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구소설] 아내와 족구를(연재2)

작성자저ㄴ◐ㅠ처ㄹ|작성시간07.11.07|조회수409 목록 댓글 6

[족구소설]  

아내와 족구를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회장)
 

( 연재2 )

그날도 저녁 식사가 끝나고 습관처럼 소화도 시킬 요량으로 방문에 걸어놓은 족구 연습공을 차고 있었다. 잠시 후, 설거지를 끝낸 아내가 자기도 한 번 해보자고 하였다. 나는 반색을 하며 한번 차보라고, 연습하는 요령까지 다시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생각해 보니, 연습하는 요령을 설명해준 것은 벌써 일 년도 넘은 것 같았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 모여 운동하는 ‘잔다리 족구’ 클럽에 가입해 운동하기 시작하면서 연습공을 매달아놓은 것이 그 때쯤이니까.

내가 족구클럽에 들어가 주말마다 족구에 빠져 지내자 아내도 가끔 관심을 보여 왔었다. 족구 카페에 가입하여 관련 정보들을 찾아보는 방법까지 설명을 듣는 아내는 진지하기만 했었다. 족구 동호회 카페가 전국적으로 수없이 많다는 사실에 아내는 상대방 킬러로부터 ‘직접공격(네트를 넘어오는 공을 바운드되기 전에 공격을 하는 것으로 성공하면 2득점)’을 당한 수비수처럼 화들짝 놀랐다.

얼마 후, 내가 족구화를 사야 한다는 말을 하자 아내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 주겠다고 하였다. 아내는 나보다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 웬만한 물건은 인터넷 몰에서 구입하는 편이다.

그날도 아내와 함께 어떤 경매 사이트에서 족구화를 고르고 있던 중 여성족구화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족구 한번 해볼려면 자기도 하나 골라 봐. 예쁘게 생겼는데......”

내 말은, ‘족구를 한번 하겠다면 사 주겠다.’는 전제 조건이 내포되어 있었다. 지나가는 노숙자 열 명이 들어도 뻔하고 음흉한 전제 조건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당신은 족구를 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므로 내가 사라고 권해도 사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 입바른 소리가 화근이 될 줄이야.

“정말? 나도 하나 사 줄 거야? 그냥 운동화처럼 신어도 되겠네!”

그냥 운동화처럼 신어도 되겠다는 아내의 말이 없었다면, 그 족구화는 단지 웹상에서만 존재하는 물건이 되었을 것이다. 아내의 그 한 마디는 정식으로 족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으므로. 결국, 우리는 각각 족구화 한 켤레씩 구입하고 말았다. 거기다가 줄 달린 스타 챔피언 연습공까지.

그후, 일년 동안 연습공은 끈질기게 현관 옆 방문에 매달리어 주인 남자로부터 또는 아내로부터 때로는 아들 녀석으로부터 심심하면 얻어터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자, 보세요! 이 매듭에 고리를 걸면 발로 연습을 할 수 있고, 이 위 매듭에 고리를 걸면 머리로 수비하는 연습을 할 수 있어. 나는 아내에게 막내아들이 되어 신나게 설명했었다. 처음에는 꽃미남처럼 싱싱하고 매끈하던 족구공의 면상이 가족들로부터 뭇매를 얻어맞고 이제는 잔주름만 무성한 노인처럼 후줄근해지고 말았다.

나는 주말마다 족구에 빠져 집안 행사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가 있으면 될 수 있으면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에 끝내고 오후에는 운동장으로 향하였다. 낚시에 빠진 낚시광처럼, 도박에 빠진 노름꾼처럼. 즐족즐생. 즐거운 족구가 있어 즐거운 생활이 되는 것이었다.

‘회비 납부는 정확한 날짜에 신속하게 해야 하고, 눈을 감으면 족구공이 보여야 하고, 장모님 생신날에도 제끼고 나와야 하고, 근무 중에도 연락하면 2시간 이내에 즉시 출동해야 하고, 승부에서 지면 패인 분석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처음 가입할 때, 족구회 한 선배가 내게 말한 바 있었다. 그야말로 족구에 살고 족구에 죽는 족생족사(足生足死)에 다름 아니었다. 나는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으로 족구를 하라.’는 족구격언을 부적처럼 가슴에 품고 남들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족구에 빠져들고 있었다. 어떤 천재도 노력하는 자를 따를 수 없고, 노력하는 자도 즐기는 자를 따를 수 없다는 말을 맹신처럼 굳게 믿으며 족구를 즐기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세상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지! 족구를 하는 사람과 족구를 하지 않는 사람.’ 이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닐 정도로.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네트는 쳐지고 있다.’는 족구명언을 알면서 어찌 한 주(週)인들 빠질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시쳇말로 남이 하면 광(狂)이요, 내가 하면 매니아(mania)였던 것이다.

