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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레카 3(원본)

유레카3. 19장 진화2-4 (53/73)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11.12|조회수151 목록 댓글 0

유레카 3 -쉰세번째이야기

 (진화를 위하여 우리 모두는 우주와 생명에 관한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알았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지를?)

 

2부. 생명

 

19장. 진화2-4

 

* 이 글은 <유레카3>의 53번째 글입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부 우주, 2부 생명, 3부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26장 73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지성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며, 인류와 생명의 진보와 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harmonism/JN41/146

 

 

 

   147. 진화 5단계 인간(人間) - 지성의 진화. 신을 깨닫다

   나는 이제 생물의 5단계 진화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앞에서 말한 4단계의 진화 즉 진핵세포로의 진화, 다세포 생물로의 진화, 성의 분화로 인한 진화, 눈의 진화는 지금 살아있는 거의 모든 생물종이 공통으로 공유했던 진화이다. 이 진화에 동참하지 못한 생물종은 도태되어 멸종하였다. 그러나 5단계 진화는 조금 특수하며 특별하다. 그것은 인간의 진화이다.

 

   인간(人間)!

 

    이 독특한 생물종이 특별한 까닭은 지성(知性)의 진화(進化)이다. 생물학적으로만 본다면 인간은 다른 생물종에 비해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인간의 진화가 특수 한 것은 지성의 진화를 통해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형이상학적인 사고란 인간이 별을 본다는 의미이다. 형이상학이 형상화 된 것이 종교, 과학, 그리고 철학이다. 형이상학이 기술이 되고 생활이 된 형이하학적인 산물의 결과를 우리는 문명이라 부른다.

 

    인간의 지성이 별을 보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우주와 생명의 본질에 대하여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문 앞에 서 있다. 동굴을 나가는 문이다. 진실을 통해 진리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판단을 하여야한다. 이미 우리는 우주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된 누군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제 생명에 대한 판단을 하여야한다. 생명은 우연의 산물인가, 누군가의 작품인가 하는 판단을 하여야 한다. 지구 생명 40억년의 치열한 진화의 결과가 단지 우연의 산물이라면 무(無)에서 유(有)가 창조되듯이 생명이 시작되었을 리도, 수많은 멸종의 위기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을 수도, 끈질기고 악착같이 변화와 혁신을 통해 지금까지 연결될 수 있는 지를 판단하여야 한다. 공교롭게도 나의 글의 대부분의 참고자료는 무신론적 우연성을 강조하는 학자들의 자료가 대부분이다. 유신론적인 창조를 기반으로 하는 자료는 자기가 믿는 신에게 창조의 초점을 맞춘 까닭에 사실 인용할만한 가치가 떨어지거나 심각하게 왜곡되고 오염되어 있어 쓸 만한 자료가 없었다. 예를 들어 고생대의 생명의 폭발현상을 창조의 시점으로 본다든가 생명의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든가 미토콘드리아 이브나 Y염색체 아담을 연결시켜 억지로 인간의 창조를 창세기에 짜 맞추려고 하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차라리 슬프기까지 하다. 성경은 문구가 아니라 그 문구가 품고 있는 의미가 중요하다.

 

 

   148. 갈릴레이와 브루노

 

    "해야, 기브온 위에,

    달아, 아얄론 골짜기 위에 그대로 서 있어라."

 

    그러자 백성이 원수들에게 복수 할 때까지

    해가 그대로서 있고

    달이 멈추어 있었다. (여호수아 10,12-13)

 

    이 성경구절은 지금부터 약 3300년 전 경 이스라엘의 여호수아가 아모리족과 전쟁을 할 때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이 문구를 어찌 해석하는 것이 옳은가?

 

   ‘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용기백배 사기충천한 이스라엘 군인들이 아모리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로 정리해보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구절은 유명한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에 사용되었다. 신성모독은 죽음의 죄이고 성경의 무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신성모독에 해당된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아는 것 같은 재판관이 화려한 성직자의 옷을 입고 높디높은 의자에 앉아, 꿇어 엎드린 갈릴레이에게 묻는다.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하였느냐? 지구를 멈추게 하였느냐? 태양이 지구를 돈다면 태양이 멈추어야하고, 지구가 태양을 돈다면 지구를 멈추어야하지 않겠느냐?"

