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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레카 3(원본)

유레카3. 20장 진실과 진리2 (56/73)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11.17|조회수213 목록 댓글 0

유레카 3 -쉰여섯번째이야기

 (우리의 새로운 진리는 바다위에 점점 떠 있는 섬과 같은 생명들의 독창성을 인정하면서 그 심연으로 굳게 연결된 대지(大地)를 인식함에서 시작될 것이다)

 

3부. 길

 

20장. 진실과 진리2

 

* 이 글은 <유레카3>의 56번째 글입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부 우주, 2부 생명, 3부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26장 73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지성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며, 인류와 생명의 진보와 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harmonism/JN41/146

 

 

 

 

   157. 밤은 왜 어두운가? - 올버스 패러독스

 

   밤이 되면 하늘은 어두워진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17세기 천문학자 케플러(Johannes Kepler)는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품은 최초의 과학자였다. 만약 항성의 숫자가 무한하고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다면, 항성들은 밤하늘의 모든 부분에 골고루 퍼져 있을 것이고, 항성들 사이에 간격이 벌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늘은 온통 항성의 별빛으로 가득 차 온 하늘은 불덩어리처럼 빛나고, 뜨거운 열로 지구를 불태울 것이다. 그러므로 지구상에는 어떤 생물체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케플러는 우주가 무한한 것이 아니라 유한하다고 주장하였다. 즉, 우주가 유한하기 때문에 온 하늘이 별들로 꽉 차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답이다. 우주가 유한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 우주의 별들과 은하가 지구의 하늘을 가득 채우지 못할 정도로 적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주 망원경으로 보면 우리의 하늘은 빈틈없이 별들과 은하들로 가득 차 있다.

 

 

(밤하늘에 저 많은 별이 있지만 밤은 어둡다. 그것을 고민한 사람들이 있었고, 우주의 유한성이라는 위대한 진실을 깨달았다.

이 진실은 무한을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제시한다.)

 

 

 

   밤의 어두움은 케플러뿐만 아니라 1820년대에 활동한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하인리히 올버스(Heinrich W. M. Olbers)에게도 궁금증을 안겨주었다. 그는 천체 관측을 통해서 당시 유행하던 이 수수께끼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밤마다 브레멘에 있는 자신의 집 꼭대기 층에서 혜성과 소행성을 관찰했다. 케플러와는 달리 올버스는 우주가 무한하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믿음이 어두운 밤하늘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제안했다. 우주는 항성과 항성 사이에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구름으로 가득 차 있고, 이 구름이 별빛을 가로막아서 마치 햇볕을 가리는 양산처럼 항성의 빛을 어둡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불러낸 구름은 밤하늘의 역설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무한한 우주에서 별빛은 그 구름을 가열시켜서 끝내 붉게 타오르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밤하늘은 결국 케플러의 생각처럼 밝게 빛나게 된다. 이후 이 밤하늘의 수수께끼는 (케플러를 비롯해서 그보다 앞서 비슷한 고민을 했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공정한 일이지만) "올버스의 패러독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패러독스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과학자가 아닌 한 시인이 발견했다. 그는 에드거 앨런 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의 무시무시한 소설들, 중세풍 공포 문학, 그리고 그의 혼란스러운 개인적 삶, 마흔 살의 나이에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심한 음주벽 등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과학, 특히 천문학에 대해서 비상한 관심을 가졌으며, 프랑스의 천문학자 피에르 시몽 드 라플라스(Pierre-Simon de Laplace)의 성운 가설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라플라스의 성운 가설에 따르면 태양계는 먼지와 가스로 이루어진 원시 구름에서 생겼다고 한다. 포는 그 가설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 본질에 진실을 간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썼다. 그 가설은 포를 고무시켜서 우주론에 대한 에세이 "유레카(알았다!): 산문시"를 쓰게 만들었다.

 

 

(204년 11월16일 단양의 구담봉, 옥순봉, 도담삼봉을 돌아보았다. 이 지루한 글에 마땅한 참고자료도  없고 눈이라도 쉬어가시라 잘나온 사진 몇 장을 올려본다.) 