내가 족구클럽에 가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내가 여자족구는 없냐고 물었었다. 여성족구클럽이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우리 시(市)에서 한 팀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나는 말했다.

“왜? 가입하고 싶어서?”

“족구를 하려면 체계적으로 배워야 하잖아요. 내가 운동에 소질이 있는 거, 자기도 알잖아요. 나도 하면 안 될까?”

내가 족구에 빠져 있으니까, 아내가 반발심이 생긴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안돼! 하고 싶으면 나한테 배우시지!”

“흥! 내가 자기한테 자동차 도로주행 배우다가 이혼서류 꾸밀 뻔한 거 기억 못해요! 내가 나가면 인기 최고일텐데. 얼짱에, 몸짱에......”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알아?”

“피, 자기가 나하고 놀아주나. 맨날 회원들하고만 하면서.......”

아내는 투정인지 불만인지 반항인지 모를 표정을 만들어가지고 울상이었다.

그것으로 아내의 족구클럽 가입문제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다.

가끔 sbs스포츠에서 녹화 중계하는 ‘족구최강전’ 방송을 보며 함께 관심사를 얘기하는 정도였다. 어느 때는 최강부 선수들의 이름이며 족구 규칙들을 너무 잘 알고 있어, 내가 의아해 하면 인터넷 족구카페에서 규칙과 방송들 많이 봤어요. 정찬마 족구방송 해설위원도 잘 알아요, 했다. '정찬마'라면, 해설할 때 예리한 각으로 공격이 성공할 때, '각입니다! 아, 교과서 같은 각이예요!' 하고 외치기로 유명한 사람이 아닌가. 아내가 경이롭기도 하고, 허리가 휘어지도록 안아주고 싶기도 하였다. 어떤 아내인들 그런 해박한 이론이 있는데, 귀엽지 않겠는가 말이다. 족구격언에 ‘응원 잘하는 아내가 있는 팀은 족구도 잘한다.’ 라고 했던가.

그렇게 세월은 주몽의 화살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일 년이 어제처럼 지나가 있었다. (허무한 내 세월이나, 여러분 세월이나, 부모님 세월이나, 세월은 다 때려죽여야 해! 누가 울 부모님 세월을 멈추게 좀 해주세요! 제발~)

“자기야, 나랑 족구시합 한번 할까?”

그날, 설거지를 끝내고 연습공을 차 보던 아내는 뜬금없이 제안했었다.

“족구 한번 해볼까? 가 아니고, 나랑 시합 한번 하자고?”

“그래요. 우리, 내기해요?”

맞선자리에서 남자에게, 월급은 얼마나 받으세요? 하고 묻듯이 아내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아내는 자기가 이기면 겨울 정장 한 벌과 여자족구클럽에 가입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하였다.

“대신 내가 이기면...... 한 달간 발마사지 해주기다!”

피곤이 풀리게 하는데 발마사지만큼 좋은 게 또 있으랴싶었다. 소파에 누워 양쪽 발을 맡기면 아내가 정성껏 마사지 해주었던 때가 그리운 고향처럼 설핏 생각났던 것이다. 나긋한 아내의 손끝 맛에 피곤이 스르르 풀리곤 하던 기억을 나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한 마리 날렵한 연어처럼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내와 나의 조건에 비중이 다른 것을 눈치 빠른 분들은 이해하시리라. 게임에서 한쪽이 이길 확률이 높을 때는 당연히 승리에 따르는 결과물의 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가령, 아내와 내기 고스톱을 치면서 아내가 이기면 ‘외식하기’ + ‘설거지하기’지만 남편이 이기면 ‘안마 15분 해주기’ 정도로 양보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나는 당연히 내가 이길 것을 굳게 믿었으므로 접바둑을 두듯이 아내에게 5점이나 깔아주고 하자는 제안까지 서비스 하였던 것이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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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평택잔다리족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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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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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izzbye | 작성시간 07.11.17 재밌네요 ㅋㅋㅋ
  • 작성자나_족구 | 작성시간 07.11.18 하, 재미있는 족구소설이군여~~~
  • 작성자방글이건태 | 작성시간 08.08.09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 작성자무시라 | 작성시간 11.04.19 잼있네요~~ 퍼 갈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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