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유레카 3(원본)

유레카3. 19장 진화2-1 (50/73)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4.11.12|조회수173 목록 댓글 0

유레카 3 -쉰번째이야기

 (자기중심적인 관점이라면 물질은 실존이고 관념은 허상이다.  그러나 우리 우주를 한발 떨어져서 관찰한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물질은 관념이 되고 관념은 실존한다)

 

2부. 생명

 

19장. 진화2-1

 

* 이 글은 <유레카3>의 50번째 글입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한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고, 그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부 우주, 2부 생명, 3부 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26장 73편의 이야기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글을 접하시는 모든 분들이 제가 깨달은 것을 함께 깨달아, 지성의 즐거움을 함께 만끽하며, 인류와 생명의 진보와 진화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 글 바로가기 > http://cafe.daum.net/harmonism/JN41/146

 

 

 

    134. 관념우주 - 생각이 곧 존재이다.

 

    [존재]

 

    자아(自我)가 자아에게 묻는다.

    "존재(存在)란 무엇인가?"

    "감각(感覺)하는 것인가? 의식(意識)하는 것인가?"

    "그대가 감각하는 것은 진짜인가?

    혹시 그대가 의식하는 것이 가짜인가?"

 

    어쩌면 장자(莊子)의 꿈처럼 그 반대일수도 있지 않을까?

 

    시인(詩人)의 말처럼 인생은 한바탕 꿈.

    꿈 꾼 후에 그대는 어디서 깨어나는가?

 

    그대가 믿는 것이 진짜라고 생각하지 마라.

    믿는다는 것은 모른다는 말과 같다.

 

    과학적이란 말에도 현혹되지 마라.

    과학은 우주에 대해 이제 고작 4%만을 지각했을 뿐이다. 96%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는가?

 

    [데카르트의 깨달음.]

 

    우리가 잘 아는 명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라는 말은 사실 수정 전의 말이다. 훗날 그는 이 말을 "생각한다. 존재한다."라고 바꾸었다. 이 두말이 가지는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앞의 명제는 인과적 관계이다.  생각하므로 존재한다.

 

    그러나 뒤의 말은 생각이 곧 존재란 의미를 가진다. 데카르트는 의식적으로 이 말을 바꾸었지만 사람들은 바꿔주는데 동의하지 않았다. 앞의 말은 그나마 이해가 되고 멋진 명언 같지만 뒷말은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가 감각하는 것은 확실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만 생각과 같은 관념은 마치 바람과 같아,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있다고 할 수 없는 신기루와 같지 않은가?

 

   그러므로 생각하므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에는 간신히 동조할 수 있어도, 생각 그 자체가 존재라는 것에는 도저히 동의 할 수 없다. 데카르트가 술 한 잔 마시고 실언을 한 것과 같으니 뒤의 말은 위대한 천재 철학자이며 수학자인 그를 위해서라도 무시하는 편이 더 나은 것 같다.

 

   그러나 말을 이렇게 바꿔 보면 어떠할까?

 

    우리가 감각하는 우주는 사실은 관념이고, 우리의 관념이라고 생각하는 생각 바로 그것이 실존이다. 

   

    관념 우주(觀念 宇宙).

 

    우리는 혹시 컴퓨터 게임의 캐릭터처럼 가상의 공간 즉 관념의 공간에 있으므로 가상인 관념을 실존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을까? 캐릭터의 입장에서는 캐릭터 스스로가 실존이고 그를 움직이는 의지가 관념으로 느껴지겠지만, 게임 밖에서 본 상황은 캐릭터가 관념이고 그를 움직이는 의지가 실존인 것이다.

 

 

   135. 관념우주 - 무(無)는 유(有)다

 

    우리 우주는 규칙을 잘 지키는 정형화된 실존체(實存體) 같지만,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그 근본과 본질은 허구적이다.

 

    138억 년 전의 어느 날 무한대의 질량과 무한대의 에너지를 가진 어떤 한 점이 느닷없이 대폭발을 일으켰다.

 

    이 말과 우주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세계에서 찰나의 순간에 유(有)의 세계가 형성되었다는 불교적 우주관이나, 어느 순간 ‘빛이 생겨라!’로 시작되는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창세기를 경전으로 삼는 유일신 종교의 창조론이나 결국 다른 것은 없지 않은가?

 

    과학은 빅뱅 후 우리 우주를 설계한 인플레이션 팽창에 대해서도 아는바가 없다.

 

    인플레이션 팽창의 전제는 평탄한 우주이다.

 

    단언하거니와 누군가 우주의 밀도를 정확하게 계산하여 입력하지 않는 한 평탄한 우주는 불가능하다.

 

    거대한 우주를 움직이는 힘은 중력이지만 중력의 기준인 질량은 힉스에 의해 주어진 값일 뿐 우주의 본질은 아니다.