 

 

  포의 견해에 따르면 올버스의 패러독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배경의 거리가 너무 방대해서 그곳에서 나오는 어떤 빛도 우리에게 전혀 도달 할 수 없기 때문에" 풀릴 수 있다. 포를 난처하게 만든 것은 우주가 무한히 오래된 것이 아니라 시간적인 측면에서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우주는 아주 젊기 때문에 먼 거리의 항성에서 나온 빛은 여전히 매우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볼 때, 우리는 항성들이 태어나기 이전의 시대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은하들의 나이는 유한하고 우주의 공간은 상대적으로 넓다. 그 유한한 세월 동안 은하들이 방출한 빛의 양이 밤하늘을 밝히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즉, 은하들의 생애동안 빛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는 유한하므로 밤하늘을 밝히려면 그 훨씬 이전에 형성된 은하가 있어야 하고 무한대의 거리에서 오는 빛도 있어야 한다. 포는 우리 우주의 시간적 유한성에서 이 해답을 찾았다.

 

   포가 당시에는 설명하지 못한 올버스의 역설에 대한 두 번째 과학적인 설명은 우주팽창에 따른 은하의 후퇴운동이다. 은하가 후퇴하면 그곳에서 나오는 빛은 적색이동(赤色移動. red shift, 별이 멀어지면 별의 스펙트럼이 고유의 파장보다 긴 적색 파장 쪽으로 이동한다. 멀리 있는 별일 수록 이 현상은 더 심해진다.)을 일으켜서 밝기가 약해지고 적외선, 전파 등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이 아닌 다른 형태의 빛으로 지구에 도달한다. 그래서 은하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거리가 먼 은하들은 더 빠른 후퇴운동을 하므로 그들의 밝기는 이와 비례해서 더 흐려진다. 이 계산에 따르면 모든 은하의 밝기는 밤하늘 밝기의 0.3%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지만 이런 이유로 밤하늘은 어두운 것이다.

 

(구담봉 가는길에서 본 충주호와 유람선)

 

 

 

  158. 유한한 우주

 

   우리 우주는 유한하다.

   이것은 우주는 영원무궁하다는 과거의 관념과 배치된다.

   또 하나의 진실이 바뀐 것이다.

   이 진실의 변화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통째로 바꾸는 대사건임에 틀림없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무한의 우주에 살고 있다. 우리 우주가 유한한지 무한한지를 일반인들에게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한하다고 답할 것이다. 이는 과학적인 지식이 부족한 이유도 있겠지만 우주는 영원무궁의 상징이라는 과거 관념의 지배를 받는 탓도 있을 것이다.

 

   유한의 우주에서 인간이 무한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자본의 무한축적이 가능한 사회가 그것이다. 공간적 무한도 부족해서 시간적 무한 즉, 상속이라는 이름의 세습을 통해 부와 권력을 영원의 시간으로 확대하려한다. 자본주의의 부조리는 여기서 시작되고, 또한 이의 해결이 우리의 진보와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옥순봉에서 - 저 멋진 곳에 내가 있었다.  옥순봉은 퇴계선생이 이 곳 바위 절경이 옥빛의 대나무순 같다하여 붙인 이름이라한다.)

 

 

 

 

   160. 진리의 진화

 

   우리 우주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이라든지, 의지가 프로그래머에 의해 우주 외부에서 온 것이라든지, 모든 생명은 하나의 의지에서 나온 형제 관계라든지 하는 것을 과학이 증명하려면 아마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여 나는 철학의 도구인 이성적인 논리로 이를 설명하였고 이 철학적 사실 아래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진리의 문제를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진실과 진리의 개념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있다.

 

   진리를 용어로 풀어보면 참된 이치이다.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용어이다.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는 모두 다르다. 인생도 어렸을 때, 젊었을 때, 늙었을 때 살아가는 이치는 당연히 달라야한다.

부자가 살아가는 이치가 다르고 가난한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달라야 한다.

산에 사는 사람과 바닷가에 사는 사람의 사는 이치가 다르고, 더운 곳에 사는 사람과 추운 곳에 사는 사람의 사는 이치도 당연히 다르다.

