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8-86. 양자역학에 관한 수다

작성자하늘바다|작성시간16.07.29|조회수323 목록 댓글 0

철학이야기 : 다시 쓰는 유레카
(1부. 우주 / 8장. 세 번째 프로그램, 세 번째 프로그래머


     86. 양자역학에 관한 수다

    위의 슈뢰딩거의 고양이 패러독스 이야기를 읽고 고개를 갸우뚱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중첩(重疊, superposition)]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는데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고양이가 살아있는 경우와 죽어 있는 경우가 중첩으로 나타나다가 관찰자가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결정된다는 것이다.

    ‘과학이 무슨 애들 말장난도 아니고, 이런 비논리적인 사고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하셨다면 아직도 우리는 고전역학의 결정성의 우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몸은 21세기에 있지만 과학적인 지성은 16세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야기하였던 전자의 순간이동이나 양자 얽힘 (quantum entanglement) 이야기 등, 양자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은 인간의 논리로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데카르트는 논리 법칙이 의심할 수 없는 명백한 5가지 관념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고전역학적 사고이지 양자역학에서는 그러한 논리법칙이 전혀 통하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양자역학(量子力學)은 엄연한 현대 과학의 한 뿌리이고, 양자역학의 이해는 우리가 우주와 생명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사실 양자역학을 이해했다는 말은 모순이다. 양자역학의 권위자들도 양자역학을 이해했다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양자역학은 아직까지는 이해와 증명의 표현이 아니라, 현상의 전달에 불과하다. ‘실험을 해보니까 그렇게 나타나지기 때문에 그렇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지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과학자는 내 생각에 아직까지는 없는 것 같다. 마치 빅뱅과 급팽창처럼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되었다라고 생각해야 비로소 우리 우주가 이해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양자역학은 고전적인 논리학 규칙들이나 제정신을 가진 멀쩡한 사람들이 추론할 때 동원하는 평범한 규칙들까지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은 괴상망측해 보였다. 그러나 그렇든 말든 물리학자들은 양자 논리라는 새로운 논리에 맞춰 자신들의 신경망을 재배선했다.”(블랙홀 전쟁. 레너드 서스킨드)

    고양이 이야기를 하면서 [관찰자]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관찰자가 물리 현상에 개입한다는 말이다. 관찰자가 보기 전에는 몰랐다가, 관찰자가 그 현상을 보았을 때 비로소 현상이 정리되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관찰자가 개입하는 좀 더 이상한 이야기를 다뤄보자. 물론 마술이 아닌 과학의 이름으로.

    2011년 정신세계사에서 펴낸 김상운 기자의 ‘왓칭(WATCHING)’이라는 책이 있다. 부제는 ‘신이 부르는 요술’로 되어있다. 책의 요지는 미립자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데로 변화하려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사물도 달라지고 우리의 운명도 달라진다는 내용이다.

   와우!
   세상이 우리가 마음먹는 대로 바뀔 수 있다.
   이쯤되면 겨자씨만한 믿음으로 산을 옮길 수 있다는 예수님의 뻥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이미 베스트셀러이긴 하지만 아직 안 읽어 보신 분들은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여기에서 이중 슬릿 실험을 예로 들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