 

    이 때문일까? 과학이 찾아낸 17개의 기본입자에는 중력자는 없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로는 힘은 매개입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강력, 약력, 전자기력은 그 매개입자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17개의 기본입자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중력의 매개입자인 중력자는 이론만 있을 뿐 실존은 없다. 중력자를 못 찾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뻔히 존재해야하고 질량이 있는 곳 어디에나 흔하게 존재해야할 중력자의 부재는 우주의 근본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게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과학이 우주에 대해 지각한 것은 물질이라 불리는 전체 우주의 고작 4%에 불과하다.  22~23%에 달하는 암흑 물질과 무려 73~74%에 달하는 암흑에너지에 대해 과학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유물론적 철학과 우연의 우주와 진화의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마치 4점짜리 수학 시험지를 받아들고 수학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척척박사인 것처럼 우쭐되는 어리석은 어린 아이와 다를 것이 없다.

 

    또한 우리 우주가 65억 년 전 부터 가속 팽창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과학은 아무 해답도 내어놓지 못한다.

 

    결국 과학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말단의 현상만을 겨우 이해하고 이용하고 있는 것이지 우주의 근원적이며 근본적인 실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는 것이 없거나 심지어 가속 팽창과 같이 과학이 세운 규칙에 역행하거나 평탄 우주와 같이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에 대한 나의 철학적인 판단은

    우주는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것이고

    우리 우주의 본질은 가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 우주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다.

   우리는 게임 속 우주처럼 어느 날 갑자기 툭 생겨났다.

 

 

   136. 관념과 실존의 착각

 

    철학은 관념과 의식 등과 같이 정신적인 것을 근본으로 하고자 하는 기조와, 물질을 근본으로 하는 기조로 나뉜다. 이것은 우리 우주의 근본을 무엇으로 보고자 하느냐의 문제이다.

 

   앞의 기조를 관념철학이라 하고 뒤의 기조를 물질철학이라고 해보자. 물론 모든 철학에는 이 두 가지 관점이 적당히 혼합되어 있지만 어느 것을 더 중요시 하는지는 가릴 수 있다. 관념 철학은 종교에 가깝고, 물질 철학은 과학적인 판단을 중요시 한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확실히 관념 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 철학의 대부라 불릴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가히 학문의 아버지라 불릴 만큼 위대한 철학자이다. 학문의 분류가 그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그 위대한 철학자의 오류는 인류의 지성이 진보하는데 커다란 막힘 돌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던 남성우위론은 그리스도교에도 영향을 주어 여성에 대한 편견과 억압을 정당화하는데 기여했다. 이러한 남성 우위의 문화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 공공연히 만연해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 프라톤의 손은 하늘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은 땅을 향하고 있다)

 

 

    * 중세에 있었을법한 남녀평등에 대한 가상 이야기.

 

 

    ◎평등A :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거 아니야? 난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다고 생각해.

 

    ◉ 불평등B : 너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선생님 아는가?

 

    ◎평등A : 응, 근데 왜?

 

    ◉불평등B : 그 위대하신 분이 여자는 남자가 되려다가 만 미완성인간이라 했지. 하느님도 아담을 먼저 만들고 그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었지, 하와의 갈비뼈로 아담을 만든 게 아니지.

 

    ◎평등A : 그래도 모든 사람은 여자인 어머니를 통해 만들어지고 태어난 거잖아. 여자가 미완성이라면 미완성을 통해 완성의 인간인 남자가 태어난다는 게 모순 아니니?   또 성경도 그래. 여자의 배속에서 아기가 만들어지고 태어나는 거니까 하와의 갈비뼈로 아담을 만들었다고 하는 게 좀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불평등B : 하, 무식한 놈 같으니. 네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똑똑해?

아리스토텔레스를 알기나 해? 그 위대한 철학자가 남자가 진짜 인간이고 여자는 되다 만 미완성인간이라 했는데 네가 뭘 안다고 까불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의 과학으로는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고 하지만 이 위대한 철학자의 천동설은 지동설의 갈릴레이를 삶과 죽음을 가름하게 하는 가톨릭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종교재판으로 밀어 넣는다.

 

    천동설은 우주를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다. 천동설이 지금은 과학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해도, 지구에서 보면 오늘도 태양과 달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있다.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은 정해진 하늘 길을 재잘거리며 돌아다닌다.

 

    일종의 상대성이랄까? 지구를 고정시키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처럼 태양은 지구를 돌고 있고 모든 우주의 모든 천체도 지구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운동을 한다. 거대한 우주가 하루에 한번 씩 지구를 중심에 놓고 회전한다. 천동설은 틀린 것이 아니라 관점의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동설은 또 다른 관점의 문제이다.

 

    천동설이 자기중심적인 관점이라면, 지동설은 제3자적인 관점이다. 즉, 우리가 몸담고 있는 지구에서 떨어져서 우주를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동설과 지동설처럼 우리 우주는 어떤 관점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주 내부에서 보는 관점, 즉 자기중심적인 관점이라면 물질은 실존이고 관념은 허상이다. 그것은 천동설과 같다. 그러나 우리 우주를 한발 떨어져서 관찰한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물질은 관념이 되고 관념은 실존한다.

 

원문 ; 2014년 3월 6일

1차 수정 ; 2014년 10월 10일

2차 수정 ; 2014년 11월 12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