 

   그러므로 삶을 살아가는 참된 이치, 즉, 진리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이다. 우리 세상에 60억 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면 진리는 60억 개가 필요한 것이고, 수 경, 수 해의 생명체가 있다면 그 하나하나의 생명마다 살아가기 위한 진리가 필요한 것이다.

진리를 특정 짓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그 특정을 벗어나는 모든 것은 거짓이 되거나 심지어 죄가 되기도 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성경구절을 써놓고 진리를 자기 나름대로 특정해 그 울타리 안에서만 사는 것을 자유라고 한다면 너무 우습지 아니한가?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 그대로 자유이다.

 

 

(옥순대교를 내려다 보며. 사람이 만든 인공물도 대자연과 어울리니 한 폭 멋진 그림이다. 인류의 문명도 대자연에 녹아 멋지게 어울려야하지 않겠는가?)

 

  생명은 의지이며, 의지는 물질의 결정성과 확률성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다. 우리의 프로그래머는 생명 즉, 의지가 주는 자유를 만끽하라고 자기 의지를 분사한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나는 홀로 동떨어져 있는 독립된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생명은 개별 개념이 아니라, [힘]과 같은 상호 개념이다.

   우리는 한 프로그래머에게서 나온 거대한 하나의 생명군집이다.

  우리는 아직 지성의 문이 열리지 않아 내가 나를 보지 못하듯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였을 뿐이다. 이제 인간이라는 독특한 지적생명체는 그것을 서서히 깨닫게 될 것이다. 사실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은 이것을 오래전에 깨닫고 사랑으로, 자비(慈悲)로 혹은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생명을 대하라 하였다.

 

   우리의 종교가 어떠하든 혹은 무신론자이든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그대의 치장일 뿐이다.

  우리는 섬처럼 하나하나 외동 떨어진 생명체로 느껴지지만 사실은 바다 밑에 땅으로 다 연결되어 있듯이 결국은 하나의 생명군락이다. 우리의 새로운 진리는 이 섬들의 독창성을 인정하면서 그 심연으로 굳게 연결된 대지(大地)를 인식함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것은 생명 그 자체가 목적인 사회로의 진화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프로그래머가 어울려 살아가는 [어울누리] 사회로의 진화이다.

 

(하산길. 길 가에 핀 억새가 참으로 고왔다.  저 억새와 나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생명의 심연에는 저 생명과 나의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

 

 

   우주를 보라!

   이 광활한 우주에 먼지보다도 작은 우리 지구. 아직까지는 우리밖에 없지 않은가? 혹은 생명체가 사는 별이 몇 더 있다 하더라도 생명은 너무나 독특하고 진귀하며 소중하고 중요하다.

 

   이제 우리는 우연히 인간으로 태어나, 우리의 지성을 마음껏 활용하여 우주와 생명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순환되는지를 알게 된 최초의 사람들 혹은 생명체일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우연이라는 말을 쓴 것은 태어남의 경위를 모른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필연적인 조건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불교적인 윤회의 입장에서 생각해도 좋고 또 다른 이유를 붙여도 상관은 없을 듯하다. 아무튼 우리 우주와 생명 자체가 우연이아니라 작용이므로 우리 우주 안에 우연히 발생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설레지 않는가?

   지구가 평편하지 않고 둥글다는 것을 안 최초의 사람이 있었다.

   빛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안 최초의 사람이 있었다.

   밤이 왜 어두운지를 알게 된 최초의 사람이 있었다.

   우주가 유한하며 시작점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최초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우주가 어떤 형태이고 생명이 무엇이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지를 알게 된 최초의 사람들이 지금 여기 눈앞에 있다.

 

   우리는 진실에 아주 가까이 있고, 그것은 새로운 진리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동굴 안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눈을 뜨고 일어난다.

 

 

(단양팔경의 으뜸 도담삼봉에서 아내와 함께.  이 외로운 인생길에 짝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의 벗이며, 사랑인 나의 아내가 참 좋다. 이 사진은 다른 분에게 부탁한 사진이고, 나머지 사진은 다 아내의 작품이다.)

 

 

원문 ; 2014년 3월 10일

수정 ; 2014년 11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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