 

    힘없고 가난한 과학자 갈릴레이는 이 무지(無知)의 폭력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우주는 무한하게 퍼져 있고 태양은 그 중에 하나의 항성에 불과하며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들도 모두 태양과 같은 종류의 항성이다." (조르다노 브루노)

 

(조르다노 브르노의 초상화 ; 이 슬픈 철학의 순교자는 아무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통찰은 인간의 역사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조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년 ~1600년 2월 17일)는 이탈리아의 사상가이며 철학자이다. 그는 도미니코 수도회의 수도자이기도 하였다. 16세기. 이 얼마나 위대한 발견인가? 갈릴레오보다 16년 먼저 태어난 이 천재는 자기의 발견을 너무나 기뻐했을 것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지구 위에 태양과 달과 별들이 촘촘히 걸려있다고 믿었던 중세의 작은 우주관에서 우주의 영역은 무한히 넓어졌다. 그에게는 하느님의 영역이 그 영광의 영역이 그 만큼 늘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우물 안에 개구리였던 중세의 지성은 그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와 성경을 부정하는 신성모독과 이단으로 몰고 간다. 그의 기쁨은 슬픔과 공포로 바뀌고 그는 이탈리아를 떠나 종교개혁 이 후 사상의 폭이 조금은 넓어지고 자유로워진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의 위대한 발견을 설파하려 한다. 그러나 영국에서마저 그의 위대한 우주관은 조롱거리가 된다. 그는 고향이며 가톨릭교회의 중심인 이탈리아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던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과 같은 마음이었을까? 그는 1591년 현재의 이탈리아 땅인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체포되어 8년간의 감옥 생활을 하며 온갖 고문과 회유를 당한다. 그러나 회유에 굴복하지 않았던 그는 결국 로마 교황청 이단 심문소로부터 이단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아 로마에서 공개적으로 화형에 처해졌다. 화형을 당할 때 그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말뚝에 묶여 있는 나보다 나를 묶고 불을 붙이려 하고 있는 당신들 쪽이 더 공포에 떨고 있다."

 

    진리를 설파하였으나 십자가형에 처해진 예수와, 진실을 이야기했으나 화형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조르다노 브루노.

 

    우리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하여 좀처럼 바꾸려하지 않는다.

 

 

   149. 생명은 우연인가?

 

    우연이라고 믿는 학자들에게 아무리 우연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여도 좀처럼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과학자들도 인정하는 것은 지구의 모든 생명은 하나의 조상으로 부터 출발하였다는 것이다. 생명이 만약에 우연히 생긴 것이라면 마땅히 우연히 만들어진 여러 생명체의 후손들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또 지금도 어느 곳에선가는 새 생명이 우연히 만들어져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지난 40억년동안 생명은 단 한그루의 생명나무를 가지고 진화해왔다.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창조되었고, 마치 레벨을 높여가며 점점 힘이 세어지는 RPG(Role Playing Game)게임처럼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좀 더 멋지고 강하게 진화하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또한 그 진화의 순간순간마다 창조자의 의지가 개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게임의 캐릭터가 스스로 레벨을 올릴 수는 없듯이 진화의 레벨도 스스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누군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미 이야기하였듯이 우리의 생각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BIG IDEA의 산물이며 얼마의 시간 후에는 모두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의 창조자는 ‘빛이 생겨라!’로 시작하는 전지전능의 천재형 하느님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자기를 희생하여 우주를 만들고, 죽을 때 그의 몸에서 나온 구더기로 생명을 창조한 반고(盤古) 하느님 쪽에 더 가깝다. 우리의 하느님은 노심초사 생명을 지켜내고 번성시키려 무지무지 노력하는 노력파 성실형 하느님의 모습인 것이다.

 

    반면 창조론자들은 오로지 자기들 경전에 모든 것을 맞추려한다. 자기가 믿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은 마치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처럼 위험하다. 유연성 없는 신념과 신앙은 세상을 하나의 잣대로만 재단하려 한다.

