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구소설] 아내와 족구를(연재4)

작성자저ㄴ◐ㅠ처ㄹ|작성시간07.11.12|조회수435 목록 댓글 6

[족구소설]  

아내와 족구를


전유철(소설가 ․ 평택잔다리족구회장)
 

(연재 4)

어느새 회원들이 모일 시간이 되었는지 한두 명 내게 인사를 건넌다. 어떤 여자와 1대 1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고 궁금한지 네트 가까이에 와서 가볍게 몸을 풀며 관전한다.

“자, 바로 2세트 시작! 이번엔 안 봐줍니다!”

나는 머쓱한 몰골로 얼굴을 쓸어내며 곧바로 2세트를 선언하였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싶지만, 첫 세트를 빼앗긴 자의 서두름이 그대로 배어나오고 만다. 나도 성질 급한 한국 사람에 다름 아니니까. 거기다가 다혈질의 o형이다.

“좋아요!”

아내는 공을 내 편으로 넘겨주며 환하게 웃는다.

“이번엔 그 쪽입니다! 서브는 A-B-A 방식으로 넣는 겁니당. 1세트 내가 먼저 넣었잖아요~.”

나는 다시 공을 넘겨주며 이론에 강한 아내에게 게임방식을 알린다. 나도 게임규칙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아내의 머릿속에 각인시키고 싶다. 1대1 게임에서는 서브를 넣는 것이 유리하지만, 자존심이 있지, 남자가. 하는 생각이 뒤축차기처럼 저 뒤에서부터 불쑥 튀어나왔던 것이다.

“자, 플레이 볼!”

아내가 소리치며 서브를 넣는다. 높고 길게 날아온다. 하지만 안축 드라이브가 걸려 아웃될 것 같지는 않다. 뒤로 물러나며 머리로 받았지만 공은 뒤로 흐른다. 생각보다 공이 많이 튀어 올랐던 것이다. 실점이다. 첫 세트와 마찬가지로 또 2실점을 먹었다. 아, 젠장! 이게 무슨 창피야. 뒤로 흐른 공을 줍기 위해 달려가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자신이 실수한 공을 줍기 위해 오리궁둥이처럼 씰룩이며 뛰어갈 때만큼 비참한 기분이 들 때도 없지.

‘이러다가 2세트도 지는 거 아냐. 작전을 바꿔?’

생각해 보지만 문장을 끝내는 마침표 같은 확실한 그 무엇도 없다. 공격수가 아니고 수비수와 가끔 띄움수를 겸하고 있는 나는 아무래도 공격력이 약하다. 하지만 아내는 수비보다는 오히려 공격력이 좋다. 한 가지 공격만 쓰는 게 아니라 발바닥, 안축, 뒤축 등으로 강타와 연타를 적절히 배합하며 다양한 공격을 구사한다. 어느 때는 발코차기까지 구사한다. 단지 힘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 허리와 하체의 반동을 이용하여 힘을 파워로 전환시키는 능력이 있다. 무엇보다 잔 실수가 없는 것이 놀랍다.

도대체 알 수 없다. 다시 생각해 보지만, 아내는 그 동안 연습을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하였기에 저 정도란 말인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이 세트도 지면 무슨 망신인가. 구경하고 있는 이 아이들 하며, 무엇보다 회원들이 신기한 듯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고 있다. 나는 속으로 파이팅을 외치곤 하였다. 열심히 하는 자에게 복이 있는지, 2세트는 그래도 선전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깔아준 5점이 상당히 부담이 되었다. 실력 차이가 많이 난다면 부담이 없지만 비슷한 실력에서는, 바둑판에 5점이 먼저 새까맣게 깔렸을 때처럼 막막한 숫자가 되어 가슴을 죄고 목을 타게 만드는 것이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2세트를 선언한 것이 마구 후회된다.

나는 10점대에 들어서면서 겨우 동점을 이루었다. 그것도 표정은 최대한 숨기고, 행동은 젖먹던 내공까지 꺼내어 최선을 다해서 말이다. 땀이 얼굴에 흐르고, 등줄기에도 흥건히 고이는 느낌이다. 회원들이 점점 모이기 시작하여 열 명쯤 되는 것 같다. 벌써 모일 시간이 되었나. 우리들 게임이 진지한 것을 감지했는지 회원 한 명이 점수판까지 펼쳐놓으며 주심을 자처한다.

어느새 족구회장이 근처로 다가와 내게 수인사하고 아내에게도 아는 척 몇 마디 건넌다. 회장이 어떻게 아내를 알고 있지? 혼란스럽다. 하지만, 지금 게임 중에 물어볼 수도 없다. 회원들이 우리 게임을 매우 흥미롭게 관전하고 있다. 한눈 팔 겨를이 없다. 한 점이 정말 아쉽다. 그까이꺼(!) 한 점이 이렇게 목을 마르게 하다니. 아내의 얼굴에 난 점 하나 빼는데 2만 오천원 정도라 하던데, 한 점 값으론 그 돈이 결코 아깝지 않을 듯했다.

어느덧 경기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14점을 먼저 얻은 상태에서 회심의 일격을 가한 공격이 아웃 선언되었다. 주심에게 분명 세입이라고, 라인을 맞았다고, 어필하다가 회원들의 눈총만 따갑게 받고 말았다. ‘리시브를 논하면 1부, 토스를 논하면 2부, 심판을 논하면 3부’라고 했던가. 그럼, 나는 3부 선수밖에 안 되는 건가?

