에 있는가? 일천억 광년(자료에 따라서는 2400억 광년 혹은 5000억 광년 이상이라는 자료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숫자의 정확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지무지하게 크지만 그 크기의 한계가 있는 유한한 우주'라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으로 추정되는 우주 바깥에 있는가?

 

   우주 바깥은 맞지만 그리 멀리 있지는 않는 거 같다.

   우리 우주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라는 걸 이해하면 프로그래머의 위치를 바로 알 수 있다.

 

   우리도 컴퓨터 내부에 시뮬레이션 게임을 시행 할 수 있다. 컴퓨터의 용량이 허락한다면 가상 시뮬레이션 공간을 우주처럼 거의 무한대로 확장 할 수도 있다. 그때 게이머의 위치는 어디에 있을까? 시뮬레이션 공간이 아무리 넓어도 그곳이 어디든 바로 그 앞에서 게이머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같은 공간, 다른 차원에 그와 내가 공존한다.  Sky는 나와 떨어진 공간이지만, Heaven은 내 머리속에 나와 함께 있는 공간이다. 

 

   <우주의 프로그래머가 어디 있느냐?>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나와 함께 있다.>고 나는 답할 것이다.

   <의지는 외부에서 오는 힘이다.>라고 나는 정의하였고 뇌라는 생체장치를 통하여 치열하게 생각들이 날아다니는 공간.   그 공간은 우주 내부가 아니라 우주 외부의 공간이다. 우리 우주의 밖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가까에 우리와 함께 있다.

 

   나는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지만, 나는 나와 너무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나를 보지 못한다.

   하여 우리는 나의 생각, 감정 등 의지가 작용하는 나만의 공간에 프로그래머의 분사가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지만 그것이 내가 나를 인식하기 그 전부터 존재하였던 나인지라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있지도 않은 하늘 높이 엉뚱한 곳에서 그분을 찾는 것이다.  [하늘(Heaven)>]은 우주의 외부이지만 나의 내부에 있고, [하느님] 또한 우주의 외부이지만 나의 내부에 나와 함께 있다.

 

   데카르트의 깨달음. 생각이 곧 존재이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스스로 있는 자. 즉, 존재자는 나이며 곧 그이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곧 그가 존재한다는 증거이고, 그의 존재로 내가 존재한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그가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그와 나는 항상 함께 존재한다.  2014년 11월 9일 안양 수리산 공군부대길, 이 아름답고 한적한 길에 나와 그가 함께 있었다.)

 

원문 ; 2014년 3월 17일

수정 ; 2014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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