 

    한 종(種)의 생명체에서 다른 종의 생명체로 분리되는 과정은 DNA의 단순한 변이(變異)가 아니라, 기존의 종을 밑바탕으로 새로운 DNA의 생성(生成)으로 이루어진다. 이 전환의 과정은 한 종 생명체의 연속(連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창조(創造) 메커니즘이다.

 

    이글은 ‘1부 우주’의 마지막 ‘10장 생명자’에서 내린 결론이다. 똑 같은 말을 ‘2부 생명’의 마지막에도 써야 할 것만 같다. 

 

 

   150. 인간 진화의 목적 - 내부 조력자

 

    다시 5번째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진화에 창조자가 개입하였다면 대부분의 생명에게 주어진 4단계의 보편적 진화와는 달리 오직 인간에게만 주어진 지성의 진화인 5번째 진화에는 그 특수한 목적이 있을 것이다. 지성은 창조자가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종교를 통하여 그가 존재함을 느꼈고, 과학을 통하여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를 알게 되었고, 철학을 통하여 그의 목적을 깨닫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목적이 무엇일까? 나는 한동안 고민을 하였다. 며칠을 숙고하고 명상을 한 후 깨달은 것은 안타깝게도 창조자는 인류에게 도움을 요청하신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명상의 결과가 틀렸기를 바란다. 너무나 안타깝지 아니한가? 인간은 신에게 기도를 해야 하는데 오히려 창조자가 인류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

 

    그 분은 생명의 지구와 생명의 우주를 지켜내는 일에 내부의 조력자로서 인류를 지목하였다. 그리고 길게는 수백만 년, 짧게는 수십만 년을 준비하고 최근 몇 천 년 동안은 인류의 진화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였다. 인류의 모든 민족의 시작은 신화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인류는 불과 몇 천 년 사이에 순식간에 지구를 완전히 점령한다. 문명을 통하여 인류는 엄청난 힘과 지혜를 얻었다.

 

    이제는 이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인류는 장님의 코끼리처럼 서로 다른 종교, 서로 다른 문화를 통하여 발전하였다. 그러다 몇 백 년 전 인류는 지구의 형태와 거기에 흩어져있는 종족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지금의 지구 세계는 완전히 통한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고, 필요하다면 그 곳의 구성원들과 소통할 수도 있다.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모은 지혜는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에서 넘실되고 있다.

 

    형이상학인 종교와 과학과 철학은 서로 다른 방향 에서 한 곳을 보고 있다.

 

    [근본 질문]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제는 형이상학의 융합이 필요하다. 인류의 지성이 지금까지의 모든 지혜와 깨달음을 통하여 마침내 그분이 만든 우주와 생명의 본 모습을 보고, 그 분의 대의지(BIG IDEA)를 깨달아 인류의 의지가 창조자의 대의지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이 글의 목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믿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 분의 파트너가 될지 오히려 문명의 이기를 잘못 이용하여 6번째 생명 대멸종의 주범이 될지는 지금부터의 인류의 판단에 달려있다.

 

 

  151. 진화 업그레이드 - 창조의 영역

 

    어느 날 인디펜던스 데이(Independence Day)라는 영화를 본 딸아이가 외계인의 존재에 대하여 묻는다.

 

    나는 아마도 존재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외계인이 있다면 ‘지구를 침략할 것 같으냐?’고 묻는다.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왜냐고 다시 묻는다. 영화를 보면 나쁜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하여 인류를 멸망시키려하고, 외계인이 거의 승리할 무렵 용감한 영웅이 나타나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이라고 반문한다.

 

   나는 답한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한다고 믿는 것은 만약 현재의 인류가 외계인의 별을 발견하고 그들이 인류보다 약하다고 판단하면 정복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바타라는 영화에서는 인간은 욕심 때문에 외계를 침략한다. 그것이 현재까지의 인류의 문명 수준이다.

 

    인류의 문명은 싸움을 통하여 발전하여 왔다. 물론 지구 생명도 싸움을 통한 진화과정을 겪어왔다. 그러나 이 싸움의 문명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결국 인류는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인류는 이미 인류뿐만 아니라 지구 생명 모두를 멸종시킬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과학기술을 볼 때 앞으로 훨씬 더 큰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결국 인류가 싸움의 레벨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이 힘을 사용할 것이다. 그것은 곧 자멸이다. 인류는 이미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보다도 월등히 우월한 존재가 되었다. 이 우월성을 싸움을 하는데 지속적으로 사용할지 인류를 포함한 다른 생명체와 지구의 보호자가 되는데 사용할지는 인류의 선택이다.