내가 앞서가다가 점수는 어느덧 14대 14, 듀스까지 되고 말았다. 한 점만 더 얻으면 끝낼 수 있었는데, 듀스 바로 앞에서도 과욕으로 공을 네트에 꽂고 말았다. 킬러처럼 한방에 매듭지을 수 있는 결정타가 없으니까 마지막 한 점을 못 얻고 거푸 두 점을 내주어 듀스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아내가 다시 서브를 넣는다. 엔드라인 근처 오른쪽이다. 이번엔 꼭 한 점을 얻으리라 생각하며 머리로 첫 터치 후 네트 가까이 투 터치로 띄웠다. 공격하기 알맞은 공이다. 신속하게 공격 자세를 취한다. 아내가 몸을 낮추며 수비 자세를 취하는 것이 얼핏 보인다. 이때다. 네트 앞에 페인트를 놓는다. 제발, 받지 마. 아내가 재빨리 다가온다. 오른발을 뻗어 발등으로 겨우 받아낸다. 공이 바로 네트를 넘어온다. 옳지. 재빨리 뒤로 밀어 넣으면 된다! 나는 첫 바운드 된 공을 그대로 발바닥으로 드라이브를 걸어 밀었다. 공이 감기는 느낌이 최고다! 낚시꾼이 고기를 낚을 때 느끼는 손맛처럼 공이 발바닥에 제대로 감기는 이 느낌으로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이것이 바로 족구 오르가슴에 다름 아니다) 요건 못 받겠지? 네트 앞으로 접근했던 아내가 당황하며 오른발 안축으로 직접 받는다. 공이 세다! 곧바로 네트를 넘어오고 있다. 이크. 이건 뭐야. 엔드라인 쪽으로 좀 높게 흐른다. 나는 재빨리 뒤돌아 간신히 첫 터치를 한다. 공이 높이 떠 엔드라인을 벗어날 듯하다. (이때 우리들은 ‘없어!’ 라고 옆 선수가 소리쳐 주지) 바인드 없이 엔드라인 안쪽으로 겨우 차 넣는다. 마지막 터치는 참한 볼로 넘겨주어야 한다. 살린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다. 나는 곱게 차 넘기며 수비태세를 취한다. 하지만 공이 좀 짧은 듯하다. 아내가 네트로 접근하며 매서운 눈매로 공을 쫓는다. 발이 높게 치솟는다. 직접공격이다! 연타지만 각이다. 세터 자리 쪽으로 공이 박힌다. 발을 쓸 수 없다. 아뿔싸! 순간적으로 ‘정찬마’ 족구방송 해설위원이 떠오른다. “아, 각에요! 예리한 각입니다!‘ 아내가 불끈 주먹을 쥐며 파이팅을 외친다. 회원들이 짝짝 박수를 친다.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까지 짝짝짝 박수를 보낸다.

“나이스 볼!”

내 실수를 자책하며, 나는 아내에게 성원을 보낸다. 멋진 공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5대 14!”

주심이 점수판을 넘기며 카운트를 알렸다.

“세트 끝입니다. 16대 14! 직접공격 성공은 2득점이지요~!”

아내가 생글거리며 주심에게 말한다. 맞아, 맞아! 게임 끝! 옆에 있던 회원이 거든다. 아차, 그렇지! 주심과 내가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을 아내는 밥에 섞인 썩은 콩을 골라내듯이 콕 집어내는 것이었다. 듀스에서 한 번에 2점을 주고 결국 2세트마저 허무하게 지고 말았다. 벌칙으로 아내에게 해줄 것이 무엇인지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머쓱하게 코트를 벗어나는데 회원들이 짐을 챙기는 아내에게 박수를 보낸다.

“오, 몸짱이네. 누구시지?”

회원 몇 명이 아내에게 턱짓을 하며 내게 묻는다.

“제 아냅니다.”

새로 반장이라도 된 아들을 소개하듯이 나는 자랑스럽게 말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회원들이 놀라워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하기는 나도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경기에 졌다는 열패감(劣敗感)과 아내에 대한 의문의 꼬리가 머릿속에 똬리를 틀고 있을 뿐이다.

“회장님, 제 아내를 어떻게 아십니까?”

나는 물을 찾아 마시며, 회장 곁으로 다가가 물어본다.

“그분이 아우님 아내였나? 우리 시(市) 여자족구단 주전 스트라이커인데, 발바닥 넓은 내가 왜 모르겠나!”

“헉, 뭐라고요? 여자 족구단? 주전 스트라이커요!”

나는 놀라며 거듭 외쳤다. 퍼뜩, 새로 산 아내의 족구화가 떠오른다. 두리번거리며 아내를 찾았지만, 벌써 가방을 메고 아파트 쪽으로 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바람만바람만 보일 뿐이었다. * 끝 *
 

(그 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담에 다른 족구소설로 만나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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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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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류한호 | 작성시간 07.11.12 족구소설 갈수록 흥미 진진해 집니다...수고 하셨습니다..
  • 작성자나_그리고_너 | 작성시간 07.11.13 족구라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 재미있게 만들수 있는 작가분에게 존경을 표합니다~~넘 재밌었습니다.~~
  • 작성자대회전 | 작성시간 08.09.10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
  • 작성자막시무스 | 작성시간 10.02.09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광진연합회에서 도움받습니다.
  • 작성자무시라 | 작성시간 11.04.19 잘 봤습니다~~퍼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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