 

    이 업그레이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인류의 과학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우주를 여행할 수 있을 것이고, 어떤 행성에서는 외계생명체도 발견할 것이다. 그때 우리가 할일은 이 행성을 파괴하거나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멀리 떨어져서 혹은 뒤에 숨어서 그 곳 생명체들이 잘 번성하고, 지구와 같은 또 다른 생명의 별인 이 행성이 잘 보존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 지구에 수십 광년 혹은 그보다 훨씬 더 먼 곳에서 지구를 방문한 손님이 있다면 그들도 마땅히 우리에게 그러할 것이다. 그러므로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할 가능성은 매우 적다. 적어도 그들은 이미 피조물의 영역을 넘어 창조자의 영역으로 들어섰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인류가 과연 피조물의 영역을 넘어 창조자의 영역으로 진화해 5번째 진화 모험이 성공으로 끝날지, 아니면 끝까지 지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다 결국 멸망의 길을 걸어 또 하나의 실패한 진화로 기록될지 초조하게 지켜보는 이가 있다. 40억년 생명의 역사에서 모든 진화가 다 성공한 것은 아니다. 말했듯이 우리의 창조자는 실패를 모르는 전지전능 천재형 하느님이 아니라, 온갖 실패와 역경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묵묵히 전진하는 노력형 초절정 성실파 하느님이다. 그분은 실패를 안타까워는 하겠지만 두려워 할 분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진화에 실패한 생물종은 생명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고 진화에 성공한 생물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6500만 년 전 유카탄 반도에 떨어져 공룡을 멸망시켰던 지름 10km짜리 소행성이 다시 온다면, 현재의 인류는 능히 그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추측이기는 하지만 소행성 충돌로 완전히 멸망의 길을 걸었던 화성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주의 역사를 우리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주 내부에 있으므로 그 일이 가능하다. 나의 생각에 소행성이 지구로 오는 것은 우주 내부의 시스템의 문제이므로 외부에서의 조종은 불가능할 것이다. 게이머가 캐릭터는 움직일 수 있지만 프로그램을 바꿀 수는 없는 것과 같다. 내부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내부에 있는 우리들 밖에 없다. 이것은 5번째 진화의 이유이며 또한 목적이다.

 

    만약 인류의 과학이 좀 더 발전한다면 2억 5천만 년 전 고생대 페름기 말에 있었던 대재앙도 과학기술로 예방하거나, 혹은 노아의 방주처럼 생물종들을 데리고 잠시 피신하였다가 다시 돌아오거나 아니면 새로운 행성을 찾아 정착해 생명의 역사를 이어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류가 더 큰 힘을 얻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창조자의 영역으로의 진화의 완성이다. 그것은 싸움의 굴레를 벗어나는 일이다. 그 진화를 위하여 우리 모두는 우주와 생명에 관한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알았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지를?

 

    유-레-카(Eureka)

 

 

    152. 동굴

 

    나는 지금 생명의 복도의 끝자락인 진리의 문 앞에 서 있다. 지난 50억 년 간 태양과 지구에서 일어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우리는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살아남았고 이제야 비로소 창조자의 조력자가 될 수 있을 만큼 진화하였다. 내가 이 동굴의 문 앞에 서 있듯이 인류도 지금 5번째 진화의 문 앞에 서 있다. 인류가 이 문을 보고자 한다면 볼 것이고, 열고자 한다면 열릴 것이다.

 

    진실을 아는 만큼 진리를 볼 수 있다.

 

    나는 문을 연다.

 

 

(문을 열면 새로운 길이 있다. 우리는 저 닫힌 문 넘어에 무엇이 있을까 미리 두려원한다. 그러나 누군가 한사람이 저 길을 걸어가면 비로서 그 길이 길이 된다. 사진 : 2014년 8월2일 안산 갈대습지공원)

 

원문 ; 2014년 3월 6일

1차 수정 ; 2014년 10월 10일

2차 수정 ; 2014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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